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세상읽기

17대 국회에게 바란다

BoardLang.text_date 2004.05.07 작성자 한상권
페이스북으로 공유 트위터로 공유 카카오톡으로 공유 밴드로 공유
17대 국회에게 바란다

-‘사학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사립학교법을 개정하라-

2004.4.29  한상권(덕성여대 사학과)

1. 어느 사립대 총장의 두 얼굴

 

1-1. 구한말 10대 거부로 꼽히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어느 정도 거부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함경도-평안도-황해도-경기도 등 전국에 그의 땅이 없는 곳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자였다고 한다. 그는 중국-러시아와 무역을 하면서 번 돈으로 한반도 땅을 밟는대로 사들였다고 한다. 이후 독립자금을 대기도 하고 월남 이상재 등 많은 교육자와 교분을 맺으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1922년 그는 민족 갱생을 위한 육영사업을 펼치기로 마음먹고 학교를 설립한다. 그가 바로 인창의숙 설립자 성암 손창원 선생이다. 경기초등학교, 인창중-고등학교, 성암여중과 성암여상(현 성암정보산업고등학교), 경기대학교가 모두 성암의 뜻으로 만들어진 학교다. 성암은 1914년 나이 53세 때 후손에게 물려줄 〈성암가훈〉을 집필한다. '은혜를 베풀었거든 마음에 두지 말고 은혜를 받았거든 잊지를 말아라'는 생활 철학에서부터 '스승의 가르침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까지 흘려듣지 말고 그분을 존경하기를 아버님 모시듯 하라'는 교육철학에 이르기까지 이 시대에도 필요한 덕목이 다양하게 들어 있다. 성암 선생의 손자인 경기대 손종국 총장은 이 가훈을 끼고 산다. 그만큼 할아버지 가르침을 철저하게 지키며 살겠다는 의지다. 그래서인지 그는 총장 같지 않다. 권위가 가득하고 젠체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공부뿐만 아니라 성품이나 생활철학도 가훈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즐기는 음식만 해도 그렇다. 간소하고 깨끗한 음식을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분명한 음식철학이 있다.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오늘에 맞는 교육철학으로 승화시켜 대학을 이끌어 가는 그는 음식철학도 소박하고 깔끔한 것을 강조했다.(뉴스메이커 571호, 2004.3.24)

1-2. 수원지검 특수부(부장검사 金東滿. 주임검사 鄭在浩)는 27일 교수 임용 조건으로 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경기대학교 총장 손종국(孫鍾國. 52)씨를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손 총장은 지난해 12월 서울시 서초구 자택으로 찾아온 경기대학교 체육학부 교수임용 지원자 이모(41.구속)씨로부터 임용 부탁과 함께 현금 1억원을 받은 혐의다. 검찰은 손 총장이 지난 2월 교수 임용 면접심사에서 최초 지원자 15명 가운데 전공심사를 통과한 4명을 심사하며 2등 이씨에게 최고점수를 줘 1등이 되게한 뒤 교수로 채용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손 총장이 이와같이 금품을 받은 뒤 교수를 채용한 사실이 더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교수채용 심사서류 등 관련자료를 분석하고 있다. 손 총장은 이날 오전 있은 판사의 피의자 심문에서 혐의내용을 모두 부인했다.(연합뉴스, 2004.4.27)

2. 교육구국운동 이념으로 설립된 사립학교

19세기말 서구 열강의 침입으로 국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교육구국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교육을 통한 구국운동은 애국계몽단체들의 활동에 의해 고조되었는데, 이들은 손상 받은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산업과 교육을 진흥해야 한다고 믿었다. “근일 국권회복을 논하는 자로서 학문, 교육을 말하지 않는 자들이 없다”라는 당시 지식인의 지적처럼, 구국을 논하는 자들은 거의 모두가 교육의 중요성을 주장하였다. 그 결과 대한자강회, 대한협회, 서우학회, 서북학회, 기호흥학회 등 수많은 학회가 창립되었다. 민족교육열 고조에 힘입어 전국에 2300 여개의 사립학교가 설립되었다. 민족주의 이념을 배경으로 설립된 사립학교 설립목적의 공통점은 민족의 주권회복에 있었다. 주권회복을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사립학교를 설립하고 교육을 실시하였던 것이다.

사립학교에서는 인재양성, 실력양성, 계몽을 위한 교육이 실시되었지만 최고의 이념은 비운에 빠진 조국과 고통에 허덕이는 민족을 구하고 외세를 몰아내고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는데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우후죽순처럼 설립되었던 사립학교들은 교육구국운동을 대표하고 있었다. 사립학교에서는 지식을 가르치기보다는 학생들에게 민족정신과 애국혼을 불어넣어 주는 것을 더 중요시하였다. 우리나라 사립학교는 근대교육을 통한 민족의식의 고취와 국권회복을 그 이념적 기반으로 하여 설립되었다는 자랑스러운 전통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사학의 출발은 교육을 통한 민족의 독립이라는 공공성에 있었던 것이다.

3. 비리․부패의 상징, 사립학교

 

지금은 고인이 된 이수인 의원은 ‘교육마피아’는 ‘사학마피아’와 교육부 부패 관료가 결합된 집단이라고 질타하여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민족사학 보다는 비리사학 부패사학 족벌사학이라는 말을 더 많이 듣는다. 민족사학이 사학마피아로 전락한 실태를 알아 보자.

3-1. 사립대학 90% 이상이 족벌경영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대부분이 설립자의 가족이나 친인척이 대학과 법인의 주요 보직을 차지하는 족벌경영을 하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2003년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이사장의 친․인척(8촌이내 친족과 4촌이내 인척 및 배우자)이 대학이나 법인에 근무중인 대학이 83개 사립대 가운데 75곳이나 되어 90%를 넘는다.

 

직종별로는 법인의 이사가 가장 많았고(48.2%), 교수, 직원, 총장, 부총장, 학장 등의 차례였다. 조사 대상 대학의 대부분이 아들에게 이사장이나 총장직을 물려주고 있고, 며느리(건국대), 손자(고려대, 경성대, 경기대), 부인(경동대, 명신대, 남부대, 동해대, 순천향대), 외손자(상명대), 장인(경주대), 동생(한영신학대) 등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진주국제대의 경우, 이사장의 부인과 손자가 이사로, 아들이 총장으로, 조카와 조카 며느리, 사위, 조카사위, 손자 등이 교수와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경희대는 부인이 이사를, 자녀들이 총장과 대학원장 교수 등을 맡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사장이나 설립자의 부인과 자녀가 함께 근무하는 대학도 10개(건양대, 경산대, 광주대, 남부대, 대구외대, 동의대 등)나 되어, 사립대학이 가문의 명예나 치부 수단으로 전락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2. 사학부패의 온상 족벌경영

반부패특별위원회가 발표한 사학부패의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 네 가지이다.

첫째, 사학 설립자와 이사장 등의 학교운영에 관한 전횡이다. 사학설립자․이사장의 교직원인사 및 예산집행 등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한 월권적 간여가 학교장 고유의 권한과 교직원의 권익을 침해하여 학내분규를 야기하고 있다.

둘째, 혈족 위주의 이사회 구성 및 족벌 경영으로 파생된 부패이다. 사학의 많은 재단 이사장직이 친인척 등 혈연으로 승계되면서 족벌체제로 운영되어 민주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설립자?이사장의 독단과 전횡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셋째, 재단의 학교예산 유용이다. 특히 학생들로부터 징수된 등록금 수입을 다른 학교 신설비용으로 사용하거나 재단 이사장이 경영하는 타 사업체 등에 전용하는 등 다른 목적으로 운영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넷째, 교원 채용 등 인사관련 비리이다. 교수 등 교직원 채용, 승진, 휴직 등 인사문제에 있어 일반적 규정이나 관행을 무시하고 독단적인 인사를 하거나 채용 등에 있어 금품을 수수하는 경우이다. 또한 재임용 제도를 재단에 비판적인 교수에 대한 보복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재단 이사회를 제외하고는 친인척의 채용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대학의 사유화는 물론 내부 비판과 견제가 구조적으로 어려워져 부정 비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부패․비리사학을 옹호하는 사립학교법

사학은 사회에 출연된 공익재산으로 소유권이나 처분 대상이 될 수 없다. 설립자는 자신의 재산을 출연해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학을 설립하였으므로, 사립학교는 어느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고 사회의 공기(公器)이다. 교육기관은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체와는 다른 공적기관이므로 사적 소유의 대상이 아니며, 설사 설립자라 할지라도 교주(校主)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립학교에 설립자는 있지만 통념적으로 소유주나 주인이라는 말은 맞지 않는다.

그런데도 설립자가 교주인양 군림하며, 부인,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 조카, 조카사위․며느리 등이 이사, 총장, 학장, 교수, 직원 등을 차지하는 족벌경영이 우리 사학의 현실이다. 이처럼 족벌․비리 사학이 만연하게 된 까닭은, 해방 후 사학을 지원, 대학 교육을 일으키면서 맺어진 국가와 사학의 유착 관행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공적 재산인 교육 책임을 지지 않고 사학 재단에 이를 떠 넘겨, 사립대는 사유재산이라는 인식을 굳히게 만들었다. 사학에 대한 지원부실과 엄정한 관리 결여가 국가-사학간의 ‘암묵적인 카르텔’을 조장하였다. 그동안 대학 교육의 가장 큰 수혜자였던 국가는 ‘수익자 부담논리’를 들어 사립대 등록금을 폭등시켜 교육비 부담을 학부모에게 전가하면서도, 재정 운영의 투명성에 대해서는 부실감사로 일관. 오히려 사학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국가의 사학비호정책은 사립학교법으로 뒷받침 되었다. 재단과 대학은 대학교육을 위한 기구로서 서로 역할이 구분되어 있다. 이것은 특히 재단에 의한 대학 학사운영 간섭을 배제하여 대학 설립의 목적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원칙이다. 그럼에도 사립학교법에서는 재단 관련자의 대학 학사운영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사립대학 운영체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사립학교법에서 재단의 대학 장악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교육기관 운영의 원칙과 사립학교법의 괴리는 많은 대학의 파행적 운영과 분규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사학비리에 맞서 학원민주화투쟁을 벌일 경우, 비리족벌재단의 대학장악을 법적으로 보장해주고 있는 사립학교법과의 충돌이 최종 귀결이다. 모든 대학에서의 학원 민주화 투쟁은 이런 법적 제도적 한계 속에서 진행되었으며, 근본적으로 현행 사립학교법의 제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5. 교육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사립학교법 개정

그 동안 사립학교법은 1990년과 1999년 두 차례 크게 개악되었다. 국회 교육위원들이 ‘사학의 자율성 보장’을 재개정의 취지로 내세워, 사학 재단에게 경영, 인사, 재정의 전권을 주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재단이 교육 여건 개선에 노력은 기울이지 않아, 재단 전임급은 줄고 이월․적립금은 늘어났으며, 대학의 경우 최근 5년간 설립자의 공금 횡령 19개 대, 교수임용비리 18개 대, 부당한 학사행정 간섭으로 인한 분규가 15개 대로, 분규․비리 사립대가 사립대학 전체의 3분의 1에 가까운 40여 개 대학에 이른다.

국민의 80% 이상이 사립학교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에 힘입어, 2000년 16대 국회에서 사립학교법 개정 움직임이 일었다. 이에 사학재단 법인협의회는 사학의 설립․경영의 권리주체를 짓밟으려는검은 속셈을 가지고 사립학교법 개정 운동이 추진되고 있으며, 일부 사학의 비리를 내세워 전체 사학을 싸잡아 규제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반박하였다. 사립학교법 개정론자들의 민주성의 강화 주장에 대해, 사학의 건립이념을 훼손하고 있다고 매도하기도 하였다. 사립학교의 가장 중요한 건학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학의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신장되어야 한다고 법인협의회는 목소리 높였다. 그러나 법인협의회가 사학의 자율성을 내세운 것이 족벌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검은 속셈일 뿐이었다. 사립대학의 90% 이상이 족벌경영이라는 사실은, 사학의 자율성보다 교육의 공공성을 우선시 해야 함을 입증해주고 있다.

 

한나라당이 다수당이었던 16대 국회에서 사립학교법이 민주적인 방향으로 개정될 수 있으리라고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더 이상 개악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였다. 이제 17대 국회는 열린우리당이 제1당이 되고 민주노동당이 약진하여 새로운 원구성이 이루어 졌으므로, 어느때보다 사립학교법 개정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17대 국회는 족벌경영을 차단하고 사학부패를 척결하여 교육의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해 사립학교법을 다음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

첫째, 설립자의 친인척을 경영의 주요한 자리에 앉히거나 이사장․총장직을 대물림하지 못하도록 친인척 족벌경영 금지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둘째, 사학부패의 핵심이 사립학교 운영 주체인 이사회의 봉건적 혈연성․폐쇄성세습성에서 연유하므로, 부패사학척결을 위해서는 법률상 최고 의결기구인 이사회의 공익성․개방성․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사립학교법 총칙에 사립학교의 공공성 확대를 명문화하여야 한다. 아울러 인사, 재정, 경영 등에 관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이사회를 감시, 견제하기 위해 방청을 허용하고 회의록을 공개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사학의 공공성 실현을 위해 학교가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려면 이사회가 공익적인 인사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이사회 이사의 반수 이상을 학부모, 동문, 시민단체, 교원, 학생, 직원 등이 추천하는 공익 이사로 충원하는 공익이사제를 도입하여, 설립자․이사장 위주의 학교 운영을 지양하고 학교운영의 공공성과 민주성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넷째, 이사 선임 요건에서 친․혈족 비중을 축소해야 한다. 현행 임원선임 제한규정 친족관계에 있는 자가 그 정수의 1/3을 초과하지 못한다’ (사립학교법 21조(임원선임의 제한) ②항)를 친족외에 처족을 포함하여 1/5를 초과하지 못한다로 강화하여 일반공익법인과의 법률의 형평성을 맞추어 교육의 공공성과 투명한 운영을 확보해야 한다.

다섯째, 비리 임원에 대한 해임요건을 강화하여야 하며, 비리로 해임된 이사의 학교 복귀 및 임원 재취임을 엄격히 금지하여야 한다.

여섯째, 임시(관선)이사 파견 요건을 확대하고 구체화하는 동시에 임시이사 임기제한 조항(재임기간은 2년이내로 하되, 1차에 한하여 연임할 수 있다(사립학교법 25조(임시이사의 선임) ③항)을 삭제하여야 한다.

일곱째, 교육부 관료들의 임원(이사) 및 총․학장 취임을 일정기간 법으로 금지하여야 한다. 고 이수인 의원은 교육부가 비리재단의 뒤를 받쳐주는 구조를 교육마피아라 이름하였다. 비리재단과 유착한 이들 교육부 관료(장관, 차관, 국장)들은 현직에 있을 때뿐만아니라 퇴직한 후에도 비리사학과 혈맹관계를 유지하여 총장이나 학장 혹은 재단이사로 취임하여 교육부식 전관예우를 받는다. 이들 교육마피아들 때문에 교육부가 사학비리를 방관․비호하고 있다고 지탄 받는다.

이상 투명한 운영구조,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사립학교법 개정된다면, 부실․부패․비리 사학이 척결되고 교육의 공공성도 회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