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 (因地而倒者 因地而起)” (2)

0
227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
(因地而倒者 因地而起)”  (2)

한상권(중세사 2분과)

8. “저는 인문사회관 로비 휴게실에 있습니다”

5월 27일 아침 10시 학교에 도착하여 인문사회관 214호 연구실 문을 열려 하였으나 열리지 않았다. 전날 밤 학교에서 연구실 자물쇠를 교체한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자 무척 당황하였다.


<사진 13> 문이 잠긴 연구실[백서 2, 309쪽]

연구실이 폐쇄되었으니 이제 어디로 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시간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어제 찾아간 교수들 연구실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학교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할 수 없이 본부 총무과에 찾아 가서 항의하였다. 담당자는 상부 지시로 전날 저녁 6시 30분 연구실을 폐쇄하였다고 할 뿐 더 이상 말상대를 하지 않고 자기 일만 보았다. 시계를 보니 10시 30분이었다. 하는 수 없이 물러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인문사회관으로 돌아와 연구실 문에다 “저는 연구실이 폐쇄되어 인문사회관 로비 휴게실에 있습니다.”라고 써 붙여 놓고 염치없이 로비에 있는 소파에 주저앉았다. 인문사회관 로비는 학생들 휴게실이었다. 여학생들이 앉아 있는 틈에 끼어 앉는다는 것은 여간 얼굴이 두껍지 않고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른 아침인데도 로비 휴게실에는 학생들이 제법 많이 앉아 있었다. 학생들은 자신들 틈새에 앉아 있는 내가 누구인지 아랑곳하지 않고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참으로 힘들고도 긴 시간이 흘렀다.

  1시간 반 가량 지나자 어제 연구실에 왔던 성재가 “어머 선생님 여기 계시네요.” 하고 찾아왔다. 참으로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교양과 조교인 성재는 점심을 같이 하려고 내 연구실로 찾아왔다가 메모를 보고 로비 휴게실로 왔다고 했다. 성재와 함께 점심 먹으러 교문을 나오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연구실이 폐쇄되었으니 앞으로 갈 곳이 막막했다.

  전교조 해직교사들처럼 여러 명이 아니라 혼자서 하는 출근투쟁이 이렇게 힘든 줄 미처 몰랐다. 괜히 학교에 나왔다는 후회감이 들었다. 일단 시작하였으니 당장 중단할 수도 없는 문제였다. 그래서 성재한테 “한 일주일 동안 나와 보고 별다른 반응이 없으면 짐 싸가지고 아주 학교를 떠날란다.” 하였다.

  점심 먹고 다시 로비 휴게실로 돌아오니 사학과 학생들이 몰려왔다. 사학과 학생들은 소파에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로비에 놓여 있는 알림판 칸막이를 옮겨 임시연구실을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칸막이에 “여기는 한상권 교수님 임시연구실입니다”라고 써 붙여 놓았다.


<사진 14> 「여기는 한상권 교수님 임시연구실입니다」- 노순택기자 –

바로 곁에 자신들 출근투쟁본부도 설치하였다. 사학과 학생들이 움직이자 인문대 학생회가 나서서 출근투쟁을 지지하였다.

한상권 교수님의 연구실이 폐쇄된 탓에 인문사회관 로비에 임시 연구실을 마련하였습니다. 여기서 한상권 교수님의 재임용탈락처분이 철회되는 날까지 복직운동의 본부로도 사용할 것입니다. 그리고 재학생 대책위였던 ‘한’ 비대위는 ‘한’사람들로 전환하여 역시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을 가져가고자 합니다. 우리 매시간 한상권 교수님과 ‘한’사람들 지지방문 갑시다. 그리고 행정동 항의방문 꾸준히 가서 막판 승리를 장식해내도록 합시다. 이상 13대 인문대학생회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임시연구실이 마련되자 인문사회관 로비가 부쩍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평소 친하게 지냈던 교수들이 다녀가고 학생들 지지방문이 잇따랐다. 학생들은 내 출근투쟁 성명서「나는 왜 연구실로 돌아와 복직투쟁을 하는가?」와 예선이가 어버이날 보낸 편지를 대자보로 써서 인문사회관 로비 곳곳에 붙였다.


<사진 15> 「나는 왜 연구실로 돌아와 복직투쟁을 하는가?」 – 노순택 기자 –

그러자 임시연구실이 훌륭한 투쟁공간이 되었다. 우선 이동인구가 많아 로비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시위효과가 있었다. 곳곳에 대자보가 붙어 있어 투쟁분위기도 살아났다. 핸드폰을 장만하였기에 연락에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선생님이 학교에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졸업생들이 학교로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연구실을 폐쇄해 준 덕분에 출근투쟁이 자연스레 장외투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전화위복이었다. 해직교수가 로비 휴게실에서 출근투쟁을 한다는 것은 훌륭한 뉴스감이기도 하였다. 임시연구실로 기자들이 찾아왔다. 한겨레 황상철 기자는「재임용탈락 교수의 ‘복직’ 선언」이라는 기사에 다음과 같이 썼다.

29일 서울 덕성여대 인문사회관 2층 로비. 지난 2월 재임용에서 탈락한 이 대학 사학과 한상권(44) 교수와 제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한 교수의 ‘임시연구실’도 만들어졌다. 학교 쪽이 닫아버린 한 교수의 옛 연구실 바로 옆이다. 학생들은 재임용탈락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한 교수의 복직을 요구하는 대자보와 피켓을 만드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사진 16> 한겨레, 1997.5.30 [백서 2, 293쪽]

  반면 많은 교수들이 로비 휴게실에 앉아 있는 나를 피하기에 급급했다. 로비 휴게실 바로 옆은 여자화장실이었다. 교수들은 나하고 눈이 마주칠까봐  화장실도 오지 못했다. 점심 먹으러 갈 때도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로비를 지나가야만 했다. 이들은 학교본부에 전화를 걸어 한상권 교수가 연구실에 가만히 앉아 있도록 놔 둘 것이지 왜  연구실을 폐쇄하여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느냐고 항의를 했다고 한다.

  인문사회관 로비 휴게실에 임시연구실을 마련하자, 학교 측은 불법 무단 시설물 사용이라며 밤마다 칸막이를 철거하였다. 이러한 학교 측의 처사는 학생들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인문대 학생회의 선전 문구가 이를 잘 말해준다.

속보: 학교 당국, 한상권 교수님 연구실 강제 폐쇄!(26일 밤에)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한상권 교수님을 덕성여대가 재임용 탈락시킨 일이 얼마나 덕성여대 망신살 뻗치게 하는 극단적 교수⋅학원 탄압이었는지..
때문에 우리는 이 문제를 계기로 불거져 나온 덕성여대 비리와 외부 언론의 엄청난 비난, 이것에 주눅들 것이 아니라 그렇게 상식 밖의 일을 ‘감행’하여 이 비난 여론을 자초한 학교 당국과 재단에 대해 함께 맞서 단합된 학생의 힘으로 이를 철회시키고,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 덕성 발전을 위해 학교가 나서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출근투쟁 이후 학생들의 움직임이 활기를 되찾고 선전 작업도 활발해졌다. 현장투쟁이 시작되자 학생과 졸업생들의 진솔한 심정을 담은 글들이 방명록과 대자보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 가운데 몇 편을 소개함으로써 당시 현장 분위기를 전달한다.

9. 대자보와 방명록에 남긴 글

1) 대자보



한상권 교수님의 출근 투쟁을 바라보면서

진리 탐구의 장인 대학에서 나는 오늘 진리가 문 밖
으로 밀려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덕성여자대학교에 입학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도 내가 덕성여자대학생임을 창피해하거나 부
끄러워 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남다른 수재들이 다니기 때문은 아니었다.
한 번의 패배를 맛보고 선택한 이 대학에서 나는 다른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덕성여자대학만이 갖고 있는 기질, 북한산의 정기를
품고 있는 듯한 기질, 그것은 교과서적으로 두뇌만
키운 아이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강한 무엇이었다.
그리고 강의 시간에 만나는 몇안되는 양심적인, 학자
적인, 선생님들… 그것이 나로 덕성여자대학인 임을
떳떳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나는 부끄럽다.

이사장은 돈을 억대로 횡령하고, 양심적인 교수님
은 강단에서 쫒겨나신다. 이 모든 사실일 언론매체에
서 거론되고…
그러므로 나는 부끄럽다. 자존심이 상한다.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양심적인 사람들은 벌써부터 덕성여자대학의 이러한
비리와 범법행위에 대항하고 있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덕성의 자존심을 위해, 덕성의 진정한 양심적
인 교수님들과 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약하다. 평범하다. 그러나 나는 약한대로 평범
한 대로 무엇을 하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이마에 덕성인이 새겨진 영원한 덕성
인이므로.

오늘 나처럼 약하고 평범한 덕성인에게 나는 말한다.
일하는 사학과 학우들. 일하는 또 어떤 학우들… 그
들에게 용기를 주고 따듯한 시선을 보내자고…항의 방
문때 서서 격려의 박수라도 보내자고…
그리고 교수님께 인사라도 하자고…

덕성여자대학을 진정 사랑하는 한 학우가


2) 방명록

(1) 재학생


국문과 96, 김준아
처음엔 뻥 둘린 이 공간에 선생님이 계신다는 게 마음
아팠는데…지금 보니, 조금 시끄럽긴 해도 자유롭고
좋네요. …선생님, 선생님 곁에 항상 저희가 있
다는 걸 잊지 마시구요. 용기 내세요. 정말 선생님처
럼 용기 있게 살고 싶습니다.… 쑥스러운데요!

선생님
잘 사는 길과 올바르게 사는 길이 하나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올바르게 사는 길을 택하겠습니다.
2학기 답사는 저희들과 함께 할 수 있겠지요?
그날까지는 무척 힘들겠지만, 저희가 승리할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 역사의 진행을 거스르지 않는 것일테니까요.
1997.5.29
史  96학번 임성미

선생님!
저는 교수님의 얼굴만 뵈어도 막 힘이 납니다.
교수님께서 저희에게 가르쳐 주셨던 역사를 이제 교수님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기쁩니다.
빨리 교수님의 강의를 다시 듣고 싶고, 더 열심히 배워서 올바른 역사를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교수님도 저의 보면 힘나시죠?
이제 저는 절대 울지 않을 겁니다. 당당한 모습, 꿋꿋한 모습으로
교수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아참, 아까 대자보보니까 어떤 친구가 주례를 부탁했더군요. 제가 먼저
하려고 했는데…, 교수님 꼭 약속해 주세요. 주례 서 주신다고…!
교수님, 정말 존경합니다!
-史 95 손효진-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도 저는 편하고 평탄한 삶만을 추구하며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선생님을 마난 저의 인생관이 달라졌습니다.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한다!”라는 선생님의 말씀 가슴에 고이 간직하고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 정말 선생님 존경합니다. 선생님의 수업! 정말 듣고 싶고, 꼭 그렇게 될거라 믿습니다!!
-史 96. 예쁜 학우-

예선이의 글을 읽고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아직 나이 어린 소견임에도 그리 당당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순수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가르치신 선생님이 계시기에 선생님에 대해서는
두말할 것 없겠지요.
처음 선생님이 출근투쟁을  전개하신 순간부터는
무척 든든하고 이제야 숨통이 트이는
가뿐함이 있었는데
날이 갈수록 선생님을 뵙는 게 왜 그리 죄스러운지
이제 겨우 사흘째인데
자꾸 약한 소리만 하는 것 같아 그게 정말
싫은거지요
아이들 사정이 이러하고, 학생회 사정이
이러하다는 이야기들이 다 궁색한 변명같고,
그러지 말아야지. 그러지 말아야지.
그렇게 다짐하고 다짐합니다.
그저 한 가지 더 말씀 드리고 싶네요.
선생님은 지금 온몸으로 ‘역사’를 가르치고
계신거라구요
강단 밖의 진짜 강의!
선생님만이 가능하지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저는 97학번 새내기 김은경이라고 해요
저는 처음에 수강 신청할 때 ‘한국역사와 민족’을 들을려고 했었는데
그게 폐강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 슬펐어요.
저는 역사 배우는 걸 굉장히 좋아 했었거든요. 그리고 저번 추적60분에서
교수님을 첨 보았는데요. 그때까지 한교수님 문제에 대해서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저 자신이 너머 부끄러웠어요.
교수님! 힘내시고요. 언제나 교수님 곁에는 교수님을 존경하는 많은 제자들이
있다는 걸 잊지마세요!

교수님!
사회의 부정에 강하게 맞서는 교수님의 모습에서
교실에서 들었던 어떤 강의에서 보다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교수님, 참 사학인으로서의 교수님을 정말 존경합니다.
힘내세요 교수님
95학번 곽혜은

6.13
교수님이 계실 때, 저는 늘 교수님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요즘, 저는 더욱 교수님이 자랑스럽습니다.
교수님은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원히
저희들의 교수님이십니다!
史  95  김현주

97.6.4
교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사회학과 4학년 박경은이라는
한 학생입니다. 이번 학기 교수님
강의를 신청했었던 학생입니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비록 교수님의
강의는 듣지 못해 안타깝지만. 교수님의
끝까지 항의하시는 모습에서 전 교수님께서
가르치실 수업 내용보다 더 중요하고 값진
강의를 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수님, 비록 보여지는 모습에서 소극적일
수 있는 지금의 학생들일지언정 교수님
에 대한 지지와 성원은
누구보다도 크다는 것을
말해 드리고 싶구요.
힘! 내세요!!!!



(2) 졸업생



5/31
졸업하고 10년이 흘렀는데
세상은 그때보다 많이 좋아졌다고들 하는데
아직도 “괘씸죄”(?)가 존재하는 걸 보면
세상은 계속 ‘투쟁할 그 무엇’ 이
있는, 살아갈 가치(?)와 의미(?)가 있는 곳이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10년 전보다 더욱 강건하신
교수님을 뵈니 학교에 들어오기 전보다 힘이 납니다.
작은 힘들이 모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큰 힘이
됨을 믿습니다.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심호흡을 크게 하며
외치고 싶습니다.
교수님. 그리고 진리가 끝내 승리한다고 믿는
모든 분들 힘내세요!

83학번 한수정
———

한수정은 현재 5개월 된
아기를 배속에 품고 있는 2인분입니다.
태아도 엄마의 바람을 알아듣고 한상권 선생님의
복직을 기원할 것입니다.(한수정이를
옆에서 본 선배가 씀)

사학과 한상권 교수님의 복직을
기원하면서.
오늘 이 시대의 스승은 어디 있는가? 올 곧은 목소리로
진리를 외치며 가르치는 스승들은 교단 밖으로 내 몰리고 있다.
더구나 ‘재임용제’라고 하는 악법을 근거로 ‘임기만료’라는
사유만으로 학생들의 공부할 수 있는 권리를, 한 사람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반인간적인 사학재단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덕성여대’ 밖에 없다.
우리의 근대사는 어찌 보면 ‘인재 죽이기’로 점철된 역사임을
부인할 수 없다. 포악한 정권들은 자신들과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숱한 사람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자들은 자신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방해되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들을
제거 했고…
이제 ‘진리의 보루’ ‘역사 발전의 동력’ ‘미래 창조의
마당‘인 대학에서마저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르고 있다.
한마디로 세월을 거꾸로 돌리려는 처사이다.
어떤 정당성도 없이 대학사회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교수를
교단에서 몰아내려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대학 역사의
가장 부끄러운 일로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학교 재단이 가지고 있는 사소한 감정으로 한상권 선생님을
해직시킨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거니와
지금 당장에 원직에 복직시키는 것이 일의 당연한 순리이다.
남들이 모두 인정하는 부지런한 연구가, 열심히 강의한
학생들에 대한 정성이 죄가 되고 해직 사유가 되는
대학이라면 이미 스스로 ‘진리의 보루’로서의 대학임을
포기한 것이다.
말같지 않은 ‘임기만료’가 해직사유라면 지금
전국에 명색 ‘교수’라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야
하는 것이 옳다.
“악법도 법이다”라고 소크라데스가 말한 것을 근거로
한상권 선생님을 해직시켰다면 더더구나 말이 되지 않는다.
“악법은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法=水+去, 법은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
워야 하는 것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누구도 물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지금의 순리는 다시 말하지만
“한상권 선생님의 조건없는 원상회복”이다. 그것이
법 정신에 충실한 것이다.
덕성여대 당국의 한상권 선생님의 원상회복을
촉구하면서
1997.5.31
사학 86 이은희와 함게 사는
男子  金潤洙

항상 역사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민중의 삶을 이야기하며
옳은 길 진리의 길을 이우려 노력하시며 사시는
한상권 교수님!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강의하시며
바른 길을 가르키시던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해직의 아픔을 개인의 상처로만 받지 않으시고
“교육법 개정”이라는
변혁의 발전의 역사를 이루시는 선생님의 제자임이
자랑스럽습니다.
건강하시고
모두의 희망대로 원상복직하시길 기원하며
1997.5.31
86학번 이은희.

97년 6월 3일
6ㆍ10항쟁 10주년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재는 변한 것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복직하시는 날까지 저희도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 선생님!  힘내세요!!!
89학번 송승민. 이혜정.

한상권 선생님과 함께 하는
덕성 사학
선생님의 옳고 정직한 투쟁에
저희 졸업생들도 동참하겠습니다.
87‘ 김선희
97.6.5

한상권 선생님,
진심으로 존경드립니다.
정말 고생 많이 하셨어요. 끝까지 힘내세요.
‘투쟁백서’는 산 역사의 교과서라 생각합니다.
97.6.13. 금
김경란, 임주혜, 임지연 드림

85학번 친구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상권 교수님이 계시지 않은 사학과는 생각할 수
없다고요.
더 이상 다른 말을 보탤 수도, 보탤 필요도 없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졸업생들은 선생님을 지지할 것입니다.
더운 여름. 더욱 힘내세요.
평택 아줌마 진혜숙
子 황의태

선생님의 기운찬 모습을 뵈니 정말 다행입니다.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선생님, 소신껏 행동하시는
모습 역시 선생님이십니다. 승리자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83학번 이유림
97.6.5

오랜만에 학교에 와보니 외형적으로
많은 발전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군요
그러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덕성인이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은 재학생, 졸업생, 교수님들의
단결된 의식과 투쟁으로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오늘 선생님을 만나 뵀습니다.
우리, 희망을 갖고 열심히 싸워봅시다.
사학과 82학번 최명숙
P.S * 82학번 친구들
은 학교로 선생님을
뵈러 오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직장과 육아 등 현실적인 제약으로
마음만 있습니다.
비록 오늘 함게 이 자리에 있지 못하지만
선생님의 복직을 간절히 기원하고 있습니다.



(3) 기타

이헌창(고려대 경제학과)
正義는 반드시 승리하며
기필코 쟁취되어야 합니다.
한상권 교수의 승리는 곧 정의의 승리입니다.
97.6.5

힘찬 교수님 모습 뵙고, 일찍 찾지 못함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이 싸움에서 꼭 이기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치열한 삶, 열정을 배우고 갑니다.
덕성의 부도덕한 이사장이 물러날 때까지,
진정 존경받는 교수님들이 모두 복직할 때까지
힘찬 걸음 멈추지 마십시오.
전교조 서울 초등지회 역사기행 동호회 올림
97.6.13(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