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위논문 -「18~19세기 漢城府의 犯罪實態와 葛藤樣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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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위논문 –

18~19세기 漢城府의 犯罪實態와 葛藤樣相

– 『日省錄』에 실려 있는 死刑犯罪를 중심으로 –
(2007. 8.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박사학위논문)

류승희(중세사 2분과)

  필자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에 이르는 시기의 조선후기 도시사회사를 한성부에서 발생한 범죄를 통해 고찰하였다. 범죄양상 속에서 드러나고 있던 도시민의 각종 대립과 사회적 갈등이 일상생활 속에서 다양화되는 양상들을 토대로 변동기 한성부민의 갈등양상과 성격이 어떠했는지 살펴보았다.

  『일성록』에 나타난 2,853건의 전국 범죄현황에서 王都인 한성부는 가장 높은 범죄율을 보여 범죄발생에 있어 京鄕간 뚜렷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범죄유형에서도 파악되어 지방의 경우 폭행범죄가 중점적으로 나타나는 등 특정 부류의 범죄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 것과 달리 한성부는 이와 함께 사회, 경제범죄도 다수 발생하였다.

  특히 한성부의 범죄는 5부 가운데에서도 도성 안에서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정조대 도성 밖에서 성행하던 범죄양상은 19세기에 이르면 도성 안인 북부와 중부지역으로 집중되었다. 이러한 도성 안의 높은 범죄율은 궁궐 주변에 대한 치안을 강화하는 사회통제의 측면과 서울의 도시화 경향 속에서 드러나는 갈등양상의 심화라는 이중성에서 배태된 현상이라고 여겨진다.

  한성부의 지역적 특성은 범죄발생에도 큰 영향을 미쳐 범죄의 원인과 범죄인ㆍ피해자의 관계가 5부마다 상이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상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곳을 중심으로 살인ㆍ강도가 빈번하였고, 사회공동체 내부에서 재물과 금전문제로 인한 살인ㆍ치사사건이 발생하였다. 특히 한성부민의 소비적 특성은 미곡문제로 인한 한성부민간 마찰을 심화시켰다.

  경제범죄에 있어서는 빈곤과 개인적 이기심으로 인한 절도가 두드러졌으며, 외부로부터 유입된 상경 유이민의 범죄가 증가하였다. 직역을 가지고 있는 상경 유이민들은 관물을 절도하였으며, 거주지도 마련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유이민의 경우는 도로변이나 청계천변 인근 교량에서 강도나 살인을 서슴없이 행하고 있었다.


<사진 1> 도성도(1750년대 ·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한편, 경제범죄 가운데 위조에서 나타나는 한성부민의 모습은 전통적인 신분관념이 이완되는 경향을 보였다. 한성부의 경우 민의 대부분이 상업에 종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돈이 모든 경제활동을 지배하였으며, 중요한 사회적 척도가 되었다.

  따라서 한성부민은 돈으로 나타나는 물질적 가치에 지방민보다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당시 민의 신분상승 욕구와 배금주의 풍조는 정치ㆍ행정도시인 한성부의 지역적 특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문서위조의 범람을 유도하고 있었다.

  이처럼 범죄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모습들은 한성부민간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들을 내포하는 것이었다. 한성부의 도시성장은 한성부민간 사회, 경제적 차이를 심화시켰으며 외부에서 유입되는 이농인을 비롯하여 서로 다른 계층간 접촉을 증진시켰다.

  한성부의 경우 궁궐이나 각 관사에서 일하는 하급관리들이 다수 존재하여 부민들에게 官權을 행사하며 대립하였다. 관속간 대립이 두드러졌으며, 이는 집단적 폭력양상으로 나타났다. 관속들이 관리하고 있는 기방운영의 주도권 장악과 집단간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조직성 두 측면이 갈등의 원인이었다.

  특히 조직의 세를 과시하여 집단간 우위를 선점하려는 관속들의 행태에서 구성원 사이에 일정한 행동유형이 나타나 집단 구조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집단간의 조직성은 房規, 房令을 통해 더욱 강화되었으며, 이는 폭행범죄에 있어 집단화 경향을 유발시켰다.

  관민간 갈등의 모습은 포교나 금예가 공무를 빙자하여 한성부민에게 악행을 저지르는 행태가 대다수로 이들은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염탐하거나 행인을 검문하거나 모군을 동원하는 등 공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한성부민과 자주 대립하였다. 또한 한성부의 사령이나 형조의 금예는 피소송자나 懸房의 泮人에게 情債를 요구함으로써 이들과 마찰을 빚었다.

  따라서 한성부민은 관속의 침학에 대해 집단행동으로 대응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도시 하층민간의 상호유대는 강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모습은 불안정한 도시생활에서 자신들의 생활권을 보호하기 위한 결과로, 관속층과 한성부민간의 갈등은 국가와 한성부민과의 괴리감만 심화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이처럼 필자는 18~19세기 한성부에서는 계층의 다양성과 배금주의 등의 사회현상이 나타났지만, 한성부민간 자발적인 결속이 있었고, 이는 한성부 전체 사회의 계층간 결속력을 증대시키는 요인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한성부민의 결속력은 정치, 사회적 모순과 외세의 침탈이 심해지는 개항기 이후 더욱 강해져 19세기 임오군란과 같은 대규모 집단행동에 한성부의 도시하층민을 광범위하게 끌어들일 수 있는 바탕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전체적인 범죄양상이 아닌 사형범죄에 한해서 한성부라는 지역을 제한적으로 살펴보았기 때문에 경범죄에서 나타나는 민의 실태와 특성 뿐 아니라 전국 범죄의 구체적인 실상을 보다 다양하게 파악하지 못하였다. 이는 필자가 앞으로 계속 연구해나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