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발표회 후기 – “박노자의 김사량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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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김사량 읽기

 

홍종욱(근대사분과)

 

– 일시 : 2017년 4월 3일(월) 19:00
– 발표: 박노자(오슬로대) / 토론: 곽형덕(카이스트), 장용경(국사편찬위원회)
– 주제 : 김사량의 <노마만리>에 반영된 역사적 경험 (태항산 해방구에서의 체험)


 

2017년 4월 3일 근대사분과에서는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교원인 박노자 님을 초청하여 「김사량의 <노마만리>에 반영된 역사적 경험 -태항산 해방구 체험-」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들었다.

 

김사량(金史良, 1914∼1950)은 평양 출신으로 도쿄(東京)제대 독문과에서 공부한 소설가이다. 1940년에는 단편소설 <光の中へ(빛 속으로)>가 아쿠타가와(芥川) 상 후보에 선정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선인으로서는 최초의 일이었다. 1945년 5월 김사량은 식민지 조선을 벗어나 중국 태항산(太行山) 조선의용군 해방구로 탈출하는데, <駑馬萬里>는 베이징(北京)에서 태항산에 이르는 여정 그리고 해방구에서 견문한 바를 적은 기행문이다.

 

박노자 님은 <노마만리>의 모티브를 구세계와 신세계의 대립이라고 파악하였다. 구세계는 일본 제국주의와 그에 빌붙은 봉건 세력이 판치는 현실을 가리킨다. 차별 속에 고통 받는 식민지 조선인들에 더해 김사량이 베이징 호텔에서 목격한 온갖 조선인 친일 협잡배들에 의해 상징되는 세계다. 중국 국민당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구세계의 일부로서 그려진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에 반해 신세계는 조중(朝中) 연대를 핵심으로 하는 국제주의와 민족주의가 조화를 이룬 세계다. 일본 제국주의를 넘어 새롭게 설 조선의 미래이자, 태항산 해방구에서 조선의용군과 중국 인민들이 어우러져 이미 만들어낸 현실이기도 하다. ‘대등’한 조중 연대 경험은 피식민자로서 느낀 차별, 노예적 감정을 해소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아가 해방구는 사회 개혁의 실험실이었다. 태항산에서 체험한 조중 연대의 ‘신민주주의’를 형상화한 <노마만리>는 신생 조선의 나아갈 길을 제시한 보고서였다는 것이 박노자 님의 해석이다.

 

토론은 한국과학기술원 곽형덕 님이 맡아 주었다. 문학 연구자인 곽형덕 님은 『김사량과 일제 말 식민지문학』(소명, 2017)의 저자이자 『김사량 전집』(역락, 2016) 편집에도 참가한 최고의 김사량 전문가이다. 먼저 전집을 엮은 이답게 <노마만리> 판본에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박노자 님은 <노마만리> 중 김일성을 찬양하는 부분만 문체와 표현이 다른 것을 볼 때 후일 가필하지 않았을까 추측했는데, 곽형덕 님은 <노마만리>가 처음 실린 『民聲』에는 해당 부분이 없었다는 점을 정확히 지적하였다.

 

또한 원광대 김재용 교수가 <노마만리>에 담긴 이념을 국제주의가 아닌 반제국주의라고 분석한 데 대해 박노자 님의 의견을 물었다. 여기에는 홍종욱도 끼어들어 코민테른 식 국제주의는 ‘계급 대 계급’ 노선에 입각해 자본주의 일반을 적으로 삼았지만, 1930년대 중반 이후는 자본주의 일반과 파시즘을 구분하는 논리가 뚜렷해지면서 예전과 같은 국제주의는 통용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아니겠냐고 거들었다. 박노자 님도 1935년 코민테른 제7차 대회 이후 국제주의 성격이 변했다는 점에 동의하고, 1943년 코민테른 해체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토론자 다른 한 명은 연구회 회원인 국사편찬위원회 장용경 님이었다. 먼저 장용경 님은 국제주의라는 이념보다 김사량이 자기 자신을 일본에 맞서는 주체로 세우는 과정이 핵심이라며 국제 친선은 그 싸움의 결과가 아니겠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역사문제연구소 민중사반 반장 출신다운 지적이었다. 박노자 님과 장용경 님은 글 도처에 등장하는 뼈를 깎는 자기반성의 표현들을 다시금 떠올리며 <노마만리>가 조선 민족뿐 아니라 김사량 자신의 재생의 내러티브였음에 공감하였다. 더불어 ‘사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 것 등을 들어 김사량에게 해방은 남성성 회복을 의미했다는 장용경 님의 의견에 대해서도 박노자 님은 피식민 주체를 거세된 남성으로 그리는 식민주의 연구를 소개하면서 동감을 표시하였다.

 

김사량이 해방구에서 벌어진 정풍(整風)운동의 주요한 비판 대상이었던 소설가 딩 링(丁玲)을 긍정적으로 언급하고 마오 쩌둥(毛澤東)의 문예 이론을 그다지 강조하지 않은 것을 박노자 님이 일종의 ‘저항’으로 해석한 것에 대해, 장용경 님은 과연 김사량에게 정치에 대한 문학의 독자성이라는 문제의식이 있었을까라고 회의적 태도를 보였다. 이에 대해 박노자 님은 집단 운명과 개인 운명의 동조 혹은 괴리에 민감하고 나아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이는 삶의 복잡성을 그려온 문학 세계에 비추어 볼 때, 김사량은 문학을 정치에 종속시키는 것에 부정적이었을 것이라고 답하였다. 박노자 님도, 장용경 님도 김사량이 적어도 전쟁 상황에서는 정풍운동과 같은 방식이 필요하다고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데는 생각이 같았다.

 

분과장 한승훈 님은 김사량의 <노마만리>를 읽고 장준하(張俊河)의 <돌베개>와 김준엽(金俊燁)의 <長征>을 떠올렸다는 감상을 피력했다. 김사량도 베이징에 머물면서 임시정부를 찾아갈지 독립동맹을 향할지 잠깐 고민하기도 했다. 최근 대전대 김건우 교수가 펴낸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학병 세대와 한국 우익의 기원-』(느티나무, 2017)이라는 책이 화제인데, 만일 그 때 김사량이 임시정부를 찾았다면 해방 후 같은 평안도 출신인 장준하, 김준엽과 더불어 대한민국을 ‘설계’하는 입장에 섰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승훈 님은 헌법 전문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내용이 들어가는 데 김준엽이 역할을 했다는 일화도 소개하였다.

 

홍종욱은 김팔봉(金八峯)의 회고를 보면 같은 시기 베이징의 같은 호텔에 머물면서 백철(白鐵)을 통해 김사량에게 돈 팔천 원을 건넸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소개하였다. 또한 김사량이 해방구에서 지주의 토지를 몰수하지 않고 소작료를 낮추는 데 그치는 등 사회주의가 아닌 ‘신민주주의’ 즉 인민전선 단계를 유지한 점을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국민당이나 임시정부를 봉건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라고 지적하였다. 이는 김사량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사회주의 운동에서 통일전선론 혹은 인민전선론이 가지는 근본적 한계에 대한 비판이었지만, 김사량에서 다소 멀어진 화제인 탓에 깊은 이야기가 오고가지는 않았다.

 

김사량은 남과 북에서 오랫동안 잊힌 존재였지만 수년 전부터 사람들 사이에 그 이름이 오르내린다. 박노자 님은 1990년대 이후 재일조선인 문학이 본격적으로 소개되면서 그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김사량에 대한 관심이 함께 높아졌다고 보았다. 유미리(柳美里)나 김석범(金石範)에서 시작된 관심이 재일조선인 문학 전체로 확산되면서 김사량도 다시 ‘빛 속으로’ 들어왔다는 설명이다. 또한 <빛 속으로> 등에서 김사량이 ‘내선(內鮮)’ 결혼을 비롯하여 복잡한 정치, 사회적 역학관계 속에서 다인종/다문화 가정이 지니는 문제를 선구적으로 다룬 점도, 오늘날 김사량 문학이 현재성을 띠는 이유의 하나가 아닐까 덧붙였다.

 

곽형덕 님 이야기에 따르면 북한 정부는 2013년 김사량에게 ‘공화국 영웅’ 칭호를 내렸다고 한다. 김정일이 김사량의 작품을 아꼈다는 일화도 소개해 주었다. 마침 오늘자 여러 신문은 서울대 송호근 교수가 소설을 발표한 사실을 화제로 삼았는데, 송 교수가 다음 소설은 김사량에 대해 쓰겠다고 밝히고 있어 적이 놀랐다. 한중일을 오가며 문학과 혁명의 최전선을 고집한 비운의 혁명가 김사량을, 21세기 한반도 남녘과 북녘에서 동시에 소환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멀리 태항산에서 날아왔을 먼지로 뿌연 서울 하늘처럼, 김사량이 꿈꾼 세상은 속인(俗人)의 혼탁한 마음에 가려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