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논문을 말한다] 소현세자 서사의 탄생과 역사 속의 소현세자_이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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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2년 12월(통권 36호)

[나의 논문을 말한다] 

 

소현세자 서사의 탄생과 역사 속의 소현세자

『역사와 현실』 125, 한국역사연구회 (2022.09)

 

이명제(중세2분과)

 

*본 글은 논문 내용을 요약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자면, 나는 그리 성실한 학생이 아니었다. 학부 시절 학점이나 취업 같은 개인적인 영달에 신경쓰기보다는 민주주의와 같은 대의를 논한다는 명목 아래 ‘술집’을 전전하며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밤을 지새곤 하였다. 당연히 공부를 평생의 업으로 삼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 없었다.
우연히 대학원에 한 발 걸치게 되었을 때도 이 마음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난 현실을 외면하며 조만간 공부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될 줄 알았다. 그리고 지금은 알게 되었다. 공부를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가끔 질문을 던져 본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조금 더 성실히 이 길을 준비했을까? 아니면 지금쯤 이 길에서 벗어나 있을까?

 

불성실의 장점

이미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애꿎은 과거만 탓하고 있다가는 또 다른 후회만 남을 뿐이다. 살 길을 찾기 위해 내가 가진 장점을 찾아야 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불성실함도 장점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불성실하다는 것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배경지식이 부족해진다. 무식해지는 것이다. 이를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해 보면, 선입견이나 편견이 없는 상태라고 주장해본다.

 

『소현심양일기』 권1 표지 (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현세자와의 첫 만남

갑작스레 무엇인가에 홀려 박사학위논문 주제로 17세기 조‧청 관계사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전까지 17세기도, 조‧청 관계사도 진지하게 공부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도 당시를 회상하며 왜 그랬을까 반문해본다. 스스로 여러 가지 그럴 듯한 이유를 제시해보지만, 아직도 논리적인 답변은 만들어내지 못했다. 애초에 논리적인 선택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대학원 입학 10년 차에 새로운 박사학위논문 주제가 정해졌다.
하고 싶은 것을 정했지만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막막한 심정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연구실 책상에 꽂혀있는 『심양장계』가 눈에 들어왔다. 오래 전 선배가 “조선후기 전공하면 필요하겠네”라며 건넸는데, ‘전 필요없는데요’라고 마음속으로 대답하며 꽂아두었던 책이었다. 그 선배는 내가 전공을 바꿀 줄 알고 건넸던 것일까? 어쨌든 그렇게 『심양장계』와 『심양일기』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 소현세자를 만나보게 되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8년 간의 인질 생활에 대한 기록은 생각보다 상세했다. 조‧청 관계사를 이해해보려 시작한 책이었지만 세자를 보필하는 세자시강원의 기록이니만큼 세자 개인에 대해서도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을 다 읽고 소현세자에 대해 내가 느낀 감정을 한 마디로 정리해본다면 ‘존재의 미약함’이었다.
생활 자체가 궁핍했던 것은 아니었다. 청에서는 세자를 왕족으로 대우하며 많은 편의를 봐주었다. 문제는 현실이었다. 조선은 청과 군신관계를 맺었지만 충성을 바치지 않았다. 갈등은 지속되었고, 세자가 머물렀던 심양관은 매번 갈등의 직격탄을 맞아야만 했다. 청 황제 홍타이지, 조선 국왕 인조는 저마다의 기대를 가진 채 세자를 바라보았고, 두 사람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세자의 선택은 세자를 보필하는 동료이자 감시자들에 의해 매번 보고되었다. 행동은 물론, 생각의 자유조차 세자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게다가 세자는 건강하지 않았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갑자기 찾아온 괴리감

역사 인물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이 학술 논문에 쓰일 일은 별로 없다. 소현세자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은 그렇게 기억 한 편에 담아둔 채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박사학위논문도 제출하고 무난하면서도 불성실한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 날, 인터넷에서 우연히 ‘조선 인조가 유달리 욕 먹는 이유.jpg’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매우 강인한 소현세자가 있었다.
당혹감을 애써 감추고 21세기의 소현세자에 대해 조사해보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매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현세자는 첨단의 서양 문물을 수용하고자 했던 선구자임과 동시에 유능한 외교관, 노예 해방가, 농장 경영가의 모습을 겸비하고 있었다. 또한 명‧청 교체의 현장을 목격하면서 청 중심의 세계관을 수용하는 급진성도 갖추고 있었다. 어느새 소현세자를 둘러싼 거대한 서사가 완성되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소현세자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인조가 유달리 욕먹는 이유.jpg의 한 장면. 동물의 숲 캐릭터를 활용하여 친근하게 ‘소현세자 서사’를 대중에 전달하였다. (출처 : 루리웹 홈페이지)

 

장점을 살릴 시간

특정 인물에 대해 연구를 하다보면 애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 역시 소현세자를 아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아끼는 소현세자 이야기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비록 그것이 현재 공유되고 있는 소현세자의 위상을 조금 훼손시키는 행위라 하더라도 말이다. 원래 진정한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니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같은 자료를 보고서 왜 서로 다른 소현세자를 그려낸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만 했다. 차이의 출발점을 찾아 헤매다보니 나름의 결론을 찾게 되었다.
차이는 몇 가지의 선입견으로부터 시작된다. 소현세자가 북경에서 아담 샬을 만났으며, 인질 생활이 종료된 후 인조에 의해 의문스러운 죽음을 당했다는 시선을 가지고 소현세자의 심양 생활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왜곡되어 보이는 일종의 착시효과가 일어나는 것이다. 결말을 스포일러 당한 채 영화를 관람하면 거기에 맞춰 줄거리를 해석하는 것처럼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결말이 역사적 사실과 부합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사실이다. 애초에 출발선이 잘못되었으니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 치닫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나는 배경지식이 부족하여 그러한 선입견을 가지지 못하였다. 그래서 조금은 민낯의 소현세자를 대면할 수 있었다.

 

영화 《올빼미》 공식 포스터 (출처 : 영화 《올빼미》 공식 홈페이지)

진실을 가리는 맹인 침술사

공교롭게도 소현세자 이야기를 논문으로 투고하고 얼마 안 되어 소현세자의 죽음을 다룬 《올빼미》라는 영화가 개봉하였다. 얼마 전 아이를 출산하였기 때문에 영화 관람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본 원고 작성을 핑계로 양해를 구하고 관람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한번 강인한 소현세자를 마주하였다.
영화 속 소현세자는 아버지 인조를 향해 이렇게 외친다. “바꾸지 못하면 조선은 죽을 것입니다.” 확신에 찬 소현세자를 통해 관객들은 조선의 눈부신 미래를 꿈꾸게 된다. 그리고 소현세자의 죽음과 함께 모든 꿈은 좌절되었다. 남겨진 것은 잿빛 미래뿐이다.
영화는 소현세자 서사를 극적으로 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설정들을 추가하였다. 여기에서 이러한 설정들의 사실 여부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 이야기는 꼭 전하고 싶다. 조선은 소현세자의 외침과는 달리 이후로도 250여 년간 존속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역사적 시공간 위에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였다. 소현세자 서사가 가리고 있는 가장 큰 역사적 진실은, 어쩌면 소현세자 이후로도 존재하였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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