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역사랑' 2025년 7월(통권 65호)
[기획연재]
한걸음 더 다가가는 문화유산 이야기 ②: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사회사
백제나(고대사분과)
『삼국사기』복식조를 봤을 때, 관직의 품계에 따라 입고 걸칠 수 있는 의복과 장신구에 차이가 남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관직의 품계에 따라 복식과 장신구에 차이를 둔 것은 품계 간의 높고 낮음을 표현하여 관직의 위계질서가 작동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현대사회는 다른 것으로 조직의 위계질서가 설 수 있도록 하지만, 신분제사회였던 전근대사회에서는 대표적으로 복식과 장신구를 통해 관직사회의 위계질서와 신분제 사회의 신분 간의 위계질서가 세워지고, 질서에 따라 국가가 운영될 수 있도록 했다. 조선후기, 경제적으로 큰 부를 쌓았더라도 신분에 따른 복식과 장신구에 대한 규정을 벗어날 수 없었다.
신분제사회였던 전근대사회엔 신분에 따라 복식과 장신구를 만드는데 사용할 수 있는 재료도 규정되어있었다. 이는 여성들의 장신구인 비녀와 뒤꽂이 등에서 잘 나타나는데 양반신분의 여성의 경우 왕실의 비빈들보다는 장신구에 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 제약되었으나, 대체로 다양한 금속과 보석(광물)을 사용하여 장신구를 만들 수 있었다. 반면에 평민들의 경우 금속성 재료보다 목재를 사용하여 비녀를 만들었고 추가로 장식하는 뒤꽂이의 사용이 크게 제약되었다.
그리고 남성들의 경우 현재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인해 더욱 전 세계적으로 핫 아이템이 된 한국 전통모자인 ‘갓’을 통해 신분에 따른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데, 대체로 중인 이상의 성인 남성들이 갓을 착용했는데 신분에 따라 갓을 장식하는 장식 갓끈의 재료에 차이가 났다. 그리고 그 유형에 2가지가 있다. 갓을 머리에 고정시키는 끈에 장식하여 바로 늘어뜨리는 유형이 있고, 주영, 죽영으로 불리는 장식 갓끈은 고정시키는 끈과 별도로 가슴까지 길게 늘어뜨리는 유형이 있다. 특히, 주영과 죽영은 신분이 높은 사람들에게만 허용되었는데,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달랐으나 대체로 당상관 이상만이 착용할 수 있었다.
더불어 복식과 신발의 경우도 신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재료의 종류와 범위가 달랐다. 중인 이하의 경우 하급 비단이나 면직물로 복식을 만들었고 신발도 평민들은 주로 갓신보다 짚신을 신었다. 그리고 고위 양반일수록 복식과 신발에 장식이 추가되었다. 즉, 신분이 높을수록 복식과 장신구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재료의 종류와 범위가 넓었고, 자신의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장신구와 복식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근대 사회에서 관직의 품계에 따라 관복의 색이 달랐는데 위계질서와 함께 관품에 따라 주어지는 책임과 혜택이 다름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관품뿐만 아니라 신분에 따라 복식에 사용할 수 있는 색에 차이가 있었다. 현재와 달리 복식의 색이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복식의 색이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지표가 된 것은 옷감을 염색하는 염료의 재료가 색에 따라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전근대 사회에서 염료의 재료는 식물성 재료와 광물성 재료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신분이 높을수록 광물성 재료가 많이 사용되었다. 식물성 염료는 쉽게 얻을 수 있으나, 광물성 염료의 경우 광물을 얻는 것도 어렵지만 얻은 광물을 염료로 가공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 경제생활 속 복식과 장신구
현대사회에서도 명품 가방과 귀금속의 경우 때에 따라 재테크에 활용되는데 전근대 사회에서도 복식과 장신구는 당시의 경제생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특히, 여성의 장신구인 비녀와 뒤꽂이, 노리개 등은 경우에 따라 화폐대용으로 사용되었다. 무엇보다 혼례에서 시집올 며느리에게 주는 ‘패물’의 경우 대체로 비녀나 뒤꽂이, 노리개와 같은 장신구를 의미하는데 예물의 의미로 주는 것이었지만, 이 예물은 일종의 부부생활을 시작할 때 시부모가 며느리에게 주는 초기 자금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서 부부의 경제적 상황이 힘들어졌을 때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집문서와 같은 부동산 성격의 재산도 활용되었지만, 패물도 처분하여 가정경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활용했다.
그리고 영․정조 시대에 ‘가채 금지령’이 내려진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장신구에 담긴 경제적 상징성과 의미 때문이었다. 이는 실제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공식 관찬사서에 실린 사례로 여성의 경제력을 뽐내기 위해 풍성한 가채를 사용하여 머리를 장식하였는데, 시부모에게 하례 인사를 하다 가채가 너무 무거운 나머지 목이 꺾여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와 더불어 당시에 풍성한 가채로 인해 경제적인 폐해가 다수 발생하자 영조는 여성들의 가채 금지령을 공표했고, 이후 왕실에서도 가채 대신 첩지머리로 신분에 따른 머리장식의 규정이 변했다.
또한, 어느 시대든 국가에 내는 세금은 존재했다. 특히, 전근대 사회에 조 ․ 용 ․ 조로 대표되는 크게 3가지 종류의 세금이 존재했는데, 이 중에서 공물을 바치는 세금인 ‘조(調)’를 납부할 때 일종의 옷감인 면포를 납부했다. 이를 통해 복식을 만드는 옷감이 화폐 대용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면포로 세금을 납부하기 위해 전근대사회, 특히, 조선시대 대부분의 여성들은 베틀을 활용하여 면포를 짠 것이다. 여기서 조선시대 평민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데 남성들이 논과 밭에서 일을 하는 시간에 여성들은 집안일도 하지만 베틀을 활용하여 세금을 납부하기 위한 면포를 쉴 틈 없이 짰다.
3. 예식 속 복식과 장신구의 의미
한국은 조선시대까지 기록을 잘하고 그 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왔음을 현재 세계 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과거의 기록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러한 기록 중에 지난 2011년 프랑스로부터 영구임대 형식으로 반환받은 조선왕실 기록의 정수인 의궤가 있다. 의궤는 조선시대 의식(예식)의 절차와 과정, 의식에 사용된 다양한 기물, 의식에 사용된 기물을 만든 사람들 등 모든 것을 기록한 책이다.
어느 시대든지 의식에 사용되는 물건과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착용한 복식과 장신구에는 그 사람의 신분과 지위를 상징하는 색과 무늬가 들어있고 의식의 성격과 의미가 담겨있다. 특히, 전근대 사회에서는 국가적으로 의식이 행해졌고,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왕과 대신들이었다. 그 중에서 왕은 대신들과 다르게 구장복(대한제국 때는 12장복)을 착용했는데, 의식의 성격에 따라 구장복을 착용하지 않거나 구장복에 경건한 의미가 담긴 ‘방심곡령’을 추가로 착용하여 의식의 성격에 맞는 복색을 갖추었다. 왕이 의식에 구장복을 착용했다면 대신들은 ‘금관조복’을 착용했다.
그림 1. 화관
출처: 백제나
그리고 왕비와 양반가문의 여성들, 특히, 혼례를 올린 여성들의 경우 왕실은 내명부, 관직이 있는 남편을 둔 양반가의 여성들은 남편의 관직 품계에 해당하는 외명부 품계를 받는데, 의식에 따라 외명부도 참여가 가능한 의식이 있었다. 이 때 외명부 여성들도 각자가 받은 외명부 품계에 따라 규정된 복식과 패물을 착용해야 했다. 이들은 내명부에서 중전인 왕비보다는 낮은 품격의 의상과 패물을 착용해야 했다. 이를 통해 의식(의례)에 착용하는 의상과 패물(장신구)은 전근대 사회에서 신분과 그들의 직업의 지위 고저를 드러내며, 그 사람의 사회적인 위치를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4. 일상의 패션으로 자리 잡은 복식과 장신구
전근대 사회에서는 복식과 장신구가 그 사람을 나타내고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 고저를 표현하는 겉으로 드러나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복식과 장신구는 그 사람의 개성과 성격을 드러내는 하나의 수단이다. 무엇보다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특별히 제약하는 규정이 없기에 전근대 사회보다 더욱 다양하며 사람에 따라 가지각색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표현하고 있다.
물론, 직업에 따라 근무를 하는 시간만큼은 제복이나 유니폼을 필수로 착용해야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한 사람이 착용하는 복식과 장신구는 그 사람의 취향과 개성,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더불어 사람에 따라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복식과 장신구의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패션은 하나의 경쟁력으로 한 사람의 경제적 수준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러한 이유로 일명 ‘명품’을 가진 사람들을 대체적으로 경제적 수준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인식이 생겨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패션은 자신의 표현임과 동시에 한 사람의 경제적 위치를 조금이나마 유추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지표로 작용한다. 그래서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에 따라 다르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가능하면 좋은 옷과 명품을 하나라도 가지려한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보면 복식과 장신구의 착용에 대한 특별한 제약사항과 규정은 존재하지 않지만, 전근대사회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착용하는 의상과 장신구는 그의 사회적 위치를 어느 정도 드러내는 지표로 인식되고 있다.
정구복 외 4인, 2012 『역주 삼국사기』,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김순영 외 2인, 2022 『한국복식문화사』, 전북대학교 출판문화원
한영우, 2020 『의궤, 조선왕실 문화사』, 민속원
신병주, 2005 『조선 왕실기록문화의 꽃 의궤』, 돌베개
고태우외, 2024 『새로쓴 한국사특강』,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한국사연구회, 2008 『새로운 한국사 길잡이』, 지식산업사
한국역사연구회, 2005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청년사
국립고궁박물관, 2013 『궁에서 왕을 만나다』, 디자인인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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