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2016년도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이임사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작성일
2016-12-30 14:01
조회
161

회원 여러분,


다사다난했던 병신년은 君舟民水라는 사자성어처럼 성난 민심의 물결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역사를 연 한해였습니다. 좌절 속에서 함께해온 빛나는 얼굴과 힘찬 목소리가 더 없이 값진 한해였습니다.

이 격동의 해에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소임을 맡았던 것은 제 생애 가장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입니다. 이제 책임을 내려놓고 떠나려니 우선 많은 분들께 도움 받았던 것들이 떠오릅니다. 환상의 드림팀인 29차년도 운영위원님들을 만난 것은 제게 행운이고 행복이었습니다. 또 긴급하게 도움을 청할 때마다 마다하지 않고 성원해주신 원임회장님들, 갑작스러운 부탁에도 흔쾌히 응낙해주신 회원님들은 든든한 지원군이었습니다.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부족한 능력에 과분한 회장 소임을 맡으면서 저는 두 가지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나는 연구회 창립 때 상임위원으로 인연 맺은 이후 연구회로부터 받았던 은혜를 갚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젊은 회원 대개가 그러하듯이, 젊은 시절 공부를 하고 한 길을 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대를 공감하며 함께 역사 연구를 궁리하는 공모자들과의 만남은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아직 기운 있을 때 보은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농사짓는 마음이었습니다. 농사짓는 사람은 매해 새로운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일구고 地力을 회복하기 위해 施肥도 하고, 농기구도 새로 손봅니다. 멈추지 않는 신성한 노동만이 결실의 축복을 주기 때문입니다. 연구회는 여러 사람이 일구어 온 소중한 땅입니다. 이 땅의 생명력은 매번 새로운 농사가 지어질 때 이어집니니다. 그래서 올 한해, 땅을 고르고 수로를 내고 퇴비도 만들며 농기구도 손보듯이 일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마음은 마음일 뿐 제 능력은 부족하였기에, 올 한해 연구회가 거둔 수확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29차년도 운영위원님들의 능력과 회원님들의 헌신 덕분입니다. 되돌아보니 올해는 『역사와 현실』 100호 출간의 영광을 함께 할 수 있었고,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아름다운 웹진의 재탄생도 보았습니다. 또 연구역량을 다변화하고자 하는 회원들의 재기발랄한 이야기도 있었고, 연구발표회 지원금도 여러 곳에서 받아서 조금은 더 책임감과 여유 속에서 학담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에 대해서는 박근혜 정권의 국정 농단 탄핵 국면과 맞물려 일관되게 반대의 입장을 견지하며, 여러 차례 대규모의 성명서를 통해 결집된 행동의 전통을 이어갔습니다. 내년에는 국정 역사교과서 1년 유예가 발표되었기에, 역사 교육 전반에 대한 보다 전문적이고 복잡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 예상됩니다.
회원 여러분,

저는 회장직을 마치면서 저희 연구회가 한국사회에서, 그리고 세계 속에서 지속적인 생명력을 발휘하는 옥토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창립 30주년을 앞두고 있는 저희 연구회는 그동안 여러 회원님들의 노력과 헌신의 결과, 학계 내외로 권위를 인정받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한편으로는 이미 셋팅된 것에 익숙해지고, 조직은 거대한 규율이 되어버린 측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연구회가 귄위적이다,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 세대교체가 되어야 한다 라고 합니다. 매번 새로운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우리안의 보수를 경계하고, 지루하지만 지속적인 소통이 필요합니다. 지나온 길을 백미러로 되돌아보며 학문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변화와 혁신이 필요합니다. 지난시절의 수확을 종자 삼아 매해 새로 농사짓듯이 앞으로 나가야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시대에 역사학은 어떻게 새로운 생명력을 창출할 것인가, 분단 70년이 지나면서 남북의 분단이 고착되는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역사학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변화하는 시대에 시민과 소통할 수 있는 역사연구의 내용과 방법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새로운 학문 후속세대들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등을 고민하고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합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하여 연구의 혁신과 장기적 발전 방안을 논의하며, 미래 역사 연구자로서 희망의 길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준비가 각 분과와 위원회의 자발성과 기획력이 최대한 발휘되는 것에서, 또 내년에 출간될 『시민의 한국사』, 연구회 창립 30주년 준비 사업, 대중화·연구사업단startup, 개편된 웹진 등에서 시도되면 좋겠습니다.

회원여러분,

취임 인사에서 저는 새로운 길을 갈 때는 두려움과 난관이 있지만 ‘감미로운 긴장’도 있다고 했었습니다. ‘감미로운 긴장’을 잘 즐기면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성과를 이룰 수 있으니, 함께 새로운 길을 가자고 청했었지요. 올 한해 저는 여러분의 과분한 사랑과 성원 덕분에 감미로운 긴장 속에서 퍽 행복했습니다. 올해의 감미로운 긴장의 성과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이제 그 성과를 디딤돌 삼아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길을 떠나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 모두 새로운 길에서 감미로운 긴장을 즐기며 건승과 건필이 이어지는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아울러 丁酉年 신새벽의 雞鳴이 울리면서 우리 사회도 보다 나아지고, 여러분 가정에도 평안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많은 사랑과 성원을 보내주신 여러분,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2016. 12. 30


한국역사연구회 29차년도 회장 이지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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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지어 교수의 ‘위안부’ 부정론에 대한
역사 관련 학회, 시민단체 규탄 성명서

존 마크 램지어 교수의 일본군 ‘위안부’ 부정론에 대한

한국 역사학계 및 시민단체의 규탄 성명


지난 2020년 12월 국제학술지 『국제법경제학리뷰(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 IRLE)』 온라인판에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존 마크 램지어(John Mark Ramseyer) 교수의 논문, 「태평양전쟁에서의 성(性) 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이 게재되었다. 일본 산케이신문이 2021년 1월 28일 이 논문을 요약 보도한 이후 그 내용의 부적절성과 연구 윤리의 중대한 위반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램지어 교수는 20세기 전반 일본과 한국에 존재했던 공창제(公娼制, licensed prostitution)와 관련하여, 성매매 업자와 여성의 합의를 바탕으로 한 ‘성노동’의 보상에 대한 계약관계가 성립했다고 전제했다. 그리고 이러한 계약관계가 아시아·태평양전쟁기 일본군이 운영한 ‘위안소’에도 적용되었다고 주장했다. 즉 그는 일본군 ‘위안부’를 전쟁 전 성매매 여성이 맺었던 계약관계와 비슷한 관계에 있는 존재로 보고, ‘위안부’ 여성들이 자발적인 계약을 맺었으므로 ‘위안부’ 피해와 일본의 책임은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램지어 교수는 1991년 김학순, 1992년 얀 루프 오헤른(Jan Ruff O'Herne) 등 ‘위안부’ 피해생존자의 증언이 이어진 이래 30년간 진행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세계 시민사회와 학계의 헌신적 노력과 연구 성과, 수많은 증언과 문서 증거를 외면하고 의도적으로 왜곡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핵심 주장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는 데 실패했고 1차 자료와 2차 연구를 매우 자의적으로, 심지어 왜곡해서 이용했다는 것이 국내외 학자들의 비판적 검토에 의해 여실히 드러났다. 또한 그가 부정론과 혐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한 ‘게임이론’도 오용한 것임을 전 세계 경제학자들이 수차례 지적한 바다. 즉, 그의 글을 둘러싼 논란은 학문의 자유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연구의 윤리에 관한 문제이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고, 『국제법경제학리뷰』도 그의 글을 끝내 게재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과 이 사태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구체적인 입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학술 논문이 지켜야 할 연구윤리를 심각하게 위반했다. 일일이 지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사료를 선택적으로 활용하거나 왜곡했기 때문이다. 그는 논문의 핵심 논거인 ‘위안소’의 계약관계를 뒷받침할 한국인 ‘위안부’의 계약서가, 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시인했다.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를 근거로 ‘위안부’가 계약기간 종료 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도 주장했지만, 해당 자료에는 계약의 존재나 ‘위안부’의 귀환 이유가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램지어 교수는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 문옥주가 겪었던 삶의 전체 맥락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많은 수입을 올린 것으로만 왜곡했고, 그녀가 저금해놓았던 일부 수입조차 돌려받지 못한 채 작고한 사실은 외면했다. 이는 문옥주의 증언을 ‘위안부’ 부정론의 시각으로 절취하여 피해자의 목소리를 찬탈하고, 가해자의 입장을 정당화한 것이다. 문옥주의 증언과 관련한 책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이를 인용하지 않고 우파 성향의 익명 블로그에 있는 왜곡된 내용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의 행위는 연구자가 마땅히 준수해야 할 학문적 성실성과 진실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연구 부정행위이다.

둘째, 램지어 교수의 주장은 식민주의와 전쟁, 가부장제 아래에서도 모든 인간의 권리는 보호되어야 한다는 인류의 보편적인 합의를 위반했다. 그는 여성의 신체를 상품이자 군수품처럼 취급했던 당시의 상황을 외면하고, 여성들이 자발적인 계약에 따라 돈을 벌기 위해 ‘위안부’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아시아·태평양 전쟁에서 발생했던 체계적 강간과 ‘성노예제(sexual slavery)’ 개념을 확립하고, 일본 정부의 책임 불이행을 문제시하며 여성의 인권과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를 확립하고자 했던 국제노동기구(ILO)와 유엔 인권위원회의 보고서, 유엔 인권이사회의 권고, 국제법률가위원회(ICJ)의 보고서,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의 판결과 권고 등을 모두 무시하는 반인권적 처사이다. 이는 2007년 만장일치로 통과된 미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위안부’ 문제를 20세기 최대의 인신매매 사건으로 규정하고 일본의 전쟁범죄 축소 노력을 비판한 것과도 배치된다. 그의 주장은 그간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세계의 시민단체, 학계의 성과와 노력, 합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셋째, 램지어 교수의 주장은 학문과 표현의 자유와 양립할 수 없는, 의도적인 역사부정론과 혐오의 맥락 위에 있다. 역사학은 인문과학으로서 오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고, 동일 사안을 두고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합당한 근거에 기반하지 않았고, 방대하게 축적된 ‘위안부’ 피해자와 가해자의 증언을 외면했으며, ‘위안소’ 관리의 주체였던 일본군 관련 자료도 심각하게 왜곡했다. 이는 그가 지난 1월 12일 산케이신문의 영문 저널 ‘재팬 포워드(JAPAN Forward)’에 ‘위안부에 관한 진실 회복’이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한국인 ‘위안부’ 여성이 성노예로 끌려갔다는 것은 허구라고 주장했던 역사부정론의 연장선상에 있다. ‘위안부’가 ‘성노예’가 아닌 ‘매춘부’라는 그의 주장은 일본 극우의 ‘위안부’ 혐오, 소수자 혐오 담론과 공명한 것이다. 그는 다른 글에서도 피해자와 소수자를 조롱하고 모욕해왔다. 이러한 행위는 결코 학문과 표현의 자유로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우리는 학문과 연구 윤리를 위반하고 인류의 보편적 합의에 위배되며 의도적인 역사부정론과 혐오의 맥락 위에 있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발표되고 유통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여 의도적인 역사왜곡으로 판결을 받은 영국의 데이빗 어빙(David Irving)의 사례와 같이, 학문적 성실성과 진실성을 훼손하고 인류 보편의 가치를 무시하는 글에 대해서는 학문과 표현의 자유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역사부정론자들의 양태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사부정론자들은 참과 거짓에 상관없이 신념이나 감정에 따라 주장을 내세운다. 이들은 실증적으로 자료를 제시하는 것처럼 가장하며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여론을 호도한다. 우리는 ‘가짜뉴스’와 ‘탈진실’이라는 이름의 반지성주의가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을 보며, 이 사태가 단순히 램지어 교수 한 명의 일탈에 그치지 않을 것을 우려한다. 더구나 그의 주장이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미·일 극우세력의 국제적 네트워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혐의가 짙다는 점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이에 우리는 이번 사태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연구를 성찰하고 앞으로 더욱 심도 있는 연구를 축적해가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나아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와 인권의 옹호를 위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전 세계의 시민사회 및 학계와 뜻을 함께할 것을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램지어 교수는 본인의 반여성적이고 반인권적인 역사 인식과 학술활동에 대하여 반성하고 사과하라.

2. 국제법경제학리뷰』는 지금이라도 램지어 교수의 논문 게재를 철회할 것을 요청한다. 아울러 우리는 이 사태가 세계 학계와 시민사회가 반지성주의와 역사부정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3. 우리는 전 세계의 학술공동체 및 시민들과 연대하여 일본군 ‘위안부’ 부정론을 포함한 반지성주의와 역사부정론에 단호히 맞서 싸울 것이다.

2021년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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