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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논문을 말한다] 현재와 현재의 대화?: '현재주의(presentism)'의 확산과 '국사'의 탄생_홍선이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5.06.02 BoardLang.text_hits 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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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5년 5월(통권 64호)

[나의 논문을 말한다] 
 
 

현재와 현재의 대화? : '현재주의(presentism)' 확산과 '국사'의 탄생

- 『해방~1980년대 현재주의(presentism) 확산과 '국사' 교육의 변화』 -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24. 08.)

 

홍선이(현대사분과)

 
 
1. 현재주의, 현재의 '봉기' 혹은 '횡포'? 
 
전통적인 역사학에서 현재주의(presentism)는 부정적으로 인식되어 왔다. 과거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은 랑케의 역사주의(historism)는 현재적 가치나 관심의 개입을 심각한 시대착오이자 학문적 왜곡으로 간주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주의는 역사가의 주관적 편향과 불성실함을 폄훼하는 용어였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현재주의 학파’의 봉기(revolts)가 일어났다. 크로체는 “모든 진정한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고 선언했고, 미국의 신사학자들은 ‘유용한 역사’를 내세우며 역사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이후 현재주의는 모든 역사 연구와 서술이 ‘현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인식론적 성찰과, 모든 역사가 ‘현재를 위하여’ 존재해야 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하며, 과거를 현재의 가치와 관심을 기준으로 해석하는 사유 경향을 의미하게 되었다. “현재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Chris Lorenz, 2019)는 말처럼, 오늘날 서구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는 ‘현재를 향한 열망’으로 가득하다.
 
 
그림 1. 1901~2019년 학술문헌에서 언급된 “presentism” 빈도 추이
출처: Google Ngram Viewer
 
 
이런 흐름 속에서 현재주의에 대한 반성적 성찰도 등장하고 있다. 2002년 린 헌트(Lynn Hunt)는 ‘현재주의를 반대한다’는 글에서 ‘어떠한 ‘이즘’도 학자적인 추종자를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은 오늘날, 현재주의가 우리를 괴롭힌다.’고 경고했다. 2022년 미국역사학회장에 취임한 제임스 스위트(James H. Sweet)도 “역사는 역사인가? 정체성 정치와 현재의 목적론”이라는 글에서 “끊임없는 현재주의의 시대”의 역사학은 과거에서 현재와 예측 가능한 동일성만을 추출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다수의 역사학자와 교사들이 그의 글을 강하게 비판하며 회장직 사퇴를 요구했고, 결국 그는 공개 사과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오늘날 역사학이 현재의 정치적 당위성과 얼마나 밀접하게 얽혀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의 질문은 여기서 출발한다. 현재주의는 역사학의 진화인가, 혹은 “현재의 횡포(tyranny of the present)”인가? 물론 과거는 현재의 시선을 통해서만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선이 모든 것을 압도할 때, 과거는 낯섦과 타자성을 상실하고, 단지 현재의 목적에 봉사하는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은 서구 역사학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학과 역사교육에도 유효하다. 특히 해방 이후 ‘국사’의 형성과 전개 과정이야말로 현재주의의 관점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나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국사’의 형성을 현재주의의 확산이라는 맥락에서 재조명하고자 했다.
 
본 연구가 연구 방법 면에서 기존 연구와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은, 한국사학계 및 역사교육계는 물론 서양사학계의 이론 수용과 지식 네트워크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1967년 한국사연구회 창립 이전까지 한국사만의 독자적인 학회는 존재하지 않았고, 서양사나 동양사 연구자들이 국사 관계 연구나 활동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따라서 적어도 1960년대 전까지 ‘국사’ 연구와 교육은 전체 역사학계의 흐름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본 연구는 국한사학계 내부에만 한정하지 않고, 서양사학계 이론의 유입과 그것의 수용 과정을 지성사적으로 분석했다.
 
 
그림 2. 한우근이 크로체의 저작들을 탐독한 흔적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한우근 기증 문고
 
 
자료 면에서는 해방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 주요 학술지와 개설서를 분석 텍스트로 삼았다. 그러나 실증연구만으로는 저자의 역사관을 추적하기 어렵다. 따라서 주요 역사학자의 전집이나 『思想界』 등 종합계간지에 실린 사론류의 글들과 원로 역사학자들의 회고록이나 구술 자료 등도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검토하였다. 또한 퇴직한 역사학자들이 기관에 기증한 문고를 통해 독서 편력과 이론 수용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추적하고자 했다.
 
 
2. 해방 이후 현재주의 확산과 '국사'의 탄생
 
전후 역사학계에 ‘해방 세대’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해방, 분단, 전쟁을 직접 겪은 이들은 전공의 차이를 넘어 민족국가 수립, 민주주의, 근대화 등 현실적 과제를 깊이 고민했다. 이들은 “골동취미적인 것에서 벗어나 현실 의미를 찾는 학문”을 지향하며, 1952년 역사학회, 1955년 역사교육연구회를 창립했다. 이들은 “현재에 유익한 역사만이 과학적 역사”라는 현재주의 명제를 수용하고 확산시켰다. 크로체의 “모든 역사는 현재사”라는 격언은 유행처럼 회자되었고,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한국에서 빠르게 번역되어 역사학 입문서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이로써 ‘객관성=과학성, 주관성=비과학성’이라는 이분법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는 단순한 과목명을 넘어선 ‘국사’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국사’는 민족, 민주, 통일, 발전, 근대 등 시대적 의제를 통해 현재를 정당화하고 미래를 기획하는 정치적 도구였다.
 
운동에서 학문으로, 민족주의 사학의 아카데미즘화
 
해방 전후 문헌고증 중심의 실증사학이 주류가 되면서, 신채호·박은식 등의 민족주의 사학은 “역사하는 아마추어들”로 폄하되었고, 그들의 서술은 주관적이고 당파적이라는 이유로 학문에서 배제되었다. 해방 세대의 학문적 진출은 이 흐름을 바꿨다. 당면 과제 해결을 목표로 하는 현재주의 사유가 확산되며, 민족의 현재 문제를 반영하지 않는 역사는 ‘죽은 역사’로 낙인찍혔고, 민족의 현재를 고민하는 역사만이 ‘살아 있는 역사’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민족주의 사학은 문헌고증 중심의 실증사학보다 더 ‘근대적’이라는 인식을 얻었다. 1967년 민족사관의 ‘과학적 수립’을 목표로 한 한국사연구회 창립은 이 아카데미즘화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역사의식'의 시대, 이념의 장이 된 '국사'
 
 
그림 3. 1950∼1989년 “역사의식” 용어가 포함된 기사
출처: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1970년대 이후 현재주의가 확산되면서 ‘역사의식’에 대한 관심도 급부상했다. 역사의식은 과거 사실 자체보다는 현재와 미래의 이념적 실천을 중시하는 역사철학적 태도이다. 이 개념은 전통의 정화, 산업화, 민주주의, 민족통일과 같은 시대적 과제를 실현하는 데 목적을 두었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국사교육은 권위주의 정권, 학계, 재야 세력 등 다양한 주체들의 이념적 경합의 공간이 되었다. 그 결과 국난극복사, 상고사 미화, 내재적 발전론, 분단시대론, 민중민주주의론 등 현실 지향적이고 목적론적인 역사 서술이 정당화되었다. 이와 같은 ‘국사’의 강한 이념 지향성은 일제 식민주의 역사관의 유산을 극복하고 ‘후진’의 역사를 탈피하려는 시대적 요청에 대한 부응이었으며, 실제로 식민지배, 분단, 전쟁 등으로 야기된 한국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견인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1980년대 이후의 ‘저항적 역사의식’은 통일이나 민중과 같은 주변화된 가치를 역사학의 중심 의제로 소환했다는 점에서 시대적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역사의식은 ‘국사’에서 이념이 실증을 압도하게 만들어 학문성과 괴리되는 문제를 드러냈다. 이는 현재주의가 특정한 현재와 미래를 정당화하는 이념적 수단으로 작동하게 되는 한계를 드러냈다.
 
현재주의의 원근법, 본질화 된 근대와 지워진 과거
 
랑케는 “모든 시대는 신에 직결된다.”고 보았지만, 현재주의는 ‘현재가 과거보다 진보했다.’는 근대주의적 전제를 내포한다. 이는 근대를 역사 발전의 목적지로 설정하고, 오래된 과거보다 근대 이후 역사를 중시하는 ‘원근법적’ 시대 평가로 나타난다. 즉, ‘목적론적 현재주의’는 과거를 현재로 가는 과정으로 서술하고, ‘원근법적 현재주의’는 현재에 가까운 시대에 더 큰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다. 실제로 ‘국사’에서 고대·중세보다 근현대사가 더 본질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전근대사 서술은 내재적 발전론을 통해 근대를 향한 인과적 경로로 단선화되었다. ‘내재적 발전론’과 ‘원근법적 현재주의’가 식민사관 극복과 현대사 복원에 기여한 측면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근대를 필연적·우월한 시간으로 신성화하며 근대주의 서사를 강화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3. 과거와의 대화를 다시 시작할 때
 
E.H. 카(Carr)의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끝없는 대화”라는 말은, 현재의 문제의식 없이는 역사 서술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해방 이후 현재주의의 확산 속에 등장한 ‘국사’는 탈식민, 분단, 전쟁, 개발독재 등 한국 사회의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역사적 자원으로 기능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라는 단단한 토대를 잃고 ‘현재’만을 당위로 삼을 때, 역사는 삶의 깊이를 축소하고 경험의 지평을 협소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20세기 후반 한국의 ‘국사’는 과거와의 대화라기보다, 현재들 사이의 자기 정당화 독백은 아니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역사학과 역사교육은 특정 이념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아니라, 삶의 다층성을 모색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물론 19세기 역사주의로의 회귀가 대안일 수는 없다. ‘사실이 스스로 말하게 하라’는 랑케의 명제는 실현 불가능하며, 국가주의적 도그마로 고착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역사주의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 역사성과 개체성에 대한 진지한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역사학은 과거의 타자성에 귀 기울이며, 현재의 자기 확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현재의 횡포’를 넘어서기 위해, 이제 다시 과거와의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