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 독립운동과 친일을 동시에 직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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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독립운동과 친일을 동시에 직시하다

 

이준식(근대사분과)

 

영화는 사실과 허구 사이에 놓인 줄을 타고 둘 사이를 오고가는 곡예와도 같다. 때에 따라 사실이 더 중시되기도 하고 허구에 더 큰 비중을 두기도 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영화와 드라마에 나온 내용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역사를 소재로 한 경우는 그러한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덕혜옹주>만 해도 그렇다. <덕혜옹주>에 나오는 김장한이 실존 인물인지를 물어보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일제강점기를 공부한 나도 김장한이라는 이름이 생소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해방 이후 덕혜옹주의 귀국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김장한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여기에 김장한이 일본군 장교로 나오지만 일본육군사관학교 졸업생 명부에 이름이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덕혜옹주의 망명 이야기나 1920년대에 독립운동을 한 일본군 장교이야기는 낯설고 고종의 최측근이자 김장한의 삼촌으로 나오는 김황진도 사료에 별로 등장하지 않는 인물인데다가 영친왕 망명을 주도한 독립군 대장이라는 설정은 황당하기조차 하다는 설명을 곁들이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워낙 영화에서 김장한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매력적인 인물로 나오기 때문에 김장한과 주위 사람들이 실재했던 인물인지 확실하지 않으며 실재했더라도 영화에 그려지는 인물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온라인에는 김장한이 실존 인물이라는 글이 무수히 돌아다니고 있으니 더 그런 모양이다. 졸지에 무늬만 근대사 연구자가 된 것 같아 씁쓰름하지만 그만큼 영화가 대중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다시 절감하기도 한다. 그래도 영화를 본 관객들이 친일파도 사실은 독립운동가였다는 착각을 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든다는 점만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렇다면 작년 영화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암살>은 어떨까? <암살>은 기본적으로 실재했던 역사에 바탕을 둔 영화이다. <암살>에 등장하는 일제의 식민통치, 데라우치(寺內正毅)총독, 이완용, 신흥무관학교, 대한민국임시정부, 중국 상하이(上海)의 조계지, 김구·김원봉의 의열투쟁, 한국독립군(지청천)의 무장투쟁, 서울의 미쓰꼬시백화점, 반민특위의 친일청산 실패 등은 모두 역사적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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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영화 암살 (네이버 영화)

 

그러나 <암살>은 결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영화가 아니다. ‘암살’의 대상이 된 두 인물 곧 뼛속까지 친일파인 강인국, 조선군사령관 가와구치는 가공의 인물이다. ‘암살’을 실행하는 주체로 그려진 한국독립군 출신의 여전사 안옥윤,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열혈투사 속사포, 폭탄 전문가 황덕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내 요원으로 그려진 아네모네 마담 등도 마찬가지이다. 독립운동을 배신하고 일제의 밀정이 된 염석진이나 ‘암살단’을 암살하려다가 급기야는 ‘암살단’을 도와주게 되는 하와이 피스톨, 영감도 그런 사람이 실재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무엇보다도 1933년 서울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암살단이 친일파 거두와 조선군사령관을 암살하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허구이다.

명색이 근대사 전공자인 나로서는 <암살>을 보면서 순간순간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건 사실이 아닌데, 당시 상황과는 맞지 않는데 하는 장면이 여러 군데 눈에 띠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독립군이 등장하는 장면에 트럭이 있는 것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트럭을 타고 이동하는 독립군이라니 독립전쟁의 역사에 대한 기상천외한 해석이었다. 1933년 김구와 김원봉이 손을 잡았다는 이야기도 전공자들이 보면 황당하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몇 년 뒤이기 때문이다. 1933년 무렵 두 사람이 이끄는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의열단이 독립운동의 노선을 둘러싸고 대립했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처럼 2시간이 넘는 영화에서 사실과 다른 장면들을 찾아내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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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영화 암살 (네이버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살>은 재미있다. 게다가 감동적이다. 나중에는 일일이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어질 정도로 몰입도가 높다. 특히 내가 강한 인상을 받은 것은 ‘암살’을 지원하다가 정체가 드러난 아네모네 마담이 헌병에게 체포되기 직전 떨리는 손으로 이승에서의 마지막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빨아들인 다음 권총으로 자살하는 장면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뒤 일제 경찰과 추격전을 벌이다가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 권총으로 목숨을 끊은 김상옥이 떠올랐다. 김상옥뿐만이 아니다. 독립운동의 제단에 피를 바친 수많은 유명·무명 독립전사의 모습이 안옥윤, 속사포, 황덕삼, 아네모네 마담, 그리고 하와이 피스톨과 영감에 겹쳐졌다. 여기에 “내가 자네 앞에서 왜 눈을 감나”(강인국의 부인, 안옥윤의 친모), “명은 짧아도 역사에 이름은 남겨야 되지 않겠니”(최덕문), “총알에도 눈이 있다고 생각하자”(김원봉),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안옥윤), “마지막 전화가 될 것 같네요”(아네모네 마담), “우리 잊지마”(영감), “잊혀지겠죠, 미안합니다”(김원봉), “몰랐으니까!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염석진), “16년 전 임무, 염석진이 밀정이면 죽여라, 지금 수행합니다”(명우) 등의 대사도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을 정도로 울림이 있다.

<암살>을 연출한 최동훈 감독은 전형적인 오락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정평이 난 감독이다. 그러나 <암살>에는 우리 역사를 결코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는 감독 나름의 진지한 시선이 오롯이 반영되어 있다. 이 영화는 독립운동과 친일이라는, 어찌 보면 무거울 수밖에 없는 역사적 주제를 결코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요즘에는 많은 사람이 꺼려하는 선악의 이분법조차 독립운동과 친일에 적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흥미롭다. 해방 이후 열린 반민특위 재판에서 밀정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경찰의 간부가 된 염석진이 오히려 자신이야말로 진짜 독립운동가라고 열변을 토한다. <암살>이라는 영화를 통해 뒤틀린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보여주겠다는 감독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해방 이후 70년이 지나도록 영화계에서 단 한 차례도 같이 다루어진 적이 없던 독립운동과 친일의 두 소재를 ‘독립운동가들에 의한 친일파 암살’이라는 주제 아래 함께 녹여 만들었다는 데 있다. 더욱이 내가 알기에 반민특위를 영화에서 정면으로 다룬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사실 독립운동과 친일은 한국 영화계가 회피하는 소재 가운데 하나였다. 해방 이후 잠깐 ‘광복영화’가 많이 만들어진 적도 있었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제대로 된 독립운동 영화가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다. 친일을 다룬 영화는 아예 다섯 손가락으로 꼽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희귀했다. 역대 정권에 의해 외눈박이식 역사인식이 강요된 탓이었다. 아울러 독립운동과 친일을 다룬 영화는 흥행에 성공한 적이 없다는 현실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런데 1987년 6월민주화운동 이후 사회 민주화가 제도화되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시민들의 역사인식이 바뀌면서 한국 근대사를 직시하는 영화에 대한 갈망도 높아졌다. 조금 결을 달리 하기는 하지만 2012년 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만든 <백년전쟁>을 본 사람들이 500만 명 이상이라는 사실이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준다. 독립운동과 친일을 다룬 영화도 잘만 만든다면 얼마든지 관객의 호응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암살>이 개봉관에서만 1,300만 명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암살>을 계기로 근·현대사의 질곡을 직시하는 영화 제작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올해만 해도 이미 ‘일본군위안부’를 다룬 <귀향>, 일제강점 말기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중에서 죽은 윤동주와 송몽규를 다룬 <동주>가 개봉되어 상대적으로 예산이 적게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상의 호응을 받았다.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덕혜옹주>는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 가운데 작품의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민족의 요소를 지나치게 배제함으로써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흥행 실적을 남긴 <대호>도 나왔지만 일단 불붙은 근·현대사 영화 제작 열기는 <밀정>, <군함도> 같은 대작 영화의 제작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가히 근·현대사 영화의 전성시대가 열리는 것 같아 반갑기 그지없다. <암살>의 성공을 계기로 관객에게 외면 받지 않을 정도의 재미를 바탕에 깔면서도 근·현대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회피하지 않는 영화가 더 많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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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영화 덕혜옹주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