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논문 - 「중고기 신라의 대(代)와 대법(代法)에 대한 고찰 -함안 성산산성 17차 발굴조사 출토 사면 문서목간을 중심으로-」

BoardLang.text_date 2018.03.04 작성자 전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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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논문을 말한다


중고기 신라의 대(代)와 대법(代法)에 대한 고찰


-함안 성산산성 17차 발굴조사 출토 사면 문서목간을 중심으로-


(『역사와 현실』 105, 2017. 9)

 

 

전덕재(고대사분과)


 

『역사와 현실』 105호(2017년 9월)에 게재한 「중고기 신라의 대(代)와 대법(代法)에 대한 고찰- 함안 성산산성 17차 발굴조사 출토 사면 문서목간을 중심으로-」로 한국역사연구회의 2017년 최우수논문상을 받았다. 상을 받아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상을 받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문제가 많은 논고라는 점을 스스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쑥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을 떨쳐버리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열심히 더 연구하여 연구회와 한국사학계를 선도하는 성과를 지속적으로 내기를 독려하는 채찍질로 이해하고 보니, 연구자로서의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져서 괜스레 마음 한 구석에 무거운 돌덩이가 가라앉은 것처럼 이러저러한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최우수상을 수상한 논고는 최근에 함안 성산산성에서 발굴 조사한 이른바 사면 문서목간에 전하는 ‘대(代)’의 의미와 ‘대법(代法)’의 성격에 대하여 고찰한 것이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2017년 1월 4일에 6세기 중·후반 신라에서 제작한 사면 문서목간을 처음 공개하였다. 사면 문서목간에서 연구자들이 주목한 것은 거기에 보이는 ‘代’와 ‘代法’에 관해서였다. 본인 역시 ‘代’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 이 목간의 묵서를 해석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라고 생각하였다. 본인이 판독한 사면 문서목간의 묵서와 그 해석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면: 三月中 眞乃滅村主憹怖白

2면: □城在弥卽智大舍下智前去白之

3면: 卽白 先節夲日代法稚然

4면: 伊汑罹及伐尺寀言廻(迴)法卅代告今卅日食去白之

 

1면: 3월에 진내멸촌주가 괴로워하고 두려워하며 아뢰었다.

2면: □성에 계신 미즉등지 대사와 하지 앞에 나아가 아룁니다.

3면: ⓵ 곧 아뢰기를, ‘앞선 때에(전에) 본일(本日: 지금) (시행되고 있는) 대법(代法)은 엉성한(유치한) 모습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⓶ 곧 아뢰기를, ‘앞선 때에(전에) 본일(本日: 지금) (시행되고 있는) 대법은 (양이) 적은 모습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4면: 이탁리급벌척(伊汑罹及伐尺)의 채(寀)로 말하면, 법에 의거하여 돌아보아 30대(卅代)였다고 고(告)하였으나, 지금 30일 만에 다 먹어버렸다고 아룁니다.

 

사면 문서목간이 공개된 이후, 나름대로 묵서를 판독하고, 해석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쉽지 않았다. 중국의 여러 문헌에서 ‘代’의 의미를 추적할 수 있는 힌트를 찾으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상념에 쌓여 고민하고 있던 차에, 예전에 신라의 결부제(結負制)에 관한 연구(전덕재, 2001 「신라 중고기 결부제의 시행과 그 기능」『한국고대사연구』21)를 진행하면서 살펴본 고대 일본의 도량형과 전적법(田積法)를 살핀 연구성과(龜田隆之, 1955 「日本古代に於ける田租·田積の硏究」『古代學』4-2)가 기억이 났고, 다시금 그것을 세밀하게 검토한 결과, 고대 일본에서 도(稻: 이삭이 붙여 있는 벼) 1속(束)을 수확할 수 있는 토지 면적을 1대(代)라고 불렀고, 일반적으로 삼국의 영향을 받아 전적법(田積法)을 정비하였다고 이해하고 있음을 살필 수 있었다. 이러한 연구성과를 통해 막연하게나마 신라에서 벼 1속을 수확할 수 있는 토지면적을 1대라고 불렀고, 그러한 전통이 일본에 전래되었을 가능성을 한번쯤 상정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그러나 사면 문서목간에서 ‘대’가 토지면적을 가리키는 단위로서 사용되었음을 도출하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본인은 사면 문서목간에서 ‘卅代(30대)’란 표현과 ‘卅日食去(30일식거)’라는 문장을 주목하였다. 여기서 ‘食去’는 ‘먹어버렸다’로 해석이 가능하여, ‘30대’와 ‘30일에 다 먹어버렸다’가 대응되는 것임을 직감하고, 신라시대에 하루에 한 사람이 얼마만큼의 곡물을 소비하는가를 추적하였다. 그 결과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 8세기에 한 사람이 하루에 대략 벼 3승(升: 1승=200ml)을 먹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다음 과제는 당시 1속(束)의 토지에서 벼를 얼마만큼 수확하였는가를 밝히는 것이었는데, 다행히도 『고려사』 식화지에 전하는 기록을 통해 고려 성종대에 수전(水田) 1속(束)에서 평균적으로 벼 577.5ml를 수확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약간 시간의 편차는 존재하지만, 한 사람이 하루에 먹을 수 있는 벼의 양(600ml)과 1속에서 수확할 수 있는 벼의 양이 거의 비슷하였다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이것을 기초로 하여 ‘30대’를 어떤 사람이 국가로부터 지급받은 경제적 대가와 관련이 있으며, 다시 이것을 30일에 다 먹어버렸다는 문장과 연결시켜, 중고기에 ‘30대’는 한 사람이 30일에 소비할 수 있는 식량과 대응될 뿐만 아니라 30속에서 수확할 수 있는 벼의 양과도 대응된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었다. 즉 중고기 신라에서 1속에서 수확할 수 있는 수확량이나 그것을 수확할 수 있는 토지면적을 1대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본인은 1대가 바로 1속에서 수확할 수 있는 벼(이삭이 붙여 있는 벼 1속=탈곡한 벼 1승)의 양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그것을 수확할 수 있는 토지면적을 가리킨다는 추론을 근거로 하여, ‘대법(代法)’은 6세기 중·후반 신라에서 1속의 벼 수확량과 그것을 수확할 수 있는 토지면적, ‘대’를 단위로 하여 징수한 토지세(전조) 또는 ‘대’를 기초로 하여 지급된 식료(食料)와 녹봉, 직역(職役)에 대한 대가(給料) 및 기타 대제(代制)의 운영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하여 규정한 법률이라고 정리하였다.

 

이상이 본인이 수상논고에서 살핀 핵심 내용인데, 본인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해석과 치밀한 논증을 거쳐 ‘대’의 의미와 ‘대법’의 성격을 고찰한 것이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그러나 판독과 해석상에 이견이 존재하기 때문에 여전히 본인의 이해가 지나친 억측이 아닐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수상논고에서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夲代法’에 대한 판독이다. 이것을 본인은 ‘本代法’으로 판독하였지만, 여러 연구자들은 ‘六十代法’으로 판독하였다. 만약에 ‘六十代法’이라고 판독할 수 있다면, 본인의 논지는 상당 부분 재검토의 여지가 있게 되는 위험성을 안게 된다.

 

여기다가 비록 ‘本代法’으로 판독된다고 하더라도, ‘代’의 의미와 ‘代法’의 성격에 대해서 이견이 있을 수 있음도 유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사면 문서목간을 검토한 연구자들은 대체로 ‘대(代)’를 역역의 징발과 연계시키거나(김창석, 2017 「함안 성산산성 제17차 발굴조사 출토 사면목간(23번)에 대한 시고」『한국사연구』177; 박남수, 2017 「신라 법흥왕대 ‘及伐尺’과 성산산성 출토 목간의 ‘役法’」『신라사학보』40) 또는 ‘작업 일수’였다(이수훈, 2017 「함안 성산산성 출토 4면 목간의 ‘代’-17차 발굴조사 출토 23번 목간을 중심으로-」『역사와 경계』105)고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계속 ‘대’의 의미와 ‘대법’의 성격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제출된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사면 문서목간에 대한 판독과 해석상에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본인의 논지는 향후에 수정과 보완의 여지가 적지 않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은 수상논문에서 과감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만큼 학계에 새로운 학설을 제기하였지만, 그러나 신설을 학계의 통설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줄 수 있는 논거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느낌을 완전히 지울 수 없고,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어 본인의 논지를 뒷받침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과, 본인의 논지를 완전히 뒤엎을 수 있는 새로운 자료가 발굴될까 하는 두려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비록 본인이 제기한 학설이 학계에서 널리 수용되지 못하더라도 수상논고가 향후 학계에서 사면 문서목간, 나아가 함안 성산산성 목간 연구의 진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면, 수상에 대한 마음의 빚을 약간이나마 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본인 스스로가 100% 만족하지도 못하고, 객관적으로도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는 논고를 최수우수논문상으로 선정한 편집위원장님과 편집위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하여 여러 연구자들이 공감할 수 있고, 학계의 연구를 선도할 수 있는 성과를 지속적으로 발표할 것을 굳게 약속하고자 한다. 앞으로도 많은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리며,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연구회 임원 및 연구원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