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답사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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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답사기 (1)
 – 2008 한국역사연구회 여름 수련회를 다녀와서 –

서준석(현대사분과)

잇따른 기상 이변 속에서 최근 언론들은 그해 여름이 몇 백 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라고 선전하곤 한다. 이번 여름은 그런 언론의 보도에 대한 신뢰도를 확신시켜 주는 것처럼 보인다. 기상청의 슈퍼컴퓨터를 쓸모없는 고철덩어리처럼 보이게끔 만든 초여름의 무더운 날씨 속에서 2008년 한국역사연구회 여름 수련회(이하 수련회)는 시작되었다.

  지난 7월 5~6 양일간 열린 이번 여름 수련회의 행선지는 춘천이었다. 짧았던 일정이었고, 마침 학기가 끝난 무렵이었던지라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온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게 되었다. 이제 갓 들어온 신입회원인 필자에게 이번 수련회는 한역연의 여러 선생님들을 뵙고 조금이나마 안면을 익힐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기에 약간은 긴장된 마음으로 수련회에 나서게 되었다.

  늦잠이 많은 탓에 전날 밤에 거의 잠을 자지 않고서 버스 안에서 잠을 자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출발 장소인 합정역 1번 출구 앞에는 버스가 한 대 서 있었고, 벌써 몇몇 선생님들께서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마침 같은 학교 선배인 남기현, 김영진 선배를 만나서 함께 버스에 올랐다.

  이미 버스 안에는 적잖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버스는 출발 시각인 9시를 조금 넘겨서 출발했다. 약 2시간 여가 지난 후에 첫 번째 행선지인 신숭겸 묘역에 도착하였다. 신숭겸은 고려의 개국공신으로 평산(平山) 신씨의 시조이다. 1976년 6월 17일 강원도 기념물 제21호로 지정된 신숭겸 묘역은 한국의 4대 명당지로 손꼽힌다고 한다. 사당을 따라 오른편으로 오르면 신숭겸의 묘역이 산중턱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처럼 산중턱에 묘역을 만드는 것은 고려시기 묘역의 특징이라고 하는데, 조선의 경우에는 그보다 낮은 곳에 묘를 쓴다고 한다.


<ⓒ서준석>

더운 날씨에 중턱까지 오르려니 이내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나 울창하게 우거진 소나무 숲을 병풍처럼 두른 신숭겸 묘역에 오르니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오면서 과연 이곳이 4대 명당으로 불리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를 안듯이 양편으로 펼쳐진 산줄기가 넓게 마을을 품고 있었고, 그 너머엔 소양강이 흐르고 있었다.


<ⓒ서준석>

아쉽다면 소양강이 아주 살짝 보인다는 것 정도? 신숭겸 사당 왼편에는 작은 무덤이 하나 있다. 이 무덤은 모줄임 양식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고구려인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미 도굴꾼들에 의해 부장품들을 도굴당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가늠하기엔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무덤은 고구려의 세력이 춘천까지 뻗친 사실을 반증해준다. 모두들 식사시간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 관람을 마치고 차에 올랐다.


<ⓒ서준석>

  다음 행선지는 천전리 지석묘군이었다. 현재 4기의 고인돌이 남아 있는 이곳은 밭 한가운데에 있는데 사실 매우 초라했다. 비닐하우스 사이로 대략 100여 미터를 들어가니 그렇게 경차만한 크기의 북방식 고인돌 하나가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나마 4기의 고인돌 중 가장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여타의 고인돌과 달리 좀 더 세심하게 단장해놓은 손길이 엿보였다. 반면 띄엄띄엄 놓여있는 다른 3기의 고인돌들은 그나마도 그저 내버려 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천전리 지석묘군은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서준석>

점심 메뉴는 닭갈비와 메밀국수였다. 미리 예약을 해두었기 때문에, 이미 자리마다 상이 차려져 있었고, 불판 위에는 닭갈비가 벌겋게 익어서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출출하던 차였던지라 닭갈비는 순식간에 비워졌지만, 메밀국수가 매우 늦게 나왔다. 더군다나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실내는 무척 더웠기 때문에, 시원한 메밀국수가 늦게 나온다는 것은 기다리는 이들로 하여금 일말의 불평을 자아냈다.

  비록 닭갈비와 국수의 맛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초여름 무더위는 여행자들에게 여유를 가로채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들 식당 건너편 제방에 올라 강바람을 쐬며 더위를 잠시 식히고 다시 차에 올랐다. 다음 행선지는 강원도 기념물 제55호인 청평사였다. 청평사까지는 대략 1시간 정도 걸렸다. 이전에는 청평사에 가기 위해서 배를 이용해야 했었는데, 지금은 도로가 열려서 차로도 청평사 주변까지 갈 수 있다.

청평사로 오르는 산길 입구에 약 2Km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옳거니 오래 걸리지 않겠구나 하면서 올랐는데, 의외로 시간은 꽤 걸렸다. 산길은 그다지 가파르지 않았다. 더욱이 옆에는 계곡이 흐르고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오가고 있었다. 이미 계곡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서 피서를 즐기고 있었다. 울창하게 나무가 우거진 산길을 걸으며 계곡에서 흘려보내는 찬바람을 쐬었지만, 더위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계곡에 발을 담그고 싶었지만, 수건을 챙겨온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쳐 버렸는데, 다녀온 지금에도 잠시나마 발을 담그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된다.


<ⓒ서준석>

973년 승려 영현에 의해 창건된 이 사찰은 문수원, 보현원 등으로 불리우다 이후 조선 명종 때 보우가 절을 크게 중건하고 청평사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어 회전문만이 남아 있으며, 다른 건물들은 근래에 지어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절터는 넓었지만, 조성된 건물들은 다닥다닥 붙어서 조성되어 조금은 답답한 느낌도 주었다.


<ⓒ서준석>

절을 내려와 다시 산길입구에서 가볍게 막걸리를 마셨다. 얼음이 둥둥 뜬 막걸리는 산길을 다녀오면서 마른 목을 시원하게 적셔 주었다. 막걸리를 마시며 더위를 식힌 후에 숙소로 향했다. 본래 풍양 조씨 묘역도 일정에 있었지만, 청평사를 다녀오면서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바로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서 저녁을 먹은 후, 잠시 휴식을 취한 뒤에 ‘한국역사연구회 20년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모임을 가졌다. 우선 각자 자기소개를 한 후에, 한역연 20주년을 맞이하여 20년사 발간 계획과 한국역사연구회 20년의 현황과 전망을 돌아보는 계획에 대한 보고와 토론이 이어졌고, 이어 뒤풀이를 가졌다. 뒤풀이 자리에서는 신입회원들의 신고식 겸 노래자랑이 있었는데, 사실 신입회원들의 노래보다는 끝까지 자리에 남아서 함께 노래를 뽐내주신 여러 선생님들의 노래가 훨씬 흥을 돋우고 맛깔났다. 그렇지만 수많은 나방이 우리의 술자리를 위협하였기에, 긴 시간 즐기지 못하고 일찍 자리를 파해야만 했다.

이튿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서 여름 수련회의 마지막 행선지인 홍유릉으로 향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위치한 홍유릉은 조선의 마지막 왕인 고종과 명성황후, 순종과 순종비의 묘역이다. 명성황후는 1897년 청량리 홍릉에 묻혔다가 1919년 고종이 죽은 후에 이곳으로 천장하였다고 한다.

  홍유릉은 기존 조선의 능제와는 다르게 명나라 태조의 효릉을 본떠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즉, 종래의 정자각(丁字閣) 대신 일자각(一字閣) 형태로 지어졌고, 그 앞 양쪽으로 문무석과 기린, 코끼리, 해태, 사자, 낙타, 말의 순서로 석수들이 홍살문까지 세워져 있다. 이는 황제의 예를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고종이 대한제국을 세로 수립한 것과 관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홍유릉이 세워진 것은 이미 일본이 조선을 식민화한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러한 황제의 예를 취한 것일까?


<ⓒ서준석>

홍유릉 답사를 마지막으로 여름 수련회의 일정이 끝났다. 초여름부터 시작된 무더위는 비록 차로 움직이는 답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 동안에 우리를 쉽게 지치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아쉽게도 짧은 일정을 쫓느라 함께 한 사람들의 이름도 아직 제대로 외우지는 못했다.

  그나마 서로의 얼굴을 익혀 놓았으니 다음에 마주하게 되면 먼저 인사를 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놓았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저 호수와 MT촌이라는 이미지만을 갖고 있던 춘천에서 쉬이 눈에 띄지 않는 새로운 공간을 찾게 되었다는 점도 이번 수련회의 수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