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 이름조차 잊혀진 소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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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조차 잊혀진 소의문

홍순민(중세사 2분과)

서울을 빙둘러 도성이 감싸고 있었고 당연히 도성에는 문이 있었다. 도성의 둘레가 사십 리가 넘으니 그곳에 문이 하나만 있었을 리 없다. 동서남북에 대문이 하나씩, 그 사이사이에 소문이 하나씩 해서 모두 여덟 개의 문이 있었다. 대문은 이른바 남대문(南大門), 동대문(東大門) 하는 것이요 소문은 서소문(西小門), 동소문(東小門)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남대문, 동대문 하는 이름은 속칭이요 범칭이지 본명일 리가 없다. 궁궐의 그 수많은 건물과 문들에도 일일이 이름을 지어 달고, 사가에도 건물에 또 방에 마루에까지 이름을 지어 그럴듯한 편액을 만들어 다는 것을 일상으로 삼던 조선시대 문화 행태에서 도성의 문들에 이름을 짓지 않는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남대문의 본 이름은 숭례문(崇禮門)이요 동대문의 본 이름은 흥인문, 좀 더 정확히 하자면 흥인지문(興仁之門)이다. 여기까지는 이 분야에 어느정도 관심있는 분들은 대개 아신다. 그러나 서대문, 서소문의 본 이름을 아시는 분은 그리 흔치 않을 것같다.

서소문의 본 이름은 소의문(昭義門)이다. 태조 5년(1396) 도성이 축조될 때 함께 지어져 소덕문(昭德門)으로 명명되었다가 성종 연간에 소의문으로 개명되었다. 중간에 문루가 없어졌다가 영조 19년(1743)에 다시 지어 제 모습을 갖추었다. 그러다가 1914년 일제가 도시계획을 한다는 구실로 헐어 없애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살펴 보면 서소문, 아니 소의문이 있던 자리를 짚어 보지 못할 이유도 없다. 문은 성벽과 길이 만나는 곳에 짓게 마련 아닌가.

옛 지도를 보면 소의문은 남별궁(南別宮), 곧 나중의 원구단(원丘壇), 오늘날의 조선호텔 쪽에서 서쪽으로 나아가는 길에 놓여 있고, 그 길은 이 문을 나서서 독립문에서 내려오는 하천에 놓여 있던 헌다리(비橋)를 건너 큰 고개(大峴)를 넘어 양화나루 (楊花渡)로 이어진다. 한강의 수운이 살아있는 시절에는 사람과 물산의 통행이 많은 길이었다.

일제는 도시계획을 통해 서울의 모습을 싹 바꾸려 했지만 이 길은 서소문로(西小門路)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살아 있다. 서소문로가 아현동으로 방면으로 나아가다가 중앙일보사 못미쳐서 고가도로가 되는 지점쯤에서 도성과 만난다. 그러니 그곳이 바로 소의문이 서 있던 곳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지금 그 소의문은 흔적조차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본 이름도 잃어버렸다. 다만 소의문이 있던 지역의 동명이 서소문동이 되어 겨우 그곳에 무슨 문이 있었나보다 짐작케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