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몽고 답사기 #2] : 북방민족의 흔적을 찾아서②

BoardLang.text_date 2014.10.17 작성자 이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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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여름 내몽고 답사기 #2]


북방민족의 흔적을 찾아서② :


답사 셋째 날에서 다섯째 날까지

이충선(중세1분과)


   3일차 일정은 홍산 공원을 가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날은 홍산 공원과 적봉박물관을 보는 것으로 일정이 끝나기 때문에 아침에 여유 있게 출발했습니다. 되돌아 생각해 보면 홍산 공원은 조금 실패였던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공원이었기 때문에 답사코스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곳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곳에서 홍사문화에 대한 발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답사인 적봉박물관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1]  홍산 공원  ⓒ이충선


   다음 일정은 적봉시내에 있는 적봉박물관이었습니다. 적봉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청나라 대까지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홍산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인지는 몰라도 이 부분에 대한 전시가 중시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저희 답사 일정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2]  적봉박물관  ⓒ이충선


   저희가 박물관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10시 30분 정도였습니다. 박물관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면서 오후 12시가 다되었을 때 박물관 직원들이 전시실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점심시간이라 오후 2시30분에야 다시 박물관 문을 연다더군요. 내몽고 지역 박물관이 원래 이런 건지 아니면 여름이라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면 굉장히 부럽더군요. 한국도 더운 날씨에 노동자들을 쥐어짜기 보다는 쉴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게 오히려 업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앞으로의 모든 박물관 관련 일정이 꼬여버린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사진 3]  적봉박물관 소장 유물  ⓒ이충선


   저희는 상의 끝에 일정의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다시 관람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근처에서 식사를 한 후에 다시 박물관을 관람했습니다. 적봉을 뒤로 하고 나선 시간이 3시 반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차를 달려 숙소가 있는 파림좌기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4일차에는 파림좌기(巴林左旗) 주변을 답사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파림좌기는 요나라 시절에는 상경 임황부라고 불렸던 지역입니다. 저희는 상경성의 남쪽에 위치한 남탑부터 답사일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남탑은 벽돌로 쌓아올린 8각형의 전탑으로, 7층이고, 높이는 25m 정도 됩니다. 1층의 탑신이 높고 2층부터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처마의 간격이 좁아지는 밀첨식(密檐式)의 탑입니다. 1층의 탑신에는 조각된 부처와 보살, 천왕, 역사 등이 여럿 조각되어 있어서 거란의 예술 수준이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진 4]  요상경성 남탑과 주변 전경  ⓒ이충선


   남탑은 버스가 탑 근처까지 올라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길에서 내려 대략 15분정도를 걸어서 올라가야 했습니다. 탑에 도착하여 주변을 보니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5]  요상경성 남탑 탑신부  ⓒ이충선


   남탑은 50년대 이후에 대대적으로 보수를 하였고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탑신부에 조각되어 있던 불상 등은 대부분 탑신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간혹 있어도 복제한 것을 붙여놓은 것이고요. 원래 유물은 거의 대부분 파림좌기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어서 이후 일정에 들린 박물관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들린 곳은 요 상경성 유적이었습니다. 남탑에서 그리 멀리 않은 거리에 있어서 금방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사진 6]  요상경성지 평면도  ⓒ이충선-14


   요 상경성 임황부 유적은 거란의 五京 중에서 축성시기가 가장 빠른 성으로 요나라의 건국과 함께 건설된 수도하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 그 성에 대한 흔적은 찾아보기가 힘들었고, 표지석만이 여기가 상경성이 있었던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주변은 현지인들의 목초지로 이용되고 있어서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사진 7]  요상경성지와 그 주변  ⓒ이충선


   다음으로 저희는 점심 식사를 하기 전에 북탑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북탑은 현재 시내에 위치하고 있는데 주택가 사이에 있어서 찾는데 조금 헤매기도 했습니다. 북탑은 높이가 대략 13m 정도 되는 6각형의 5층 전탑입니다. 다만 거의 허물어졌던 탑을 보수하여서 지금은 예전의 모습은 거의 보기 힘들었습니다.




[사진 8]  요상경 북탑의 보수 이전 모습(좌)과 지금의 모습(우)  ⓒ이충선


   점심을 먹고 저희가 다음으로 간곳은 요상경박물관이었습니다. 여기도 역시나 점심시간 때문에 2시30분이 넘어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시간상 다른 코스를 먼저 갈수가 없었기 때문에 박물관이 다시 문을 열 때까지 저희가 지난밤에 묵었던 호텔로 돌아가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서 박물관에 들어가 유물을 관람하였습니다.



[사진 9]  요상경박물관  ⓒ이충선



[사진 10]  요상경박물관 소장 유물들①  ⓒ이충선



[사진 11]  요상경박물관 소장 유물들②  ⓒ이충선


   요상경박물관에는 주변의 전탑과 왕릉 등에서 나온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자 유물도 상당히 있었습니다. 사실 도자기에 관련해서는 잘 모르고 도자사를 전공하는 분도 없어서 아쉬웠는데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요나라 삼채’를 주제로 특별전이 귀국 이후에 개막해서 보고 오니 이해가 되더군요.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이날의 마지막 코스인 祖陵을 가야 했지만 버스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한동안 박물관 주변에서 대기하게 되었습니다. 버스를 수리하고 출발하여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30분이었습니다.



[사진 12]  조릉 입구  ⓒ이충선


   조릉은 파림좌기 동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요나라 태조인 耶律阿保機의 능입니다. 조릉은 능역과 능에 봉해진 陵邑인 祖州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즉 [사진 12] 주변이 전부 능역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 12]에 보면 표지석이 하나 있습니다. 그걸 기준으로 해서 왼쪽으로 대략 3km 정도를 올라가면 玄宮이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석판으로 구성된 석실이 있습니다. 저희는 우선 석실 쪽으로 해서 산을 올라갔습니다. 석실로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길이 제법 잘 정비되어 있어서 석실까지는 큰 무리하지 않고 갈수 있었습니다.



[사진 13]  조릉 석실  ⓒ이충선


   석실은 화강암 석판으로 만들어져서 높이 3.5m, 가로 6.7m, 세로는 5m 정도 되는 거대한 석실입니다. 7개의 석판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구조의 석실은 중국 건축물 중에서도 소수이고, 요나라 대에 건축한 석실 중에서 유일하게 1군데가 남아있는 유적이라고 합니다. [사진 13]의 왼편을 보시면 외벽에 그물모양으로 얕게 파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유목민족의 게르(Ger)를 모티브로 해서 이 석실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사에 쓰였던 시설로 추정하고 있지만 용도나 건축 목적에 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고 합니다. 



[사진 14]  조릉 석실 내부(위)와 석실 주변 전경(아래)  ⓒ이충선


   조릉으로 가기 위해서 저희는 석실을 뒤로 하고 다시 내려와야만 했습니다. 문제는 능까지의 거리가 3km 이상이고, 산길을 올라가야 했다는 점입니다. 저희는 입구 근처에 사시는 현지인의 차를 섭외해서 올라가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차로 올라가는 길이지만 비포장도로를 가는 것이었기에 올라가는 것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능묘는 보지 못하고 내려와야만 했습니다.



[사진 15]  요태조릉으로 가는 길(좌)과 표지석(우)  ⓒ이충선


   [사진 15]에 나오는 표지석까지 차가 갈수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 다시 숲을 헤치고 산을 올라가야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시간도 저녁 7시가 다되어 해가 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찾는 것을 포기하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진 16]  능묘 주변 건물터  ⓒ이충선


   다만 위의 [사진 16]처럼 표지석 근처에 건물터가 있었고, 기둥을 올렸던 초석이 있어서 근처에 능묘가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었습니다. 만약 박물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면, 차가 고장 나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언젠가 다시 와서 찾아볼 수 있는 날이 올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 여러모로 아쉬웠던 하루였습니다.


   5일째 일정은 파림우기(巴林右旗) 주변을 답사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아침 9시에 버스를 타고 출발해서 도착한 곳은 요 경주 석가불사리탑이었습니다. 경주 백탑(庆州 白塔)으로도 불리는 이 탑은 8각형의 7층 석탑으로 높이가 73m 정도 되는 거대한 탑입니다. 요나라 흥종 중희 18년(1049)에 지었다고 합니다. 주변에 별 다른 유적이 없이 초원 위에 하얀 탑이 세워져 있어서 탑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사진 17]  경주 백탑  ⓒ이충선


   탑의 안에는 원래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어서 탑의 내부로 올라가볼 수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탑의 형태는 목탑의 형식으로 만들었고, 층마다 문을 만들어 놓고 탑신의 외부에는 부처ㆍ천왕ㆍ역사ㆍ비천ㆍ보살상 등을 조각하여 장식해 놓았습니다. 또한 탑당(塔幢)과 동물ㆍ인물 등의 각종 무늬가 부조되어 있어서 더욱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4층 탑신부터 바깥 면에 구리로 만든 거울을 부착해 놓아서 조성 당시에는 거울에 햇빛이 반사되어 탑이 빛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단의 탑찰(塔刹)도 구리로 만들었는데 도금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탑 내부에서 불경ㆍ목조불사리탑ㆍ은제사리병 등의 여러 유물들이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유물들은 저희가 오후에 방문했던 파림우기 박물관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 18]  경주 백탑 1층 전경  ⓒ이충선



[사진 19]  경주 백탑 3층과 4층 전경  ⓒ이충선



[사진 20]  경주 백탑 5층과 6ㆍ7층 전경  ⓒ이충선



[사진 21]  경주 백탑 탑찰  ⓒ이충선


   이날 저희는 경주 백탑과 요나라 성종의 능묘인 경릉(庆陵)을 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정을 바꿔서 점심을 먹고 시내로 들어가 파림우기 박물관을 가기로 했습니다. 그 이유는 백탑에서 우연히 이 지역에서 문화재 관리를 맡고 계신 분을 만났기 때문인데요. 그분이 북경에서 오신 중국 분들에게 유적을 설명하고 계신걸 보고 즉석에서 섭외해서 유적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 코스였던 경릉에 대해서 물어보니 지금 현재 갈 수 없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고, 차라리 파림우기 박물관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경릉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파림우기 박물관은 시내에 있었습니다. 저희가 파림우기에서 묵었던 숙소에서도 가까운 위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건물 외부에 박물관이라고 하는 표시가 없어서 찾아가는데 주변을 헤매기도 했습니다. 전시실에 각 시대별로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고, 앞선 코스였던 경주 백탑과 요대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사진 22]  파림우기 박물관 소장 유물들①  ⓒ이충선



[사진 23]  파림우기 박물관 유물들②  ⓒ이충선



[사진 24]  파림우기 박물관 유물들③  ⓒ이충선


   파림우기 박물관을 마지막으로 답사 5일차 일정을 끝냈습니다. 파림우기에서의 일정을 끝내면 元 上都 유적이 있는 정람기(正蓝旗)로 이동해서 숙박을 해야 했지만 정람기에 마땅한 숙소가 없어서 다시 파림우기에서 하루를 더 묵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이동해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