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 경복궁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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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그림

홍순민(중세사 2분과)

겸재(謙齋) 정선(鄭敾 : 1676-1759)의 그림 가운데 <경복궁도(景福宮圖)>가 있다. 우리 강산의 경관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이른바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대가답게 수묵을 능란하게 구사하여 18.2×16.8cm의 작은 화폭이지만, 당시 경복궁의 분위기를 짙게 담아 놓았다. 허물어진 문에 시늉만 남은 담장, 그 가운데 전각들이 가득 차 있어야 할 자리에는 낙락장송과 버드나무가 그득 들어서 있다. 특히 연못가에 앙상하게 서 있는 경회루 돌기둥들은 임진왜란이후 당시까지 한 세기에 다시 반 세기를 더한 세월을 폐허로 남아 있는 경복궁의 쓸쓸함을 가슴저리게 보여준다.

심전(心田) 안중식(安仲植)의 <백악춘효(白岳春曉)>. 제목은 굳이 해석하자면 ‘백악의 봄 새벽쯤 되겠지만, 백악보다는 그에 안긴 경복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경복궁 주요 전각들의 지붕이 안개를 뚫고 솟아 있고, 전면에 광화문과 그 앞의 해태가 눈을 부릅뜨고 있다. 그림을 그린 해가 1915년. 일제가 경복궁에서 이른바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始政五年紀念朝鮮物産共進會)’를 연 해이다. 왜 하필이면 그 해에 그렸는지 속사정은 모르겠으나, 아무튼 본격적으로 훼손되기 직전의 경복궁을 정면에서 바라 본 전경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 그림은 그윽하기는 하나 허무함이 묻어난다.

그 다음 경복궁 그림으로는 어떤 것을 꼽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림은 아니지만,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입구 지하 1층 중앙홀에 전시하고 있는 경복궁 모형 두 틀에 관심이 간다. 하나는 망가지기 이전 경복궁의 온전한 모습을, 다른 하나는 일제시기의 훼손된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경복궁의 대체적인 이미지는 그런 대로 충실히 표현하고 있으나,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도 실상에 맞는지, 그 점에 대해서는 좀더 따져 보아야 할 여지가 있는 듯하다.

위에 든 것 정도가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경복궁 그림이다. 경복궁의 모습을 더 이상 온전하게 그려 볼 도리가 없다. 1907년 무렵에 작성된 <북궐도형>, <북궐후원도형>이라고 하는 대단히 크고 정밀한 도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림이 아니라서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경복궁의 모습을 한 눈에 알아보기는 어렵다. 1902년부터 일본인들이 찍어놓은 사진이 있으나, 개개 건물을 찍은 것 아니면, 물결치듯 이어지는 건물 지붕들을 찍은 것, 또는 남산에서 원경으로 찍은 것 등이어서 경복궁의 전체상을 담고 있지는 못하다. 이에 비해 1953년에 미국인이 비행기에서 찍은 전경 사진은 경복궁의 모습을 한 눈에 보여준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경복궁이 제 모습을 잃어버린 때여서 불구의 경복궁만이 담겨 있다.

지금 경복궁에 가 보아도 경복궁의 온전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옛 총독부청사를 헐어버리고, 군부대를 철수시키고, 내전 일대의 전각들을 복원했고, 또 계속 동궁 지역을 복원하고 있지만 아직 온통 어수선하기만 할 뿐이다. 한 편으로는 잘못 들어앉은 것들을 철거하면서, 그 옆에다가는 다시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건물을 짓고 박물관으로 쓰는 정책의 흐름은 도무지 그 향방을 따라잡을 수 없다. 원래의 경복궁은 지금은 경복궁과 국립중앙박물관, 그리고 청와대로 분단되어 있다. 그러니 경복궁 전체 그림이 그려질 리 없다.

새로 복원한 건물들에서는 묵직한 감동이 우러나오질 않는다. 작품이 아니라 제품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미완성이기 때문이다. 주요 건물만 덜렁덜렁 지어 놓았을 뿐 그에 따라붙는 부속시설들은 하나도 복원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옛날 왕과 왕비, 관원들, 궁녀들, 내시들이 어떻게 생활했을지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질 않는다. 그런데도 그곳을 세트로 삼아 부지런히 사극을 찍어댄다. 그러니까 사극에서는 왕, 왕비가 내시와 궁녀들을 줄줄이 거느리고 잔디밭이나 맨 땅을 걷는 장면이 그렇게 자주 나올 수밖에 없다.

경복궁 그림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는 책임, 그려 낼 책무는 누구에게 있는가. 일차적으로는 정책 당국이나 실무집행자에게 있을 것이다. 그분들이 전문적인 식견과 철학을 가지고 사업을 추진하여야 한다. 하지만 국민 모두가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것을 찾고 보는 우리 국민 전체가 함께 관심과 안목을 갖추고 동참할 때 비로서 경복궁 그림을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은, 문화재는 그 시대 총체적 문화 역량의 과실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