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 헌 문조차 없는 ‘새 문’ 돈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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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문조차 없는 ‘새 문’ 돈의문

홍순민(중세사 2분과)

광화문 네거리에서 동쪽으로 난 길이 종로이고, 그 반대편 서쪽으로 난 길을 새문안길―신문로(新門路)라고 한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새문안길을 따라 가다가 보면 오른편으로 경희궁터가 나오고 경희궁터를 조금 지나면 관상대로 올라가는 길이 갈라지는데 그 길이 바로 성벽이 지나갔던 자국이다. 거기서 새문안길을 건너면 경향신문사가 있는데 성벽은 경향신문사를 왼편으로 버리고 오른편으로 돌아나가 농협 본부쪽으로 달리다가 다시 왼편으로 돌아 창덕여중, 이화여고를 지나 소의문―서소문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새문안길은 그 성벽이 건너갔던 자리까지 완만한 오르막이던 것이 거기서 나즈막한 고개 마루턱을 만들고 서대문 로우터리를 향해 내리막을 이루는데 바로 그 고개 마루턱이 “새 문”, 곧 본 이름이 돈의문(敦義門)-서대문이 있던 자리이다. 그런데 지금 그곳에는 문이라고는 그것이 있었으려니 짐작할 만한 흔적조차 없다.

돈의문은 태조 5년(1396) 9월 도성 2차 공역이 마무리될 때 다른 성문들과 함께 도성의 서대문으로 준공되었다. 태종 13년(1413) 6월 풍수가의 말에 따라 경복궁 동북쪽의 숙정문-북대문과 서북쪽의 창의문-서북문을 폐쇄하고 서쪽 도성에 서전문(西箭門)을 열었는데 이 서전문이 서문의 기능을 함에 따라 돈의문의 기능이 약화되었던 듯하다.

그러다가 세종 4년(1422) 2월에 도성을 고쳐 쌓으면서 다시 서전문을 폐쇄하고 돈의문을 지었다. 이 때 돈의문은 위치를 조금 남쪽으로 옮겨 새로 지었던지 흔히 새 문―신문(新門)이라 불렀다. 이리하여 돈의문 안을 새문안, 그리로 통하는 길을 새문안길―신문로라 하게 된 것이다.

돈의문은 숭례문에 버금가는 도성의 대문으로서 그 후 몇 차례 수리되면서 유지되어 왔다. 1898년 청량리 밖에 있던 고종비 명성왕후의 능인 홍릉에서부터 이 돈의문 밖까지 전차가 부설되었을 때도 돈의문은 헐리지 않고 전차가 원래의 그 문으로 지나갔다. 그러던 돈의문이 일제가 1911년(明治 44)부터 이른바 시구개정사업(市區改正事業)을 추진하면서 서울의 도로를 일등 도로, 이등 도로 등으로 나누어 확장함에 따라 1915년(大正 4) 3월 당시 광화문통 황토현 광장, 곧 오늘날의 광화문 네거리에 있던 원표(元標)로부터 인천으로 향하는 도로에 포함되어 속절없이 헐려 없어졌다.

지금 돈의문은 다만 그 바깥 지역의 구 이름이 서대문구, 그 바깥 사거리인가 오거리인가가 서대문 로우터리 하는 식으로 본 이름도 아닌 속칭으로만 남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