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기원 경성의 탄생』(2017, 이데아)

BoardLang.text_date 2017.08.10 작성자 염복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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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을 말한다


『서울의 기원 경성의 탄생』(2017, 이데아)


 

염복규(근대사분과)



출간된지 꼭 8개월 정도 지났다. 이 책은 박사논문과 그 이후 박사논문의 일부를 보완했거나 미진한 부분을 새로 쓴 논문을 모아 리라이팅한 것이다. 8년 전 식민지시기 경성의 도시계획을 주제로 학위를 마친 후 여러분의 후의에 힘입어 지나온 연구 이력과 문제의식을 정리할 기회를 몇 차례 가졌다. 따라서 나의 책을 말하는 이 자리에서 할만한 이야기들은 이미 여기 저기서 웬만큼 한 셈이다. 아래의 내용은 어쩔 수 없이 이미 한 이야기와 어느 정도 중복된다. 되도록 중복을 피하기 위해 처음 이 주제로 공부에 입문했을 때부터 현재까지를 간략하게 복기해 보겠다.

 

대학원에 입학하고 ‘한국적 근대의 시원으로서 식민지시기’의 무엇인가를 연구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도시를 떠올렸다. 예나 지금이나 이론에 둔감하지만, 도시야말로 근대가 실현되는 곳이 아니겠냐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실은 성장하면서 농촌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다시피 하여 그나마 도시 이야기가 좀 더 쉽게 납득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연구 주제로 도시계획을 정한 것은 먼저 당시(1990년대 중후반) 유행했던 도시문화사(?)의 열기에 반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뭔가 토대(?)에 가까운 것을 먼저 해명해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했다. 경성을 택한 것은 우선 사료량이 압도적이었고, 또 태생적으로 ‘서울 강북 사람’인 탓에 연구 대상에 친근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손정목이라는 거목을 발견했다. 특이한 성격(?) 탓에 역사학계의 다른 동료들과 달리 그의 투박하고 공무원스러운(?) 도시계획사 연구에 큰 매력을 느꼈다. 그의 연구를 기초로 역사 전공자의 강점(?)을 살려 그가 놓친 도시계획의 역사적 맥락을 드러낸다면 좀 더 진전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서 쉽게 가려는 얄퍅한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여러 논의는 무성했지만 손에 잡히는 결과가 없었던 1920년대 도시계획을 주제로 한 첫 석사논문의 초고는 연구 대상 자체의 밑도 끝도 없음을 전혀 장악하지 못한 탓에 글도 밑도 끝도 없게 되어 버렸고, 지도교수님 선에서 간단하게 컷트되었다.

 

몇 년 간의 군복무로 머리를 비운 후(?)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는 식민지시기 경성 도시계획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1930~40년대 경성시가지계획을 주제로 삼았다. 연구의 초심자일수록 일단 주변보다 중심을 공략해야 한다는 판단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뜻밖에(?) 현명한 판단을 한 것 같다. 사료량도 가장 많고, 사안도 복잡한 주제를 택한 탓에 석사논문급 이상으로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이후 연구를 확장해갈 수 있는 시야를 얻었다. 단순히 수치로 표현하면 처음에 석사논문 초고 650매를 썼다. 말하자면 공부한걸 다 때려넣은 셈이다. 지도교수님의 제안에 따라 가치를 쳐나가면서 500매, 다시 350매로 최종 축소되었다. 그래도 잘린 300매는 다음 연구의 소중한 밑천이 되었다.

 

이후 출산, 육아(?), 취직 등 여러 개인사의 바쁨은 있었지만 석사논문 단계에서 박사논문의 뼈대를 어렴풋하게나마 세울 수 있었던 덕분에 늘 시간을 ‘쪼개야만’ 하는 주경야독의 조건에서도 조금씩 내용을 채워나갔고, 너무 늦지 않게 박사논문을 마무리했다. 박사논문에서 마지막 어려움은 학위논문의 특성상 장절 전체가 논리적으로 일관되게 구성된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다른 주제의 연구도 그런 면이 있겠지만, 도시계획은 해당 시기 별개의 경제정책이나 사회정책에도 영향을 받고 또 각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변형되기 일쑤라서 수미일관한 흐름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어느 정도는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을 완벽하게 연결되는 것처럼, 시기별로 분량상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을 잘 맞는 것처럼 포장할 수 밖에 없었다는 의미이다.

 

박사논문을 책으로 재탄생(?)시키면서 역점을 둔 것 중 하나는 연구 주제와 그에 대한 나의 연구 수준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겠다는 목표였다. 요컨대 연결이 잘 안되는 것은 안되는대로,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은 안맞는대로, 내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을 기준으로 나의 시각으로 본 경성 도시계획의 실상을 드러내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논문의 4장 10절 체제는 책에서 8장과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보론으로 해체-재구성되었다. 정확하게 균형을 맞추기 어려운 여러 사안을 빼먹지 않고 모자이크해 넣기 위한 장치였다. 내용의 큰 줄기만 간략하게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3장은 1910~20년대 경성시구개수를 다루었다. 시구개수는 도심부의 도로 개량을 뜻한다. 선행 연구에서는 대부분 일제 시구개수 계획안을 분석하는데 그쳤다. 이 책에서는 계획안과 더불어 시구개수 사업이 가장 힘있게 진척된 1910년대 전반의 성과(1장), 단 하나의 도로에 불과하지만 시구개수 사업의 본질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판단한 종료관통선(율곡로)의 부설 과정(2장), 시구개수 사업을 둘러싼 식민지 사회의 다면적 권력 관계를 보여주는 수익세 제도의 논의 과정(3장)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4~5장은 1930~40년대 경성시가지계획의 계획안과 실행 과정 전반을 다루었다. 시가지계획은 오늘날의 도시계획과 거의 같은 의미이다. 그런 만큼 경성시가지계획은 일목요연한 도시계획안이 남아있다. 도시계획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그 내용을 소개해왔다. 그러나 이 시기 고유의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지 못한 마치 가상 도시의 계획안을 소개하는 방식이기 쉬웠다. 이 책에서는 경성시가지계획을 확정된 계획안으로서 뿐 아니라 1930~40년대 식민통치 방침에 조응하여 형성되어가는 ‘과정’으로 분석했다(4장). 이와 함께 전시체제기 도시계획의 이상이 침략전쟁의 현실과 어떻게 겹쳐지고 엇갈리는지 살폈다(5장).

 

6~7장은 경성시가지계획의 일환으로 전개된 주거 문제와 주거 대책을 다루었다. 주거 대책이 시가지계획의 전부는 아니지만 대다수 시민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문제이며 또 시가지계획의 직접 담당자인 지방 행정권력은 시가지계획을 기화로 다년간의 난제인 도시주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액션을 보이기 때문에 특히 중요한 문제라고 판단했다. 남산록의 고급주거지 개발, 돈암지구 토지구획정리를 분석한 부분(6장)이 일정한 경제력을 가진, 그리하여 도시계획의 ‘혜택’이 돌아갈 수 있었던 계층에 대한 내용이라면 빈민층의 주거 박탈과 빈민주거 대책을 분석한 부분(7장)은 시가지계획의 진척에 따라 구제와 배제의 경계선상에 놓였던 도시 하층민의 이야기이다.

 

마지막 8장은 경성시가지계획과 동시에 시행된 경인시가지계획을 다루었다. 사실 경인시가지계획의 계획구역은 경성과 인천 사이, 오늘날 서울 강서에서 부천을 지나 인천 부평에 이르는 지역으로서 대부분 당대 경성의 지역적 범위를 넘어선다. 그래서 박사논문 심사 과정에서도 심사위원들로부터 이 부분은 빼는게 어떻겠냐는 권유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경인시가지계획은 식민지 수도 경성의 팽창에서 비롯된 오늘날 메트로폴리스 서울 탄생의 출발점이라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이를 식민지시기 경성 도시계획의 마지막 단계로 위치지우고자 했다.

 

대학원 입학부터 따지면 ‘사반세기’, 군 제대후 진짜 연구라는걸 시작하고서도 근 20여년이 흘렀다. 그간 도시사 전공자라는 타이틀을 얻은 셈이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처음 이런 공부를 시작할 때 도시사를 하겠다는 자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도시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사 전공자라고 불릴 때 우물쭈물 사양하지 않고 오는 동안 ‘자의반 타의반’ 도시사 전공자가 되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지금도 도시사 전공자라는 자각이 뚜렷한 것은 아니며, 도시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도 충분히 깊지 못하다. 오히려 지금도 고민을 쉬지 않고 하고 있고 그리하여 자각한 도시사 전공자가 되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해야 정확하겠다. 이 책은 그런 노력의 도정의 한 이정표 정도의 의의가 있을 터이다.

 

끝으로 출판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덧붙히겠다. 사실 몇 년 전 어떤 재단의 출판 지원을 받아 박사논문을 단행본으로 꾸밀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만일 이것이 성사되었더라면 이 책은 ‘정통’ 연구서의 형식을 취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저런 사정으로 재단이 간판을 내리게 됨에 따라 출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바쁜 일상을 보내며 책을 내는건 기약 없는 일이 되어갔다. 그러던 중 재작년 현재의 출판사 대표의 제안을 받게 되었다. 역사 전문이 아닌 인문 교양서 출판사였기 때문에 처음 출판사측의 제안도 박사논문에서 ‘재미있는’ 부분을 골라(?) 교양서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나는 비전공자에게도 읽힐 수 있는 책을 만들되, ‘연구서’로서 마지노선을 지키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후 소소한(?) 갈등과 타협 과정을 거치며 책은 만들어져 갔다. 그 내용을 세세하게 쓸 필요는 없겠으나 한 두 가지 예를 들면 재미있는 부분을 키우자는 출판사측에 대해 나는 최대한 평이한 문장으로 바꾸되 재미 여부와 상관 없이 내용을 부풀리거나 생략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었고, 가독성을 위해 사료주는 모두 미주로 돌리자는데 대해 미주로 돌리는건 양해하되 분량상의 이유로 출처를 생략할 수는 없다는 식이었다. 그런가 하면 대단히 흥미로운 사건이지만 학위논문에 들어가기에는 다소 선정적(?)으로 보이는 에피소드들도 교양서의 외피에 기대어 살려냈다. 출판사와의 만남이 반쯤은 우연이었으니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기왕 인문 교양서 출판사와 작업을 하게 된 이상 좀 애매한 표현이지만 ‘비전공자에게도 읽힐만한 연구서’를 만들자는 구상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책이 완성된 셈이다. 그리고 지난 몇 달 간 의도와는 달리 결과적으로 내가 평범하지 않은 생각을 했구나,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혼란을 주었구나 하는 점을 새삼 깨닫고 있다. 이 책을 교양서로 받아들이는 쪽도 있고, 연구서로 전제하는 쪽도 있어서 서로 다른 잣대에 의해 조금 좋은 말을 듣기도 하고 또 만만치 않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도 많은 책을 써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 중에는 말 그대로 교양서도 있고, 연구서도 있다. 처음부터 교양서를 목표로 하는 것는 별문제이지만 연구서의 경우 이 책의 노선을 지켜나갈 생각이다. 물론 명실이 상부하게 작업의 디테일은 더욱 가다듬어야 하겠지만. 연구의 기본 형태인 논문은 오늘날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 따라서 책의 형태로 자신의 연구 성과를 외화시킬 때, 논문을 모으거나 키운 정통 연구서의 형식을 갖출 필요가 있을까 회의적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품의 형태로 시장에 나가는 책은 대개 연구자들 사이에서‘만’ 유통되는 논문과는 좀 다른 독자 내지는 넓은 독자군을 상정하는게 맞지 않을까. 다음 연구서는 내가 생각하는 ‘비전공자에게도 읽힐만한 연구서’의 이상형에 한 발 더 다가선 결과물을 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