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역사하기, 즉 지역에서 일하다보면 필연적으로 하게 되는 일이 있다. 인물과 관련된 사업이다. 어떤 이름에는 ‘추모’를 붙이기도 하고 어떤 이름에는 ‘선양’을 붙이기도 한다. 내 지역의 인물을 더 크고 대단한 인물로 만들어 그것을 통해서 지역의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이 잘되면 콘텐츠화 해서 관광객까지 유치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역에서 이런 인물들을 ‘자기 지역만의 인물’로 만들려고 하기도 하며 너무 ‘신성한 인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에는 한용운이 1933년부터 1944년 6월 29일 사망할 때까지 살았던 ‘심우장’이라는 공간이 있다. 한용운은 교과서에도 나오는 시인 ‘님의 침묵’을 비롯해 다수의 시와 소설을 쓴 문인이고, 『조선불교유신론』을 쓴 스님이며,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1인으로 이름을 남긴 독립운동가이다. 여러 번 옥고를 겪었고, 이런 모든 공적이 인정되어 1962년 건국훈장 중 가장 격이 높은 대한민국장을 추서 받았다. 아주 간단하게 적었어도 대단한 인물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한용운이 성북구만의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용운이 태어난 곳은 충청남도 홍성군이다. 그가 승려가 되었으며 훗날 『님의침묵』을 집필한 오세암은 강원도 인제군에 있다. 그가 본적을 둔 설악산 신흥사 내원암은 강원도 속초에 있으며, 불교에 관한 많은 저서는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통도사였다. 또 서울에서 오랜 시간을 머문 곳 중 한 곳은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선학원이며, 옥살이를 한 곳은 서울시 서대문구에 있는 서대문 형무소이다. 뿐만 아니다. 그는 일본과 중국(현재의 동북삼성 지역),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도 간 적이 있다. 이러한 인물을 한 지역의 대표인물로 내세우면 문제가 생긴다. 오히려 불가능에 가깝다.
한용운을 예로 들어서이지, 많은 인물들이 마찬가지였다. 현재를 살아가는 지금도 사는 곳과 직장의 지역구가 다른 경우가 있고, 태어난 곳과 사는 곳이 다른 경우도 있다. 심지어 이사를 자주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오히려 한 지역에서 태어나, 생활하고 죽는 경우가 더 드물다. 하지만 지역 입장에서는 한용운만한 인물을 지역의 대표 인물로 내세워야 하는 이유가 있다. 특히 성북구처럼 심우장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인물과 공간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역사 인물의 ‘무오류성’이다. 역사 인물, 그중 특히 독립운동가들의 경우에는 조금의 흠결도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물론 이것은 지역에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 인물이 한 지역에만 사는 것이 오히려 드문 일이 듯, 한 인간이 마냥 선하고 정의로우며, 자상한 완벽한 인간인 경우도 드물다. 하지만 지역에서 인물을 주제로 콘텐츠를 만드는데 그 인물의 어두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어렵다. 더욱이 지역에서 만드는 역사인물 콘텐츠는 학계에서 논문을 쓰는 것과 다르다. 밝은 면을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도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자칫 ‘훌륭한 일은 훌륭한 사람만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줄 수도 있다. 때문에 역사 인물을 갖고 콘텐츠를 만들 때에는 어떤 메시지를 주어야 할까 하는 고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지역에서 막무가내식 고민 없는 기념, 선양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해내어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노력과 지원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뿐 아니라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까지 폭넓게 아우를 수 있는 선양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그런 지원사업이 어렵다면 매스컴이라도 좀 더 이데올로기의 스펙트럼을 넓혀서 독립운동을 다룰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