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올해의 인물, 덕성 사람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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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인물, 덕성 사람들 (1)

한상권(중세사2분과)

1. 빗줄기도 막지 못한 밤샘 결의

박원국 이사장 복귀 후 교수, 학생, 직원 등 구성원들은 대학과 재단측의 횡포에 끊임없이 시달려 왔다. 박원국 이사장과 권순경 총장직무대리는 직원을 동원한 학생 폭행, 책걸상 쇠사슬 설치, 청원경비 고용, 교협 회장 가택 가압류, 학생 대표자 및 간부 6인 고소 및 대표자 4인 추가 고소, 교협 교수 4인 고소, 학생 15인에 대한 ‘행정동 접근 금지 가처분 신청’, 학생들에 대한 제적 협박 및 학생 폭행, 거듭되는 일방적 폐강으로 인한 학습권 침해, 직원 부당 인사, 부당한 신임교수 채용 등 교육자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들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박원국 이사장이 있는 한 평화란 있을 수 없었다. 덕성 구성원들은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그의 연임을 막아야만 했다. 10월 8일 오후 1시, 교협·총학·노조·총동·민동이 <24시간 1인 시위 및 단식투쟁 선포 결의문>을 발표하고 “교육부 앞 24시간 1인 시위”“대표자 단식 투쟁”에 돌입하였다.

“교육부 앞 24시간 1인 시위”를 오마이뉴스에서 취재했다(이하, <빗줄기도 막지 못한 밤샘 결의> 오마이뉴스, 2001.10.9)


<1신-8일 오후 1시> “교육부 앞에서 쓰러져 죽겠다”


<사진 1> “밤샘도 두렵지 않아요” 덕성여대 박지은 양이 8일 오후 1시
교육부 앞에서 24시간 1인 시위를 시작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시연

  학내 분규가 계속되고 있는 덕성여대 학생들이 10월8일 교육인적자원부가 있는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관선이사 파견을 요구하는 24시간 1인 시위에 돌입했다. 이날 오후 1시부터 시작된 24시간 시위는 덕성여대 총학생회, 단과대 학생회, 동아리연합회 등 학내 구성원들이 하루씩 돌아가며 오는 20일까지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24시간 시위의 첫 주자로 나선 박지은(22, 일문과 학생회장) 양은 “현 이사진을 모두 관선이사로 교체해 달라는 우리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교육부 앞에서 쓰러져 죽겠다는 각오로 임하겠다”고 밝혔다. 학내와 조계사 등에서 천막 농성을 벌여온 덕성여대 교수협의회, 총학생회, 노조, 총동창회, 민주동문회 등 주요 학내 구성원들은 지난달 27일 10월 한 달 동안 현 이사장과 이사진의 전면 퇴진을 위한 총력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은 교육부 앞 24시간 시위를 시작으로 100인 단식단을 구성, 15일부터 26일까지 단식 투쟁에도 나설 계획이다.


<사진 2> “현 이사진 전면 교체하라” ⓒ 오마이뉴스 김시연

이날 1인 시위에 동참한 함윤정(23, 국문과 학생회장) 양은 “재단측의 정상화 방안 시행기한이 15일로 다가오고 있고 오는 27일 현 이사장의 재신임을 묻는 이사회가 열리는 등 10월이 현 사태 해결의 호기라고 판단하고 강도 높은 투쟁에 나서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덕성여대 분규는 지난 97년 재단비리 문제로 해임됐다 올해 복귀한 박원국 이사장이 재단측에 반대하는 일부 교수들을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는 등 전횡을 되풀이하면서 촉발됐다. 이 때문에 지난 5월 교육부의 특별감사가 진행됐으며 지난달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관선이사 파견을 통한 정상화 방안이 제기된 바 있다.

<2신-8일 밤 자정> 교수님들의 격려 방문덕성여대 24시간 1인 시위 첫날밤. 정부종합청사 앞은 경찰관들을 제외하곤 인적이 뚝 끊겼지만 1인 시위대는 외롭지 않았다.


<사진 3> 인적은 끊겼지만… 자정을 앞두고 1인 시위에 나선
덕성여대 김희선(22, 국문과)양 ⓒ 오마이뉴스 김시연

  어느새 6명으로 불어난 학생들은 지친 친구를 대신해 돌아가며 시위판을 지켰고 나머지는 정문 한 켠에 터를 잡고 둘러앉아 가을밤 추위를 달래고 있었다. 자정이 가까워 올 무렵 덕성여대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이 격려 방문했다. 특히 교협 부회장 한상권 교수는 얇은 옷으로 밤을 지샐 제자들이 안쓰러웠던 모양인지 두툼한 겨울 점퍼까지 준비했다. 한상권 교수는 “24시간 1인 시위는 우리가 처음인 것으로 안다”면서 “학생들이 고생하는 것은 안쓰럽지만 그만큼 우리의 강한 결의를 알려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주엔 교협 교수들 역시 제자들의 뒤를 이어 24시간 1인 시위에 나설 예정이다.

<3신-10월9일 오전 10시> 빗줄기도 어쩌지 못한 밤샘 시위


<사진 4> 9일 아침. 24시간 시위 첫날 마지막 주자로 나선
박지은 양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묵묵히 맞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시연


  초가을 밤의 찬이슬도, 갑자기 쏟아진 빗줄기도 덕성여대생들의 결의를 막진 못했다. 한글날 기념식 준비로 부산한 세종문화회관에서 멀지않은 정부종합청사 정문 앞. 갑자기 굵어진 빗줄기 속에 전날 오후 1시부터 밤을 지샌 덕성여대생들은 완전 무방비 상태였지만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전 10시 교대 시간을 앞두고 함께 밤을 지샜던 친구들도 하나둘 집으로, 학교로 돌아가고 이제 남은 건 단 두 사람. 밤새 한숨도 안자고 교육부 앞을 지켰다는 박지은(22, 일문과 학생회장) 양은 ‘힘들고 피곤하다’는 말로 24시간 시위를 마치는 소감을 간단히 했다. 9일에는 이들을 대신해 덕성여대 사회대 학생들이 또 다른 24시간을 맞게 된다.

총학을 선두로 시작한 24시간 1인 시위는 10월 20일까지 계속되었다.

2. 내 딸 머리카락은 내 손으로…

  덕성학원 이사회는 교육부와의 약속시한인 10월 15일까지 총장과 결원이사 선임을 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국정감사 약속대로 학교를 파국으로 몰고 가고 있는 박원국 이사장 이하 이사 전원을 해임하고 관선이사를 파견해야 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무엇이 켕기는지 조치를 취하지 않고 사태를 관망하고만 있었다.

그러는 사이 10월 22일 오후 6시 30분 롯데호텔 38층에서 덕성학원 이사회가 열렸다. 덕성학원은 이날 이사회에서 이OO(전 덕성여대 동창회장)와 정OO(청강학원 이사장, 전 민주당 국회의원)을 이사로 선출했다. 25일 임기가 만료되는 박원국 이사장과 박인제 이사의 후임이었다. 후임 이사로 선출된 이OO씨는 18년간 덕성여대 총동창회장을 맡아온 인물로 덕성의 분규가 있을 때마다 박원국의 최측근으로서 꼭두각시의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그는 덕성여대 이사로 있으면서 97년 한상권 교수 재임용탈락에 동조하였으며, 이로 인해 야기된 덕성분규 당시 박원국 이사장 체제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아버지에게 대드는 패륜아’라고 몰아붙이다가 이사 자리에서 쫒겨났다. 또한 18년간 총동창회장으로 있으면서 총동창회를 비민주적으로 운영하다가 2001년 7월 21일 총동창회 개혁에 따라 총동창회장직마저 쫒겨난 인물이었다. 전 민주당 국회의원인 정OO씨는 사립학교법 개악에 앞장선 인물인데다 청강학원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비리를 저지른 인물이다. 족벌사학 운영으로 물의를 빚은 그는 MBC PD수첩에서 학교를 사유물로 생각하고 자신의 친인척을 학교운영에 모두 동원하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혀 많은 사람들의 지탄을 받았다.

  박원국 이사장이 이들을 후임이사로 선임한 까닭은 재단의 족벌체제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분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배체제를 더욱 확고히 유지하려는 정략적 발상이었다. 이것이 교육부가 10월 15일까지 합리적인 학교발전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데 대한 박원국 이사장의 답변이었다. 교육부는 박원국 이사장의 임기만료 이후 부분적인 관선이사를 파견하려 하였으나 박원국씨가 임기만료 직전 자신의 최측근을 이사로 선임해 취임승인을 요청함으로써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되었다.

게다가 덕성학원 이사회는 교원 인사규정도 대대적으로 개악하였다. 재단에 맞서는 모든 교수들에 대해 승급 승진은 물론 재임용 심사 대상에서 자동으로 배제하는 규정을 통과시킨 것이다. 배제 대상에는 ▲형사 기소된 자 ▲학교 당국이 경고한 자 ▲징계 중이거나 징계 요구받은 자 ▲집단행동을 선동한 자 ▲정치·노동 활동에 참여한 자 등이 포함되었다. 요컨대 덕성의 민주화를 위해 희생적으로 헌신해 온 교수협의회 교수들을 멋대로 재임용 심사에서 배제하고 해직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이 규정이 그대로 적용될 경우 교협에 가입한 교수들은 계약기간 만료 시 자동해직될 수밖에 없었다.

10월 24일 오후 1시,  교협·총학·직원노조 등 250 여명이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에서 집회를 열고 ▲신임이사 승인 반대 ▲재단 이사진 전원 해임 ▲학내의 민주세력이 수용할 수 있는 민주적·개혁적·공익적인 인사로의 관선이사선임 등을 교육부에 촉구했다. 집회를 마친 후 김나영 총학생회장이 교육부에 대한 강력한 항의 표시로 삭발을 결의하고 교협 회장단과 노조위원장도 동참함에 따라 갑작스레 ‘집단 삭발식’이 결행되었다.

“다시는 후배들이 삭발, 단식, 혈서로 인해 눈물 흘리는 일이 없게 만들겠다”는 총학생회장의 다짐을 시작으로 삭발을 결심한 여대생 18명의 결의가 차례차례 이어졌다. 이 가운데는 올해 대학에 갓 입학한 01학번 ‘새내기’도 4명이나 끼어 있어 지켜보는 선배들을 안타깝게 했다. “전 8일 만에 단식을 풀었어요. 목숨 걸고 단식하고 있는 선배들에 비하면 삭발쯤은 어려울 거 없어요.” (조은정 사회과학부 01학번)”어제 교육부 면담 뒤 장관도 법도 덕성을 살릴 순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5천 덕성인의 힘만이 대학다운 대학, 민주적인 대학을 만들 수 있습니다.” (김정선 경영학과 99학번)”내 권리 찾기 위해 옳은 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혼자가 아닌 모두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삭발을 결정했어요.” (김지혜 사회과학부 01학번)”이런다고 교육부가 우리의 말을 들어줄까 싶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 하나가 된다면 못할 것도 없다고 확신해요.” (김혜진 국문과 2학년)

입을 굳게 다문 여대생들의 몸에 하얀 이발 가운이 걸쳐지고 친구들의 서투른 가위질이 시작되자 주변은 온통 머리카락과 눈물로 뒤범벅이 됐다. 등산복 차림의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한 학생의 이발 가위를 대신 잡아 쥔 건 바로 이때였다.

“제 아이 머리(카락)는 제가 직접 깎고 싶어요.”

 정주희(23, 국문학과 98학번) 양의 머리카락을 자른 이는 바로 그녀의 어머니였다.

  “목숨 걸고 하겠다는 데 어떻게 말리겠어요. 처음엔 데모 못하게 하려고 강원도에 데려다 놓기도 했지만 아이 뜻을 알고는 포기하고 협조하게 됐죠.”

  이발기로 마무리하고 나오는 순간까지 애써 담담해 하던 어머니는 말문을 트는 순간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인문대학 학생회장인 정주희 양의 삭발은 지난 4월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하지만 정작 어머니를 안타깝게 하는 건 이날로 17일째를 맞은 딸의 무기한 단식이었다.

  “머리야 다시 기를 수 있지만 아이 건강이 문제죠. 하지만 이번엔 저도 마음 굳게 먹었어요. 또 다시 이런 마음 고통을 다른 학생과 그 어머니들이 겪게 만들 수 없잖아요.”


<사진 5> “내 딸 머리카락은 내 손으로…” 정주희 양 어머니(47)가 딸의 머리카락을 손수 깎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시연

삭발을 마친 학생들을 둘러싸고 서로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이 곳곳에서 벌여졌고 눈물이 멈춘 자리엔 결의 어린 표정들만 남았다. 이어 교협 회장단도 삭발에 동참했다.


<사진 6> 제자와 나란히 앉아 삭발하고 있는 한상권 사학과 교수(왼쪽)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학생들의 결의는 우리도 막지 못합니다. 오직 교육부만이 막을 수 있습니다.”

  집회 현장에 와서 뒤늦게 제자들의 삭발 소식을 들은 남동신 사학과 교수는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와 양만기, 김경남 교수 등 3명의 재임용 탈락교수들 역시 끝내 어린 제자들의 뒤를 따랐다. 결국 이날 집회는 학생 18명, 교수 5명, 노조간부 2명 등 모두 25명이 참여하는 ‘집단 삭발 시위’로 번졌다.

‘교육부 앞 24시간 1인 시위’, ‘100인 단식단 구성’ 등 총력투쟁을 벌여온 덕성의 민주세력이 집단 삭발까지 결행한 것은 22일 있었던 새 이사 선임이 교육부의 관선이사 파견을 막으려는 재단측의 술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김나영(25, 정치학과 4학년) 총학생회장은 “새 이사 선임으로 분규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교육부는 23일 면담에서 법적 근거만 내세워 무책임한 반응을 보였다”면서 “어젯밤 학생대표자회의에서 새로운 투쟁방향을 고민하게 됐고 오늘 낮 집단 삭발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집단 삭발식 및 집회를 마치고 교협회장, 직원노조위원장, 총학생회장 등은 덕성여대인들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머리카락을 교육부에 전달하러 가다가 종로경찰서에 의해 인도에서 저지당했다. 종로경찰서측은 “삭발을 하고 5명이 교육부로 간다는 것은 집회의 연장이라는 경찰의 판단에 따라 저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맞서 덕성여대 대표들은 “집회의 연장이라는 것은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이라며 “상자를 받고 안 받는 것은 교육부의 판단이고 법적 문제는 사법부가 판단할 일이다”라며 길을 터줄 것을 요청했으나 경찰측은 차도까지 막는 등 강경하게 대응했다. 이에 덕성여대 담당 박훈 변호사는 “집회는 불특정다수에게 의사를 표현하는 것인데, 교육부에 민원을 접수하러 가는 것을 막는 것은 불법적인 공권력 남용이라”며 “이후에 통행권침해로 종로경찰서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벌일 것이다”고 밝혔다.

  집단 삭발식 있은 다음날인 25일 11시, 덕성여대 총학생회, 교수협의회, 직원 노조, 총동문회, 민주동문회 등 학내구성원은 기자회견을 갖고 이사로 선임된 정OO 청강학원 이사장과 이OO 전 총동창회장의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


<사진 7> “교육부와 재단에 대한 경고 메시지”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는 김나영 총학생회장(맨 오른쪽) ⓒ 오마이뉴스 김시연

  이 자리에서 김나영 총학생회장은 “어제 삭발은 우리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지난 국감에서 10월 15일까지 학교 정상화가 안 되면 관선이사를 파견하기로 한 교육부 장관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수협의회 부회장인 한상권 교수는 “오늘 박원국 이사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건 투쟁의 결과지만 반쪽 승리에 불과하다”면서 “나머지 절반의 승리를 거두려면 박씨 일가가 재단을 떠나고 개혁적 인사를 영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3. 덕성에 중립이란 없다. 다만 기회주의자가 있을 뿐이다

10월 26일 교육부는 “학교법인 덕성학원이 이날 자로 이사정수 7명 중 4명이 결원돼 이사회 개최 정족수 미달로 이사회 기능이 마비된 것을 판단, 사립학교법에 따라 임시 이사 4명을 교육부 직권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사진8> 덕성여대 관선이사 파견(한겨레 2001.10.27)

교육부는 “사립학교법 제 25조는 ‘학교법인이 이사의 결원을 보충하지 않아 해당 법인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거나 손해가 발생할 경우 교육부가 직권에 의해 임시이사를 파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직권으로 임시이사를 파견하는데 법적인 하자가 없다”고 설명했다.

  교육부가 선임한 이사는 최현섭 교수(강원대), 이석태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박영숙(전 국회의원), 이해동(삼성 사회봉사단 부단장) 등 교육계, 법조계, 여성계, 시민단체 인사 중에서 각 1명씩으로 구성됐다. 덕성여대 관선이사 파견은 교육부가 “사학의 경영은 교육·연구 등 대학의 본래 기능이 침해되지 않도록 사회적 책무성과 공공성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인사권을 남용하여 분규를 야기한 비리·족벌사학에 대해 지휘·감독권을 발동하였다는 점에서 좋은 선례가 된다 하겠다.

  2001년 한 해 동안 덕성의 교수, 학생, 직원이 연대투쟁을 벌인 결과 ▲박원국 이사장 연임 저지 ▲구재단 측근 인사 이사 선임기도 저지 ▲이사 정수의 과반수 관선이사 파견 등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사진 9> 2001학자투쟁(덕성여대신문)

지난 해 박씨 일가에게 빼앗긴 이사회 의결권을 되찾아 왔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승리라 하겠다.

  그러나 교육부가 파견한 관선이사는 전면관선이사가 아니라 부분관선이사였다. 교육부는 박원국 이사장의 연임에 제동을 건 반면, 덕성 분규의 공동책임자인 박원택 상임이사와 김기주·인요한 이사는 잔류시켜 부분 관선이사 파견이라는 미봉책을 취하였다. 그러나 잔류 이사 역시 교수를 고소하는 등 학교 분규를 야기한 데 책임을 물어 해임해야 했다. 교육부가 이사진 전원을 해임시키지 않고 박원택 상임이사를 포함한 3명의 이사를 잔류시킨 결정은 사학재단의 반발을 의식한 데서 나온 불완전한 해결방법이었다.

가까스로 해임을 모면한 박원택 상임이사가 형의 뒤를 이어 학교를 장악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사회 의결권을 빼앗기자 자신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인물을 총장으로 내세워 대학을 손아귀에 넣으려 하였다. ‘자신은 교수협의회도 박원국 이사장 세력도 아닌 중도’라는 논리를 퍼뜨려 관선이사들의 판단을 흐리게 함으로써 자신을 추종하는 교수를 총장에 앉히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학원 민주화투쟁에 관망하며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했던 교수와 직원들이 이 음모에 가담했다. 그 동안 투쟁현장에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은 기회주의자들이 민주화투쟁의 과실을 박원택 상임이사에게 진상하려는 요설을 퍼뜨리고 다녔다. 이들이 주장하는 박원택 예찬론은 다음 내용들이었다.

 


(1) 박원택 상임이사는 박원국 이사장과는 다르다. 박원택 상임이사는 박원국 이사장처럼 사람을 내쫒지는 않는다. 왜 박원택 상임이사 앞에 가서 납작 엎드리지 않느냐.

(2) 박원국 이사장이 자기 사람을 총장으로 선출하도록 밀어붙이는 것을 막아내느라고 박원택 상임이사가 교수들의 재임용탈락을 막지 못하였다.

(3) 박원택 상임이사는 교수 재임용탈락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해직교수들을 복직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4) 이강혁 총장의 연임을 저지한 것은 교수협의회가 아니라 박원택 상임이사의 공로다.

(5) 박원국 이사장과 박원택 상임이사를 한꺼번에 퇴진시키는 것은 무리다. 먼저 박원국 이사장 퇴진운동을 벌여야 한다. 교수들과 직원들의 다수는 박원택 상임이사에 대해 호의적이다.

(6) 교협 회장단을 구속시키려 한 것은 박원택 상임이사가 아니라 박원국 이사장이었다.

(7) 앞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박원국 이사장 고소 건에서 승소하는 것이다. 교협 교수들이 재단의 경영권을 탈취하려한다는 것을 박원국 이사장이 사법적으로 입증하면 큰 일이 난다. 교협이 학생들과 정기적으로 연석회의를 했다는 것이 학생선동의 증거로 채택될 수도 있다.

(8) 다수의 교협 회원들이 동조하지 않는데 일부가 주장하는 재단퇴진이 이루어지겠느냐



  이들의 주장은 네 가지 상징조작을 목적으로 교내에 유포되고 있었다.

  첫째, 박원택 차별론이다. 박원국 이사장은 나쁘지만 박원택 상임이사는 좋은 사람이다. 박원택 상임이사는 합리적인 사람이므로 박원국 이사장이 쫒겨난 마당에 더 이상의 투쟁은 불필요하다.(1) (3) (6)

  둘째, 박원택 무책임론이다. 덕성 분규의 원인은 교협 회장단의 무모한 재단퇴진 투쟁노선과 박원국 이사장의 무리한 학교 장악 기도에 있었다. 덕성분규의 모든 책임은 교협과 박원국 이사장에게 양자에게 있으므로 박원택 상임이사 퇴진 투쟁은 잘못된 것이다.(2) (8)

셋째, 박원택 공로론이다. 이강혁 총장과 박원국 이사장을 쫒아낸 것은 교협을 비롯한 민주세력이 아니라 박원택 상임이사의 공로다. 따라서 박원택 상임이사 퇴진 투쟁은 옳지 않다.(4) (5)

  넷째, 박원택 대세론이다. 향후 학교 운영에 교협이 주도권을 장악해서는 안 되며 박원택 상임이사와 그를 추종하는 세력이 중심 되어야 한다. (7)

  박원택 상임이사는 좋은 사람이고 분규에 책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강혁 총장과 박원국 이사장을 쫒아낸 공로가 있기에 향후 학교운영은 박원택 상임이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재 교협을 비롯하여 학생, 졸업생들이 벌이고 있는 전면 관선이사 파견 투쟁 즉 박원택 상임이사 퇴진 투쟁은 무모하고 불필요하며 또한 옳지도 않다는 이들의 주장은 피눈물 흘리며 쟁취한 민주화투쟁의 성과물을 고스란히 박원택에게 진상하자는 것으로, 이는 ‘87년 6월 민주화투쟁의 공로를 노태우의 ‘6.29선언’에 돌리고 전두환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군부독재 세력의 생명을 연장하도록 하려는 궤변과 똑같은 것’이었다.

  게다가 이들 기회주의자들은 덕성여대가 정통 민족사학으로 거듭나는 것마저 가로막으려 하였다. 박원택 상임이사가 교협 교수 4명을 고소하여 기소되었는데, 그 잘못이 박씨 형제의 어머니 송금선의 친일행적을 파헤친 교협에 있다고 하였다. 이들은 “교협이 쓸데없이 친일행적을 폭로하였으니 고소당해도 싸다”는 일종의 자업자득론을 펼치면서 박원택 상임이사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었다. 박원택 예찬론자들은 민족사학의 정통성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개인적인 감정차원으로 격하시키고, 민족반역자를 심판하여 비뚤어진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정의로운 노력을“쓸데없이 분란이나 일으키는 부질없는 행동”으로 치부함으로써 노예근성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2001년 학원민주화 투쟁의 초점을 박원국 이사장에 맞춘 것은 덕성을 피폐하게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었다. 박원택 상임이사가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하여 면죄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박원국·박원택 형제의 갈등으로 2월 26일 이후 이사회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는데, 박원택 상임이사가 형님에게 맞선 까닭은 박원국 이사장이 임기 만료가 되면 자신이 학교 운영권을 장악할 수 있으리라는 속셈 때문이었다. 그러나 교수를 형사 고소하여 범죄자로 만들려는 사람이 이사로 남아 있는데 어떻게 학내분규가 해소되겠는가? 2001년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설훈 의원이 “(박원택·김기주 이사는 2000년 국정감사) 약속을 철저하게 파기하고 민주당 국회의원들을 기만하고 농락하였으므로 신뢰할 수 없다”고 질타한 것처럼, 박원택 상임이사는 공인으로서 지녀야 할 덕목인 신뢰성마저 상실하였기에 더 이상 교육기관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이 때문에 국정감사에서 설훈 의원이 박원국 이사장과 함께 박원택 상임이사의 퇴진을 주장하고 교육부총리에게 관선이사 파견을 요청한 것이었다.

  덕성 민주화투쟁의 성과를 박원택 상임이사에게 고스란히 진상하려는 자들은 (1)과거 박씨 일가 체제하에 빌붙어 민주세력을 탄압한 전력이 있는 반민주세력 (2)박원택 상임이사와 친분이 있어 과거 특혜를 입었거나 앞으로 입고자 꿈꾸는 비민주세력 (3)민주세력을 탄압하면서 중립인양 위장하여 새로운 이사회에 직․간접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여 총장 자리를 엿보는 비 양심세력 (4)독립운동가 차미리사가 세운 민족사학 덕성여대를 친일파후손 박씨 일가의 소유물로 간주하는 노예근성에 찌든 반민족세력들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민주세력들이 모든 것을 걸고 피 눈물 나는 학원민주화투쟁을 벌이는 동안, 이에 대해 적개심을 갖고 탄압하였거나, 방관자적·냉소주의적 관점을 견지하였던 기회주의자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의 기회주의적인 처신을 보다 못한 나머지 학생이 일갈했다.


  아니 대체 어느 학교가 박원국 측도 아니다 교협도 아니다 하는 식의 논리로 총장을 뽑는답니까? 그럼 애완동물로 고양이도 싫다 강아지도 싫다 라면 세균 득실거리는 길가는 쥐새끼 잡아다가 키울겁니까?

  총장이란 게 얼마나 중요하고 막중한 위치인데, 아무런 검증도 없이 그런 비논리적인 근거로 총장을 운운하는 겁니까? 대체? 학내구성원들이 원하는 대로 능력과 인격적인 부분에서 신중히 검토하고 의논해서 무엇이 누가 가장 적합할까 따져보고 생각해서 민주적인 절차로 총장을 선출해야지.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아니면 학생을 물로 보는 겁니까? 그렇게 따지면 이 학교에 자리 하나씩 차지 못할 사람 없습니다.

  게다가 수업거부, 단식까지 하면서 난리를 쳤던 이유는 좀 더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어 보자는 거였는데, 비민주도 아니도 반민주로 가요? 내 참…

  그리고 박원택파가 언제 중립이었습니까? 중립이 뭐예요? 학내에 박원국파 박원택파 나누어서 장난하는 것도 짜증나 죽겠는데, 중립이요? 그래서 우리 학교를 얼마나 생각합니까? 차라리 학교에 있는 꽃들 죄다 뽑아버리고 대파나 양파를 심으시지요. 두 파 모두. 지긋지긋한 박씨 일가…(정래영)



나 역시 동료 교수로부터 ‘박원택 미화론’을 전해 들으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심에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기회주의자들이 요설을 퍼뜨리고 다니게 된 것은 박원택 상임이사를 퇴진시키지 못한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덕성여대가 다시 살아나는 길은 민족사학으로서의 정통성과 자긍심을 되찾는 것이며 이를 위해 친일 찌꺼기를 완전히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피눈물로 쟁취한 이사회 의결권이 또 다시 박씨 일가로 넘어가는 막아야만 했다. 이에 11월 19일부터▲덕성 분규의 공동책임자 박씨 족벌 잔류이사(박원택, 김기주, 인요한) 퇴진 ▲민족사학 정통성 확립 ▲민주총장선출 등을 요구하며 운니동 재단 앞 1인 시위에 돌입하였다. 그 다음날인 20일 학생들도 재단 사무실이 있는 운니동 앞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하였다. 총학생회와 함께 한 재단 앞 1인 시위는 겨울 방학 내내 계속되었으며, 이듬해 3월 개학과 함께 78일 만에 마감하였다.


<사진 10> 재단 앞 천막농성 해단(덕성여대신문 2002.3.4)

  학생들과 함께 잔류이사 퇴진투쟁을 하면서 덕성민주화 투쟁과정을 영상물로 만들어 보존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12월 16일(일) 양심수후원회 송년회 모임자리에서 푸른영상의 김동원 감독과 작품제작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김 감독은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다루느라 여력이 없다며 다른 감독을 소개해 주었다.

  2003년 4월, 1990년부터 2001년까지 12년에 걸친 덕성여대의 학내민주화운동 과정을 ’12년 사학투쟁’ 다큐 영상물이 남태제 감독에 의해「학교」라는 이름으로 제작되었다.


<사진 11> 학교(1), (2)

사학비리에 대항, 10여 년간 끈질긴 학내민주화투쟁을 벌여왔던 그 간의 투쟁과정을 필름에 담은 것이다. 덕성여대사태는 교수들의 재임용탈락, 교수·학생들에 대한 재단측의 무차별 고소·고발, 이에 대한 학생·교수들의 수업거부와 총장실 점거, 1인 시위 등을 거듭해왔는데, 이 과정이 고스란히 다큐형식으로 생생한 영상에 기록됐다. 영상물은 120분짜리로 제작됐으며 학내민주화 투쟁의 한 가운데 섰던 학생·졸업생·교수들이 간직해둔 영상기록을 바탕으로 구성됐다. 그간 학내투쟁을 이끌었던 교협과 노조가 제작비 500만원을 부담했으며 500만원을 출자한 영상제작업체 ‘다큐인’이 실무제작을 맡았다. 영상물에는 한 개인의 사유물이었던 학교를 구성원들의 힘으로 ‘우리’의 것으로 바꿔나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교협은 2003년 4월 26-27일 이틀간 서울 종로구 안국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다큐멘터리 기념시사회를 가진 후, 사학분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러 학교와 단체에 배포하여 희망을 함께 나누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