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 사정전 앞 활자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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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전 앞 활자 창고

홍순민(중세사 2분과)

근정전에서 뒤로 들어가면 사정문이요 사정문 안을 들어서면 바로 사정전을 만나게 된다. 사정전(思政殿)은 태조 연간에 처음 경복궁이 지어질 때부터 왕이 공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건물이었다. 애초에는 보평청(報平廳)이라 하던 것을 태조 4년 10월 정도전이 경복궁과 그 안의 전체 전각들의 이름을 지으면서 사정전이라고 하였다. 정도전은 그렇게 이름을 지은 뜻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천하의 이치는 깊이 생각하면 이루어지고 생각하지 않으면 실패합니다. 임금은 가장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지혜롭고 어리석음, 어질고 불초함, 그리고 온갖 일을 처리함에 옳고 그름과 이롭고 해로움을 깊이 생각하고 상세히 살피지 않으면 올바로 처리할 수 없습니다.
… 이 전각은 매일 아침 여기에서 국사를 봅니다. 만가지 일 천가지 업무가 모두 전하께 품달되어 전하께서 조칙을 내리고 지휘를 하게 되니, 더욱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곳입니다. 이에 사정전이라고 이름짓기를 청하나이다.”

근정전이 왕이 외부에서 들어온 관료들을 만나는 공간―외전(外殿)이라면, 사정전부터는 왕과 왕비가 일상적으로 기거하며 활동하는 공간―내전(內殿)이다. 그 가운데 사정전은 왕의 공식 집무실―편전(便殿)이다. 이런저런 어전회의를 비롯한 최고통치자로서 공식 업무는 원칙적으로는 이곳에서 처리하였다. 그러기에 이곳에서 왕은 정치를 담당할 뭇 사람들을 살펴서 가려 쓰는 일, 왕에게 보고되는 온갖 업무의 득실을 살펴서 결정하는 일, 다시 말하자면 인사권과 정무 결정권을 행사함에 깊이 생각하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인사권과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가끔 사정전에 들러서 그 뜻을 곰곰 되새겨봄직하다.

그러나 다른 전각들이나 마찬가지로 지금 사정전은 쓸쓸하기 짝이 없다. 내부에는 아무런 집기도 없고, 왕이 앉는 자리 뒤편에는 구름 속에 놀고 있는 용그림만이 지나치게 크고 요란한 모습을 하고 걸려 있을 뿐이다. 사정전을 물러나와 좌우의 만춘전, 천추전을 둘러보아도 마찬가지이다. 만춘전, 천추전은 본래는 사정전과 복도로 연결되어 사정전의 기능을 보필하였을 것이나 지금은 서로 뚝뚝 떨어져 있다. 행각으로 둘러싸인 한 공간안에 있으면서도 아무런 관계가 없는 건물처럼 보인다. 어디에서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최고통치자의 면모를 짐작이라도 해볼 단서를 찾기 어렵다.

그러한 아쉬움을 가지고 사정전 영역을 벗어나려다 보니 전면 행각에 서쪽으로부터 천자고(天字庫), 지자고(地字庫), 현자고(玄字庫), 황자고(黃字庫) … 순으로 자그마한 표지판이 걸려 있다. 편전 앞에 웬 창고인가? 누군가가 활자 창고라고 가르쳐 준다. 아 그런가 하고 틈새로 들여다 보니 지금은 물론 활자는 없고 먼지만 쌓여 있다. 거기까지만 했으면 좋았을걸 그 사람이 한 마디 덧붙인다. 천자고에는 한자로 ‘천(天)’자, 지자고에는 ‘지(地)’자 순으로 주욱 활자들을 보관했었다고…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 그 설명에 과연 그럴까 고개가 갸웃해진다. 그럼 그 수많은 한자들을 다 보관하려면 이런 창고가 수 천 개가 필요할텐데 나머지는 다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건 옛날에 번호를 붙일 때 천자문의 글자들 순서를 따서 붙였던 관행을 모르고 하는 소박한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천자고에는 ‘천’자, 지자고에는 ‘지’자를 보관했던 것이 아니다. 그저 말하자면 1번 창고, 2번 창고 순으로 창고 번호를 붙인 것일 뿐이다.

사정전 앞 행각의 활자 창고. 왜 하필이면 이곳에 활자 창고를 두었을까. 여기서 무엇을 읽을 것인가. 왕과 활자가 가까움을, 다시 말해서 왕이 활자를 관리하는 데 상당히 깊은 관심을 기울였음을, 더 나아가서는 왕이 활자 문화 곧 정신 문화를 주도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음을, 오늘날 표현으로 바꾸면 조선시대 정치문화의 문민성을 읽어내면 족하지 않을까? 그렇게 보니 과연 사정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