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위논문 – 「1960~80년대 원주지역 민간 주도의 협동조합운동 연구 : 부락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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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위논문

『1960~80년대 원주지역 민간 주도의 협동조합운동 연구 : 부락개발, 신협, 생명운동』

(2014. 2. 연세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김소남(현대사분과)

  한국현대 농업사에서 3대 핵심 연구주제는 ‘농지개혁’, ‘양곡정책’, ‘협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양곡정책’을 통해 석사학위논문을 쓴 바 있었고, 박사과정 초기 양곡정책과 농지개혁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박사논문을 구상하였으나 최종적으로 주제가 정해진 것은 이전 연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협동조합’으로 귀결되었다.

필자가 이를 위해 민간협동조합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었던 홍성과 원주를 방문해서 자료 조사를 진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원주의 (사)무위당사람들 정인재 이사장과의 만남을 통해 이전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른바 1960~80년대 ‘원주그룹’에 의해 생산된 원주가톨릭사회복지회 소장자료를 접하면서 학위논문의 주제와 구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1)


[사진1] 1977년 광산지역 현장교육과 상담원 ⓒ국사편찬위원회(방양혁 선생 소장)

  당시 필자는 국사편찬위원회 근현대 지역사 자료 조사 수집과 민주화자료 조사 수집 업무 등을 맡고 있어서 이들 자료들이 정리·보존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한편, 원주그룹이 생산한 자료들을 분석하면서 원주지역을 중심으로 협동운동을 전개해 온 인물들에 대한 구술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필자가 ‘원주그룹’을 중심으로 이들에 의해 1960~80년대 전개되었던 ‘협동운동’과 ‘생명운동’을 연구하기로 결정했던 것은 몇 가지 연구사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진2] 1980년 사회개발위원회 자체연수 ⓒ국사편찬위원회(방양혁 선생 소장)

  1960~80년대 원주지역 협동조합운동은 오늘날 원주지역의 협동운동과 한살림운동의 뿌리이자 중요한 역사임에도 당시까지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실정이었다. 또한 원주지역의 협동운동을 이끌었던 ‘원주그룹’은 상이한 국가건설운동으로 인해 정치세력들의 상호 대립과 갈등, 분단과 전쟁, 독재 등으로 점철된 한국근현대사에서 지역에 기반한 민(民)의 자발적·자주적인 조직의 결성과 협동운동의 전개를 통해 양극단의 정치세력을 아우르며 통합적·평화적인 길을 모색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민주화운동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제3의 흐름이자 중도파세력의 활동상을 잘 보여주고 이를 재조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본 연구를 통해 1970년대 관 주도의 새마을운동과 질적으로 상이한 상향식의 민간 주도 농촌개발운동이 농촌과 광산지역에서 협동조합운동에 기반해서 광범하게 전개되었던 사례와 양상을 밝힐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원주그룹은 1960~80년대 부락개발운동과 협동조합운동의 추진이라는 현장경험 속에서 성찰과 노선전환의 과정을 거치며 탈근대적 ‘생명의 세계관’에 입각한 새로운 생활양식일 수 있는 ‘생명운동’으로 나아갔으며, 이를 통해 ‘원주소비조합’과 ‘서울한살림’의 설립과 운영을 통해 유기농산물에 기반한 도농농산물직거래운동을 추진하게 되면서 오늘날의 ‘한살림’뿐만 아니라 그것과 유사한 형태로 한국의 생협운동의 붐이 일어나도록 추동한 중요한 점을 밝힐 수 있는 점이었다 아울러 원주지역 협동운동은 분단시대 남북한 모두 상당히 강한 관 주도의 협동조합운동이 추진되었던 역사 속에서 이와 크게 대비될 수 있는 민간 주도 협동조합운동의 중요한 사례이자 모범적 양상을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사진3] 제7차 농민교육(1973.7.13~7.15) ⓒ국사편찬위원회(원주가톨릭사회복지회 소장)

  2010년부터 필자는 이 주제에 천착해서 연구한 결과 그 일부에 해당되는 연구논문 2편을 2011년도 『역사와 현실』과 『사학연구』에 발표하였으며, 2012년 또 다른 연구논문 2편을  『동방학지』 와 『사학연구』에 발표하였다. 당시 필자는 원주그룹이 생산한 상당한 양의 사료분석과 이들과 관련된 사회단체와 중요 인물의 소장자료를 조사 수집을 통한 분석을 진행하였다. 아울러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에 걸쳐 필자는 국사편찬위원회 구술사 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사)모심과살림연구소와 (사)무위당사람들과 공동으로 원주그룹에 속한 중요 인물들과 이들에 의해 추동되어 1970~80년대 농촌과 광산지역에서 부락개발운동과 협동조합운동 등을 전개하였던 농민·광산지도자들에 대한 수십 차례의 구술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를 통해 필자는 본 주제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확장·구체화시켜 나갈 수 있었으며, 그  연구결과를 2014년 2월 학위논문으로 제출할 수 있었다.


 [사진4] 제4차 농촌신협임원교육(1978.7.5~7.7) ⓒ국사편찬위원회(윤석주 선생 소장)

  1960~80년대 원주그룹의 제반 협동운동은 신협과 소비조합 등의 근대적 조합주의에서부터 생명운동에 기반한 도농농산물직거래운동인 제3세대적 성격을 갖는 생협운동에 이르기까지 각 시기별 특징을 가지고 원주그룹에 의해 다양하게 전개되었던 특성이 있었다. 이러한 원주의 제반 협동운동들은 기존의 서구적 협동조합 개념과 이론으로 모두 설명될 수 없는 측면이 존재하였다. 원주그룹은 ‘소도시거점론’에 기반한 지역자치운동에서 농민 주도의 부락개발운동과 근대적 조합주의에 기반한 협동조합운동의 추진, 탈근대적 ‘생명의 세계관’에 입각한 새로운 생활양식의 창조까지 다양한 운동을 시도하면서 생명운동의 성과를 창출해내었다. 이를 통해 볼 때 당시 원주지역에서 전개된 생명운동은 새로운 한국형 협동조합운동이며, 넓은 의미로 포괄해서 표현한다면 ‘생명협동운동’으로 부를 수 있다. 필자가 본 학위논문을 통해 연구한 핵심은 바로 ‘생명협동운동’의 역사적 배경과 전개과정, 이의 특징들을 밝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 1960~1970년대 반박정희정권운동을 전개하면서 형성된 원주지역의 사회활동가들을 1980년대 전반 외부에서 이른바 ‘원주캠프’라고 불렀다. 그러나 필자가 칭한 ‘원주그룹’이라고 함은 1972년 8월 남한강유역 대홍수를 계기로 1973년 1월 창립된 재해대책사업위원회를 중심으로 부락개발운동과 협동조합운동, 생명운동 등을 전개하였던 인물들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