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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회의 참관기] 한・중 관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논하다_이명제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3.06.28 BoardLang.text_hits 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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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3년 6월(통권 42호)

[학술회의 참관기] 

 

한・중 관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논하다


- 중화제국의 성쇠와 한반도의 대응 참관기 -


 

이명제(중세2분과)


 

중국은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초강대국의 면모를 유지해왔다. 21세기에 접어든 현재에 이르러서도 중국은 잃어버린 세계 최강의 지위를 되찾기 위해 분주히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는 듯하다.
중국의 흥망성쇠는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중국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한반도는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적어도 2천 년 이상의 기간 동안 한반도는 중국이 일으키는 파도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약소국의 위치에 해당했던 한반도의 운명은 수동적인 것처럼 비춰졌고, 무력감을 감추기 위해 중국을 ‘절대악’으로 규정하는 일들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역사상의 중국은 결코 단일한 모습이 아니다. 그리고 한반도에 존재했던 왕조들도 끊임없이 변화하였으며, 같은 왕조 내에서도 시기별로 다양한 면모를 보인다. 2023년 6월 9일 개최된 “중화제국의 성쇠와 한반도의 대응” 공동학술회의는 바로 전근대시기 중국과 한국의 다면적인 모습을 확인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 글에서는 학술회의를 통해 배운 바를 소개하고자 한다. 다만 글쓴이의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표, 토론자 선생님들의 의도를 온전히 전달하지 못할 수도 있는 점에 대해 여러 선생님들의 너른 양해를 구한다.

 

첫 번째 기조발표는 노영구 선생님의 “중국 위협론의 역사적 실체와 한국의 역할”이었다. 본 발표에서는 2000년대 이후 진행되고 있는 미중 패권경쟁을 조명하면서, 중국을 패권 국가로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현실적으로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음을 역설하였다. 또한 국제질서는 강대국이 단독으로 견인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여러 국가와 함께 만들어가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특히 적극적인 대외정책을 표방하였던 15세기 조선과 명과의 일체화를 추구하였던 16세기 조선의 사례를 비교하며 향후 한국의 대응 전략을 제시하였다.
두 번째 기조발표는 박태균 선생님의 “전근대 한중관계에 대한 통념이 주는 현재적 의미”였다. 본 발표에서는 우선 현재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정태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통념에 대해 비판하였다. 특히 각 왕조별로, 그리고 왕조 내에서도 한・중 관계가 다이나믹하게 변화하였음을 강조하였다. 또한 조공외교를 ‘사대’를 통한 ‘굴욕’으로 바라보는 기존의 해석보다, ‘편승’이라는 외교적 전략의 일종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였다.
발표의 첫 번째 순서는 정동훈 선생님의 “몽골제국의 붕괴와 한반도의 군사화, 그리고 왕조 교체”였다. 본 발표에서는 강한 군사력으로 정주민의 이탈을 방어해왔던 몽골제국이 14세기 붕괴하기 시작하면서 동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난 군사화에 주목하였다. 고려 역시 빠르게 군사화의 길로 접어들었는데, 이미 평화에 젖어있었던 데다가 예측 불가능한 왜구의 침입에 맞서기 위해 즉자적인 대응 전략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대응은 소수 무장 세력의 흥기로 이어졌으며 이성계 세력이 조선의 건국 세력이 되면서 조선 초까지도 이러한 군사화의 분위기가 유지되었음을 주장하였다.
두 번째 순서는 이규철 선생님의 “15~16세기의 조선은 부국강병을 꿈꾸었는가?”였다. 본 발표에서는 ‘정벌’이라는 대외정책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강조하였다. 조선 왕조 개창 이후 100여 년 동안 10여 차례의 대외정벌이 단행되었는데, 정벌이 가지고 있는 공격성과 폭력성을 고려해보았을 때 외부세력의 침입에 대한 대응 차원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보았다. 즉, 15세기 조선은 성리학적 가치와 질서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도 경주하였지만, 그와 동시에 부국강병을 바탕으로 강한 국가가 되기 위한 지향도 가지고 있었음을 역설한 것이다. 또한 강한 조선에 대한 지향이 16세기에도 여전히 존재하였음을 지적하였다.
세 번째 순서는 구도영 선생님의 “16세기 조선의 ‘예의지국’ 위상과 ‘중화’”였다. 본 발표에서는 16세기 조선을 ‘중화 보편 추구의 시대’에서 ‘조선 중화의 시대’로 이행되는 과정으로 이해하였다. 특히 ‘예의지국’ 조선의 이미지가 현실 외교에서 조선을 예우하는 근거로 작동하였던 점을 강조하면서 조선 지식인 스스로 특별함을 내면화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17세기 조선중화의식이 16세기 ‘예의지국’ 국가 위상의 지속 안에서 배태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네 번째 순서는 김창수 선생님의 “19세기 전후 조선 군신(群臣)의 청 정세인식”이었다. 본 발표에서는 기존 연구들이 사상사적인 측면에서만 대청 인식을 검토하는 경향이 있었음을 비판하고, 청을 직접 바라본 사신의 시선에서 당대 국제 관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분석 대상으로는 청 황제에 대한 평가를 선정하였는데, 시기별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였다. 18세기 후반 ‘진하외교’와 건륭제의 우대조치로 인해 도덕적 비난이 소멸하는 한편, 19세기 초반에는 외교적 갈등으로 다시 부정적인 평가들이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1830년대 후반부터는 긍정적인 평가가 확대되고 1840년대부터는 긍정 일변도로 전환되는데, 이는 조선에 대한 청의 우대 조치 및 서양으로 인한 위기의식의 확산에서 기인하였음을 주장하였다.
다섯 번째 순서는 손성욱 선생님의 “청제국의 ‘주변’ 상실과 조선의 부상”이었다. 본 발표에서는 19세기 후반 청에 있어서 조선이 가지는 가치가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하였다. 19세기 중반 청은 조선에 대해 “조공을 하는 나라이지만 자주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하며 거리두기를 하였다. 1880년대 이후 청은 조선과 책봉-조공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변통을 통해 근대적 통상관계를 체결하였다. 점차 양국의 사무는 근대적 관계로 전환되고 있었지만, 청은 조선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자 할 때마다 전통적 관계를 호출하였다. 이러한 청의 태도는 중국을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藩]를 지키고자 했기 때문이지, 중화를 지키기 위해 속국[屬]을 보호하고자 함은 아니었다고 주장하였다.

다섯 발표에 대해 허태구, 이지영, 조영헌 세 분 선생님의 토론이 이어졌다. 허태구 선생님은 최근 한・중 관계사 연구의 흐름 속에서 각각의 논문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이지영 선생님은 현재적 의미에 보다 초점을 맞추며 오늘날 중국의 부상과 한반도의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각각의 연구가 기여할 수 있는 점에 대해 질의하였다. 조영헌 선생님은 중국의 시선에서 조선의 위치를 재조명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이번 학술회의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한・중 관계의 교훈과 전망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적지 않다. 특히 대외관계 연구의 첨병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한국역사연구회 중세국제관계사 연구반 연구자들의 치열한 고민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뜻 깊은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도 본 학술회의를 통해 많은 자극과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발표와 토론을 맡아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표한다. 우매하여 깊이 있는 참관 기록을 전달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서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