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완주 용계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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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 용계산성

하일식 (고대사분과)

남한에 남은 것만으로도 삼국시대 산성은 수천개가 된다고 한다. 관심을 갖지 않으면 모르지만…
최근 20여 년간 고고학계, 역사학계에서는 산성에 꽤 높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중요한 유물 – 글자가 새겨진 기와를 포함하여 다량의 목간 등등 -이 나왔다고 소개되는 발굴 유적에 산성이 많이 거론되는 것이 그 때문이다. 앞으로도 많은 유물이 나오고, 또 역사지리에서도 중요한 소재가 될 것이다.

내가 종종 삼국시대 산성들을 찾아나서는 이유는, 한국역사연구회 차원에서 추진하는 한국문화 단행본 씨리즈 중 “우리 성곽에 대한 소개서”를 맡기로 했기 때문이다 – 벌써 약속 시간이 꽤 지나버렸다 -. 그래서 사진도 좀 직접 찍고, 스스로도 안목을 넓힐 겸 이곳저곳 시간날 때마다 다니게 된다. 또 한가지는, 오늘날 우리와 다른, 삼국시대 사람들의 생활 마인드를 알기 위해서이다.
척박한 지역에, 그것도 산 꼭대기에다 가파른 성을 쌓던 사람들, 그럼으로써 뭔가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  또, 유사시에는 산성에서 포위된 상태로 소변을 받아 마시며 저항하던 시대…  그 ‘뭔가’를 어떻게 오늘날의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언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내 수준에서도 조금은 더 기다려야 할 것같다.

여기서 소개할 산성은 전북 완주군 운주면에 있는 용계산성이다. 물론 국적을 따지자면 백제 산성이라 할 것이다.  지형도에서 산성이 있는 곳을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길이라고는 좁은 1차로밖에 없는 곳. 드문드문 민가가 약간 모여 있는 모습이 보이는 산골짜기지만, 그 옛날 삼국시대에는 신라와의 접경 지역이었다. 전략적으로 가볍지 않은 곳이었던 셈이다.

▲ 파란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용계산성. 오른쪽으로 가면 숯고개가 나온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산성이 있는 곳은 이렇다.
용계산성은 높지 않은 곳에 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다른 곳에 비해 답사하기도 편하다. 혼자 3월 30일(일요일)에 출발해서 근처에서 하루를 자고, 월요일(31일)에 둘러보았다. 오전에 날씨가 잔뜩 흐려서 사진이 썩 만족스럽진 않지만, 윤곽을 확인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 용계산성 원경. 사진 중간쯤 되는 골짜기 능선 위에 성벽이 있다.

대부분이 허물어졌지만, 서북쪽 모서리에는 원형을 간직한 곳이 있다. 간단하게 다듬은 돌로 차곡차곡 쌓았다.

▲ 용계산성 서북쪽 성벽 모서리. 비교적 원형이 잘 남은 곳이다.

   잔존한 높이가 대략 3m 이상 된다. 때로는 4m를 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원래는 이보다 더 높이 쌓았으리라 짐작한다. 전체 둘레는 500m가 채 안되는 규모로 알려진다. 실제로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보기에도 적당했다.
아래는 석축이 아주 잘 남은 구간이다.

▲ 북쪽 성벽.  윗부분은 무너졌지만, 성벽이 꽤 잘 남아 있는 구간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런 곳을 답사하는 것도, 고대사 연구자로서는 중요한 공부의 하나이다 – 훌쩍 집을 나서는 핑계이기도 하다 -. 사실은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개인 취향이 더 큰 편이라는 것이 솔직한 이야기일 듯.
  폐허미(?)를 느끼게 하는, 무너진 성벽을 마주하는 것도 나에게는 묘한 즐거움(?)의 하나이다.

▲ 서쪽 성벽. 아마 무너진 부분쯤에 수구(水口)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산성에 관한 약간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성 안에는 항상 물을 저장할 수 있는 곳, 건물이 들어서는 평지를 만들어놓는다. 포위된 상태에서 성 안에서 버티려면, 물은 식량보다 더 중요한 요소였다.
아래 사진은 바로 이런 곳. 익숙한 사람은 지형을 보고, 남은 유적의 상태를 보면 저수 시설이 어디쯤이고, 건물터가 어디쯤인가를 금방 알게 된다.

▲ 바로 앞의 사진에 보이는 성벽 안쪽은 이렇다. 저수시설, 건물들이 있던 곳이다.

  원래는 여기서 가까운 곳에 있는 쑥고개(숯고개, 곧 炭峴)를 돌아보고, 그 동쪽 산 봉우리에 있는 테뫼식 산성(고중리 산성)을 살펴보는 것이 일정의 하나였다.

백제가 멸망하는 장면에서 성충과 흥수가 강조했던 “탄현을 막아라”는 말. 그러면 어디가 탄현이냐? 연구자들이 꼽는 유력한 곳은 대전 근방의 탄현, 그리고 이곳 완주의 탄현 두 군데가 있다.
완주의 탄현은 현지인들이 ‘쑥고개’라 부르는 곳인데, 된발음을 해서 그렇고,
실제로는 숯고개(탄현)이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탄현으로 적혀 있다.

이곳은 신라와 통하는 3가지 길이 합쳐지는 곳이다. 교통로상으로는 이곳이 탄현일 가능성도 높은 편이라, 현지 연구자들은 탄현의 위치를 생각할 때 비중을 높여 보고 있다.
그러나 숯고개를 찾아서 고갯길을 올라가서보니, 산성이 있는 곳은 산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은 경사가 제법 급한 곳이었다. 경사가 완만한 뒷쪽 길로 오르면 40분 가량이 걸린다는 지방신문 기자의 탐방기를 읽은 적도 있었고… 만약 동행한 사람이 있었다면 산을 타고 올랐겠지만, 혼자서 끙끙대며 오르기가 좀 부담스러웠다고 할까…

▲ 동쪽으로 넘어와서 뒤를 돌아본 숯고개. 멀리 왼쪽에 보이는 산 봉우리에  고중리산성이 있다.

숯고개를 확인하여 넘은 것으로 만족하고, 바로 돌아섰다. 그리고 국도변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상경하는 길에 부여에 들러 궁남지를 보았다. 오전에 잔뜩 찌푸렸던 날씨가 오후에는 화창하게 개여 있었다. 사방에 봄기운이 완연하고, 선생님들에 이끌려 나들이 나온 초등생들이 왁자하니 시끄러운 분위기‥‥

   앞서, 산성에서 나온 목간을 언급했는데, 함안 성산산성에서 나온 것들이 제일 많다. 그리고 이 아래 사진에 보이는 궁남지에서도 백제 목간이 여럿 나왔다. 뻘 속에 묻혀 있어서 썩지 않고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 부여 궁남지. 버드나무에 막 싹이 돋고 있어서 빛깔이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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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 답사는 요즈음, 4월 하순까지가 제 철이다. 조금 더 지나서, 수풀이 우거지면 길이 없는 비탈을 타고 오르기도 힘들고, 성벽도 넝쿨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3월 정도까지는 뱀이 없어서 좋다. 날이 더 따뜻해져서 요놈들이 슬슬 활동할 무렵이 되면 무척 조심해야 한다.
언젠가 전북 부안 우금산성(백제 복신 등이 마지막으로 저항하던 곳인 주류성으로 추정하는 의견이 유력하다)에서 만난 녀석을 소개해보자.
  우금산성 성벽은 아래와 같이 생겼다. 성벽이 비교적 잘 남은 구간이다.
흔히 우금산성을 소개하는 포털 사이트에 연결된 블로그들이 퍼나른 사진들에서 곧잘 이 각도로 찍은 것들이 눈에 띈다. 사실은 더 나은 성벽도 있지만, 멀리 보이는 바위를 함께 담자면 여기서 찍는 것이 좋아 보인다.

▲ 전북 부안의 우금산성. 멀리 보이는 바위에 ‘복신굴’이 있다.
  아마 2006년 6월 초쯤인가, 사진 하는 친구와 함께 이곳을 올랐을 때였다. 바로 요 앞에서 왼손을 짚고 성벽 위로 오르려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지만, 녀석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배를 보니 먹이를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통통하다. 그래서 잘 안움직이려 했는가 보다.


▲ 우금산성에서 만난 살모사 – 이 무늬가 살모사가 맞지요?

내가 만약 요놈의 머리 바로 앞에 왼손을 짚었다면, 정확히 당했을 것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