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기사
기획연재
[기획연재] 영국 국립문서보관소(The National Archives in UK)를 다녀와서 (하)_한승훈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5.08.02 BoardLang.text_hits 112 |
|||||||||
웹진 '역사랑' 2025년 7월(통권 65호)
[기획연재] 영국 국립문서보관소(The National Archives in UK)를 다녀와서 (하):국내 소장 영국 자료 접속하기 ③ - 주한 영국 공사관·총영사관에서 남긴 문서
|
※ 1897년 대한제국 선포 이전의 국호는 조선, 그 이후는 대한제국 혹은 한국으로 구분하는 것이 원칙이나, 본 글에서는 한국이라는 명칭으로 통칭하였음을 미리 밝히는 바입니다. |
※ FO 228 수록 한국 관련 문서철 목록은 국사편찬위원회_전자사료관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이에 여기에서는 따로 목록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
※ FO 17과 FO 228의 중복 문서철 |
제가 FO 228에는 영국이 한국에 공사관을 설치(1897년까지는 총영사 파견)했던 1884년부터 1899년까지 주한 영국공사관 및 총영사관에서 주고받은 문서철이 수록되어 있다고 설명드렸습니다. 아울러 FO 17에는 1898년부터 1905년까지 주한 영국 공사관에서 수발신한 문서들을 다음과 같이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FO 17과 FO 228에는 1898, 1899년이 겹치는 문서철이 서로 존재하게 되는데, 이는 어찌된 것일까요? 쉽게 말씀드리면, 두 문서군에는 동일한 내용의 문서가 담긴 문서철이 존재합니다. 아마도 주한 영국공사관에서 주청 영국공사관으로 문서들을 전달되는 과정에서 복본이 발생한 듯 합니다. 그런 이유로 FO 17과 FO 228에는 중복된 문서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 FO 17에 수록된 한국 관련 다양한 문서철 |
FO 17에는 다양한 한국 관련 문서철이 존재합니다. 위 표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광산 양여의 내용이 담긴 FO 17/1719(Mr A.L. Pearse's Mining Concession in Corea)도 있고, 치외법권 등의 문제를 다룬 FO 17/1697(Consolidation of China and Corea. Orders in Council. Volume 1) 등도 있습니다. |
※ 한국 근대사의 보고(寶庫)와 같은 존재, FO 17
|
FO 17의 가치는 결코 1900년 전후 시기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FO 17 문서군에는 19세기 중반 영국이 동아시아 진출을 본격화하면서 한국과의 관계 설정을 놓고 고심한 기록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1870년대 초반 베이징에서 오경석이 메이어즈(Mayers) 영국 영사와 비밀리에 만나 나눈 대화 내용도 FO 17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중요성 때문에 『근대한국외교문서』 편찬위원회에서도 해당 자료를 편찬할 때 FO 17 문서철에서 한국 관련 문서를 찾아 수록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FO 17에서 한국 관련 문서를 찾는 일은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보통 300쪽이 넘는 문서철 속에서 한국 관련 문서가 한두 건 발견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인지 『근대한국외교문서』 이후로는 FO 17을 활용한 연구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FO 17을 활용한 새로운 연구가 나왔습니다. 정소영 선생님은 「제너럴셔먼호 사건에 대한 영국의 대응」(『인문과학』 제88호, 2023) 논문에서 FO 17 문서군에 포함된 자료를 집중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기존의 “제너럴셔먼호 사건 → 신미양요”라는 단순한 인과관계에서 벗어나 한국의 국제적 상황을 보다 다층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하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국내 연구자들이 FO 17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는 사실도 소개한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 조금은 어렵겠지만(필기체의 압박도 있고...... 한국 관련 자료가 나온다는 보장도 없고.....) 국내에서도 쉬이 TNA 자료를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만큼, 자료를 사랑하는 연구자들이 계속해서 도전했으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