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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역사학 및 뉴라이트역사학 비판] 극우 기반의 사이비 역사, 어떻게 ‘진보’로 둔갑했나_안정준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5.11.05 BoardLang.text_hits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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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5년 10월(통권 68호)

[제1발표] 
 
 

극우 기반의 사이비 역사, 어떻게 ‘진보’로 둔갑했나

 

 

안정준(서울시립대학교)

 
 
□ '변신'을 꾀하는 사이비 역사
 
사이비 역사는 ‘대아시아주의’로 대표되는 일본 제국주의・식민주의의 사유 방식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반(反)식민주의를 내세우지만, 사실상 식민주의 역사관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사이비 역사는 역사를 수단으로 하여 독재정권과 보수정권을 비호하는 국수주의 이념을 제공하기도 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대통령의 국수주의적 고대사 인식을 부추기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에 명분을 제공했다. 그랬던 그들이 최근 정권 교체를 틈타 ‘역사바로세우기’라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역사학계・고고학계에 ‘뉴라이트’와 ‘식민주의’라는 굴레를 씌우고 있다.
 
사이비 역사는 20세기 전반의 고대사 인식, 당시 민족주의 사학자의 낙랑군 위치와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일부 해석을 차용했는데, 그로부터 아무런 학술적 진전이 없는 가운데 똑같은 사료와 똑같은 해석만을 제시하면서 이념적 외형만 ‘진보’로 둔갑시켰다. 그들의 황당한 변신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부 ‘역사’ 논쟁의 공허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림 1. 최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역사 바로세우기 범국민 전진대회」의 참석자들
이들은 ‘역사주권’을 회복하자고 외치는 가운데 학교 역사교육 강화와 역사연구기관의 운영을 정상화를 달성하겠다고 내세웠다. 
출처:  「역사 바로세우기 범국민 전진대회」 『연합뉴스』 2025년 8월 28일
 
 
□ 낙랑군을 둘러싼 식민주의 역사관
 
식민주의란 제국주의의 결과로 나타난 식민지 상태, 이를 목표로 한 제반 정책과 이념을 총칭한다. 20세기 전반 일제는 조선의 식민 통치에 역사를 활용했다. 일제는 근대의 중국과 조선․일본의 상황을 고대사에 투영하여 한국고대사에 대한 작위적 서사를 구축하였는데, 그 중요한 소재로 낙랑군의 역사를 활용했다. 낙랑군은 한(漢) 제국이 고조선을 멸망시킨 후 그 중심지였던 한반도의 서북부 지역에 두었던 행정 명칭인데, 4세기 전반까지 420여 년간 중국 왕조의 지배하에 유지되었다. 일제는 ‘중국인’에 의해 ‘한국인’이 지배된 낙랑군의 역사상을 상정했으며, 이를 근거로 ‘외세의 개입과 영향에 의해 이루어진 한국사의 타율적인 고대사상’을 창출하였다.
 
신채호, 정인보 등의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이에 강하게 저항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20세기 전의 타율성론과 ‘지리적 결정론’의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즉 낙랑군 존재가 곧 한국사의 타율성을 의미한다는 일제의 논리 자체를 부정하지 못했다. 이에 그들은 낙랑군이 한반도에 두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수용하지 않는 가운데, 근거로 제시된 관련 고고 발굴 조사의 결과마저 부정했다.
 
 
그림 2. 1993년 발굴 후 1994년 평양에 개건된 단군릉의 모습
북한 정권이 수도 평양시의 역사적 정통성을 위해 조작한 유적으로 보인다. 현재 북한 이외에 단군릉을 인정하는 학자들은 없다. 북한 역사학계의 정치․이념적 편향성과 비학문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역사학도 이러한 20세기 전반 민족주의 사가들의 낙랑군 이해를 그대로 답습했다. 현재 북한의 역사학계는 고조선의 수도 평양은 함락되지 않았고, 낙랑군은 ‘부수도’가 있던 요동 반도 일대에 두어졌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평양 일대에서 출토된 수많은 고고 자료가 낙랑군의 것임을 부정하고 있다. 일제가 낙랑군을 이용했던 배경인 타율성론, 특히 지리적 결정론이 갖는 문제점을 간파하지 못하고, 사실상 이를 내면화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는 20세기 전반 민족주의 사가들의 연구와 북한 역사학이 갖는 근본적인 한계였다.
 
 
□ 사이비 역사와 역사의 도구화
 
현재 한국 사회 일각에서도 20세기 전반 식민주의 역사관에 입각하여 고대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특히 사이비 역사가들은 일제가 주로 활용했던 ‘낙랑군’의 위치 자체를 부정하며, 심지어 개중에는 한반도의 역사를 중국 대륙의 역사로 대체하자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는 자들도 있다. 그들이 사료와 고고자료를 왜곡하거나 부정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비학문적이지만, 무엇보다도 우려스러운 것은 일제 식민주의 역사학의 ‘타율성론’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식민주의 역사학은 한반도의 역사가 대륙과 해양에 타율적으로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역사의 숙명론을 내세운다. 이른바 ‘타율성론’이다. 이는 지리적 위치에 따라 역사가 결정된다고 본다는 점에서 비역사적이며, 고대사를 통해 일제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였다는 점에서 정치적이다. 식민주의 역사학 극복은 바로 이러한 타율성론의 논리를 벗어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인식이다. 하지만 사이비 역사는 여전히 20세기 초에 머물러 있다. 그들은 일제가 주로 활용했던 ‘낙랑군’ 위치와 ‘임나일본부’라는 주제를 계속 ‘맴돌고’ 있다. 제국주의・식민주의를 비판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사유 방식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또한 사이비 역사는 일제가 그러했듯이 과거의 텍스트나 각종 사건을 한국과 중국, 일본이 처한 현재의 대립 상황에 그대로 투영하여 무분별한 ‘역사의 현재화’를 진행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역사를 수단으로 삼아 자신들의 이념과 지향을 정당화하고 지지기반을 확보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과거에는 독재정권과 보수정권을 비호하는 국수주의 이념을 제공하기도 했으며, 특히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대통령의 국수주의적 고대사 인식을 부추기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시도하는 명분을 제공하였다.
 
 
그림 3. 박근혜 정부 상고사ㆍ고대사 강화 움직임
박근혜 정권 당시 사이비 역사가들은 대통령의 국수주의적 고대사 인식을 뒷받침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의 명분을 제공해왔던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윤석열의 내란 이후 이재명 정권이 들어서면서 극우 중심의 역사 교육단체인 ‘리박스쿨’과 뉴라이트 사관에 대응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이 과정에서 사이비 역사는 기존의 배타적・국수주의적 기조는 유지한 가운데 외형만 ‘진보’로 둔갑시키는 기만적 행위를 자행했다. 그들은 역사학계가 뉴라이트 사관과 ‘식민사관’을 따른다고 규정하면서 또다시 ‘친일․식민사학의 추종자’라거나, ‘임나일본부설에 동조한다’는 거짓 선동을 했다. 여기에 일부 정치인들과 시민단체, 몇몇 독립운동 관련 기념단체들이 동조하기도 했다. 이른바 ‘역사바로세우기’라는 명목으로 각종 역사 관련 국가기관장의 인사 개입과 해당 기관들이 진행할 역사 관련 프로젝트에 관여할 것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치권 일각에서 우리 사회의 낡고 구태의연한 관념에 대한 경계 없이 ‘올바른’ 역사관을 세운다는 명목하에 자체적인 이념 강화와 지지층 결집에만 골몰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도 깊어진다. 이러한 ‘빈틈’을 파고든 사이비 역사의 비학문적 활동과 검증되지 않은 주장은 우리 사회의 공적 담론을 오염시킬 위험성이 크다. 극우주의가 발호할 토양을 제공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 현재까지 학계가 논의해 온 ‘식민주의’의 문제점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낡은 이념’을 위해 역사를 함부로 ‘수단’화하지 않는 것이 우리 시대의 역사관을 만들어가기 위한 선결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