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26년> – 그들은 왜 복수에 나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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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 그들은 왜 복수에 나섰는가?

이정은(현대사분과)


<그림 1> 영화 26년 포스터

  제18대 대선 투표 당일, 전두환씨 부부가 아침 일찍부터 투표하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29만원을 전 재산이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는 제 11대·12대 전 대통령. 그는 1980년 광주항쟁에 대한 무차별 진압에 대해 사죄는커녕 이를 폭동이었다고 발언했다. 반면 당시 민주화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나섰던 광주항쟁 주역들과 유족들의 상황은 어떠한가? 여전히 그들의 목소리를 대한민국의 주류 언론에서 직접 듣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 와중에 <26년>이라는 영화가 등장했다. 강풀의 만화 원작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조차 갖가지 탄압과 보이지 않는 협박에 시달렸음은 익히 알려져 있다.

영화 속 <26년>의 주인공들은 사적 복수를 위해 나선다. 물론 <26년> 외에도 기존의 수많은 영화, 드라마가 다양한 주인공들의 복수를 다뤄왔다. 복수를 향한 영웅들의 이야기, 그 속에서 많은 이들이 통쾌함을 느끼며 대리만족해왔다. 그런데 <26년> 주인공들의 복수는 통쾌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아프다. 그들은 영웅이 아니다. 희생자였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희생자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문제는 이들의 울음이 영화의 극적 장치를 위한 픽션이 아닌,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며, 더욱이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26년>의 힘은 무엇보다 첫 장면,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사실을 서술하는 자막에서 나온다.

어떤 사회에서도 개인적 원한을 갖거나, 더 나아가 집단적 피해를 당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관건은 해당 사회와 구성원들이 그 피해자를 위로하고 대처하는 방식이다. 피해자를 방치한 채, 분노를 자극하는 사회는 <26년> 주인공들의 선택처럼 정의를 위한 사적 복수의 감행을 부추긴다. 이는 불의가 만연하고, 폭력이 정당화된 사회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 사회를 돌이켜 본다. 광주항쟁의 가해자들에게 엄정한 사법처리가 있었는가?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배상과 위로가 주어졌는가? 더 나아가 다시는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게끔 광주항쟁에 대한 역사적 경험을 여실히 기억하고 반성하고 있는가? 특별사면으로 풀려 나온 전두환씨가 여전히 반성 없이 잘 살고 있는 모습, 그리고 힘겹게 개봉한 영화 <26년> 주인공들의 사적 복수를 영화관에서나마 눈물 흘리며 응원하는 관객의 모습이 이 답변의 일부분을 대신하고 있다. 광주항쟁뿐만이 아니다. <남영동1985>가 일부분 보여주듯 독재에 저항했던 민주투사들부터, 대선직후에도 벌써 두 분이나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까지. 그들의 가해자는 과연 철저한 책임이 물어지고 비판받고 있는가? 그렇다라고 말 할 수 없는 현 조건을 영화 <26년>은 여실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뼈아픈 울림을 낳는다.

<26년>에서 경찰인 정혁을 제외하고 광주출신의 모든 등장인물은 광주항쟁의 책임자를 처벌하러 나서는데 갈등하지도, 대열에서 낙오하지도 않는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영합하고 싶은 그들의 욕망은 스크린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물론 영화이기에 가능한 묘사다. 하지만 그들을 광주의 이름 아래 하나로 뭉치게 하고 자신의 개인적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사적 복수에 나서게 만드는 힘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 치유되지 못한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상처의 공유가 그것이다. 다른 맥락이지만 이번 대선에서 나온 전라도 지역의 표심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읽힌다. 아직도 이들은 충분히 사과 받지 못했고, 피해를 입은 데 대한 응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무엇을 해야 할까.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 묻기가 진전되고, 나아가 이를 초래한 사회구조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되어야 한다. 너무나 원론적 답변이지만 절실한 과제다. 광주항쟁의 직접적인 당사자와 유족뿐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엄군으로 참가해 가해자가 되었던 당시의 청년들을 위해서도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로 남겨야 한다. 자신의 삶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반대편에 서서 더 큰 과오를 저지르는 경호실장은 영화 속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제18대 대선이 끝났다. 유신체제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분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물론 그 분은 선거를 앞두고 그나마 광주항쟁의 주범과는 달리, 인혁당 사건을 비롯한 유신체제 하의 희생자들에게 몇 마디의 사과를 남겼다. 하지만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닌, 앞으로 어떠한 행동으로 답할 지가 궁금하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아픈 과거를 잊지 않고 책임을 요구하고 비판하고 인식하는 국민들의 자세다. 먼저 죽어간 희생자들의 고통에도 모자라, 그 고통이 대물림되고 누적되는 현 시대의 문제를 언제까지 되풀이하며 방관해야 할까.

한 가지 더. <26년>에서조차 자본을 지닌 대기업 회장이 있었기에 인물들은 광주항쟁의 주범에게 접근이나마 가능했다. 자본과 권력 없이도 ‘정의의 실현’을 가능케 하는 영화 같은 현실이 더욱 절실해 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