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산책] 헌화가(獻花歌)와 공주병

BoardLang.text_date 2004.05.06 작성자 하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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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화가(獻花歌)와 공주병

하   원   호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신라 성덕왕때 순정공(純貞公)이라는 인물이 강릉태수로 임명받았다. 식솔과 종자들을 대동하고 부임지인 강릉으로 가던 도중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파도가 요란한 풍광좋은 어느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주위를 둘러 보던 순정공의 아내 수로부인(水路夫人)이 천길이나 되는 절벽 위에 철쭉꽃이 환하게 피어 있는 것을 보았다. 수로부인이 동행한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누가 저 꽃을 꺾어다 주겠소?”

건장한 종자 몇이 절벽 밑으로 갔다. 가파른 절벽 아래 선 종자들은 하나 같이 고개를 흔들었다.

“저 곳은 사람의 발자취가 이르지 못하는 곳입니다.”

마침 그 때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한 수염이 허연 노인이 그 광경을 보았다.

“제가 해 보지요.”

종자들이 노인을 향해 낄낄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노인은 절벽을 타기 시작했다. 장비도 없이 암벽타기를 하던 노인이 철쭉꽃 한 송이를 꺾어 들고 내려왔다. 그리고 수로부인에게 꽃을 바치는 헌화가(獻花歌)를 불렀다.

짙붉은 바위 옆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받자 오리다

신라식의 세레나데였다.

수로부인의 미모는 노인에게 헌화가만 받을 정도가 아니었다. 헌화가를 받고 또 길을 가던 중에 동해용이 물속에서 뛰쳐나와 업어갔다가 그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막대기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서야 겨우 놓아줄 정도였다. 그래서 깊은 산이나 못을 지날 때마다 번번이 신물(神物)들에게 붙잡혔다고 삼국유사는 전한다.

노인을 천길 절벽에 오르게 하고, 용이 바다 속에서 뛰쳐나오게 하는 수로의 미모도 미모지만 세레나데를 지어 바칠 정도의 노인의 풍류는 신라인의 따뜻한 심미안(審美眼)을 그대로 보여준다. 신라의 울타리 안에 사는 모든 생명은 사람 아닌 용까지도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 넉넉했던 것이다. 신라의 화사한 문화유산은 이 같은 신라인의 심미안이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TV 속의 요란스러운 공주병 연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실소를 면치 못하게 만들지만 수로부인의 공주병은 가히 신라의 노인이나 자연산천까지 움직였던 것이다.

공주병은 의학적으로는 과대망상증이다. 요즘같은 사회적 신분제가 철폐된 민주주의사회에서 지나친 자기 과시는 다른 사람들의 질시를 받기 마련이지만 전근대 신분제가 고착화된 사회에서는 높은 신분의 여자가 드러내 보이는 공주병은 병이 아니라 일종의 신분과시용이었고 그래서 사회적으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는 왕비인 박씨가 죽자 새로 아내를 맞게 되었는데 간택에서 뽑힌 인물이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南)의 딸이었다. 김씨가 별궁(別宮)에 들었을 때 이야기다. 궁중에서 늙은 상궁들이 모두 별궁에 나가 김씨가 어린 색시라는 것을 알고는 방자하게 굴었다. 하루는 예복을 마르기 위해서 몸을 재게 되었는데 앞품을 재고 뒷품을 재게 되었을 때 일이다. 노상궁이 어린 김씨를 깔보고 그냥 뻣뻣이 서서 말했다.

“아기씨 좀 돌아서십시오. 뒷품을 재 보아야겠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김씨는 꼼짝도 안했다.

“어서 돌아 서십시오.”

제가 뒤로 돌아가기 싫었던 노상궁은 사뭇 재촉했다. 그러자 김씨의 서릿발 같은 호령이 떨어졌다.

“아니 상궁이 내 뒤로 돌아가서 잴 것이지 누구더러 돌아서라는고!”

그 뒤부터 상궁들의 태도가 공손해 졌고, 다들 일국의 국모(國母)가 될 분은 다른 데가 있다고들 했다. 이 김씨가 바로 인목대비(仁穆大妃)였다.

공주는 봉건시대 왕의 딸이고 공주나 왕비가 될 사람이 그 신분에 맞게 행동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신분제가 무너진 사회에서의 공주 흉내는 옆 사람의 눈총을 받기 마련이다. 물론 자신의 재능이나 재력을 기반으로 한 공주병은 요즘도 인정받을 수밖에 없다.

화폐의 소유량에 따라 사람의 높낮이가 인정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가진 자의 부인이나 딸이 인목대비 흉내를 낸다 해도 말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평등사회인 만큼 눈총받기는 마찬가지다. 유럽에서도 16세기쯤 되면 귀족들만 모이는 무도회장에 귀족은 아닌데도 귀족보다 더 화려한 옷과 악세사리로 치장하고 등장하는 여성들이 있었다. 상품생산이나 무역, 고리대 등으로 돈을 모은 자들의 부인이나 딸이었고 이들은 장차 자본주의사회의 주역이 될 부르주아지의 초기형태였다. 이들에게서 돈 빌려 쓰는 형편이었던 귀족들도 이들을 사회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돌아서면 쑥떡거릴 것은 당연했다. 남편이나 아버지의 화폐가 만든 지위이지 자신의 재능과는 무관한 여성의 돈 자랑이 용납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남보다 다른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인정하고 그 능력을 사회적으로 발휘하는 여성의 공주병은 다르다. 근거 없는 과대망상이 아닌, 끊임없는 자기암시와 능력개발은 현대의 심리학에서도 재능발전의 지름길로 본다. 수로부인의 미모를 현대적 의미에서의 사회적 능력으로 바꾸어 보면, 수로부인의 미모가 노인과 산천을 움직였듯이 재능 있는 여성의 공주병은 주위 사람에게서 현대판 헌화가를 받게 하고 나아가 사회를 보다 넉넉하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눈물 하나만을 재능으로 삼아 아버지의 유령을 일으켜 세우고 지역주의의 헌화가를 받으면서 죽어가던 정당 하나를 되살려낸 어느 당 대표의 공주병은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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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3월 30일 저녁 10시부터 20분간 KBS 1TV에 방영된 한나라당 정강정책 연설 방송도중 박근혜 대표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KBS 화면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