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청구인의 청구를 각하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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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인의 청구를 각하한다 (1)

한상권(중세사 2분과)

1. 재임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임용권자의 판단에 따른 재량 행위다

  1997년 3월 25일(화) 나는 삼청동에 있는 교육부 교원징계재심위원회를 찾아가 학교법인덕성학원 이사장을 상대로 재임용탈락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재심청구서를 접수하였다. 처분이 있은 것을 알은 날 즉 재임용탈락통지서를 받은 날이 2월 28일이므로, “교원이 징계처분 기타 그 의사에 반하는 불리한 처분에 대하여 불복이 있을 때에는 그 처분이 있은 것을 안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교원징계재심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교원지위향상을위한특별법 제9조①)”는 규정에 따라, 이날 재심청구서를 접수한 것이다.


(사진 1)  재심청구서 [백서 1, 157쪽]  

교원징계재심위원회 안마당에 들어서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어찌하여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 하는 비애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직원은 서류를 접수하면서 교원징계재심위원회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는 징계처분 된 사건을 재심하는 기관인 교원징계재심위원회는「교원지위향상을위한특별법」을 근거로 교육부에 설치되었으며, 법을 토대로 공정한 심사를 하여 억울하게 부당한 처분을 받은 교원의 신분보장과 교권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였다. 교원징계재심위원회가 특별법에 의해 교권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기관이라는 설명을 듣고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사진 2) 교원징계재심위원회 홈페이지   

그러나 교원징계재심안내서의 다음 구절을 보고 이내 실망하였다.

징계처분 기타 그 의사에 반하는 불리한 처분을 받은 경우 재심청구를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징계처분이란 파면, 해임, 정직, 감봉, 견책 등을 말하며, 기타 불리한 처분이란 면직, 직위해제, 휴직 등을 말한다.

  교원징계재심위원회에서 심의하는 징계처분의 범주에 재임용탈락은 포함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재심절차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고 적혀있었다.

징계 등 불리한 처분을 받은 교원이 재심청구를 접수하면 징계재심위원회는 처분권 자에게 변명자료 제출을 요구한다. 처분권자의 변명서가 접수되면 그 부본을 청구인에게 송부하고, 당사자를 출석케 하여 진술기회를 부여하고 위원들의 심문을 병행하는 심사절차를 거친 다음 접수일로부터 60일 이내(30일 연장 가능)에 결정하되 결정의 유형에는 취소, 변경, 무효 확인, 기각, 각하 등이 있다. 그리고 결정서를 작성하여 송부하는데 결정서는 결정주문과 결정이유를 명시하여 작성하고 청구인과 피청구인에게 송부한다.

  이 절차에 따라 교육부교원징계재심위원회는 4월 11일 피청구인인 학교법인 덕성학원이 제출한 변명자료를 청구인인 나에게 송부해주었다.


(사진 3)  변명자료, 재심사건변명자료목록 [백서 1, 98-99쪽]

제출된 재심사건변명자료목록에는 학교 당국이 그동안 끈질기게 버티고 제출하지 않았던 인사위원회의록을 비롯하여 이사회회의록이 증거자료로 첨부되어 있었다. 학교법인 덕성학원은  변명자료에서 재임용을 하지 않은 적법성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가. 사립학교법에 제 53조의 2 제3항에 따라 본 법인에서는 정관 제39조에 조교수는 2년의 기간을 정하여 임용하고 있고 사립학교법, 정관 등에 재임용 의무를 부여하는 근거 규정이 없으므로 청구인은 ‘97.2.28자로 교원으로서의 신분 관계는 종료되고 당연 퇴직 되었다고 봅니다.

나. 그런데 청구인이 제시한 이유 중 재심 제도의 개정에 관한 사항은 논외로 하고 징계처분이나 연구 실적 평가 등은 다시 임용할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내부 의사 결정 자료일 뿐이지 임용권자의 임용권을 기속하는 것은 결코 아니고 다시 임용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임용권자의 판단에 따른 재량 행위이므로 청구인의 청구는 이유 없다고 봅니다.

다. 그리고 청구인이 ‘97.2.28에 재임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보한 것은 위법이라고 하나, 기간을 정하여 임용된 교원은 그 기간 만료와 함께 당연히 교원 신분 관계가 종료되므로 본 법인이 재임용 하지 않기로 한 결정 통지는 임기 만료로 당연 퇴직됨을 확인하고 알려주는데 지나지 아니하고 이 통지로 새로운 법률 효과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청구인의 청구는 이유 없다고 봅니다. 


  덕성학원의 변명서는 “교수의 재임용 여부는 임용권자의 자유재량 행위로 교수는 재임용을 요구할 권리는 없다”며 ‘재임용기대권’을 부정한 대법원 판례에 의거한 것이었다.

2. 재임용탈락은 징계처분이 아니므로 징계재심위원회의 재심청구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

  5월 8일 교육부교원징계재심위원회의는 내가 제출한 재심청구사건에 대해 “청구인의 청구를 각하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각하란 국가기관에 대한 행정상 또는 사법상의 신청을 물리치는 처분을 말한다. 특히 민사 소송에서는 법원이 당사자나 기타 관계인의 소송에 관한 신청을, 형식적인 면에서 부적합한 것으로 하여 물리치는 재판을 말하며, 신청의 내용에 대해 이유 없다고 하여 물리치는 경우의 기각과는 구별된다. 교육부교원징계재심위원회는 결정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사진 4) 교육부 교원징계재심위원회 재심사건 결정통지 [백서 2, 225쪽]


1. 청구인은 1983.8.22. 서울특별시 소재 학교법인 덕성학원이 유지ㆍ경영하는 덕성여자대학교 전임강사로 임용된 후, 1995.3.1.부터 1997.2.28.까지 2년간을 정하여 조교수로 근무하여 오던 중 학기말인 1997.2.28. 임용기간이 만료되어 재임용에서 탈락된 바 있다.

2. 이에 대하여 청구인은 재임용 요건과 관련된 연구와 학생지도, 봉사활동에 최선을 다하였으며, 사립학교법 제53조의 2 제3항을 재임용기간이 도래한 교원에 대하여 인사권자가 이유 없이 임기만료를 결정지어도 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학문의 자유에 따라 보장된 대학교원 신분보장원칙에 위배되고, 학교규정이 요구하는 일정기준에 해당되면 재임용될 것으로 기대하는 교원의 기대권을 침해한 것이며, 임기만료 1개월 전에 재임용여부를 결정하여야 함에도 1997.2.26.에 재임용탈락 처분을 한 절차상의 하자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동 처분을 취소하여 달라는 것이다.

3. 본안 심사에 앞서 청구인의 “재임용탈락처분 취소” 청구가 우리 위원회의 심사대상이 되는지 여부에 대하여 직권으로 살펴보면,

사립학교법 제53조의 2 제3항에 의하면 대학교육기관의 교원은 당해 학교법인의 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기간을 정하여 임면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학교법인 덕성학원 정관(이하 정관이라 한다) 제39조 제2항에 조교수는 2년의 기간을 정하여 임명한다고 되어 있어, 피청구인으로부터 1995.3.1.부터 1997.2.28.까지 2년간의 기간을 정하여 임용된 청구인은 임용기간 만료로 당연퇴직된다 할 것이다.

따라서 사립학교법 및 정관에 의하여 기간을 정하여 임용된 청구인은 임용기간 만료와 동시에 당연퇴직되는 것이지 피청구인의 어떤 처분에 의하여 퇴직되는 것은 아니며, 또한 청구인에 대한 임용기간 만료 및 재임용탈락에 대한 통지는 임용기간이 만료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데 지나지 아니할 뿐 새로운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처분이라 할 수 없어 “교원이 징계처분 기타 그 의사에 반하는 불리한 처분”이 있는 것을 전제로 하는 우리 위원회의 재심청구요건에 해당되지 아니한다 할 것이므로 청구인이 주장하는 재임용탈락처분 절차상에 하자가 있는지 여부와 피청구인이 사립학교법 제 53조의 2 제3항을 잘못 해석하였는지 여부, 교원의 기대권을 침해하였는지 여부 등에 대하여 살펴봄이 없이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재임용탈락은 징계처분이 아니며, 임용기간 만료로 당연 퇴직되므로 교원징계재심위원회의 재심청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요지의 결정문이었다. 징계재심위원회의 ‘각하’ 결정은 예상한 대로였다.

  재심 청구가 각하되었으므로 징계재심위원회 결정의 부당성에 항의하여 교육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하는 법적 절차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는 사회적 형태로 저항해야지 더 이상 법정으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법은 가진 자 편이기 때문이었다. 학교는 나에게 억울하면 법에 호소하라고 충고까지 하였다.

민주주의는 법치주의입니다. 한상권 전 조교수가 스스로 자처하듯 진정한 민주주의 신봉자라면 학생에 대한 선동이나 사실 왜곡 또는 성명서 발표, 여러 단체에 보내는 선동적 지지 호소 등 비이성적태도를 버리고 법적 절차를 밟아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대학은 한상권 전 조교수가 하루 빨리 이성을 회복하여 민주주의 신봉자답게 음성적 선동행위를 지양하고 법에 호소하는 성숙한 태도로 임할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합니다.

3. ‘재임용’이라고 말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모든 교직원의 신분을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1975년 박정희 정권은 국민총화를 부르짖으며 유신체제 비판을 전면 금지하는 긴급조치9호를 발령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를 틈타 민방위기본법, 방위세법안, 사회안전법안 등이 신설되었고, 교육법중개정법률안이 전파관리법개정안과 함께 의원입법으로 발의되었다. 정부는 교육법중개정법률안 발의취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현행교육공무원법상으로 보면 대학교수의 인사제도는 소위 연공서열제로서 소정의 근무연한만 근속하면 그 연륜에 따라 자연히 승진하게 되어 있습니다. 즉 능력이나 업적 또는 실력의 실증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비록 낡은 「노트」에만 의존하는 무능한 자라 할지라도 정년인 65세까지 교수라는 직책을 지탱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현재의 이와 같은 불합리한 인사제도를 쇄신하여 일정기한을 한도로 하는 이른바 기한부임용제를 채택함으로써 교수의 책임감과 연구의욕을 고취하고 아울러 우수한 교수를 확보하려는데 주안을 두고 법 제9조에 제3항을 신설하려는 것입니다. (제93회 국회 문교공보위원회회의록 제1호.1975.7.4)

현행의 불합리한 대학인사제도가 시정되지 않고서는 면학분위기 조성과 대학 노화방지에 지장이 많아, 교수들에게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 ‘기한부임용제’를 도입하겠다는 주장이다. 대학을 생동시키고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한부임용조문을 신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당시 문교부의 입장이었다. 전시법안(戰時法案)으로 발의된 ‘기한부임용제’가 비판세력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악법에 불과하다는 반론이 거세게 일자, 정부는 다음과 같이 해명하였다.

재임명 자체는 신규채용과는 틀립니다. 기득권이 있건 없건 일단 재임명한다는 것은 그만큼 기득권을 인정하기 때문에 재임명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재임명이라고 말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모든 교직원의 신분을 보장해 주는 것이고 도저히 교수로서의 연구 노력이 없는 극소수에 대해서 해당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지 꼭 해당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93회 국회 문교공보위원회회의록 제1호.1975.7.4).

  정부의 주장을 통해 볼 때, 유신체제하에 제정된 ‘기한부임용제’에는 두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하나는 ‘기한부임용제’를 재임용을 전제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교원의 기득권 즉 ‘재임용기대권’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재임용 여부를 엄격히 심사하여 극소수에 한해 탈락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는 ‘기한부임용제’를 심사제로 엄격히 운영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부의 공언과는 달리, ‘기한부임용제’는 재임명 여부를 심사할 공식기구 조차 없이 제정된 졸속 입법이었다.

발의자들은 일단 법을 통과시킨 다음에 법을 집행할 위원회를 대통령령시행령으로 만들자고 주장하였다. 이는 교수재임용제가 태생 당시부터 불순한 목적 하에 제정되었음을 반증한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체제에 비판적인 지식인을 강단에서 축출하기 위해 교수재임용제를 급조하였던 것이다.

4. 공식 명칭은 ‘교수재임용제’가 아니라 ‘기간제임용제’입니다

  국가권력의 폭력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유신체제가 붕괴되면서 그를 지탱해주었던 교수재임용제도 또한 유명무실해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생명력이 다한 교수재임용제도를 부활시킨 것은 1990년의 여소야대 국회에서였다.

  1990년 개정된 사립학교법은 교수ㆍ학생ㆍ직원 등 대학주체의 자치권과 자율권을 철저히 억압하는 반면, 재단에게 절대 권력을 부여함으로써 교육에 봉사적 역할을 해야 하는 재단이 오히려 교육주체와 교육활동을 자의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국회는 수많은 교직자들과 민주시민들의 수년간에 걸친 교육악법 철폐 요구를 무시한 채, 재단이사장들의 막후교섭에 놀아나 국민의 눈을 속이면서 사립학교법을 통과시켰던 것이다.

  1990년 개정된 사립학교법은 대학구성원이 요구하는 자치권의 제도화를 부정하는 반민주적 악법이며, 교육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책임져야 할 재단에게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한 반교육적 악법이었다. 1990년 개정된 사립학교법이 반민주적ㆍ반교육적 악법이었음을 전형적으로 드러낸 것이 교수재임용제의 부활이었다.

흔히 ‘교수재임용제’라 불리는 이 제도의 공식명칭은 ‘기간제임용제’이다. 교육부가 교육공무원법 및 사립학교법 등에 “기간을 정하여 임용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어 ‘기간제임용제’로 칭함이 마땅하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교수재임용제’라 부르는 것과 ‘기간제임용제’라 칭하는 데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우선 ‘교수재임용제’라 칭하는 데에는 재임용기대권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모든 교수들은 대학의 규정에서 요구하는 일정한 기준에 해당되면 재임용(재계약)될 것으로 기대하는 재임용기대권을 갖고 있다. 어느 누구도 임기만료가 되면 당연퇴직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재임용기대권은 대학인사위원회와 같은 대학의 공식기구를 통해 대학 교원의 자격(자질과 연구능력)을 검증하는 심사를 전제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이 때 심사의 기준은 일반적으로 연구실적, 교육실적(강의평가), 봉사실적 등 세 가지이다. 이를 기준으로 하는 재임용여부를 심사하는 심사제는 교원의 자질향상과 면학분위기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

  따라서 심사제는 연구무능력자나 연구태만자 등을 도태함으로써 대학의 노화를 방지하고 신진대사를 촉진한다는 교수재임용제 도입취지와도 부합된다. 실제로 대부분의 교수들이 알고 있는 교수재임용제는 심사제이다. 그리고 많은 대학에서 교수재임용제를 심사제로 운영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면 교수재임용제가 왜 문제인가? 엄격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른 심사를 통해 연구능력이 없는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켜 대학의 노화를 방지하고 신진대사를 촉진시킨다는 데 왜 말썽이 끊이질 않는가? 그 비밀은 바로 교육부가 교수재임용제의 공식명칭을 ‘기간제임용제’라고 한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교육부는 일반적인 호칭인 ‘교수재임용제’ 대신 왜 굳이 ‘기간제임용제’가 공식명칭이라 주장하는가? “기간을 정하여 임용한다”라는 의미인 ‘기간제 임용제’는 심사제가 아니라 계약제이다. 계약제일 경우 약정된 임용기간이 만료됨으로써 대학교원으로서의 신분관계는 당연히 종료되는 것이다.

  심사제는 기간이 만료된 교원에 대해 대학교수로서의 연구능력 및 자질 등을 검증해 재임용 여부를 결정해야 할 의무가 있는 반면, 계약제는 기간이 만료되면 당연히 퇴직되며 대학교원으로서의 신분은 당연히 종료되므로 심사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따라서 심사제와는 달리, 계약제는 재임용기대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행정부는 물론 사법부도 교수재임용제를 계약제로 해석하고 있었다.

계약기간을 정하여 임용된 교원은 임용의 근거가 된 법령이나 임용계약 등에서 임용권자에서 임용기간이 만료된 교원을 다시 임용할 의무를 지우거나 그 요건 등에 관한 근거규정을 두지 않는 한 그 기간이 만료됨으로써 재임용 거부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할지라도 교원으로서의 신분관계는 당연히 종료된다고 할 것이다(대법원판례: 판결92누9722).

헌법재판소의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사립대학교육기관의 교원의 기간제임용제에 관한 구체적 내용을 학교법인의 정관에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는 이 사건 법률조항에 대한 입법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기간임용제와 정년보장제 중 어느 쪽을 채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입법정책에 관한 사항인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 법률 조항은 우리 재판소가 관여할 정도로 입법재량이 현저하게 불합리하거나 이를 자의적으로 행사하여 그 한계를 벗어난 잘못이 있다고 보여 지지 아니한다(헌법재판소 결정문. 1998.7.16).

교육부는 교수재임용제를 도입하면서 기간별로 대학교수의 연구업적이나 교수능력을 엄격히 심사함으로써 대학사회의 연구나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겠다고 국민들에게 홍보하였다. 그러나 현행법상 기간을 정하여 임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을 뿐, 재임용의 의무나 절차, 요건 등을 법령으로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계약제로 악용될 소지를 열어 놓았다.

이처럼 교수재임용제가 법률상으로 계약제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교수들은 별 문제없이 재임용된다. 형식적 법 논리상으로만 보면 임용기간의 만료로 당연히 계약관계가 종료되겠지만, 실질적으로 대부분 재계약(재임용)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순수한 계약제라고만 보기도 어렵다.

  즉 재임용제도는 운영되는 현실과 법리적 해석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는 것이다. 기간제임용제를 교육부나 사법부가 임기제로 해석할지라도 각 대학의 운영 실태는 심사제인 셈이다. 그러면 법률적으로는 계약제라 할지라도 심사제로 관행화되고 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함정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곳에 맹점이 있기 때문이다. 기간제임용제가 형편없는 악법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사회문제화 되지 않은 것은 다음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교수들이 재임용탈락이 두려워 사전에 임용권자의 눈치를 살피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 하에서는 대학이나 재단에 대한 비판은 상상도 못하며 대학의 자치력과 자율성은 현저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둘째 임용권자가 재임용탈락을 무기로 사전 정지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의원면직의 형태로 강단을 떠나거나 타 대학, 다른 직장으로의 전직‧이직의 배경에는 재임용탈락의 공포감이 자리 잡고 있다.

셋째 재임용탈락 교수가 극소수이므로 예외적인 존재로 취급되어 대학사회에서는 물론 여론으로부터도 주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교수들이 재임용되는 현실에서 재임용탈락 된 교수는 예외적인 존재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실제 재임용탈락률은 1%미만에 불과하였다. 재임용탈락자가 극소수이므로 재임용탈락이 사회문제화 되기 어려웠다. 해직교수는 쉽게 대학으로부터 격리되었다. 이들은 법적으로 무권리 상태에 있기 때문에 마땅한 저항 수단도 찾을 수 없었다. 재임용탈락자는 치외법권 지대에 살고 있는 ‘비국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