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위논문 – 「1950~1960년대 전반 한국의 혼혈인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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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위논문 –
「1950~1960년대 전반 한국의 혼혈인 문제
– 입양과 교육을 중심으로 -」
(2008, 이화여대 사회생활학과 역사전공 석사학위논문)

김아람(현대사 분과)

필자가 석사과정에 들어오기 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것은 분단과 전쟁이 남한에 미친 사회적 영향이었다. 학부 졸업 학기에 보고서 주제로 다루었던 기지촌은 분단, 전쟁, 미군 주둔의 역사적 맥락이 숨 쉬는 공간이었고, 현대사에 대한 연구 욕구를 더욱 자극하였다.

  1950, 60년대 국가가 형성되고, 국민을 결집시키며 발전하려는 과정에서 분단의 현실은 정치, 안보 외에 사회 내부에까지 세세하게 작동한다고 생각하였다. 삶 자체가 그러한 현실과 맞물려 있었던 존재들인 이산가족, 재외동포, 성매매 여성등에 대해서 애정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발견한 1962년 사상계의 한 기사는 논문 주제의 방향을 잡게 하였다. 그것은 ‘유엔성자학원’이라는 혼혈 아동만의 학교에 관한 르포기사였다. 이제까지 기지촌 연구들에서 혼혈인은 성매매여성 문제에 묻혀 부차적으로 다루어졌고, 필자 역시 혼혈인은 기지촌을 파악한 후 다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하여 미루어 놓았었는데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사진 1>
사상계 (출처: 장준하기념사업회
http://www.peacewave.or.kr)

더구나 기사에서는 어느 연구에서도 다루지 않았던 혼혈인의 교육에 관한 것이니 반가울 수밖에! 혼혈인이 특수한 시설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은 당시 한국사회가 혼혈인을 어떻게 인식하고 제도로 구체화하였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하여 잠정적으로 논문의 주제를 혼혈인에 대한 인식과 제도로 잡게 되었다. 예상은 하였지만 모아지는 사료들이 해결하고 싶은 궁금증에 명확한 답을 주지는 못하였다. 어쩌면 ‘혼혈인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고, 제도는 해외입양’이라는 답이 이미 나와 있고, 자료는 이를 받쳐주는 것으로만 제 소임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있었다.

  혼혈인을 둘러싼 환경(부모, 지역)의 이해를 위해 성매매 여성, 미군, 기지촌으로 시야를 넓히는 동시에 문교부와 교육청의 교육 관련 자료를 추적해 갔다. 혼혈인 분리교육과 통합교육의 논란과 같은 중요한 의미를 담은 자료들이 발견되며 연구에 힘을 불어넣었다.


<사진 2> 미군기지촌여성 상담 및 지원 단체인 두레방의 활동 모습(출처http://www.durebang.org)

  자료를 보완하는 한편, 역사적 맥락에서 혼혈인을 서술하기 위한 고민이 계속되었다. 결론은 혼혈인 문제를 인식과 제도라는 막연하고 방만한 틀에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1950년대와 1960년대 전반의 국가형성과 발전과정 테두리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 문제 해결방식 및 논의의 핵심을 부각시켜야한다는 것이었다.

  국내외 입양은 국가와 사회가 영유아 혼혈인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주된 방식이었고, 교육은 국내에 살며 학령이 된 혼혈인을 어떻게 통제하거나 가르쳐 사회에 적응시킬지를 나타낸 쟁점이었다.

필자는 미군정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외국군인 남성과 한국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들은 그 자체로서 지닌 역사성과 상징성이 높다고 평가하였다. 또 그들에 대한 문제는 당시 국가와 사회의 인식과 정책을 담고 있으므로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보았다. 따라서 논문에서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전반의 혼혈인 문제를 통해 국가가 추구한 차별적 국민형성과 획일적인 국민단결의 일면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1950년대 혼혈인은 사상(반공이데올로기)이 아닌 혈통의 기준에서 배제된 ‘국민’이었다. 정부는 ‘한국인’과 아버지가 다른 혼혈인을 최대한 많이 해외에 입양시키고자 하였다. 전후 ‘국민’의 구호가 시급한 상황에서 혼혈인은 국가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었다. 경제개발에 주력하는 군사정부에 아래에서 해외입양의 대상은 고아로 더욱 확대되었고, 상대적으로 혼혈인의 입양은 감소하였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전반, 국가는 국내에 있는 혼혈인을 의무교육에 편입하여 통제하고 교육재정 면에서 효율성을 제고하고자 했다. 학교와 사회에서 혼혈인의 차별이 농후한 상황에서 혼혈인 부모와 사설 교육기관은 일반아동과 분리된 교육을 원하였지만, 국가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은 채 통합교육을 주장하며‘국민’임을 강요하였다.

혼혈인의 교육 문제는 이제까지 언급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특히 그 의의를 살리고 싶었다. 의무교육은 ‘국민’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준거였고, 한국사회에서 살아갈 혼혈인이 인종, 문화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통로였다. 그러나 1960년대 전반 국가가 추구한 혼혈인 통합 의무교육은 획일화된 통제와 교육기관의 효율성을 위한 것이었다.

  결국 1950년대와 1960년대 전반 혼혈인은 특수성 또는 다양성을 존중받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당시 국가와 사회가 전제로 한 혈통의 단일성과 그를 토대로 한 국민의 형성, 경제개발 동력으로써의 국민단결은 누군가에게 분명 폭력과 억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