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발표회 후기 – 19세기, 그림자의 시대: 제도와 정책을 대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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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발표회 후기

19세기, 그림자의 시대: 제도와 정책을 대상으로

 

 이행묵(중세2분과)

 

 

017년 9월 23일, 고려대학교 문과대학(서관) 132호에서 한국역사연구회 중세2분과의 ‘19세기학습반’이 「19세기, 그림자의 시대: 제도와 정책을 대상으로」라는 제목 아래 공동연구발표회를 진행하였다. 이 발표회는 『조선정치사(1800~1863)』를 계승하여 19세기 연구를 정치사 뿐 아니라 사회경제사적 측면으로 확장하고 지금까지 단절적으로 인식되어온 18세기와 19세기를 연결시켜 이해하려는 목표 아래 시작되었다. 한국역사연구회 중세2분과에서는 2015년 11월 ‘19세기학습반’을 신설하여 약 2년 가까이 19세기 전반 순조대와 헌종대 실록과 비변사등록을 강독해 왔다. 이번 발표회는 ‘19세기학습반’으 신설된 후 처음으로 그 동안 공부했던 성과를 보이는 자리였다. 필자 역시 19세기 사회경제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18세기와 19세기를 어떻게 연결시켜 설명할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발표회에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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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회는 한상우 선생님의 총론 발제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한상우 선생님은 19세기에 관찰되는 재정위기와 정치구조의 경직성을 단순한 포폄이 아닌, 구조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연구자들의 문제의식을 소개하였다. 이에 따라 발표자들이 18세기, 즉 영·정조대에 구축된 왕조의 시스템과 개혁방안이 19세기 전반까지는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었다는 인식을 공유하였고, 이번 발표회에서는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장기지속을 가능케 한 여러 정책을 검토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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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발표로 고려대학교 박범 선생님의 「1802년 장용영의 혁파와 정리과정」이 이어졌다. 박범 선생님은 1802년 장용영 혁파와 정리과정을 서술하고 그것이 초반 재정 및 군제에 미친 영향을 밝히고자 하였다. 장용영은 정조에 의해 설립된 군영으로 재정 및 군사적 측면에서 정조연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므로 순조 초반 혁파와 정리 과정에서 나타나는 장용영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음을 강조하였다. 박범 선생님은 장용영의 혁파가 순조 초반 재정과 군제에 어떤 영향력을 미쳤는지 설명하였다. 장용영의 재정은 혁파 이후 대부분 호조와 선혜청, 내수사로 이전되어 순조 10년까지 중앙재정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는데, 각 종 절목 분석을 통해 이를 실증하였다. 군제 측면에서는 장용영 혁파 이후 군병들은 대부분 해산의 과정을 거쳤으며, 이것이 대규모 군액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보았다. 또한 장용영은 혁파 이후에도 정조 시대에 대한 기억으로 남아있으면서, 19세기 국왕들이 숙위군을 양성할 때 전범으로 인식되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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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발표는 건양대학교 문광균 선생님의 「1808년 『만기요람』의 편찬과 그 의미」라는 제목이었다. 문광균 선생님은 『만기요람』은 18세기 제도와 정책을 담고 있으면서도 19세기 제도와 정책의 틀이 된 책이지만 『만기요람』 자체에 대한 분석은 지금까지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본 발표에서는 우선 『만기요람』의 편찬 배경과 경위에 대해 순조의 친정체제가 확립된 이후 군왕으로서 지위와 권한을 강화하고 업무를 파악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설명하였다. 또한 국내외 소재하는 여러 판본들을 유형화하고, 그 편목과 내용을 분석하였다. 마지막으로는 ‘정조의 의리계승’, ‘천명을 부여받은 주재자임을 강조하는 조치’, ‘19세기 대민정책이 부세중심의 삼정체제로 정착되는 모습’, ‘19세기 국정운영과 관련된 지침서의 원형’이라는 평가를 통해 『만기요람』 편찬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였다.

 

잠깐의 휴식이 있고 제3발표인 한국국학진흥원 최주희 선생님의 「1826년 『例式通攷』의 편찬과 王室供上의 정비」 발표가 진행되었다. 최주희 선생님은 먼저 순조 26년 『예식통고』는 영조대 『탁지정례』 간행 이후 늘어난 공상액을 줄이고, 定式·前例와 같은 무분별한 공상이 늘어나지 않게 하려는 의도 하에 편찬되었음을 설명하였다. 또한 『예식통고』를 통해 19세기 경비지출 문제를 왕실공상을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예식통고』의 편찬이 재위 20년대부터 재정적자의 누적분이 가시화되는 상황과 선혜청의 포흠, 그리고 화재 사건으로 인한 공가지급 곤란 속에서 취해진 현실적인 조치임을 강조하였다. 마지막으로 최근 19세기 재정부족의 원인을 왕실의 지출증대에서 찾는 경향이 있으나, 19세기 재정 부족 현상은 세입과 세출에 영향을 미치는 보다 복합적인 요인의 결과물로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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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희 선생님의 발표 이후 곧바로 제4발표인 동국대학교 엄기석 선생님의 「19세기 전반 宮房田 운영의 변화와 의미」라는 제목의 발표가 이어졌다. 엄기석 선생님은 18세기에 왕실재정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궁방전 역시 다른 제도 정비와 함께 갖추어졌다고 설명하면서 19세기 전반의 궁방전 제도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다만 19세기에는 궁방의 안정적인 수입 보장을 위하여 무토면세결로만 지급받고자 하는 왕실의 요구가 있었고, 신료들의 반대에 부딪혀 논쟁으로 이어지는 사태가 발생하였음을 설명하였다. 1823년(순조23)에는 궁방전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 작업이 시행되었는데, 이전의 제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으며, 방법과 기준 역시 18세기의 것을 따르는 양상을 보인다고 하였다. 궁방전 운영을 통해 18세기와 19세기가 단절적 역사가 아닌 연속된 흐름을 공유하는 시기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18,19세기 경제적 인식의 차이나 ‘사’적인 국왕의 의지가 관철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발표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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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제5발표는 충남대학교 송기중 선생님의 「19세기 중엽 통제영의 재정운영」이었다. 송기중 선생님은 균역법 실시 이후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들이 실시되면서 통제영의 재정구조에도 변화가 발생했다고 설명하였다. 균역법 이후 변화된 재정구조는 19세기에도 반영되었는데, 19세기 중엽 통제영은 군영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재원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환곡이었음을 강조하였다. 『統制營事例』 분석을 통해 통제영의 재정운영 실태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통제영은 수입이 지출보다 상당이 많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통영곡의 운반방식이나 채전 운영으로 인한 재정문제는 발생하고 있었음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이에 대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이후 임술민란 당시 문제 해결을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현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통제영의 재정 운영은 균역법의 영향력이 19세기 중엽까지 작용하고 있었으며, ‘균역법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이라고 하였다.

 

20분정도의 휴식이 있고 발표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발표를 들으러 오신 선생님들 역시 19세기 연구의 필요성에 대해서 많은 공감을 나타내주셨다. 그 때문인지 시간관계상 많은 기회가 주어지지는 못했지만 두 시간여 동안 활발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그림자의 의미는 무엇인지, 국가재정 문제로만 19세기를 설명할 수 있는지, 18세기의 제도와 정책이 19세기에는 그대로 적용된 것인지, 변화상이나 19세기의 특징은 없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들이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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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의 발표와 토론을 들으면서 필자 역시 ‘19세기를 어떻게 바라보아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번 발표에서는 18세기와 19세기를 연속선상에서 바라보고자 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18세기와 19세기를 단절적으로 인식하거나 19세기를 근대와만 연결시키는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19세기를 조선사회의 역사적 결과물로 이해하려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연속성에 주목한 나머지 19세기의 특징이나 변화상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19세기라는 100년의 시간동안 사회경제적인 변동이 이루어졌는데, 국가는 변동에 대해 이전처럼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지방의 관리들이나 백성들은 변동에 적응해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어떻게 19세기에 적응해갔으며, 19세기 중반 발생하는 민란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듯하다. ‘19세기학습반’에서는 경제사, 재정사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적·사상적·사회적 측면에서도 19세기를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연구 성과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