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한미경제안정위원회의 설립과 안정화정책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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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위논문

「1950년 한미경제안정위원회의 설립과 안정화정책의 성격」
(2012. 2.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석사학위논문)

 

권혁은(현대사분과)

 

  한국현대사 전공자로 대학원에 들어온 직후부터 경제사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논문을 쓸 시기가 되니 어떤 주제로 써야할지 막막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선배들의 조언을 따라 무작정 국사편찬위원회의 해외수집자료군 자료목록을 뒤지기 시작했다. 꽤 오랜시간 동안 자료목록을 뒤지다 어느날 우연히 눈에 들어오는 자료박스를 발견했다. 학위논문의 기본자료가 된 한미경제안정위원회(Korean-American Economic Stabilization Committee)의 회의록 자료들이었다.

이전에도 여러 경제사 연구서를 통해 이승만정권 초기 주한ECA와 한국정부가 공동으로 설립했던 한미경제안정위원회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자료들을 통해 무엇을 발견할 수 있고 기존 연구와는 어떤 다른 얘기를 할 수 있을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자료 정리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지금 떠올려보면 참 무턱대고 용감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주제에 대한 확신이 없는 채로 논문을 시작했기 때문에 수차례 논문을 접어버리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다. ‘논문을 쓸 만큼의 자료를 확보할 수 있을까?’, ‘이 주제가 연구사적 의의가 있을까?’라는 고민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석사논문을 쓰면서 누구나 겪어야하는 과정이건만, 당시의 나에게는 매순간이 고민스럽고 절박했던 것 같다.

내 학위논문의 제목은 「1950년 한미경제안정위원회의 설립과 안정화정책의 성격」이다. 한미경제안정위원회의 활동기간은 1950년 초반의 6개월로 한정되었지만, 위원회의 설립은 한미경제원조협정 체결 이후 활동을 시작한 주한ECA가 1949년 1년 동안 원조계획을 실행하며 부딪친 문제들이 누적된 결과였고, 원조정책과 한국의 경제정책, 혹은 경제구조의 접합이라는 거시적 배경을 포함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위원회의 활동기간 6개월이 아니라 미군정기의 경제구조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처음 이 주제를 들고 갔을 때 지도교수님께서는 기존의 연구가 한국정부의 정책론이나 고위급 차원의 한미관계의 맥락에서 한미경제안정위원회를 부분적으로 다뤘다면, 나는 구체적인 정책의 내용과 맥락을 파악하는 쪽에 초점을 맞추라고 말씀해주셨다. 그 말씀에 따라 위원회가 제기한 정책이 도출된 구체적 배경을 파악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러나 위원회가 ‘안정화정책’이라는 포괄적 이름으로 제시한 정책이 재정과 미곡정책에서부터 환율정책까지 경제 전 분야를 포괄하다보니 그 조차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각 정책에 대해 연구자로서 내 나름의 ‘평가’를 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곤혹스러웠다. 이런 여러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많은 선생님과 선배들의 도움으로 부족하나마 논문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한미경제안정위원회는 주한ECA가 한국정부의 경제정책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위해 만든 매개체였다. 주한ECA는 원조협정에 의해 한국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지만, 이를 강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매개체를 갖지 못했다. 이로 인해 원조기구로서 주한ECA의 영향력은 자문수준에 그쳤고 이는 1949년 동안 업무를 진행하면서 원조 목표에 맞게 한국 경제를 조정하는 것을 어렵게 하였다. 마침내 1949년 말 미가가 급등하고 재정적자로 인플레이션 우기가 발생하자, ECA는 한국정부와 함께 한미경제안정위원회를 설립하였고 인플레이션을 해결할 독자적인 권한을 부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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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1947년3월-1950년6월 월말통화발행고 및 월평균 서울도매물가지수

미국의 강력한 요구로 설립된 한미경제안정위원회는 1950년 1월부터 6월까지 안정화정책이란 이름으로 한국정부의 거의 모든 경제정책을 작성하였다. 그 핵심은 재정운영 합리화와 가격현실화였다. 위원회는 재정지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치안 및 국방비를 극적으로 삭감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조세를 증수하고 기부금을 제거하며 예산지출절차를 확립하는 등의 재정합리화 조치를 취하였다. 또한 한국정부의 가격통제정책이 재정적자를 증대시키고 경제의 특정 부문에 ‘은폐보조금’을 준다는 판단 하에 관업요금, 원조물자 가격, 환율부문의 가격현실화를 추구하였다.

위원회의 안정화정책으로 물가상승 추세는 몇개월만에 누그러졌다. 그러나 당시 재정운영의 불합리성은 상당부분 분단과 반공국가라는 정치사회적 구조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위원회의 정책은 인플레이션의 최대 원인이었던 치안 및 국방비를 그대로 인정하였다는 모순을 지녔다. 무엇보다도 위원회의 안정화정책은 인플레이션 해결이라는 대외적 목표를 표방하였지만 실제로는 재정운영을 합리화하고 가격관계 왜곡을 바로잡아 ECA원조계획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급속한 ‘대내조정적 성격’을 가졌다. 따라서 안정화정책은 국내경제에 충격을 줘서 중소상공업자, 수출업자, 도시서민층, 농민의 희생을 가져올 여지가 있었다.

1960년대까지 한국의 경제정책은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 하에서 만들어졌다. 논문을 쓰면서 1960-70년대까지의 연구사를 검토한 결과, 이 시기 미국의 요구와 한미간 쟁점이 전후에도 계속 제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한미경제안정위원회는 경제정책에 관한 한미간 쟁점이 제기된 최초의 場이자, 미국이 한국정부의 경제정책에 체계적으로 개입했던 최초의 사례였다고 볼 수 있다. 이후 한국정부는 때로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고 때로는 거부하면서 경제정책을 만들어 나갔다. 따라서 한미경제안정위원회를 둘러싼 정치, 경제적 맥락은 1950-60년대 한국의 발전전략과 한미관계의 본질을 해명하는 데 일정정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한없이 부족한 논문이고, 구체적 정책에 대한 확실한 평가를 내리지 못하여 마음 속으로 걸리는 점이 많지만, 그래도 논문을 통해 당시 전체적인 한국의 경제구조를 파악할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앞으로 논문을 쓰면서 얻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한국경제사 연구를 진행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