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유신시대’를 평하다

0
240
[학술대회 참관기]

역사가, ‘유신시대’를 평하다

황교성(현대사분과)

 아침에 일어나니 뒷목이 뻣뻣해져 있는 것이 느껴졌다. 잠을 잘 못잔 탓일까. 아니면 전 날 앉았던 의자가 불편해서였을까. 한참동안 불편한 자세로 목을 주무르다가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차, 학술대회에 늦겠다.’

  부랴부랴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며칠 동안 비가 끊이지 않고 내렸었는데, 어느새 하늘이 맑게 개어있었다. 목 때문에 불편했던 것도 잠시, 풀잎에 동글동글 맺혀있는 빗방울과 따뜻한 아침햇살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가을에 접어들은 9월의 싱그러운 기운을 느끼며 늦을 새라 지하철역으로 총총 발걸음을 옮겼다.

  안국역에 도착하여 덕성여대 쪽 출구로 나왔다. 학술대회장에 가까워지자 차츰 운현궁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운현궁 양관(洋館)을 정면에서 가깝게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푸른 나무들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 참 정갈하게 느껴졌다. 비가 그친 뒤라 그런지 더 깨끗해 보였다.


  ‘근대식 건물 앞에서 열리는 학술대회라.’

  조금은 운치 있게 느껴졌다. 아마도 양관이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와도 연관된 세월을 고스란히 다 지켜보고 있었다는 생각 탓이리라. 박정희의 얼굴로 대표되는 유신시대. 그것이 바로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였다. 그리고 유신의 배경엔 일제시기부터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제멋대로 주무른 친일의 역사가 있었다. 어찌 보면, 오늘의 학술대회는 일제시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100년의 역사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림 1> 학술대회 장소 앞 운현궁 양관 (Ⓒ황교성)

  대회장에 도착하여 자료집을 받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자료집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질감 좋은 책에 볼펜으로 줄을 긋고 메모를 하려니 왠지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줄을 그을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눈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잠시 책을 놓고 다시금 뻣뻣해진 목을 주무르며 햇볕이 내리쬐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자료집의 겉표지를 보니 ‘유신선포 40년’이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새 유신 40년인가.’

  당시에 난 태어나지 않았었지만, 이후의 시간은 참 빠르게, 그리고 바쁘게 흘러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유신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 시간들은 더 지난했고, 녹록치 않았던 시기였을 것이다. 그 기나긴 터널을 숨 가쁘게 지나왔던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희생과 고통은 어느새 이마 위에 생긴 겹겹의 주름마냥, 세월에 묻혀 덤덤히 지나가버렸다.


<그림 2> 학술대회 자료집 표지 (Ⓒ황교성)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1부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학술대회 발표는 총 5부로 구성되어 14, 15일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4개의 학술단체(민족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역사문제연구소, 한국역사연구회)가 각각 한 부씩을, 그리고 마지막 5부는 공동주관으로 진행되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각 단체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주제들이 다뤄진 점이었다. 유신체제의 기원과 형성과정을 여러 측면에서 고찰하는 것과 아울러, 최근에 주목받는 문화사적인 측면으로도 논의가 이루어져 무척 흥미로웠다. 더구나 다방면의 많은 연구자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이제 막 학술에 길로 들어선 초학자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발표와 토론이 진행되면서 가장 많이 거론되었던 것은 현재 사람들의 박정희와 유신에 대한 시선과 평가였다. 억압과 독재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 박정희와 유신은 사람들 사이에서 터부시되고, 마치 암흑의 시기를 겪었던 것처럼 여겨졌지만, 오늘날 그에 대한 시선은 ‘부활’이란 단어가 회자될 만큼 변한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유신에 대한 기억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사람의 기억은 때론 너무 이기적이고, 참 단편적이다.’

  언젠가 아버지께 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여쭤본 적이 있었다. 대학 2학년 때 임철우 작가의 <<봄날>>이란 책을 샀었는데, 그 책을 아버지께서도 꽤 관심 있게 읽으셨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께서 다섯 권에 달하는 책을 거의 다 읽으셨을 즈음, 당시의 상황에 대해 여쭤보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시느라 광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잘 알지 못했다는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유신에 대한 아버지의 기억은 광주의 경우와 마찬가지였다. 통금이 있었고, 장발에 대한 단속이 심했고, 사는 일이 쉽지 않았다는,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모두 대학을 포기할 만큼 어려운 형편이셨고,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간다는 게 무엇보다도 힘들고, 또 중요했던 시기였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 박정희는 독재자이긴 했으나, 불행했던 인물이었다. 특히 여성과, 아내, 그리고 어머니의 입장에서 육영수 여사에 대한 기억은 좀 더 각별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같은 시간에, 서로 다른 공간에 있었던 사람들의 기억이 각기 다르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언론이 통제되고 왜곡되던 당시 사회에서 이러한 일들은 더 빈번하게, 또 더 심하게 일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40년의 세월이 흘러온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유신은 그저 과거의 일일 뿐일지도 모른다. ‘유신’이란 두 글자에 트라우마가 생길만큼 깊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여전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보다 가해자들의 목소리가 더 큰, 참 아이러니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유신 독재의 실상에 대해 외쳐왔지만, 다른 사람의 경험만큼 잊기 쉬운 건 또 없는 것 같다. ‘망각’이란 단어는 그런 면에서 참 무섭고도 두려운 말이다. 경험이 동반되지 않은 기억은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소재거리가 되다가도, 또 곧 잊혀 사라진다.

  그러나 실제 ‘유신’은 40년간 단 한 번도 ‘과거지사’였던 적이 없었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에서 울린 총성과 함께 박정희의 시대는 끝났지만, 유신의 잔재들은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채 한국사회에 깊숙이 남아있다. 심지어 오늘날 박정희는 보수 세력의 정통성과 정당성의 무기가 되어 다시금 부활하려는 기미까지 보이고 있다. 때문에 학술대회에서 현재와 관련된 문제들이 많이 거론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유신체제가 어떻게 현재에까지 작동하고 있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하는지에 대한 문제들은 비단 이번 학술대회뿐 아니라 앞으로도 꾸준히 논의되어야할 부분이다. 유신을 극복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와 기회는 이미 지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기회를 우리 스스로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잊지 말고 기억하는 것, 그리고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일종의 부담이자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져야할 책임이며, 후대에도 전해주어야 할 유산일 것이다.

  정옥자 선생님께서 정년퇴임식 자리에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선생님께서는 인재양성 문제와 관련하여 서울대 정체성의 위기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 중 ‘머리만 좋고 의식이 트이지 못한 도구적 지식인’을 확대재생산하는 메커니즘에서 벗어나, ‘뜨거운 가슴 없이 차가운 머리만 가진 지식인’의 한계를 극복하고, 감성과 이성이 잘 조화된 균형 잡힌 인재를 키워야한다는 말씀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 이것은 비단 한 개 대학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지금과 같은 논의가 꾸준히 이어지려면 개개인의 노력과 더불어 학계 내의 부단한 노력도 필요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3, 4부에 참석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필 학술대회 날에 자취방을 계약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나이가 들고 스스로 결정해야하는 일들이 점점 많아질수록 사회와 현실에 대한 의문도(주로 반감) 함께 늘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아주 사소했던 고민이 집세와 학비문제로 연관되고, 문득 ‘혼자 장보기’의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가 아직 하지도 않은 결혼과 태어나지도 않은 자식 걱정까지 하고 나니 6무(無)세대니, 3무(無)세대니 하는 말들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목 뒤의 거북함이 어디서 연유한 것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뒷목을 주무르는 일 뿐.’

  글을 쓰다 보니 학술대회에 대한 내용은 소략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만 늘어놓은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부족하지만, 이글을 빌어 학술대회를 위해 고생하신 선생님들과 관계자 분들께 큰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