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발표회 후기 –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본 한국 고대 軍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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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회의 참여 후기]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본 한국 고대 軍制


서민수(고대사분과)


일시 : 2014년 6월 28일(토) 오후 1시 30분
장소 : 한성백제박물관 1층 대회의실
주최 : 한국역사연구회ㆍ한성백제박물관
후원 : 한성백제박물관
발표
1부 발표 사회 : 박준형(연세대학교)
2부 토론 사회 : 하일식(연세대학교)

1. 총론 :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본 한국 고대 軍制

발표 : 정동준(한성대학교)
2. 백제에서의 장군호 수용과 막부제
발표 : 정동준(한성대학교)  토론 : 이장웅(한성백제박물관)
3. 6∼7세기 신라 장군의 성격과 운용
발표 : 최상기(서울대학교)  토론 : 이상훈(경북대학교)
4. 신라 중고기 軍役과 軍政
발표 : 이정빈(경희대학교)  토론 : 임용한(한국역사고전연구소)
5. 발해의 도성방어체계와 금군제
발표 : 강성봉(성균관대학교)  토론 : 임상선(동북아역사재단)

 


   고대 동아시아 국가들은 중층적인 국제관계를 형성하였고, 그 속에서 여러 정치적 제도들이 공유되고 또 저마다 변용과정을 거쳤다. 고대 국가의 軍制도 마찬가지였다. 밀접히 연동된 국제질서 속에서 어느 한 지역의 군사적 변화는 주변으로 파급되었다. 뿐만 아니라 군제는 내부적으로 상층의 정치권력부터 기층의 사회구조까지 정치ㆍ사회의 여러 부문과 관련을 맺었다. 따라서 고대 군제에 대한 연구는 군제 그 자체에 대한 이해를 도모할 뿐 아니라, 고대 동아시아 세계의 국제질서와 고대 국가의 정치ㆍ사회상을 살피는 창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한 기대 속에서 지난 6월말 한성백제박물관에서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본 한국 고대 군제’라는 주제로 국제관계사 연구반의 학술회의가 열렸다. 그동안 한국 고대 군제는 영성한 사료로 인해 그 전모를 파악하기 어려웠고, 그에 따라 군제에 대한 활발한 논의의 장도 마련되지 못하였다. 지난 학술회의는 그러한 한계를 딛고 고대 군제에 관한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날 총 네 명의 연구자들이 백제, 신라, 발해의 군제를 다룬 개별 주제를 발표하고, 모두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보편성을 염두에 두고 논의를 펼침으로써 전체 기조의 통일성을 유지하였다.

제1발표는 ‘백제에서의 장군호 수용과 막부제’였다. 발표자는 우선 중국사에서 실직인 장군과 ‘官階’적 성격을 띤 장군호가 분화해가는 과정, 그리고 그와 함께 탄생한 막부제와 부관제의 변천과정을 살폈다. 그를 바탕으로 중국왕조로부터 장군호를 수여받은 백제의 군주 및 신하의 사례를 검토하여, 백제에서 장군호ㆍ부관제가 어떻게 기능하였는지를 분석하였다. 분석된 바에 의하면 백제의 왕은 비교적 고위급의 장군호를 제수 받았기 때문에 開府權을 가졌고 府官도 설치하였다고 추정된다. 그리고 백제의 신하들에게 수여된 장군호는 중국에서처럼 무관으로서의 의미보다는 신분과 지위를 표시하는 ‘관계’의 의미를 지녔다. 다만 장군호는 백제의 왕ㆍ후제와 결합되어 왕ㆍ후에게 지방 세력을 통제할 수 있는 군사적 명분을 주었으며, 지방 세력에게는 하급 장군호를 수여해 그들을 포섭하는 방편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그밖에 자기 기반이 취약했던 漢人계는 국왕 막부의 부관에 임명되어 지위상승을 얻을 수 있었다. 이들 부관은 국왕 막부에 소속되어 근시신료로 활약하였으며, 이후 동성왕대 설치된 內頭ㆍ內官 12부가 그 기능을 대신하였다고 한다.

제2발표는 ‘6∼7세기 신라 將軍의 성격과 운용’이었다. 발표자는 6∼7세기 신라 장군에게 보이는 특징으로 전시에 국왕 권한을 위임하여 백성들을 지휘하는 점, 종전 후 지휘권을 반환하기 전까지 발생하는 각종 업무를 책임지는 점을 들었다. 즉 신라의 장군은 전시에 한해 각종 업무를 종합적으로 책임졌다. 이러한 특징은 唐에서 전시에만 운용했던 行軍總管과 통하는 부분이 많아, 신라에서도 문무왕대 행군제도의 틀을 수용해 장군을 총관으로 개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발표자는 종래 군의 지휘권을 행사하기도 했던 軍主를 장군과 동일하게 운영된 것으로 보아온 견해에 반대하였다. 군주의 후신인 도독의 취임 요구조건은 관등으로 규정된 반면 장군은 관직을 요구조건으로 삼았는데, 이는 장군이 군주와 달리 군사적 필요에 따라 임명되는 임시직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군주는 어디까지나 지방관이었기 때문에 그 군사적 권한이 장군과 달리 관할 주 내로 한정되었다는 점도 달랐다. 그 때문에 6∼7세기 신라의 전쟁규모가 확대되면서 주의 범위를 벗어나 전쟁을 담당하던 장군의 출전사례가 군주에 비해 눈에 띄게 확인된다고 하였다.

 

제3발표는 ‘신라 중고기의 軍役과 軍政’이었다. 발표자는 군역을 군사 분야의 제반 국역을 의미하는 광의의 군역과 소정기간의 의무적인 상비군 복무를 협의의 군역으로 구분하고, 발표문에서는 협의의 군역을 중심으로 논의를 풀어나갔다. 발표자는 현전 사료가 왕경인의 군역만을 전하고 있는 점에서 신라 중고기 군역이 지방민을 포함한 일반민 전체에 부과된 것으로 본 종래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검토한 바에 따르면 중고기 군역은 왕경에서는 골품제를 기반으로 하여 6두품 이하의 미입사자에게 부과되었고, 지방에서는 군주의 재량에 따라 군인이 선발ㆍ운용되었으므로 ‘三年一期’의 의무적인 군역과는 성격이 달랐다고 한다. 이처럼 신라 중고기 군역은 왕경과 지방이 일원적인 체계 하에 운영되지 않았다. 그러다 6세기 전반 병부가 설치되고, 병부령이 왕경과 지방의 군정으로 해석되는 ‘內外兵馬’의 업무를 관장하게 된다. 이 단계에도 여전히 신라의 지방 군정은 州에서 주관하였지만, 신라의 군정체계는 점차 전국적인 단위로 정비되었다고 한다.

제4발표는 ‘발해 금군과 도성방어체계’였다. 발표자는 우선 한국사와 중국사에서 禁軍이 주로 중앙군내에서 계통을 달리하며 국왕의 측근에서 시종과 숙위를 전담한 친위군적 성격을 띤 개별군단의 성격을 가진 것이었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발해 금군의 성립시기를 도성방어체계의 정비라는 관점에서 상경성의 축조와 관련지어 설명하였다. 그에 따르면 상경성은 당의 문물제도를 적극 받아들였던 문왕대에 당의 장안성을 본떠 내성과 궁성을 중심으로 단계적인 조영이 이루어졌으며, 이때 장안성에서처럼 궁성 및 경성방비의 역할을 지닌 군사조직인 8위제가 성립했다고 한다. 이후 당에서 황제직속 근위군단 성격을 지녔던 左右神策軍이 9세기 중반 발해에서도 설치되는데, 발해 8위 중 南左右衛와 北左右衛가 그 역할을 수행했던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어서 발표자는 발해 8위가 상경성에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당의 16위 운용체계를 바탕으로 구체화하였다. 그리고 발해의 중ㆍ대형 성곽이 목단강을 끼고 있는 상경성을 중심으로 자연 지리적 조건에 따라 분포하고 있어, 고구려가 당에 대비해 요동방어선을 삼중으로 구성하였던 것과 달리 발해는 8위제를 근간으로 도성 중심의 방어체계를 성립시켰다고 한다.

발표가 끝나고 각 주제에 대한 개별토론과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제1발표에 대한 토론에서는 과연 백제왕이 開府權을 가졌는지, 백제 고유의 관등제가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장군호는 官階보다 爵의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닌지, ‘伏義將軍’印과 담로제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지 등 주로 장군호의 운영방식에 대한 질의응답이 이뤄졌다. 제2발표의 토론에서는 발표자가 명확히 구분되는 것으로 규정한 장군과 군주의 개념 및 성격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하여 사료해석상의 차원에서 몇 가지 질의가 이뤄졌다. 제3발표에 대해서는 협의의 군역과 광의의 군역을 구분하기보다는 왕경인과 지방민이 수행한 군역 내용의 차이를 비교ㆍ검토할 때 양자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날 것이라는 방향제시 차원에서의 토론이 이뤄졌다. 제4발표에 대해서는 발해 금군의 개념과 그 범주를 재차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과 함께 논고를 보강할 만한 참고 자료들이 제시되었다.

이번 학술회에서는 종래 군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만큼 한국 고대 군제의 기본적인 개념들을 검토하고 규정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듯하다. 그 때문에 토론에서도 장군호, 막부제와 부관제, 장군과 군주, 국역과 군역, 금군 등 기본 개념에 명명된 용어의 적절성과 개념이 포괄하는 범주를 분명히 하기 위한 논의가 주로 오갔다. 이날 군제에 관련된 기본 개념들에 제기된 몇 가지 문제점과 토론 내용, 그리고 개념 규정에 있어 동아시아 군제의 역사적 추이가 충분히 고려되었던 점은 추후 고대 군제의 연구를 진척시키는 데 중요한 밑바탕이 될 것이다. 다만 이번 학술회의에서 고구려 군제에 대한 발표가 빠지게 되면서 학술회의 구성의 완결성에 아쉬움이 남았는데, 이에 대해서는 국제관계사연구반의 추가적인 연구 성과들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