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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마을에서 역사하기 ⑤_박수진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5.09.02 BoardLang.text_hits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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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5년 8월(통권 66호)

[기획연재] 
 
 

마을에서 역사하기 ⑤:

영웅에서 사람으로 - 지역이 역사인물을 기억하는 법

 


박수진(고대사분과, 성북문화원)

 
 
1. 지역화 과정에서의 역사인물 해석 문제
 
마을에서 역사하기, 즉 지역에서 일하다보면 필연적으로 하게 되는 일이 있다. 인물과 관련된 사업이다. 어떤 이름에는 ‘추모’를 붙이기도 하고 어떤 이름에는 ‘선양’을 붙이기도 한다. 내 지역의 인물을 더 크고 대단한 인물로 만들어 그것을 통해서 지역의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이 잘되면 콘텐츠화 해서 관광객까지 유치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역에서 이런 인물들을 ‘자기 지역만의 인물’로 만들려고 하기도 하며 너무 ‘신성한 인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에는 한용운이 1933년부터 1944년 6월 29일 사망할 때까지 살았던 ‘심우장’이라는 공간이 있다. 한용운은 교과서에도 나오는 시인 ‘님의 침묵’을 비롯해 다수의 시와 소설을 쓴 문인이고, 『조선불교유신론』을 쓴 스님이며,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1인으로 이름을 남긴 독립운동가이다. 여러 번 옥고를 겪었고, 이런 모든 공적이 인정되어 1962년 건국훈장 중 가장 격이 높은 대한민국장을 추서 받았다. 아주 간단하게 적었어도 대단한 인물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한용운이 성북구만의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용운이 태어난 곳은 충청남도 홍성군이다. 그가 승려가 되었으며 훗날 『님의침묵』을 집필한 오세암은 강원도 인제군에 있다. 그가 본적을 둔 설악산 신흥사 내원암은 강원도 속초에 있으며, 불교에 관한 많은 저서는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통도사였다. 또 서울에서 오랜 시간을 머문 곳 중 한 곳은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선학원이며, 옥살이를 한 곳은 서울시 서대문구에 있는 서대문 형무소이다. 뿐만 아니다. 그는 일본과 중국(현재의 동북삼성 지역),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도 간 적이 있다. 이러한 인물을 한 지역의 대표인물로 내세우면 문제가 생긴다. 오히려 불가능에 가깝다.

한용운을 예로 들어서이지, 많은 인물들이 마찬가지였다. 현재를 살아가는 지금도 사는 곳과 직장의 지역구가 다른 경우가 있고, 태어난 곳과 사는 곳이 다른 경우도 있다. 심지어 이사를 자주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오히려 한 지역에서 태어나, 생활하고 죽는 경우가 더 드물다. 하지만 지역 입장에서는 한용운만한 인물을 지역의 대표 인물로 내세워야 하는 이유가 있다. 특히 성북구처럼 심우장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인물과 공간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역사 인물의 ‘무오류성’이다. 역사 인물, 그중 특히 독립운동가들의 경우에는 조금의 흠결도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물론 이것은 지역에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 인물이 한 지역에만 사는 것이 오히려 드문 일이 듯, 한 인간이 마냥 선하고 정의로우며, 자상한 완벽한 인간인 경우도 드물다. 하지만 지역에서 인물을 주제로 콘텐츠를 만드는데 그 인물의 어두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어렵다. 더욱이 지역에서 만드는 역사인물 콘텐츠는 학계에서 논문을 쓰는 것과 다르다. 밝은 면을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도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자칫 ‘훌륭한 일은 훌륭한 사람만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줄 수도 있다. 때문에 역사 인물을 갖고 콘텐츠를 만들 때에는 어떤 메시지를 주어야 할까 하는 고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지역에서 막무가내식 고민 없는 기념, 선양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해내어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노력과 지원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뿐 아니라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까지 폭넓게 아우를 수 있는 선양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그런 지원사업이 어렵다면 매스컴이라도 좀 더 이데올로기의 스펙트럼을 넓혀서 독립운동을 다룰 필요가 있다.
 
 
2. 역사인물 콘텐츠와 현재적 가치의 모색
 
이제 역사인물을 해석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사실 고민하지 않으면 쉽다. 독립운동가=좋은 사람이라는 공식을 따르면 된다. 일종의 ‘영웅사관’인 셈이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이야기도 아닐 뿐만 아니라 혹시라도 있을 ‘민원’에도 대비하기 쉽다. 내용도 단순해 질 수 있으며, 메시지도 분명해진다. 모든 면에서 유리하다. 다만 그것이 정말 전해야할 메시지인지부터 의문이 생긴다. 더욱이 ‘그들의 활동이 현재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또는 ‘그들의 활동에서 현재를 사는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하는 점은 고민될 수밖에 없다. 이것도 ‘독립된, 혹은 민주화된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은 그들 덕분이다’라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오늘 날의 시대적 감각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피상적 역사인식을 만연화 시킬 수 있으며, 국가주의적 사고방식을 강화시킬 수도 있다. 현장에서 콘텐츠를 경험하는 사람을 접해보면 저런 단순한 접근으로는 관심을 끌 수 없다.

지역 역사 콘텐츠가 영웅사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물이 활동했던 시대적, 공간적 맥락을 실증적으로 연구하여 창작물에 담으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이것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북문화원에서 ‘심우장’에서 한용운과 관련된 공연을 만들자고 생각한 것은 2014년이었다. 당시 지역의 극단과 함께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자료를 제공했다. 그리고 1937년 한용운이 김동삼의 장례를 치른 일화를 바탕으로 뮤지컬을 만들었다. 제목은 ‘뮤지컬 심우’였다. 그 뮤지컬에서 한용운은 ‘100년 후의 손님’을 만나 묻는다. “그대들의 조국은 안녕한가?” 40분 정도 되는 짧은 뮤지컬의 절정의 순간이다. 사실 독립운동가들은 각자 만들고자하는 이상향의 국가가 있었다. 지금 우리가 그렇듯 그 모습은 그때의 그들도 모두 달랐다. 그래서 뮤지컬 심우에서는 단순히 독립이 아니라, 독립된 나라에서 만들어가고 싶은 세상에 대한 메시지를 준다.
 
 
그림 1. ‘뮤지컬 심우’의 한 장면
출처: 박수진
 
 
4.19를 소재로 지역 극단과 만든 ‘시선’이라는 연극도 있다. 4.19라는 것을 알리는 것도 목표였지만, 결국 연극에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극 중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우리 부모님은 총칼 앞에서도 당당했는데, 지금의 나는 직장 상사 눈도 마주치지 못한다.” 결국 뮤지컬과 연극에서 주고 싶은 메시지는 ‘지금의 당신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당신들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이다.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이 보편성을 획득하려면 결국 그들이 지키고자하는 가치가 보편적이어야 한다. 그들은 조금씩 생각이 달랐을지언정 자유, 평등, 민주 등의 인류 보편가치를 위해 투쟁했던 사람들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그들을 배워야 하는 이유일 수도 있다. 문화원과 극단에서 주목한 것은 이 지점이었다.

이런 생각을 한 것에는 이회영의 손자 이종철씨는 인터뷰가 영향을 줬다. 그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재밌는 게 독립운동한 분들에 대해서 너무 신화적으로 접근을 해서 접근을 다 차단시켜. 다 거짓말이야. 다 이웃집 아저씨랑 똑같은 거야. 근데 사고를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서 방향이 정해지는 거지. 그런데 독립운동한 분들 중에서도 그때 보면 성격적으로 아주 안 좋은 사람들이 많아. 외려 친일파도 성격 좋은 사람도 많고. 그거랑은 다른거야. 근데 그거를 막 이분법적으로 나눠놔서. 웃기는 얘기지 뭐. 무슨 항일 테러 했던 분들 이름 나오면 미화시키고 그러는데 그럴 필요는 없잖아. 있는 사실대로 해야지. (그래야) 젊은 애들이 나도 이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거지. 신화처럼 해놓으면 그런 사람을 누가 따라” 이 인터뷰 이후에 평범한 사람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 이야기. 그것이 문화원이 지난 시대의 사람들을 이야기 할 때 전달해야 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결국 지역에서 역사인물을 다루는 일은 그들을 더 위대하게 만들거나 흠 없는 신화로 꾸미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그렇게 할 때, 역사는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 말을 건네게 된다.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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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박수진 외, 2019 『3.1운동 100주년 기념 성북구 독립운동가 후손 구술자료집 이야기하다 보면 생각이 나』, 성북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