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이야기] 기생에서부터 기생이야기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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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이야기 1 – prologue

기생에서부터 기생이야기를 시작하자

박정애

2004년 봄,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에 갔다가〈기온의 자매들〉이란 옛날 일본영화를 보았다. 1936년에 미조구치 겐지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기온에 살고 있는 게이샤 자매에 관한 이야기이다. 비록 게이샤이지만 나름의 부덕(婦德)과 순정을 지키고 싶어 하는 언니에 비해 현실적인 성격의 동생은 게이샤에게 좋은 남자란 더 많은 안락함을 줄 수 있는 남자라고 믿는다. 영화가 끝나기 5분전까지만 해도 난 왜 이 영화가 여성영화제의 상영작으로 채택되었는지 의아했다. 영화는 돈만 좇던 동생이 결국은 단죄를 당하고 동생의 훼방으로 몰락한 후원자와 헤어져야 했던 언니는 다시 그 후원자의 품으로 돌아가는, 그렇고 그런 뻔한 결말을 향해 치닫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의 진가는 마지막 5분 안에 있었다. 아내의 용서를 받은 후원자는 언니에게 “행복하게 살라”는 쪽지만 남기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동생을 용서하지 않겠다 다짐했던 언니는 울면서 동생에게 돌아온다. 동생은 병실에 누워 울부짖는다. “무엇을 위해 게이샤를 만든 건가요? 게이샤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영화는 이들의 절규와 흐느낌 속에서 끝이 나는데, 나는 바로 저것이야말로 게이샤 제도에 대한 가장 정직한 지적이며 고발이라고 생각했다. 동생은 게이샤의 프로의식에 투철했을 뿐이다. 그 시대의 ‘양처현모’라는 여성규범이 어디 게이샤에게 해당되는 것이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가집 여성에게나 어울리는 규범을 게이샤에게 기대하는 저 모순은 또 무엇인가.

자연스레 한국의 기생이 생각났다. 오늘날 다양한 정의가 내려지고 있는 기생은 따지고 보면 ‘신여성’만큼이나 수많은 담론에 갇혀 실제를 찾기 힘든 존재이다. 그리고 ‘천민의 몸, 양반의 머리’를 지녔다는 표현에서 보이듯 그 담론은 천민과 양반의 격차만큼이나 극과 극을 오간다. 누군가는 전통예술의 전수자임을 내세우면서 ‘진정한 기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한국 성매매의 기원을 찾으면서 기생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논개와 계월향의 애국심, 홍랑의 절개, 황진이와 이매창의 시조를 떠올리면서 기생의 고고함과 의연함을 얘기하는가 하면, 정조관념이 희박한 오늘날의 세태를 개탄하면서 어떤 여성들의 ‘기생기질’을 비난하기도 한다.

 

이매창의 묘 (전북 부안)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이 기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와중에서 기생이 어떤 목적에서 필요로 한 존재였는지 종종 까먹는다는 것이다. 기생은 일반 여성들에게만 정절 이데올로기를 강요한 가부장 사회가 자신들이 고안한 이데올로기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정절의 의무가 없는 남성의 욕구를 해소할 목적으로 창출한 제도이다. 기생의 역할은 가무(歌舞)를 통해 남성의 유흥을 부추기는 것이었고, 여기에는 남성에게 성적 쾌락을 제공하는 것까지 암암리에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기생의 직업은 남성 – 전통시대에는 양반남성 – 의 즐거움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었고 기생들은 그 대가를 받아 생존을 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봤을 때 어미가 기생이니 딸도 기생이라고 판단한 변학도가 춘향이에게 수청 거절을 빌미로 칼을 씌운 것은 당연한 처단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절개로 이름 높았던 기생들은 직업에 대한 프로의식이 미약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몇몇 기생에게 쏟아지는 찬사를 깎아 내리자는 것이 아니다. 나 역시 타인의 욕망을 위해 존재하는 기생이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고 자신의 욕망에 용감하게 대면했던 그 드라마틱한 삶에 감동을 받는다. 다만 이러한 사례를 통해 ‘진정한 기생’을 정의하고 그것이 기생에 대한, 나아가 전체 여성에 대한 평가의 잣대로 좌우되는 것이 불편했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했어도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의 기회가 그다지 없었던 기생들이 진정 행복할 수 있었을까. 기생들을 부덕과 정절의 여성규범 밖에 위치 지워놓고 오히려 여성규범을 판단근거로 기생의 가치를 경쟁시키는 가부장 사회 속에서 기생들은 억울하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흔히들 기생을 해어화(解語花)라 부르기를 좋아한다.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는 뜻의 이 말은 중국 당나라 때 현종이 양귀비를 연꽃에 비유하면서 비롯되었는데, 나중에 기생을 일컫는 말로 바뀌었다. 전통시대의 양반들은 기생을 해어화라 부르면서 유흥장의 꽃으로 여겼다. 이를 따라 오늘날에도 옛 기생을 해어화라고 부르고 싶어 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이러한 시선은 일면 꽃같이 아름다운 이가 말까지 이해하는 머리를 지녔다는 감탄을 담은 것이지만, 그보다는 좀더 기생에 대한 노골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곧 해어화라고 부르면서 기생이란 화려함이 시들면 버려지는 존재이면서 담장 밑의 꽃처럼 누구나 쉽게 꺾을 수 있는 존재라는 규정에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기생에 대한 과도한 찬사나 해어화라는 호칭 속에 정작 기생은 없다. 기생이라는 언설에 가부장 사회의 가치관을 투영한 채 기생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소비할 뿐이다. 인간으로서 생존을 도모하고 현실과 이상 속에서 갈등하며 더 나은 가치라 믿는 그 무엇을 위해 도전했던 기생의 삶의 자취들이 빠져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생 이야기는 바로 기생에서부터 시작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기생의 입장에서 기생을 말한다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기생이라는 집단의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사실이다. 여성이면서 여성이 아닌 존재였던 기생은〈기온의 자매들〉의 언니와 동생이 그랬듯이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회의하면서 생존 전략을 짜 나가야 했다. 기생의 직업윤리에 충실하면 지탄의 대상이 되고 그렇다고 여염집 여자들처럼 한 남자만 바라보며 사는 일도 만만치 않다. 기생으로서의 삶을 극복한 기생이 칭송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기생 너머의 삶이 명쾌하게 정해져 있던 것도 아니다. 이렇게 봤을 때 기생들은 부조리한 기생 제도와 모순된 욕망들로 짜인 그물망 어디쯤에 각자 서 있으면서 그 위치에 따라 각각 나름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타인의 기대와 개인의 욕구 사이에서 어떤 조율을 하느냐는 기생 개인의 선택의 몫이었다.

한편, 정체성이 혼란스럽고 모호했기 때문에 기생들이 일반 여성보다 더 많은 선택의 여지를 누리고 있었다는 사실은 기생에게 주어진 ‘역설적 축복’이었다. 누군가의 아내나 어머니, 자식으로서만 여성성이 규정되던 사회 속에서 기생은 여성의 몸을 가지고 ‘개인’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으며, 정조관념에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롭게 개인의 섹슈얼리티를 드러낼 수 있었다. 일찍이 공적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아온 덕분에 선택의 결과를 감당할만한 정신적, 물적 내공 또한 지니고 있었다. 기생에게 내재되어 있던 이러한 가능성들은 특히 근대 사회에 들어와 신분의 굴레가 벗겨지고 남녀동등 담론이 유포되면서 폭발하였는데 전통적 존재인양 보이는 기생이 ‘신여성’의 일부를 이루면서 여성지식인 집단과 경합할 수 있었던 것도 이미 근대적 주체로서의 조건을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다양한 선택에 따른 기생의 다양한 존재 방식들은 또다시 기생을 정의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

 

기생은 부조리한 기생제도와 모순된 욕망들 속에서 치열하게 자기 정체성을 물어야 했다.

 

따라서 기생에서부터 기생이야기를 시작하자는 얘기는 기생을 둘러싼 그물망까지 시야에 두면서 기생에 대한 정의를 열어두자는 소리다. 일단 기생 집단을 정의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 정의를 시도하는 세력의 의도와 성격을 밝히면서 기생이 취했던 선택들에 섬세한 관심을 갖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 그 선택의 폭을 지배했던 주변 조건을 고려해야함은 물론이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이 가질 법한 의문이 있을 것이다. 왜 기생에 주목하는가. 여성사는 기존의 역사쓰기의 남성중심성을 드러내고 여성의 시각으로 새롭게 역사를 구성하는 것이 목적이다. 여기에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 구분인 젠더(gender)가 주요한 분석범주로 부각되는데 성별을 둘러싼 권력관계와 그 각축을 드러냄으로써 여성주체의 역사를 전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생은 꽤 매력적인 주제이다. 여성성의 경계에서 극단의 순응과 저항을 오고갔던 기생은 젠더 정치의 최전선에 서 있던 존재였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