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성 가는 길 1 : 유천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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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성 가는길 1 : 유천역에서


이 글은 경주 서쪽 건천에 있는 부산성 답사기의 1편이다. 계획한 4편 모두를 합쳐야 온전한 답사기가 될 것인데, 우선 첫 머리를 시작해보자.
   부산성(富山城) – 신라인은 성(城) 이름도 이렇게 붙였다. 왜 그랬을까? 나 나름의 대답은 이 답사기 [4편]에서 하도록 한다.

   지금의 서울도 마찬가지이지만, 신라의 왕경(王京)은 전국의 온갖 물자가 두루 모여드는 곳이었다. 왕실과 국가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거두어서 갖다놓는 곳이 왕경이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이다보니 자연스레 장사치들도 모여들었다. 각 지방의 특산물은 물론이거니와, 외국에서 가져온 수입품들까지도 가장 많이 소비되는 곳이 바로 여기였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걷은 세곡(稅穀)들이 왕경으로 운반되어 와서 보관되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경주 남산의 남산신성(南山新城) 안에 있던 장창(長倉)이 그 하나였고, 또 하나가 건천의 부산성이었다. 부산성은 지금의 밀양 · 청도 방면에서 거두어들인 곡식들이 보관되던 곳이었다.

   유천역을 향하여
   부산성이 답사의 목표였지만, 나는 서울에서 경주로 바로 가지 않았다.
  12월 18일 오후에 경주에서 L선생을 만나 19일 날 부산성을 함께 둘러보기로 하고 이번 답사를 시작했지만 “기왕이면 나 나름의 코스를 밟은 뒤에 만나자”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밀양 · 청도  방면에서 경주로 들어가는 길을 한 번 밟아보자”는 욕심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유천인가?

 ▲ 유천에서 부산성, 건천에 이르는 길 : 밀양 북쪽 <유호>가 유천이다.

   유천역은  밀양-청도의 남북 경계 지점에 있다. 고려시대까지도 역으로 살아 있었고, 내가 일찍이 1편의 분석 글(『한국사연구』95)을 썼던 [창녕 인양사 비문](810)에 보면, 신열(辛熱)과 유천(楡川)이라는 2역(驛-비문에는 馹로 되어 있는데, 통일신라인들이 흔히 쓰는 異體字이다 : 1999년에 내가 『역사와 현실』에 쓴 글 참고)이 나온다. 810년에 새겨진 비문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유천역은 신라 때부터 역이었고 고려, 조선시대까지 살아 있었다.

   [창녕 인양사 비문]의 주인공은 신열과 유천역에 적지 않은 곡식을 지원하였다. 그리고 경주에 있는 사찰 몇 군데에도 시주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창녕 출신의 이 인물이 경주를 오가는 길목에 있는 이 2역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이 인물이 창녕에서 왕경을 오가며 뭔가 신세진 것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곡식을 기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부족한 자료인 만큼, 단편적 기록에
 등장하는 이름 모를 인간의 흔적까지도 소홀히 하기 어려운 처지에서는 여러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욕심 같아서는 창녕읍을 출발하여 청도를 거쳐 부산성, 경주까지 달려보고 싶었지만 시간 여유가 없어 유천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이곳 유천역에서 낙동강 지류를 따라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매전역(買田驛)을 지나고… 하면 경주의 건천, 즉 부산성 아래에 당도한다.

유천역은 내 머리 속에 맴도는 곳이었다. 물론 이번에 유천역을 처음 간 것은 아니었다. 1996년에 글을 쓸 때 일이다. 글을 거의 마무리하고서도 궁금한게 많아서, 창녕에서 밀양을 거쳐 유천까지 직접 찾아가 본 적이 있었다. 지금처럼 차를 운전할 때도 아니라, 시외버스 몇 번을 바꿔타고 다녔었다.
   궁금증을 풀거나 달리 뭔가를 찾으려 했다기 보다는, 내가 분석하고 있는 비문에 나오는 곳이었으므로, 직접 한 번 가보고 싶은 막연한 궁금증이 있었다고 할까…

   사실 이번 답사도 마찬가지이다. 꼭 뭔가를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한 번 지나보고 싶은 충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 상동역 : 원래 유천역이었으나 몇 년 전에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자그마한 시골의 운치
있는 역이다.

   당시 1/5만 지도를 접어들고서는, 밀양에서 물어물어 탄 시외버스에서 내린 낮선 곳이 경부선 철도의 [유천역]이었다. 간판을 보는 순간 “아~! 이곳이구나” 했었지만 ‥‥ 아니었다.
   여기는 일제가 철로를 놓으면서 ‘대충’ 붙인 역이름이었고, 그 옛날의 유천역은 낙동강 지류를 건너 이보다 북쪽에 있었다. 지금 유천초등학교나 유천우체국 등이 있는 곳이다. 현 지명은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이다. 현지인들은 유호라고 부른다. 행정관청으로 청도읍 유호출장소가 있다.

 ▲ 유천초등학교. 자그마한 시골학교는 언제 보아도 정겹다.

   산업화에 따라 이농현상이 생기고, 지방의 작은 고을일지라도 때로는 중심지가 옮겨가기도 한다. 그러나 초등학교는 옛날 그곳에 그대로 있는 경우가 많다. 폐교된 곳만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서 옛 지명을 찾을 때면 초등학교의 위치가 전근대 지명의 기준이 될 때가 더러 있다. 광역의 학생들을 받는 중학교는 그러지 못하다.

 ▲ 유천 마을 : 마을 앞을 흐르는 강이 동창천이다. 이곳 물은 아직도 깨끗하다. 멀리 보이
는 고가도로는 얼마 전에 새로 놓인 대구-서부산간 고속도로이다.

  유천에서 운문으로
   이번 답사의 첫 숙박지는 유천 마을이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상동역을 찾아보고, 다음에 다시 유천으로 들어와서 초등학교 등을 둘러보았다.
  유천은 낙동강 지류 2개가 만나는 곳이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청도천, 그리고 동북쪽의 운문면 쪽에서 흘러오는 동창천(東倉川)이 여기서 만난다. 두 물줄기는 합쳐져서 남쪽으로 흐른 뒤에 삼랑진 근방에서 낙동강 본류와 다시 만난다.

  이제 경주를 향하여 동창천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 동창천 : 경주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찍었다. 겨울이라 물이 별로 없는 구간이 있는
가 하면, 이렇게 제법 물이 흐르는 곳도 있다. 여기서 조금 더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운문댐이 나온다.
  (하일식 : 고대사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