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악산 작성(鵲城)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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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언젠가 잡지에 잠깐 소개된 사진을 보고,
   한 번은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꽤나 오래 되었나 보다.

  찾아가는 길을 확인하려고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등산 좋아하는 이들이 남긴 산행기 속에 간간히 언급은 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안내한 글은 찾기 어렵다.
   또 고려 말 공민왕 때 홍건적을 피해서 어쩌구 하는 식의 ‘믿거나 말거나’ 전설을 함께 소개한 것도 더러 된다. 죽령에서 안동으로 이어지는 지역에 공민왕의 피난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더러 전해오지만, 그 중에서도 믿을 만한 내용은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다.
   우선 축조 시기가 궁금하다. 조령 관문성들이 임진왜란 이후에나 축성된 것인데 비하면, 이 작성(鵲城)은 『동국여지승람』경상도 예천현조에 소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 것임은 분명하다.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축성시기를 생각할 수 있을까?
   그래서 직접 한 번 가서 보고싶은 생각이 늘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오 래 전 잡지에서 잠깐 본 사진의 느낌상, 고저녁한 풍경에 마음이 끌린 것도 이번 답사길에 나서게 된 자극제랄까!

    어쨌든 이리저리 지도를 찾고, 어설픈 정보를 수집해보니,
   행정구역상으로는 문경시 동로면 명전리이고, 올라가는 길은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에서 올라가면 된다더라.
   4월 27일(목), 중간시험 기간을 이용하여 혼자 출발하다.

   방곡리에 도착하여 산불 감시원에게 길을 물어니 쉽게 가르쳐준다. 석문(石門)이 있는 성은 조금 더 가면 도로변에 주차할 만한 곳이 나오는데, 거기 차를 세우고 개울을 건너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된단다.
   가르쳐준 곳에 도착하니, 늦봄의 정취가 계곡에 완연하다. 징검다리가 있는 곳에서 물이 흘러오는 쪽을 바라보다. (CPL 필터를 사용 – 그래서 하늘이 아주 파랗게 나옴 : 괜찮아 보이지 않나요? 그런데 이 때는 막 등산을 시작할 때로 화이트 밸런스를 맞추기 전이라, 바로 아래 사진과 달리 붉은 기가 좀 돌고 있군요)

   성을 보고 내려와서는, 같은 장소에서 물이 흘러가는 쪽을 바라보다. (필터 사용하지 않은 것. 역시 좋은 사진은 부지런해야 !! CPL 필터는 나뭇잎의 반사를 줄여주기 때문에 숲이나 꽃을 찍을 때도 훨씬 좋은 그림을 만들어줍니다) 늦은 봄의 기운이 완연하지 않은가? 평지의 벚꽃은 벌써 다 끝났지만, 아직 산벚꽃은 이곳저곳에 더러 남아서 막 피어난 연녹색 새 잎사귀들과 잘 어울리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음.

   중간 중간에 계곡에서 손도 씻고 잠깐 쉬기도 한 시간을 포함하여 약 25분 가량을 걸었을까.
   걷는 길이 좀 까다롭기는 했다. 계곡 물 좌우에 난 길을 따라 가다보니, 수시로 개울을 건너야 한다. 초심자는 길을 잃기 십상이지만, 고맙게도 꼭 그럴 만하면 개울 건너편에 등산로를 가리키는 붉은 리번이 매어져 있다. (등산객들은 주로 이 길을 하산길로 이용한단다)
   길이 뚝 끊어져서 개울 저편을 바라보면 리번이 보이고, 이 리번을 목표로 개울 중간중간의 돌을 짚고 개구리 뛰기를 해서 건너면 된다.

   이렇게 물을 몇 번 건너며 걸음을 재촉하다보면, 계곡을 가로막고 쌓은 성벽에 딸린 문이 멀리 보인다. 계곡 쪽에는 수문(水門)을 설치했음직하지만, 현재 상태로는 확신하기 어렵다. (좌우 계곡을 따라가며 쌓은 성벽 잔존부를 보면, 수문까지 가설했을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위의 사진은 일부러 계곡을 건너서 찍은 것이고,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가 바로 만나는 장면은 아래와 같다. (햇빛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화이트 밸런스를 제대로 잡아 주어야 하는데, 조금 소흘히 하면 이렇게 차이가 난다. 포토샾에서 수정할 수도 있지만 귀차니즘으로 인해 생략)

   바라보이는 왼쪽은 자연암반인데, 여기에 이어서 문을 만들고, 오른쪽에는 성벽을 쌓았다. 지금 보이는 성벽만으로는 축조시대를 명확히 알기 어렵다. 다만, 이 성이 조선 초기 이전에 쌓은 것일지라도, 또 『동국여지승람』때 이미 ‘폐성(廢城)’이라 했지만, 그보다 후대에 다시 쌓았을 가능성을 배제하기도 어렵다.
  조금 더 가까이 가보자.

   지금 오른쪽에 보이는 이 성벽은 제법 짜임새가 있지만, 이 부분을 제외하면, 계곡 좌우에 있는 성벽을 쌓은 방식은 아무래도 “성의가 좀 부족하다”고 해야 할 것같다.
   왼쪽의 자연 암반 위에 쌓은 성벽 (바위 위로 약간 보이지요?)의 위치도 요령부족인 것같다. 삼국시대 사람들 같으면 더 앞으로(사진 찍은 위치에 가깝게) 내어서 쌓음으로써 옹성 또는 치의 역할을 겸하게 했을 것이다 – 이런저런 요소들로 보건대, 대략 언제 때 것인지 심증은 간다.

   어쨌든 이 문을 통과해서 안으로 들어가면 뒷 모습은 이렇다. 이렇게 안에서 바깥으로 바라보는 방향이 남쪽에서 북쪽을 보는 방향이다. 기본적으로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적을 막기 위해 쌓은 차단성(遮斷城)인 것이다.

   다시 밖에서 안을 바라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하여, 왼쪽으로 올라가면 20~30m 가량 성벽이 남아 있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그다시 엄격하지 못한 축성이다. 따라서 삼국시대 성곽은 아니라는 판정을 쉽게 할 수 있다. 다만 그 이후 언제쯤인가는 확신하기 어렵다는 것. (물론 初築이 삼국시대가 아니라고 장담하지도 못한다)

   아래는 그 반대쪽 계곡 비탈 위에 쌓은 성벽의 남은 부분이다. (음달에 역광을 피해 찍은 사진이라 색상이 썩 좋지 않음을 양해하시길 – 아~ 그래도 요 바로 위의 사진은 역광임에도 불구하고 노출 등 설정을 제법 했군요, 自足합니다) 성곽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성벽 부근에서 다람쥐가 되어야 합니다 !

   여기서도 삼국시대 축성처럼 조밀하고 철저한 정성을 찾기는 어렵다.

전체적으로 보면,
  까치성(鵲城)이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치 겨울 나무 꼭대기에 달랑 걸친 까치집처럼 느닺없이 지어놓은 느낌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 길을 통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충북과 경북을 잇는 중요한 교통로에 속하지도 않는다. 내가 이 길을 잠깐 오르는 동안에도 사람 한 명 만날 수 없었다. (물론 평일이니 나같은 사람 말고는 누가 여기를 오르랴마는 !) 월악산 등산하는 분들은 흔히 다니는 길이라고는 하지만…

여기서 잠깐, 너무 고집을 부려서는 안되는 것이,
   작성을 거쳐 경상도와 충청도를 오가던 사람들 수가, 아득한 옛날에도 별로 없었던가 하는 점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내가 주차한 곳의 지명이 [장승]이었는데, 오래 전에는 여기에 나무장승이 서 있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사라졌지만. 이 사실은 T자형으로 교통로가 만나는 곳에 있는 장승을 이정표로 삼아 오가던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어쨌든, 『동국여지승람』에 작성이 이미 ‘폐성’이라 했고(‘新增’되기 이전 부분임), 따라서 조선 이전에 처음 축성된 것은 분명하다. 다만, 현재 잔존한 부분으로 보아서는 삼국시대의 흔적을 찾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고… 처음 성을 쌓은 것은 언제일까?

설령 전설처럼 고려 말기에 쌓았다고 해도, 지금 보이는 모습은 병자호란 이후에 현지 지방관이 지방민을 동원하여 거칠게 수축(修築)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양란 이후에 19세기까지도 지방관들이 백성들을 동원해서 철지난 성쌓기에 나서서 만들어놓은 성곽들이 실제로 전국에 꽤 흩어져 있다)
  어쨌든 오래동안 별르다가 찾아간 곳으로는 꽤 보람 있는 답사였다고 할까.
   특히 혼자서 산을 오르며 늦봄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은 나름의 운치를 선사한다. (월악산의 풍경은 가 보신 사람들이 다 알고 계시지요?) ; 주변 옛 교통로라든가 지리지 등을 찾아서 이리저리 생각을 더해보는 일은 천천히 하기로 하자.

   해저물 즈음에 산을 내려오면서,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며 계곡 풍경을 담으려 했지만,  삼각대를 안가져가서 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손각대로 찍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한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