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청구인의 청구를 각하한다 (3)

0
207

 

청구인의 청구를 각하한다 (3)

한상권(중세사 2분과)

6. 재임용 거부사유와 구제절차를 법률에 규정하지 아니한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

교육부의 권고로 각 대학마다 어렵사리 만든「교원 기간제임용 심사기준에 관한 내규」는 법적 기속력이 없어 임면권자가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이었다. 여전히 법률상 대학교원의 지위는 ‘시한부임시직’이며 재임용탈락시 재심청구조차 할 수 없는 무권리 상태에 있었다. 교수재임용제를 악용하여 분쟁이 발생할 경우 임용권자가 결정을 스스로 철회하거나 임용권자가 해임당하기 전에는 분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이 때문이었다. 

  교수재임용의 기준과 절차가 법적으로 규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교수의 지위가 법률적으로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선 재임용관련 법규가 없으므로 재임용탈락 시비를 둘러싼 재판이 성립될 수 없다. 재임용탈락자가 사법부에 訴를 제기하면 재임용여부는 사법부의 심사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되었다.

  게다가 대학교수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였다. 재임용은 민법상의 계약관계인데, 교수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행정적인 보호도 받지 못하였다. 교육부 교원징계재심위원회에 소청을 하여도 재임용탈락은 징계처분이 아니라는 이유로 역시 각하되었다.

  대학교수는 재임용탈락 시 사법부에 재심청구조차도 할 수 없는 무권리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었다. 이 때문에 인사권자는 치외법권의 특권을 누리며 얼마든지 마음에 안 드는 교수를 대학사회에서 속아낼 수 있었다.

일부 대학에서 교수 재임용제가 악용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제도운영상의 문제가 아니라 법률조항이 가지고 있는 위헌성에서 비롯되는 문제이므로 주무부서인 교육부는 법 개정에 서둘러야 했다. 내가 재임용탈락 된 직후인 1997년 3월 8일 국민회의 설훈 의원이 대학교원 기간제 임용제에 대한 교육부의 대책을 묻자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사진 10) 대학교원 기간제임용제에 대한 교육부의 대책은? [백서 1, 63쪽]


o 교수 기간제 임용제도의 근본취지가 대학교원의 연구 및 교수능력 향상을 통하여 대학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데 있으나

o 일부대학의 경우 교수재임용심사평정 등 운영상의 문제로 대학 측과 탈락교수간의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 현실임.

o 이에, 우리부에서는 동 제도가 공정하고 엄정하게 운영되도록 행정지도를 강화해 나가는 한편,

o 정책연구 등을 통하여 기간제 임용제의 기준 등을 법령에 규정하고 사후구제 제도를 마련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겠음


  교수재임용제도가 공정하고 엄정하게 운영되도록 행정지도를 강화해 나가겠다는 지금까지의 틀에 박힌 답변에서 한 걸음 나아가 정책연구 등을 통해 법령 규정과 사후구제 제도를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답변하였으나 계속 ‘연구’와 ‘검토’에 머물 뿐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1998년 7월 16일, 헌법재판소 결정문에서 재판관 9인중 4인이 사립학교법 제53조의2 제3항이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냈다.


(사진 11) 헌법재판소 결정(1998.7.16) [백서 4, 593쪽]


일부 사립대학교에서 기간임용제가 악용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제도운영상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건 법률조항이 가지고 있는 위헌성에서 비롯되는 문제이다. 이 사건 법률조항이 재임용 거부사유와 거부당한 교원에 대한 구제절차를 마련하지 아니한 채 재임용권한을 임면권자인 사립학교법인과 총‧학장의 자유재량에 맡긴 결과 임면권자가 기간임용제를 악용하게 된 것으로서 기간임용제가 악용될 위험성은 이미 이 사건 법률조항 자체에 내포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재임용거부사유와 재임용을 거부당한 교원의 구제절차를 규정하지 아니한 채 이 사건 법률조항이 교원의 기간임용제를 규정한 것은 헌법 제31조 제6항에 위반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소수이지만, “기간임용제를 채택함에 있어서는 교원의 신분보장을 위하여 적어도 재임용의 거부사유와 재임용의 거부에 대한 구제절차를 함께 반드시 규정하여야만 교원지위 법정주의를 규정한 헌법조항의 정신에 합치된다”는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결정이 나옴으로써, 재임용탈락자들이 법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2000년 1월 18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 이재홍 부장판사는 김민수 교수가 서울 대학교 총장을 상대로 낸 재임용거부처분 취소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대학의 자율성과 학문의 자유 등을 위해 교수의 신분은 보장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고 학교 측이 임용기간이 만료된 교수를 다시 임용할 의무는 없을지라도 일정 기준에 따라 심사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이는 “재임용은 전적으로 대학 재량 사항”이며 “기간이 만료된 교원은 당연퇴직된다”는 기존의 판례를 뒤집는 획기적인 판결이었다. 지금까지 법원은 “재임용 탈락은 계약기간 만료에 대한 사실 확인에 불과하므로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이 아니다” “교육공무원법이나 사립학교법상 임용기간이 만료된 교원에 대한 재임용 의무 규정이 없고, 재임용 탈락은 계약기간 만료를 확인한 것에 불과해 행정소송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이재홍 부장판사는 교수재임용제도 행정소송의 대상이 된다고 보았다. “학문의 자유 등에 관한 헌법정신에 비춰볼 때 학문 연구의 주체인 교수의 신분은 일정 범위 내에서 보장돼야할 필요성이 있다. 교수의 신분 보장과 직결된 재임용 여부는 행정소송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합리적 근거 없는 대학 측의 재임용 거부는 취소되어야 한다고까지 하였다. “학문의 자유 등에 관한 헌법 정신에 비춰볼 때 학문 연구의 주체인 교수의 신분은 일정한 범위 내에서 보장돼야할 필요가 있는 만큼 대학 측에 임용 기간이 끝난 교수를 당연히 재임용해야할 의무는 없다고 하더라도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공정한 심사를 할 의무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의는 단박에 달려오지 않고 에둘러 오는 법이다. 2000년 8월 31일 열린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은 1심 판결을 뒤집었다. “피고(서울대학교)가 4년의 기간을 정하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산업디자인학과 조교수로 임용한 원고(김민수 교수)에 대하여 서울대학교 본부 인사위원회의 심의결정에 따라 재임용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원고에게 1998.8.31. 자로 임용기간이 만료되었다는 취지를 통지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위 결정 및 통지가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 결정 및 통지의 취소를 구하는 이 사건 소를 부적법하다고 하여 각하한 것이다.

민주화의 진전에 힘입어 2003년 2월 27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9명 중 7명의 찬성으로 기간제 임용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다. 5년이 지난 후 소수의견이 다수로 바뀐 것이다. 결정 요지는 다음과 같다.


【결정요지】

1. (생략)

2.가.이 사건 법률조항은 임용기간이 만료되는 교원을 별다른 하자가 없는 한 다시 임용하여야 하는지의 여부 및 재임용대상으로부터 배제하는 기준이나 요건 및 그 사유의 사전통지 절차에 관하여 아무런 지침을 포함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당한 재임용거부의 구제에 관한 절차에 대해서도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 법률조항은, 정년보장으로 인한 대학교원의 무사안일을 타파하고 연구 분위기를 제고하는 동시에 대학교육의 질도 향상시킨다는 기간임용제 본연의 입법목적에서 벗어나, 사학재단에 비판적인 교원을 배제하거나 기타 임면권자 개인의 주관적 목적을 위하여 악용될 위험성이 다분히 존재한다.

첫째, 재임용 여부에 관한 결정은 인사에 관한 중요사항이므로 교원인사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하나, 교원인사위원회의 심의과정을 거치지 않거나 형식적인 절차만 거친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는 교원인사위원회에서는 재임용 동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이유 없이 최종 임면권자에 의해 재임용이 거부되기도 하였다.

둘째, 이 사건 법률조항이 재임용의 거부사유 및 구제절차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립대학의 정관이 교원의 연구실적, 교수능력과 같은 비교적 객관적인 기준을 재임용 거부사유로 정하지 아니하고 자의가 개입될 수 있는 막연한 기준에 의하여 재임용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피해 교원을 실질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대책이 없다.

셋째, 절대적이고 통제받지 않는 자유재량은 남용을 불러온다는 것이 인류역사의 경험이라는 점에서 볼 때, 자의적인 재임용거부로부터 대학교원을 보호할 수 있도록 구제수단을 마련해 주는 것은 국가의 최소한의 보호 의무에 해당한다. 즉, 임면권자가 대학교원을 왜 재임용하지 않으려 하는지 이유를 밝히고 그 이유에 대하여 당해 교원이 해명할 기회를 주는 것은 적법절차의 최소한의 요청인 것이다.

넷째, 재임용심사의 과정에서 임면권자에 의한 자의적인 평가를 배제하기 위하여 객관적인 기준의 재임용 거부사유와 재임용에서 탈락하게 되는 교원에게 자신의 입장을 진술하고 평가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임면권자에게 지나친 부담이 아니라고 할 것이며, 나아가 재임용이 거부되는 경우에 이의 위법 여부를 다툴 수 있는 구제절차를 마련하는 것은 대학교원에 대한 기간임용제를 통하여 추구하려는 입법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나. 이상 본 바와 같이 객관적인 기준의 재임용 거부사유와 재임용에서 탈락하게 되는 교원이 자신의 입장을 진술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재임용거부를 사전에 통지하는 규정 등이 없으며, 나아가 재임용이 거부되었을 경우 사후에 그에 대해 다툴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전혀 마련하지 않고 있는 이 사건 법률조항은, 현대사회에서 대학교육이 갖는 중요한 기능과 그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대학교원의 신분의 부당한 박탈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요청에 비추어 볼 때 헌법 제31조 제6항에서 정하고 있는 교원지위법정주의에 위반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3.이 사건 법률조항의 위헌성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기간임용제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재임용 거부사유 및 그 사전구제절차, 그리고 부당한 재임용거부에 대하여 다툴 수 있는 사후의 구제절차에 관하여 아무런 규정을 하지 아니함으로써 재임용을 거부당한 교원이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완전히 차단한 데 있다.

그런데 이 사건 법률조항에 대하여 단순위헌을 선언하는 경우에는 기간임용제 자체까지도 위헌으로 선언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므로, 단순위헌결정 대신 헌법불합치결정을 하는 것이다. 입법자는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이 사건 법률조항 소정의 기간임용제에 의하여 임용되었다가 그 임용기간이 만료되는 대학교원이 재임용 거부되는 경우에 그 사전절차 및 그에 대해 다툴 수 있는 구제절차규정을 마련하여 이 사건 법률조항의 위헌적 상태를 제거하여야 할 것이다.



7. 심사가 합리적이고 정당한지의 여부는 교원징계재심위원회 및 법원의 심사 대상이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결정은 대법원 판결에도 영향을 미쳤다. 2004년 4월 22일 대법원은 대법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김민수 교수가 서울대 총장을 상대로 낸 교수재임용 거부처분 취소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청구 각하결정을 내렸던 원심을 파기하였다. 대법원은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시하였다.


【이유】

구 교육공무원법(1999. 1. 29. 법률 제571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11조 제3항, 구 교육공무원임용령 (2001. 12. 31. 대통령령 제1747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5조의2 제2항이 국∙공립대학에 근무하는 조교수는 4년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임용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원칙적으로 정년이 보장되는 교수 등의 경우와 차이를 두고 있는 것은, 임용기간이 만료되었을 때 교원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다시 검증하여 임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정년제의 폐단을 보완하고자 하는 데 그 취지가 있으므로, 기간을 정하여 임용된 조교수는 그 임용기간의 만료로 대학교원으로서의 신분관계가 종료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대학의 자율성 및 교원지위법정주의에 관한 헌법규정과 그 정신에 비추어 학문 연구의 주체인 대학교원의 신분은 기간제로 임용된 교원의 경우에도 일정한 범위 내에서 보장되어야 할 필요가 있고, 비록 관계 법령에 임용기간이 만료된 교원에 대한 재임용의 의무나 그 절차 및 요건 등에 관하여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1981년도 이래 교육부장관은 기간제로 임용된 교원의 재임용 심사방법, 연구실적물의 범위와 인정기준, 심사위원 선정방법 등을 상세히 규정한 인사관리지침을 각 대학에 시달함으로써 재임용 심사에 관하여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여 왔고, 대학들도 자체 규정에 의하여 재임용 심사에 관한 기준을 마련하고 있어, 이에 따라 임용기간이 만료된 교원들은 위 인사관리지침과 각 대학의 규정에 따른 심사기준에 의하여 재임용되어 왔으며, 그 밖에 기간제로 임용된 교원의 재임용에 관한 실태 및 사회적 인식 등 기록에 나타난 여러 사정들을 종합하면, 기간제로 임용되어 임용기간이 만료된 국∙공립대학의 조교수는 교원으로서의 능력과 자질에 관하여 합리적인 기준에 의한 공정한 심사를 받아 위 기준에 부합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임용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재임용 여부에 관하여 합리적인 기준에 의한 공정한 심사를 요구할 법규상 또는 조리상 신청권을 가진다고 할 것이니, 임용권자가 임용기간이 만료된 조교수에 대하여 재임용을 거부하는 취지로 한 임용기간만료의 통지는 위와 같은 대학교원의 법률관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서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이와 달리, 기간을 정하여 임용된 대학교원이 그 임용기간의 만료에 따른 재임용의 기대권을 가진다고 할 수 없고, 임용권자가 인사위원회의 심의결정에 따라 교원을 재임용하지 않기로 하는 결정을 하고 이를 통지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한 대법원 1997. 6. 27. 선고 96누4305 판결은 이와 저촉되는 범위 내에서 변경하기로 한다.


대법원은 “2심 판결에서 기간제로 임용된 교원에게 재임용 기대권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은 잘못”이라며 “기간제 교원은 기간 만료시에 임용권자에 대하여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의한 재임용 심사를 받을 법규상 또는 조리상의 권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침해받은 교원은 재임용 심사의 탈락 통지라는 행정처분에 대하여 행정소송으로서 그 위법성을 다툴 수 있다”고 하였다.

“교수의 재임용 여부는 임용권자의 자유재량 행위로 교수는 재임용을 요구할 권리는 없다”는 기존의 판례를 뒤집고 교수의 재임용 기대권과 적법한 심사를 받을 권리를 인정한 새 판례는 다음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하다.

첫째, 헌법정신인 교원지위법률주의에 합치된다. 이는 헌법31조 제4항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에 합치되는 판결이다.

둘째, 재임용제 도입 취지에 합치된다. 기간제 임용제는 정년제의 폐단을 보완하고 교수 연구 활동의 진작, 대학 교육의 질적 향상을 통한 대학사회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마련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사법부는 기간제 임용제를 ‘합목적적’으로 해석한 것이 아니라 도입 취지를 무시하고 ‘탈목적적’으로 해석하여 왔다.

셋째, 재임용기대권을 인정하였다. 대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임용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재임용 여부에 관하여 합리적인 기준에 의한 공정한 심사를 요구할 법규상 또는 조리상 신청권을 가진다”고 하였다. 재임용기대권을 인정한 위에서 공정한 심사제를 요구한 것이다.

넷째, 권리구제절차를 명시하였다. 대법원은 “임용기간이 만료된 교수의 재임용 신청을 거부하는 행정처분 행위는 거부처분으로서의 성격을 가지므로 행정소송의 대상이 된다.”라고 하였다. 재임용탈락자도 행정소송이나 교원징계위원회 재심청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새 판례는 교수 신분 보장과 학문 자유 보호를 고려하여, 재임용기대권을 인정하고 자의성이 개입될 여지가 많았던 교수 재임용 심사에 엄정한 객관성을 요구하는 한편, 사법적 통제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던 학교와 재단 측의 자의적의 임용권 행사에 제동을 걸었으며, 재임용에서 탈락된 교원도 행정소송이나 교원징계재심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며 권리구제절차를 명시한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결정과 대법원의 판례 변경에 따라, 2005년 1월 사립학교법 제53조의2 제3항도 다음과 같이 개정되었다.

③ 대학교육기관의 교원은 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근무기간·급여·근무조건, 업적 및 성과약정 등 계약조건을 정하여 임용할 수 있다. 이 경우 근무기간에 관하여는 국·공립대학의 교원에게 적용되는 관련규정을 준용한다.<개정 1999.8.31> <2002년 1월 1일부터 시행> 

④ 제3항의 규정에 의하여 임용된 교원의 임면권자는 당해 교원의 임용기간이 만료되는 때에는 임용기간 만료일 4월전까지 임용기간이 만료된다는 사실과 재임용 심의를 신청할 수 있음을 당해 교원에게 통지(문서에 의한 통지를 말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하여야 한다. <개정 2005.1.27> 

⑤ 제4항의 규정에 의하여 통지를 받은 교원이 재임용을 받고자 하는 경우에는 통지를 받은 날부터 15일 이내에 재임용 심의를 임면권자에게 신청하여야 한다. <신설 2005.1.27>

⑥ 제5항의 규정에 의한 재임용 심의를 신청받은 임면권자는 제53조의3의 규정에 의한 교원인사위원회의 재임용 심의를 거쳐 당해 교원에 대한 재임용 여부를 결정하고 그 사실을 임용기간 만료일 2월전까지 당해 교원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이 경우 당해 교원을 재임용하지 아니하기로 결정한 때에는 재임용하지 아니하겠다는 의사와 재임용 거부사유를 명시하여 통지하여야 한다. <신설 2005.1.27>

⑦ 교원인사위원회가 제6항의 규정에 의하여 당해 교원에 대한 재임용 여부를 심의함에 있어서는 다음 각호의 사항에 관한 평가 등 객관적인 사유로서 학칙이 정하는 사유에 근거하여야 한다. 이 경우 심의과정에서 15일 이상의 기간을 정하여 당해 교원에게 지정된 기일에 교원인사위원회에 출석하여 의견을 진술하거나 서면에 의한 의견 제출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신설 2005.1.27>
1. 학생교육에 관한 사항
2. 학문연구에 관한 사항
3. 학생지도에 관한 사항 

⑧ 재임용이 거부된 교원이 재임용 거부처분에 대하여 불복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그 처분이 있음을 안 날부터 30일 이내에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 제7조의 규정에 의한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 <신설 2005.1.27, 2008.3.14> 

내가 올린 재심청구에 대해, 교육부교원징계재심위원회가 재임용탈락은 재심청구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청구인의 청구를 각하한다”는 결정을 내린지 8년만의 일이었다. 이후로 정년트랙 교수는 물론 비정년트랙 교수들에게도 재임용 심사를 받을 권리가 부여되었다.

8. 김민수 교수와 김명호 교수

  1998년 여름 해직되어 규장각에 있는 나를 서울대 김민수 교수가 다급한 모습으로 찾아왔다(나는 1999년 3월 1일 자로 덕성여대에 복직되었다). 그는 8월 31일 자로 재임용탈락되었다며 해직 선배인 나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하였다. 나는 김민수 교수에게 연구를 더욱 열심히 할 것, 연구실을 끝까지 지킬 것, 강의를 계속할 것 등 세 가지를 충고해 주었다. 이는 당시 내가 복직운동을 하면서 실천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재임용탈락된 교수가 교육현장을 떠나지 않고 학생들과 굳건히 결합하고 있을 때 순교자로서의 상징성은 극대화 된다. 반면 현장성을 잃으면 뿌리 뽑힌 나무같이 무기력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가 복직투쟁을 통해 얻은 결론이었다. 김민수 교수는 내가 충고한 세 가지를 모두 지켰다. 그리고 대법원 판결로 7년 만에 복직되었다. 그의 복직은 현장투쟁과 사법투쟁이 결합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005년 전 성균관대 수학과 김명호 교수가 뉴질랜드와 미국에 살다 귀국하였다. 김명호 교수는 1995년 성대 입시 수학문제의 오류를 지적했으나 오히려 해교행위 등을 이유로 징계를 당했고 이어 1996년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다. 입시문제가 생기기 전만 해도 김명호 교수는 전도유망한 수학자였다.

  그러나 다른 교수의 출제 오류를 지적하면서 그의 운명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재임용탈락을 대학 측의 보복이라며 법정투쟁을 시작한 그는 소송에서 잇달아 패하자 외국에서 살다가, 2004년 12월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에 통과되면서 재임용 재심 기회가 열려 귀국을 결심한 것이었다.

김명호 교수는 2005년 2월 25일 교육소청심사위원회에 재임용 거부처분취소 청구, 2005년 3월 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교수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2005년 9월 1심에서 패소하고, 이어 2006년 1월 12일 2심에서도 패소하는 불운을 겪었다.

  2007년 1월, 김명호 교수가 소송에서 패소한 뒤 담당 판사에게 석궁을 쏘아 상해를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 사법부로부터 ‘교육자적 자질이 부족’한 교수로 낙인찍히며 1·2심에서 잇따라 패소하자 이런 도발적인 행위를 감행한 것이었다.

역사학계가 나에 대해 한 것처럼 대한수학회가 김명호 교수를 껴안았거나, 김명호 교수가 김민수 교수가 한 것처럼 교육현장을 지키며 부당한 처분에 맞서 끈질기게 싸웠더라면 재판부도 김명호 교수의 학문적 양심을 포기하지 않고 진실과 정의를 쫓는 학자적 자세를 높이 평가하였을 것이다. 더욱이 재판부가 김명호 교수의 교육자적 자질을 문제 삼아 대학 측의 “재임용거부 결정이 부당하다 할 수 없다”고 판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법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다만 바뀐 세상을 추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