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 우주의 원리와 칵테일 파티 : 경회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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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원리와 칵테일 파티 : 경회루(2)

홍순민(중세사 2분과)

경회루는 커다란 연못 가운데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지은 누각이다. 섬은 동쪽편으로 육지와 돌다리 셋으로 연결되어 있다. 다리 반대편 섬의 서쪽에는 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배를 타는 곳이다. 오늘날 경복궁에서 관람객들이 경회루를 보러 갈 때는 근정전에서 회랑을 어 낸 문을 통해 바로 접근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예전에는 경회루 연못 둘레를 따라 담장이 사방으로 둘려 있고, 그 담장의 사방에 경회루의 동쪽에 걸린 다리쪽으로 함홍문(含弘門), 서쪽 담장에 천일문(天一門), 남쪽에 경회문이 있었다. 문은 나 있었지만 그 안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었다. 세조 연간에 궁궐에 있는 교서관에 근무하던 구종직(丘從直 1424- 1477)이란 사람이 이전부터 경회루가 뛰어난 경치를 지니고 있다는 말을 들어오다가, 숙직을 하게 된 어느 날 밤 평복 차림으로 경회루 아래까지 숨어 들어가서 이리저리 거닐며 그 풍치를 즐기다가 별안간 거둥한 세조를 만나 노래를 부르고 춘추를 외는 등 즉석에서 시험을 당한 끝에 왕의 눈에 들어 출세를 하였다는 일화에서, 이곳이 궁궐에서 근무하는 관원들조차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경회루는 경복궁의 내전인 강령전과 교태전에서 들어가는 것이 정식 경로였다. 말하자면 경회루와 그 연못 일대는 경복궁 내전에 딸린 누각이요 정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경회루가 내전에 살던 왕과 왕실의 전용임은 그 내부 구조에도 드러나 있다. 경회루 이층은 마루를 깔았는데 그 바닥의 높이가 일정치 않다. 정면 7간, 측면 5간 해서 35간 가운데 중앙부 세간이 가장 높다. 그 세 간을 둘러싼 12간은 한 뼘 남짓 낮고, 가장 바깥을 두른 20간은 다시 한 뼘쯤 더 낮다. 그렇게 높이가 달라지는 경계 구역에 한 번 젖혀 들어올리게 되어 있는 분합문을 달았다. 분합문을 내리면 그 안은 닫힌 방이 되고 들어올리면 터진 마루가 된다. 중앙의 가장 높은 자리는 당연히 왕이 앉았던 곳이고, 그 다음 다음으로 내려오면서 신분과 지위에 따라 차등을 두어 앉는 자리를 정하였다.

이러한 구조는 단지 왕의 권위와 신분 위계를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고종 초년 경회루를 다시 지을 때 만든 옛기록에 의하면 그것에는 주역(周易)의 원리, 우주의 이치가 내재되어 있다고 하였다. 곧 중앙의 가장 높은 3간은 정당(正堂)으로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상징하고, 그 3간을 구성하는 기둥 여덟 개는 팔괘(八卦)를 나타낸다. 그 다음 12간은 정당을 보조하는 헌(軒)으로 1년 12개월을 상징하며, 기둥 16개에는 각 기둥 사이에 네 짝 문이 있어 64괘를 이룬다. 가장 바깥의 20간은 회랑(廊무)으로서 기둥은 24개로 24절기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기둥의 길이, 서까래 수효와 다리, 연못의 형상 등에 대하여도 주역의 수자와 관련하여 풀이하고 있다.

그러한 관념은 아래층의 돌기둥에도 깃들어 있다. 그 모양을 자세히 보면 가장 바깥 둘레의 것은 사각기둥이고 안의 것은 원기둥이다. 원과 사각형이 함께 있으면 일단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져 있다는 관념의 표현으로 이해하면 대체로 틀림없다. 무슨 하늘이 둥글고 땅이 네모냐고 웃을 일이 아니다. 집을 짓고 기둥을 세우면서도 그곳에 하늘과 땅, 우주의 원리를 담으려 했던 그 철학적인 면모를 인정하고, 배울 바가 있다면 배울 일이다.

경회루는 기본적으로 왕이 외국 사신이나 신하들을 모아 연회(宴會)를 베풀던 곳이다. 그밖에 이곳에서는 왕이 직접 참석하는 과거라든가 군사훈련, 출동하는 군대를 위로하는 잔치, 기우제 등을 베풀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연회를 베풀면서도 왕과 어진 신하의 만남을 표방하였다. 단순한 놀이터가 아니라 통치자로서 왕의 활동공간임을 드러내려는 의도였다. 경회라는 이름에 그런 뜻을 담았다. 해방 이후에 경회루는 국경일이나 기념일이면 대통령께서 내외 귀빈을 초청하여 벌이는 ‘칵테일 파티’ 장소로 쓰인 적이 많았다. ‘칵테일 파티’장에는 어떤 우주의 원리와 통치 철학이 내걸렸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