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을 살아갔던 ‘보통사람’의 이야기(영화 '보통사람')

BoardLang.text_date 2017.12.06 작성자 김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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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을 살아갔던 ‘보통사람’의 이야기


 

김효성(현대사분과)


 

일상이란 평범한 듯 보이지만 실상 매우 어렵다. 2017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일상’은 당대 사회에서 요구하는 일정한 ‘수준 있는 삶’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수준은 정치, 경제, 사회에 따라 그 내용이 합치되는 경우도 있지만 상충되는 부분도 있다. 상충될 때 주체는 우선순위를 무엇에 두느냐에 따라 상반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POSTER[사진1] 영화 ‘보통사람’ 포스터(네이버 영화)










 

이 글을 통해 소개할 『보통사람』이라는 영화는 1987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앞서 말한 상반되는 가치에 충돌하는 주인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일상’이 어떠한 기회비용을 지불했는지를 보여주었다.

 

배우 손현주 씨가 열연한 주인공 강성진, 그는 청량리경찰서 소속의 형사이다. 그는 언론에서 지속적으로 보도하는 범죄자 ‘발발이’를 쫓고 있다. 그에게 신참을 붙이면서까지 반장과 해당 경찰서 서장은 공무원으로서 영전을 위해 강성진을 독촉한다. 그리고 그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김태성(조달환 역)’을 잡았는데, ‘떡밥’인 줄 알았던 김태성이 실은 살인자였다.

 

또 한 사람, 강성진의 치열한 형사로서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다른 한편으로 비추는 인물이 있다. ‘최규남(장혁 역)’. 서울대학교 법대 재학 중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법무관을 거쳐 국가안전기획부 대공 부서로 자원한 전도유망한 법조인, 이면에 그는 국가안전기획부의 ‘기획 사건’을 끊임없이 양산해내는 조작 사건의 기술자였다. 전두환 정권이 위기일 때, 혹은 국민들의 여론을 환기시켜야 할 때, 최규남의 기획력은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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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영화 ‘보통사람’ 스틸컷(네이버영화)


 

 
#1. 단순 살인자였던 김태성이 연쇄살인마로 둔갑

 

예전에 한창 인기를 끌었던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여기서는 지체 장애를 겪는 백광호(박노식 역)는 사건 현장에 있었던 이유만으로 주요 용의자가 된다. 여기서도 비슷하다. 김태성은 지체 장애가 있고, 15세에 이르러 국민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다. 그러나 최규남의 공작으로 김태성은 경기와 서울, 전북을 돌아다니며 17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연쇄살인마로 변신한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전두환 정권에 반발하는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서였다. 연쇄살인마가 횡행할 정도로 불안한 이 상황,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익숙한 논법 아닌가!

 

강성진은 최규남의 ‘자료’에 근거해 김태성을 고문하면서 점차 연쇄살인마로 둔갑시킨다. 그것은 강성진의 의지라기보다는 그래야 했던 것이다. 1980년대 국가안전기획부의 위세는 주지의 사실 아닌가. 그러나 이를 수상히 여긴 사람이 있었으니 강성진의 절친이자 자유일보의 선임기자였던 추재진(김상호 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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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영화 ‘보통사람’ 스틸컷(네이버영화)








#2. 강성진의 절친이자 진실 보도를 추구하는 추재진과 갈등하는 강성진










 

덥수룩한 수염과 취재 대상에 대한 매서운 관찰, 등장 신에서부터 그는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평화의 댐 사건을 비판하는 기사를 편집하는 편집국장에게 일갈한다. “너는 임마, 차 몰 때 절대 좌회전하지마!” 추재진에게 있어 기자의 본분은 실재적 진실을 알리는 데 있었다. 그런 그에게 김태성을 기획된 연쇄살인마로 만들고 있었던 강성진은 위험해보였다. 그는 특유의 취재력을 통해 강성진의 배후에 최규남이 있었음을 알게 되고, 그는 국가안전기획부의 추적을 피해 강성진의 집에 하룻밤 묵기를 청한다.

 

 
#3. 자기 손으로 추재진을 신고하는 강성진, 강성진의 내적 갈등

 

강성진은 형사라는 외피를 제외하면, 사연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장애가 있는 아들과 말을 못하는 아내가 있었다. 쥐꼬리만한 봉급에 조금이나마 살림에 보태고자 안방에서 봉투에 풀질하는 부업을 하는 아내에게 버럭할 정도로 강성진은 곤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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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4] 영화 ‘보통사람’ 스틸컷(네이버영화)

 

그런 그에게 최규남의 ‘지시’는 비단 공작 만이 아니었다. 장애가 있는 아들의 수술을 역설하며 끊임없이 당근을 제시하면서, 넌지시 강성진의 선친을 언급하기도 한다. “지리산에서 돌아가셨다면서요. 심마니는 아니실테고..” 빨갱이 콤플렉스를 남몰래 지녔던 강성진과 곤궁했던 가정사에 덧붙이면서 최규남의 지시는 강성진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로 여겼다. 그런 추재진의 취재 활동을 못마땅해하는 강성진에게 던진 한 마디는 묵직하게 울린다.

 

“보통사람, 상식이 통하는 시대에 살고 싶은 보통사람.”


 

적어도 강성진에게는 최규남이 마련해준 지금의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보통사람’이었을 것이다. 결국 강성진은 자기 손으로 추재진을 밀고한다. 그리고 국가안전기획부로 끌려간 추재진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그러한 추재진의 모습을 보고 난 후 청량리경찰서로 돌아온 강성진의 눈앞에는 개장탕이 있었다.

 

항상 자기를 보면서 짖는 개, 몇 달이 지나도록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그 개가 막상 죽어서 음식이 되었을 때, 강성진은 절규한다. 이제 이곳을 누가 지키냐고! 그것은 어찌 보면 자기 손으로 생명을 끊게 했던 추재진에 대한 참회이자 후회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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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 영화 ‘보통사람’ 스틸컷(네이버영화)


 
#4. 나의 일상을 뒤흔들 수 있는 ‘외부’의 존재

 

추재진이 죽기 전 최규남의 기획 공작에 대한 관련 자료를 강성진에게 남기고, 강성진은 이를 폭로한다. 그런 그에게 돌아온 것은 간첩 혐의였다. 청량리경찰서에서 10년 넘게 재직했던 공무원이 한 순간에 고정간첩으로 둔갑한 것이다. 그런 그가 김태성과 한 교도소에서 마주치는 장면은 내가 꼽는 최고의 장면 중 하나이다. 김태성을 엮어 연쇄살인마로 기획했던 강성진 본인이 고정간첩이라는 기획 공작으로 교도소를 들어가는 기막힌 역설. 그것은 아마도 본인이 지키고자 했던 ‘일상’이 실제는 누군가의 눈물과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일상은 온전히 유지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30년이 지나 노회한 표정으로 법관으로 변신한 최규남이 재판부로 강성진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여 무죄로 선고한 장면은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다. 급하게 편집한 면이 없지 않은데, 그 판결문을 들으며 눈가에 물이 고이는 강성진의 표정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억울함의 표시였을까. 아니면 추재진을 비롯하여 나 때문에 고통을 당했던 사람들에 대한 참회의 눈물이었을까.

 

『보통사람』은 강성진의 시각에서 1987년, 더 나아가 1980년대의 시대상을 비춘 작품이다. 신념이 투철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인간적인 사람도 아니다. 국가안전기획부의 공작 과정에서 아내를 잃고 아들이 불구가 되는 상황까지 처했던 강성진에게 과연 국가는 어떠했을까. 최규남이 김태성 자료를 건네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라는 표현에 어색해했던 강성진의 표정은 어찌 보면 국가의 존재감이 없이도 당대 자신의 일상에 최선을 다했던 보통 사람들을 보여줄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