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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마을에서 역사하기 ②_박수진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5.06.01 BoardLang.text_hits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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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5년 5월(통권 64호)

[기획연재] 
 
 

마을에서 역사하기 ②:

마을이란 무엇인가 - "행정구역을 넘어선 역사적 상상"

 

 


박수진(고대사분과, 성북문화원)

 
 
1. 향토사에서 지역학으로
 
마을에서 역사하기를 시작하며 고민하게 된 또 다른 하나는 ‘지역’이었다. 내가 처음 성북문화원에 오면서 맡은 직책은 ‘향토사’연구 팀장이었다(직원은 없었고, 두 달 후 1명이 팀원으로 충원됐다). ‘향토사’는 말 그대로 고향(鄕土)의 역사를 뜻하며, 특정 지역에 대한 애향심이나 정체성 고취의 목적이 강했다.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연구의 주체는 지역 유지, 향토사학자, 교육자 등 비전문가 중심으로 구성된 경우가 많았다. 내용 역시 사실의 축적, 지역인물 중심, 전통의 보존과 미화, 민속·전설·사적지 중심의 기술이 주가 되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역사적 비판성이 부족해 객관성이 결여되는 경우도 있었다. 무엇보다 향토사 체계에서는 지역을 하나의 고립된 단위로 인식했다.
 
변화가 온 것은 80년대 이후 사회사·민중사·구술사 등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부터였다. 특정 공간에서 연구한다는 측면에서는 기존의 향토사와 같았지만 그 공간을 국가사와 세계사 속에서 상대적으로 위치 짓고 해석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역사학뿐 아니라 인류학, 지리학, 사회학과의 융합이 시도되었으며, 주민, 여성, 노동자, 소수자 등 기존 향토사에서 배제되었던 존재들의 역사가 쓰이기 시작했다. 더욱이 서울, 부산, 광주 등 대도시에서도 지역사 연구가 활발해지며 더 이상 향토사라는 이름으로 지역의 연구를 포괄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생긴 개념이 지역사였다. 지역사는 이때부터 소위 ‘국사’의 보완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 국가사와 대등하게 지역을 해석하는 주체적인 역사로서의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지방 분권이 시작되며 지역사는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갔다. 지역이라는 단위는 그 국가의 일부로 작용하지만, 그 자체로 여러 문제를 직접 해결해야 하는 단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역사학이 중심이 되었다면 인구 소멸, 주거 불균형, 청년 유출, 노인 복지, 지역 자립 등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복합적인 연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지역을 역사학, 인류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도시공학, 환경학, 사회복지학 등이 통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인 지역학이 등장했다.
 
한국에서 1980년대부터 시작된 지역학은 1993년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서울학연구소를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인천, 울산, 경기, 충청북도, 전라북도, 경상남도, 경상북도, 제주도에서 지역학 연구소를 만들며 본격화되었다. 그 주체도 대학, 지방자치단체, 민간 등 다양하다(오영교, 2017). 현재는 용인학, 수원학, 이천학, 춘천학 등 지방 도시는 물론 서울에서는 도봉학, 성북학 등 구(區) 단위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그 연구의 주체도 초기에는 학자들에 국한되었지만 현재는 문화정책 및 기획가, 주민, 정치인들까지 참여하고 있다(박충환, 2020). 주제 역시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으로 다양해지는 추세이다(오영교, 2017). 이런 지역학의 ‘인기’는 지방분권시대에 맞춰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적 필요성과 더하여 더욱 확대되고 있으며, 지역의 대학과의 연계도 활성화되어가고 있다.
 
성북문화원의 향토사 연구팀 역시 이러한 추세에 맞춰(늦은 감이 있지만) 2016년 성북학 연구팀으로 이름을 바꿨다. 지역 연구에 대한 개념과 용어 정리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림 1. 2022년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제4회 성북학학술회의
이 당시에는 혁신교육, 사회적경제, 박물관과 도서관 등과 지역의 관계가 각각 소주제 세션으로 발표되었다.
 
 
2. 지역의 상대성과 극복을 위한 노력
 
성북학 연구팀을 만들었지만 그때부터 진짜 지역에 대한 고민이 시작 됐다. 지역은 상대적인 단위이기 때문이고, 바로 그 지점에서 난관에 봉착한다. 현재의 행정구역이 과거로부터 내려온 역사적 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행정구역의 상당수는 정치적·사회적 타협의 산물이다. 인구의 증가 및 감소, 혹은 정치적 필요에 의해 통합되거나 분리되기도 했다. 2010년 창원, 마산, 진해시가 통합하여 창원시가 된 것 역시 이러한 필요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울의 경우도 비교적 최근까지 분구(分區)가 이루어졌는데, 마지막은 도봉구에서 강북구가, 구로구에서 금천구가, 성동구에서 광진구가 분구된 1995년이다. 이것은 인구변화, 행정의 편의 문제 등 다양한 변수에 의해 결정되었는데, 이 자체가 당대의 상황을 보여주는 측면에서는 역사성을 보이지만, 역사적 동질이나 생활권 등을 고려하여 결정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지방자치단체의 행정구역은 역사적으로도 – 특히 서울의 경우 – 그 동질감을 찾기 힘들다. 현재 성북·삼선·동선·돈암·정릉지역과 안암·종암·월곡·석관지역의 조선시대의 위상은 달랐다. 안암동과 종암동 일대는 고려시대부터 남경으로 오는 소위 ‘남경로’에 위치하여 일찍부터 마을로 발전했다. 조선 태종대에는 이어소가 설치되기도 했으며, 그때 ‘주변 민가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태종의 명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태종실록』 12권 태종 6년 9월 3일) 마을은 계속 존재했다. 반면 옛 돈암동 지역은 잠시 활인서가 존재하기도 하였지만, 광해군 대에 사람이 살지 못하게 한 것을 시작으로 조선 후기까지 큰 마을이 발전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서울역사편찬원, 2022). 다만 성북동 지역은 영조 대에 성북둔이 설치된 이후로 현재의 간송미술관 지역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돈암지구에 대한 도시구획정리사업으로 현재의 삼선동, 동선동, 성북동(일부), 보문동(일부),안암동(일부), 돈암동(일부)가 개발되어 하나의 생활권이 형성되었다면, 종암동과 안암동, 석관동, 월곡동, 장위동은 이들과는 별개의 생활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행정구의 변화는 비단 과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현대의 행정구역도 생활권과 일치하지 않는다. 역시 성북구를 예로 들면 성북동, 삼선동 등은 주로 종로구 혜화동과 명륜동 등과 생활권이 맞닿아 있으며, 안암동은 동대문구 제기동, 석관동은 동대문구 이문동과 생활권이 연결된다. 더욱이 교통이 발달되어 있어 주거지가 반드시 주민의 생활권과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의 예산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나오고, 현재의 지방자치단체의 영역을 중심으로 지역학의 연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를 극복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현재의 행정구역 단위를 넘어서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이미 많은 지역학에서 시도 되고 있다. 서울시 동북4구(성북, 강북, 도봉, 노원)문화원의 경우 2020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지역문화 발전 방향’, 2021년에는 덕성여대 인문과학연구소와 중랑문화원이 더하여 ‘서울 동북권의 역사문화적 특성과 지역학 연구의 과제’라는 제목으로 학술회의를 진행했다. 모두 행정구역을 넘어서 서울의 동북권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엮어서 보기 위한 시도였다. 충청남도의 경우 충청도 서쪽을 ‘내포문화권’으로 엮어 충남 내륙과는 구분되는 문화권을 보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내포문화 총서』를 발간하고 있다(2022년 현재 12권까지 발행). 행정단위를 넘어 하나의 문화권을 상정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림 2. 2021년 덕성여대 인문과학연구소와 서울시 동북 4구(강북·노원·도봉·성북구)의 업무협약식
 
 
반대로 더 작은 단위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즉 동 단위, 혹은 그 이하의 마을단위의 연구가 필요하다. 마을은 자연적인 산물이며, 그 자체로 생활권을 이룬다. 교통의 발달로 주거생활과 직장 혹은 학교생활 등 사회생활이 분리되었지만, 마을은 여전히 하나의 생활 단위이다. 쇼핑을 위해 대형마트 등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동네 마트나 편의점에서 소소한 물건을 하고, 산책을 한다. 아이들을 키우면 학교가 마을과 멀지 않은 곳에 있을 수밖에 없으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학원 등은 마을과 가까이 위치하게 되며 자연스럽게 하나의 생활권을 이룬다. 물론 옆 마을로 가기도 하고, 그것이 현재 정해놓은 행정구역을 넘기도 하지만, 마을이 그 자체로 주변과의 관계성 속에서 하나의 생활권을 이루는 것은 틀림없다. 따라서 마을 단위의 연구는 생활권 단위의 연구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연구 지역의 범위를 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서 확대하는 동시에 축소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1년 단위로 생활문화자료 조사사업을 실시하여 『돈암: 도성 밖 신도시』, 『노량진: 삶의 환승지대, 도시화의 전이지대』, 『장위동: 도시 주거 변천의 파노라마』 등의 보고서를 펴냈는데 이는 마을, 혹은 생활권 단위의 조사가 진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을에서 역사하기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마을과 지역 등 연구단위를 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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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박충환, 2020 「글로컬 문화지형과 지역학으로서 ‘영남학’의 위치」 『嶺南學』 73
오영교, 2017 「한국학과 국내 지역학」 『지방사와 지방문화』 22-2
서울역사편찬원, 『도성 밖 신도시 돈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