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반구대암각화 연구』(한림출판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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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반구대암각화 연구』(한림출판사, 2013)

전호태(고대사분과)

 

   울산은 한국 암각화의 고향이다. 암각화유적인 국보147호 천전리각석과 국보285호 반구대암각화가 울산에 있다. 두 암각화는 한국미술사의 첫 장을 장식하는 작품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반구대암각화는 1971년 12월 25일, 동국대학교 불적조사단에 의해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암각화는 유적 앞을 흐르는 대곡천 하류의 사연댐으로 말미암아 수위가 크게 오르는 바람에 반쯤 수몰된 상태에서 발견되었다. 대규모 암각화 유적 발견 보도가 나간 뒤 암각화에 생생하게 새겨진 고래들에 대한 기사, 이에 대한 추측과 감상이 한동안 세인에 입에 오르내렸다. 그 뒤 이 암각화는 관심 있는 학자들 사이에서만 의견이 오갈 뿐 세간에서는 잊힌 유적이 되었다.
 


[그림1] 울산 반구대암각화 전경 ⓒ전호태

   필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울산대로 직장을 옮긴 뒤 오래지 않아 반구대암각화의 적극적인 보존관리를 제안하는 KBS 다큐 프로그램 제작을 도와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필자는 1994년 4월, 수시로 유적이 자리 잡은 울주 대곡리 반구대 일대를 찾았고 그 덕에 유적에 새겨진 온갖 짐승과 사람, 도구들을 상세히 관찰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당시에는 길도 불편하고 마땅한 교통편도 없어 차량을 지닌 주변 지인들의 도움을 수시로 받아야 했다.

   KBS 다큐 작업이 끝난 뒤에는 ‘울산대’에 재직 중인 유일한 한국고대사 연구자라는 이유 하나로 한국역사민속학회로부터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 암각화의 연구 현황과 과제에 관한 논고를 발표해 줄 것을 부탁받았다. 주된 전공분야인 고구려고분벽화와는 거리가 있다며 고사했지만 고분벽화 출현 전야의 미술작품에 대한 연구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한다는 설득을 받아들여 1995년 9월에 포항에서 열린 <한국암각화의 세계>에서 연구사적 정리이기는 하나 처음으로 암각화에 대한 논고를 발표하였다. 그때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결국 이번에 책으로 엮어낸 『울산 반구대암각화 연구』의 첫 장이 이때 쓰인 셈이다.

   1995년 6월 반구대암각화가 국보285호로 등재되고 잇달아 암각화를 주제로 한 학술대회가 열림으로써 한동안 잊히다시피 했던 이 유적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서서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필자가 이끌던 울산대학교박물관 주최로 1998년 10월 개최된 학술심포지엄 ‘울산의 암각화’는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국내외의 학문적 관심을 제고시키는 새로운 계기를 제공했다. 필자는 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울산광역시에 반구대암각화 실측조사보고 작업의 필요성을 역설하였고 이를 받아들인 울산광역시의 도움으로 이 유적이 세상에 알려진지 29년만인 2000년 4월 처음으로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실측조사를 시행할 수 있었다. 2000년 12월, 울산대박물관은 이 조사의 결과를 학술보고서로 발간하였다.

   반구대암각화 실측조사사업을 진행하면서 필자는 기존에 알려진 것 외에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 면을 여러 개 추가로 찾아냄으로써 조사보고서는 모두 12면 296점의 암각화가 소개될 수 있게 하였다. 각각의 암각화 물상에는 모두 번호를 부여하였고 각 물상의 크기도 길이 × 너비가 확인될 수 있도록 실측하여 수치를 제시하였다. 또한 각각의 암각화 물상 가운데 식별이 가능한 것은 ‘표준동물도감’을 비롯한 사전류에 근거한 종별, 유별 구분을 시도하여 보고서를 읽는 이들이 반구대암각화에 새겨진 물상들의 분류별 비중 및 분포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하였다. 이 작업을 통해 반구대암각화를 연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학문적 기초자료가 만들어져 제공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때의 실측보고서 발간을 계기로 필자는 이후 10여 년에 걸쳐 반구대암각화를 주제로 한 연구논문을 여러 편 차례차례 학술지에 게재하였다. 「반구대암각화 형상론(2000)」, 「편년론(2001)」, 「보존론(2000)」은 반구대암각화 주변의 개발론과 보존론이 첨예하게 부딪던 시기에 집중적으로 쓰였고 「역사교육론(2008)」은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지역문화유산의 관리와 이에 대한 사회문화적 관심이 지역사교육과 어떻게 연계되는 것이 바람직한 지가 고민되던 시점에 쓰인 것이다. 


[그림2] 울산 반구대암각화 실측도 ⓒ전호태

   2010년 하반기에 이르러 2000년 이래 간간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던 반구대암각화 보존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였다. 사연댐의 수위 상승으로 말미암아 연중 반년 이상 수몰 상태에 있게 되는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위해 사연댐 수위를 인위적으로 조절할지, 울산시민의 식수원 확보를 위해 임의적으로 수로 변경이나 임시제방 설치를 시도할지를 둘러싼 울산광역시, 문화재청, 시민단체 및 학계 사이의 의견대립과 충돌이 심해지는 가운데 2011년 봄부터 울산대학교에서는 반구대암각화 연구 및 보존 문제를 담당할 연구소 설립이 추진되었다. 2010년 9월부터 1년 예정으로 미국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 방문교수 자격으로 머물고 있던 필자는 귀국 전부터 이와 관련된 의견을 학교본부와 주고받았고 2011년 8월 귀국 뒤 새로 설립된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의 운영을 맡게 되었다.

   반구대암각화는 천전리각석과 함께 2010년 1월 11일 ‘울산 대곡천 암각화군’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다. 이 유적과 그 일대의 자연환경 전반이 한국의 선사 및 역사시대 자연환경과 인문환경 전반을 잘 보여주는 점에서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점이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은 까닭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은 어디까지나 잠정목록일 뿐 정식으로 등재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정식 등재를 위해서는 유적의 보존관리 상태 뿐 아니라 유적의 가치에 대한 학술적 연구 성과가 충분히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만족시켜야만 하는 까닭이다.

필자는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에 대한 연구 성과가 국제학계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쌓여 있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반구대암각화는 해양동물인 고래와 다양한 육지동물들이 한 화면에 밀집되어 표현되어 있다는 점에서 세계의 암각화유적 가운데에서도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내용과 의미가 구체적으로 연구되어 국제학계의 연구자들 사이에 공유되고 있지는 않는 상태이다. 국내에서조차도 이에 대한 연구는 기초자료에 바탕을 둔 1차적 해석 정도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이 유적을 십여 년 이상 지속적으로 연구하여 논고로 정리해내는 학자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다. 유적보존을 둘러싼 오랜 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연구 환경도 척박하고 연구 성과도 쌓이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림3] 울산 반구대암각화 주암면 ⓒ전호태

   필자는 유적보존 방법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도 협의를 통해 단계적으로나마 해결방안을 찾고 실행해나가야 하지만 유적연구 역시 동시에 진행되어 성과를 축적해나가야 한다고 보았다. 미국에 머물던 2011년 5월부터 ‘반구대암각화’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 개최를 추진하여 2012년 4월 울산대학교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와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공동 국제심포지엄을 실행에 옮긴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학술대회 발표, 토론의 결과물이 2013년 4월 Hollym에서 발간한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 학술총서 제1권 『World Prehistory & Ancient Arts: The Bangudae Petroglyphs of Ulsan, Korea』이다.

   필자는 울산대-하버드대 공동 국제학술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 앞에 소개한 암각화 연구논문들과 함께 이번에 출간한 『울산 반구대암각화 연구』에 실릴 2편의 논고를 썼다. 그 가운데 한 편이 본문의 한 장을 차지하는 ‘예술론’이고 다른 한 편이 말미에 부록으로 실린 「한국 암각화유적의 현황과 연구과제」이다. 예술론은 한국 선사 및 역사 초기미술에서 반구대암각화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밝히기 위한 글이고, 현황과 연구과제는 30곳에 이르는 한국 암각화 유적 전체를 간략히 소개하기 위한 글이다. 필자는 2012년 암각화에 대한 두 편의 논고를 새로 쓰면서 2013년 초까지 지난 40년간 한국암각화학계 및 관련분야에서 축적된 연구 성과들을 제대로 수렴하고자 노력을 기울였다.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최초의 전문연구서인 울산 반구대암각화연구는 ‘연구사’, ‘형상론’, ‘편년론’, ‘보존론’, ‘예술론’, ‘역사교육론’으로 본문을 꾸렸고 한국 암각화유적의 현황과 연구과제를 부록으로 덧붙였다. 연구사에서는 발견 이래 1971년부터 2012년까지 40년 동안의 주요 연구성과들을 정리하였고, 형상론에서는 296점의 암각화 물상을 인물상, 동물상, 도구상, 미상으로 크게 나눈 뒤 각 암면별 세부유형 분류, 통계적 분포까지 제시하였다. 편년론에서는 울산지역 선사 및 고대유적들과 반구대암각화 제작 집단과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2012년까지 조사된 유적 전체를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청동기유적 159곳, 삼한시대유적 31곳 조사 성과에 대한 세부적인 학술정보들이 정리, 제시되었다. 보존론에서는 반구대암각화의 보존현황이 상세히 정리, 보고되었고 유적의 보존방안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졌다. 예술론에서는 암각화의 양식적 특징과 한국 선사, 역사초기 예술적 흐름과의 관계가 조명되었고 역사교육론에서는 지역 문화유산을 지역사 교육 및 지역학과 연계하여 재인식하고 재평가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졌다.

   또한 이 책에서는 연구자들이 반구대암각화를 보다 깊이 있게 연구하고자 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본문에서 가능한 많은 사진과 실측도면을 실었으며 부록에서는 한국 암각화 유적의 위치, 형상, 연구과정 및 중간결과, 논쟁점에 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학술정보를 전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 책에 실린 도면과 사진은 모두 154장, 표는 10개이다.


[그림4] 『울산 반구대암각화 연구』, (한림출판사, 2013) ⓒ한림출판사

   필자가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연구사적 정리를 시도하여 논고로 발표할 때를 기점으로 하면 이 책이 나오기까지는 햇수로 꼬박 18년이 걸렸다. 그간 이 유적은 지방기념물에서 국보로 바뀌었고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다. 연중 6개월 이상 수몰되던 유적의 보존을 위한 논란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국가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지만 완전한 보존안을 도출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아무쪼록 이 책이 울산 대곡리 반구대암각화의 보존과 관련된 논란을 해소하려는 노력에 필요한 기본적인 학술정보를 제공해주고 연구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켜 구체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의 길잡이로까지 쓰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