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麗史 地理志의 分析과 補正』(여유당, 2012)

0
217

『高麗史 地理志의 分析과 補正』(여유당, 2012)


윤경진 (중세1분과)

   문헌사학은 문헌 자료를 분석하여 역사상을 그려내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따라서 어떤 자료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연구 내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남아 있는 문헌 자료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의도적이지 않은 오류, 의도적인 조작이 내포될 수 있다. 원전의 기록 과정에서, 자료의 편집 과정에서, 그리고 자료의 보존 과정에서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한다. 때로는 기록자 또는 편집자가 의도적으로 내용을 왜곡하기도 한다.

분석과 비판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진실을 찾아가는 것이 역사학의 기본 임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자료 비판은 연구 과정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작업이거니와 자료 자체에 대한 체계적인 탐구와 정리 또한 연구의 진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근래의 역사학 연구에서 자료에 대한 탐구는 활발하지 않다. 문화 컨텐츠의 열풍이 사회적 관심을 넘어 강단과 학계까지 강타한 탓이 크다. 컨텐츠의 생산에 직접 성과를 주지 않는 기초 분야에 관심이 떨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부작용이지만, 그것이 장기화 고착화되면 ‘진실의 복원’이라는 역사학의 본령이 흐려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진실’보다 흥미와 효용성에 치중하면서 현재의 구미에 맞는 ‘거짓’을 확대 재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금 자료 이해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실정이다.

[그림 1] 『高麗史』ⓒ문화재청 홈페이지

고려 지방제도는 고려 사회의 특성을 해명하는 분야로 간주되어 그동안 여러 학자들이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자연 기초 자료인『고려사』지리지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하지만 기준 시점과 자료 구성 방식, ‘고려초’ 연기의 비정에 대한 논의 정도가 있었을 뿐, 자료 자체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지리지의 내용을 포괄적으로, 또는 단편적 기사들을 적절히 활용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고려사』지리지에는 내용을 그대로 가져다 쓰기에는 너무 많은 문제와 한계가 보인다. 이 문제는 지리지가 다양한 원전, 그것도 온전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편집한 자료라는 데서 연유한다. 불완전한 원전을 활용하면서 내용 누락과 글자 오독, 편집 오류, 비정 오류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 때 오류의 발생 과정을 판단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해 역으로 본래의 진실을 찾을 수 있다. 오류 분석과 보정(補正)이라는 방법론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림 2] 『高麗史 地理志의 分析과 補正』(여유당, 2012)』ⓒ출판사 여유당

자료 보정에 처음 주목하게 된 것은 필자의 지방제도 연구가 본격 시작될 때인 1997년 향리제의 구조에 대한 논문을 쓸 때이다. 당시까지 모든 연구자들은『고려사』선거지 향직조 성종 2년 기사에 나오는 형리제 개편 기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당대등이 호장으로, 대등이 부호장으로 개편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금석문 자료를 찾아보면서 당대등-대등의 관계와 호장-부호장의 관계가 전혀 다르다는 점과 금석문에 널리 보이는 시랑에 해당하는 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눈에 띠었다. 연구를 진행하며 대등이 호장의 후신이며, 부호장의 전신은 시랑이라는 이해를 얻게 되었다. 당대등은 대등의 대표로서 호장의 대표인 상호장으로 연결하였다. 이와 같이 보정하고 나니 선거지 기사는 물론 금석문의 사례들을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후 필자의 고려 지방제도 연구에도 늘 자료 보정 작업이 수반되었다.

   이렇게 10여 년의 연구를 진행하면서『고려사』지리지에 대한 전면적인 분석과 자료 보정을 도모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러던 중 2007년 한국연구재단에서 새로 시행된 인문저술지원 사업에 응모하여 선정됨으로써 본격적인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고려사』지리지는 일견 비슷한 내용이 반복적으로 들어 있는 단순한 자료로 보기 쉽다. 그러나 기사 각각이 어떤 자료에 근거하여 어떤 원칙에 따라 정리된 것인가를 탐구하자 논증해야 할 내용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기사 하나를 보정하기 위해 별도의 논문을 작성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필자가 연구 기간 중 다룬 문종 23년 ‘대경기’ 기사와 문종 21년 남경 설치 기사가 그 예이다. 이들은 후대의 기사를 편집자가 의도적으로 문종대의 일로 고친 것이었다.

   당초에는『고려사』지리지에 대한 보정본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지만, 예정된 최장 5년의 연구 기간에 한 권의 책으로 마무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에『고려사』지리지의 기준 시점에 이르기까지 연혁 정리 방식괴 원칙을 순차적으로 분석하는 것으로 연구 범위를 제한하게 되었다. 그 결과 지리지의 기준 시점과 정리 방식에 대한 기초적 이해, 고려 이전 연혁의 토대가 된『삼국사기』지리지의 기준 시점과 삼국 분속에 대한 검토, 태봉의 지방제도를 포함한 나말려초 연혁 변동의 복원, 고려초기 읍호 개정 기사의 원전과 기사 정리 방식, 기준 시점가지의 영속관계 변동의 정리 방식 등 5개 주제로 10편이 논문을 수록하였고, 자료의 성격에 대한 기초적 이해를 위해 안적(案籍)의 속성을 정리한 논문을 보론으로 추가하였다.

『고려사』지리지는 몇 단계의 일괄자료를 토대로 각 군현의 연혁 변화를 추출하고 여기에 일부 개별 자료를 추가한 것이다. 자료간 비교를 통해 상대적 연혁 변화를 추출하기 때문에 개별 기사가 개별적인 연혁 사실을 반영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자료들은 불완전하여 항목 누락과 글자 결락이 있으며, 내용의 기준 시점을 알 수 없거나 간지로 되어 있다. 이로 인해 찬자의 판단이 개재되면서 또다른 오류가 생기기도 하였다. 편집 원리와 방식, 그리고 오류의 발생 방식을 통해『고려사』지리지의 주요 기사가 어떤 내용을 반영하는지 찾아가는 것이 이 책의 주 내용을 이룬다.

   이 책은『고려사』지리지의 이해에서 최종적인 결과가 아니다. 정치적 의도에 따라 변형된 기사에 대한 논고는 책의 구성에서 벗어나 있어 싣지 못했다.『고려사』지리지의 이해를 위해 대비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자료, 예를 들어 식화지 외관록 기사의 분석도 역시 포함되지 않았다. 이들은 몇 편의 연구를 더하여 후속편으로 엮을 예정이다.

   이 책에서 시작한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고려사』지리지의 보정본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부지런히 연구를 더하여 빠른 시일 안에 완성을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