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을 위한 역사] 고려는 하나의 나라가 아니다 ② 나라이름 ‘대한민국’과 동북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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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을 위한 역사]

고려는 하나의 나라가 아니다
② 나라이름 ‘대한민국’과 동북공정

조경철(고대사분과)

 

한국역사연구회는 <시민의 한국사> 출간에 앞서 <한겨레21>에 15회 분량의 ‘시민을 위한 역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글은 고대사 분과 조경철 선생님이 기고한 글입니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1310.html)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각각 나름의 이름을 갖고 있다. 사람도 자기 이름을 달고 평생 살아간다. 내가 죽어도 이름은 남는다. 나라이름도 마찬가지다. 나라는 없어져도 역사와 함께 이름은 계속 남는다.

우리나라는 단군의 고조선부터 현재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나라이름과 함께 역사를 같이해왔다. 어떤 나라이름은 한 번만 쓰이지 않고, 새로운 나라에서 다시 쓰이기도 했다. 우리는 단군이 세운 나라이름을 고조선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애초 이름은 ‘조선’이었다. 후대의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서 편의상 ‘고조선’이라고 부를 뿐이다. 고조선이란 이름이 처음 나타난 것은 고려시대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다. <삼국유사>의 고조선은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었다. 이승휴의 <제왕운기>에서는 ‘전(前)조선’이라고 하였다.

‘한’에서 비롯된 나라이름 ‘대한민국’


[사진1] 충북 충주시 가금면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에는 고구려가 남한강 유역을 점령하고 세운 ‘충주고구려비’가 보존돼 있다(왼쪽). 이 비의 판독문(오른쪽)을 보면, 고구려의 절대권력자는 자신을 ‘고려태왕’(빨간 사각형 표시)이라 적고 있다. ⓒ조경철

조선은 현재 북한의 나라이름으로 쓰인다. 이와 달리, 대한민국이란 이름은 고대 ‘한’에서 유래했다. 한은 19세기 말 대한제국이란 나라이름과 함께 다시 등장해 3·1운동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거쳐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계승됐다. 21세기 남한의 대한민국과 북한의 조선이란 이름 모두 몇천 년 전의 나라이름을 다시 사용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예전 나라이름을 새 나라의 이름으로 다시 사용해 역사계승 의식을 강조해왔다.

그렇다면 우리 역사상 어떤 나라이름을 가장 많이 사용했을까? 앞서 언급한 조선이나 한도 있지만, 누군가는 고구려를 떠올릴 것이다.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이후 궁예가 다시 나라를 세우면서 이름을 고구려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편의상 궁예의 고구려를 ‘후고구려’로 부르고 있다.

태조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세운 ‘고려’ 역시 고구려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졌다. 왕건이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취지에서 ‘구’자를 빼고 ‘고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현재 대한민국의 영문 국호인 ‘코리아(Corea)’도 왕건의 고려를 영문 철자화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실제 역사는 이렇게 알려주고 있다. 고구려가 남한강 유역을 점령하고 세운 비가 충주고구려비(중원고구려비)다. 이 비에서 고구려는 신라를 동쪽 오랑캐란 뜻의 ‘동이’(東夷)라 불렀다. 고구려 왕은 스스로 ‘태왕’(太王)이라 부르면서 자국 중심의 천하관을 사방에 선포하였다. 그런데 충주고구려비를 보면, 당시 최고 권력자를 고구려태왕이라 하지 않고 ‘고려태왕’이라 적었다. 1960년 경남 의령에서 발견되었다가 전시 중 한때 도난당했던 연가7년명 불상(금동여래입상)이 있다. 이 불상에 새겨진 글씨에도 국호가 고구려가 아닌 고려로 되어 있다. 고구려인이 남긴 비석과 불상에 자신들의 나라이름을 고구려가 아닌 고려로 부르는 것이다.

당나라의 역사서인 <당서>에도 고구려를 고려라고 쓰여 있다. 당은 고구려를 멸망시킨 나라다. 고구려 멸망 후 50여 년이 지나 편찬된 일본의 <일본서기>에도 이 나라를 ‘고려’로만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라는 국호는 아예 보이지 않는다. 고려시대 편찬된 <삼국유사> ‘왕력’편에도 ‘고려 주몽’이라고 하였다. 왜일까? 이는 고구려가 나라이름을 고려로 바꿨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실제로 고구려가 멸망할 때 나라이름은 고려였다. 일부 역사가는 고구려의 국호 변경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들조차 고구려가 ‘고려’란 나라이름을 같이 썼거나, 오히려 고려란 국호를 더 많이 사용했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태조 왕건이 고구려의 ‘구’자를 빼서 고려라는 이름을 지은 것도 아니다. 그저 고구려가 사용했던 ‘고려’란 나라이름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계승하려 했던 의식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궁예가 세운 고구려의 경우는 어떨까? 이 역시 고구려가 아니다. 궁예가 세운 나라도 고려였다.

발해왕이 ‘고려국왕’인 이유


[사진2] 고려시대에 편찬된 ‘왕력’편에서 주몽의 고구려를 ‘고려주몽’(빨간 원)이라 적고 있다(왼쪽). 고구려인이 남긴 불상 ‘연가7년명 불상’에 새겨진 글씨에도 자국 이름을 ‘고려’(빨간 원)라고 썼다. 고구려가 멸망하기 이전 나라이름을 ‘고려’로 바꿨기 때문이다. ⓒ조경철

현 한국사 교과서를 보면 발해 왕을 ‘고려국왕’이라고 하면서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들은 의문을 품을 것이다. 왕건이 고려란 나라이름을 사용하기 전에 발해 왕을 왜 ‘고려국왕’이라고 했을까? 고구려가 고려로 국호를 바꾸었기 때문에 이를 계승한 발해는 당연히 ‘고려국왕’으로 불리기도 한 것이다. 고구려가 고려로 나라이름을 바꾼 이후 발해는 ‘고려국왕’이라고도 했고, 궁예와 왕건은 모두 나라이름을 고려라고 했다. 영문 국호인 코리아도 실은 태조 왕건의 고려가 아니라 고구려의 고려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주변 국가에서 모두 고려라 부르는데 우리가 고구려로 부르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실제로 고려 중기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고려를 모두 고구려로 바꾸었고,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김부식으로선 과거 ‘고구려의 고려’가 현재의 고려와 혼동되는 걸 막으려 했을 수 있다. 한편으로는, 현재의 고려가 ‘고구려의 고려’에서 왔음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김부식은 자신의 고려가 궁예와 관련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궁예가 고려란 나라를 세운 것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고려 사람 김부식은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그것을 따를 필요가 있을까? 어떤 사람이 이름을 바꾸었으면 그 의사를 존중해 바뀐 이름으로 불러줘야 한다. 어떤 나라가 이름을 바꾸었다면 거기에도 그 나라의 꿈과 이상이 배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몇 년 전부터 고구려라 하지 않고, 고려로 부르고 있다. 주몽의 고려, 궁예의 고려, 왕건의 고려가 혼동되어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경우 주몽과 궁예의 고려를 전고려와 후고려로 부른다. 왕건의 고려는 그대로 고려로 하면 된다. 고려시대 <삼국유사>에서 이미 이런 방식의 구분을 한 적이 있다.

최근 중국은 이른바 ‘동북공정’이라고 하여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자신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 영토 내에 있는 과거 역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동북아역사재단을 설립해 중국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논문으로 동북공정에 대처한다 해도 중국은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은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국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민족이라도 떨어져나간다면 도미노 현상을 일으켜 중국이 붕괴될 수 있다고 여긴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가장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 있다.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 대응하자는 것이 아니고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면 된다. 바로 고구려를 고려로 부르기만 하면 된다.

고구려가 바꾼 나라이름 고려를 발해가 이어받고 궁예는 고려란 나라이름 그대로 사용했다. 왕건도 고려란 나라이름으로 500년 왕조를 이어갔다. 고려란 나라이름은 적어도 5세기부터 계속해서 발해~궁예~왕건을 거쳐 1천 년 동안 사용되었다. 더구나 영문 국호인 ‘코리아’는 5세기 고려에서 시작해 2016년 오늘까지 1500년 동안 우리와 함께해왔다. 고구려와 발해 역사는 ‘고려’란 나라이름을 통해 언제나 한국의 역사로 존재해온 것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고구려와 발해가 어느 나라 역사인지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동북공정과 건국절 논란을 보며

근래 대한민국에서도 국가 정체성에 관한 논의가 분분하다. 한쪽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계승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쪽에서는 건국절을 강조하며 임시정부와의 단절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역사적 한계가 있음을 반성해야 한다. 김구가 바랐던 대한민국이란 나라이름도 남북이 하나 되는 대한민국이었고, 여운형이 바란 조선도 남북이 하나 되는 조선이었다.

우리의 나라이름이 가진 특징은 나라를 세웠을 때 새로 이름을 짓는 것이 아니었다. 예전에 썼던 나라이름을 다시 사용하는 것이다. 나는 이를 ‘국호계승 의식’이라 부르려 한다. 특히 10세기 궁예 이후 고려와 조선을 거쳐 오늘날 남과 북의 대한민국과 조선에 이르기까지 모두 예전 나라이름을 다시 사용해왔다. 남북이 통일되었을 때 통일 조국의 나라이름도 아마 예전에 썼던 것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그 유력한 후보는 ‘고려’(Corea)가 될 것이다. 다만 자랑스러운 5천 년 역사와 남북통일의 역사적 의의를 강조하는 의미에서 우리나라 글인 ‘한글’을 새로운 나라이름으로 제안해본다. 하루빨리 남북이 하나 되는 그날 나라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는 벅찬 시대가 오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