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 다시 찾아야 할 인왕산

0
161

다시 찾아야 할 인왕산

홍순민(중세사 2분과)

서울은 백악(白岳)과 타락산(타酪山), 인왕산(仁王山), 목멱산(木覓山) 네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네 산을 서울의 내사산(內四山)이라고 하는데 백악이 주산(主山)이요, 타락산이 좌청룡(左靑龍)인데 대하여 인왕산은 우백호(右白虎), 목멱산은 안산(案山)에 해당된다. 인왕산은 서울을 감싸안고 있는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거의 모든 기록에는 ‘仁王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仁王’이란 불국토를 지키는 수호신이다. 흔히 사찰이나 불상 등을 지키는 수문장으로서 문 좌우에 한 쌍의 역사(力士)로 표현되어 있다. 그 ‘仁王山’이 일제시대에 들어서서 슬그머니 ‘왕(王)’자 앞에 ‘날 일(日)’자가 붙어 ‘仁旺山’ 이 되었다. 일제의 치밀한 계산에 따른 왜곡이다.

그런데도 해방이 된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인왕산의 공식 한자 명칭은 여전히 ‘仁旺山’이다. 공식 지명을 함부로 바꾸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이겠으나, 일이 어렵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이런 왜곡을 그대로 존속시킬 수는 없는 일이요, 그렇다면 돈과 품을 들여 하루 빨리 고칠 것들은 고쳐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仁旺山’을 대할 때마다 참 답답하다.

지금의 인왕산 공식 한자명이 그렇다는 것이요, 또 증턱까지 아파트가 들어선 지금의 인왕산 형편이 답답하다는 뜻이지 본래 인왕산이야 서울에서 손꼽는 경승지였다. 필운대(弼雲臺), 인왕동(仁王洞), 청풍계(淸風溪) 등은 조선시대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본거지로서 사랑을 받아 왔다. 따라서 인왕산을 노래한 시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인왕산을 그린 그림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예로서 소나기가 쏟아지다 딱 그치자 운무를 뚫고 빼꼼히 얼굴을 내민 인왕산의 강렬한 인상을 검게 칠하고 또 칠해서 잡아낸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는 우리나라 회화사에서 손꼽는 명작이다.

인왕산 능선을 따라 도성이 구불구불 감아 돈다. 원래는 돈의문―서대문에서부터 자하문―서북문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서북방을 지키는 보루로서 어디 한 군데 끊어지지 않고 견고하게 이어졌겠지만, 지금은 신문로 돈의문 터에서 사직터널 위로 인왕산이 불쑥 기세를 올리는 지점까지는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며 힘겹게 인가 사이를 헤집고 있다. 중턱 산이 불쑥 기세를 올리는 지점부터는 거의 완전히 모양을 갖추고는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윗 부분은 1970년대 중반에 복원한 것이어서 아래 위가 영 때깔이 다르다. 자연히 맛도 덜하다. 그나마 성벽 위를 따라가면서 볼 수 있을 뿐 아래로 내려가 살펴보기는 어렵다.

인왕산은 군사정권 시절 보안상의 이유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다. 철조망 사이로 난 중턱의 인왕 스카이웨이로만 겨우 지나갈 수 있었다. 그렇던 인왕산이 문민정부 들어서서 개방되었다. 개방이라고 해도 철조망으로 구획을 정해놓은 길을 따라서 가는 개방이라서 맛이 개운치 않다. 그래도 인왕산은 그저 구두 신은 채라도 한 시간 남짓 시간을 내어 올라가 볼 가치가 충분하다. 338m 정상에 올라서면 시야가 탁 트이며 서쪽으로 빌딩 사이로 흘러가는 한강 줄기가 언뜻언뜻 보인다. 쾌청한 날은 황해 바다도 보인다. 동으로 서울 장안이 빤히 내려다 보인다. 세상이 보인다. 명산은 명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