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을 말한다] 비판적 지식인 윤선도 : 사상과 네트워크_고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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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2년 12월(통권 36호)

[나의 책을 말한다] 

 

비판적 지식인 윤선도 : 사상과 네트워크

(2022, 푸른역사)

 

고영진(중세2분과)

 

윤선도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이 책은 우리에게 시인으로 익숙한 윤선도의 삶과 사상을 비판적 지식인의 관점에서 살펴본 것이다. 지금까지 윤선도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단가의 제1인자’, 언어의 연금술사‘ 같은 뛰어난 문학가로서의 모습, 15년간의 귀양살이와 짧은 벼슬살이가 보여주듯 격렬한 정치가로서의 모습, ’호남 제일의 부자‘로 불리었던 양반 대지주로서의 모습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적지 않은 연구자들이 이러한 윤선도의 모습들이 서로 상반되고 괴리감이 있다고 보고 그 주된 이유로 그의 성격과 기질을 든다는 것이다. 즉 자연의 아름다움을 우리말로 서정적으로 노래하는 사람이 정치에서는 왜 반대파와 사생결단식으로 싸우느냐, 많은 재산을 가진 부자가 왜 권력자를 비판하여 사서 고생을 하느냐, 이것은 결국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불같은 성격, 남과 융화하지 못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돌출적인 성격 때문이 아니냐는 식이다. 또 어떤 이는 어떻게 호남 제일의 부자가 되었느냐, 혹시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윤선도의 전체 삶과 사상을 살펴보면 이러한 그의 다양한 모습들은 모순되지 않고 오히려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비판적 지식인의 모습이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그의 성격과 기질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많은 고심과 용기, 신념 속에서 나왔던 것이다. 또한 윤선도집안의 부의 축적 과정도 당시 사림들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해언전(海堰田)의 개발과 도서 경영을 통한 부의 축적은 오히려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비판적·실천적 지식인

윤선도가 살았던 시대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두 차례의 큰 전쟁으로 나라가 존망의 위기까지 몰렸던 시기였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정치적·사회경제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시기였다. 윤선도 역시 그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였다. 특히 그는 여러 상소에서 대북의 영수로 광해군대 최고 권력자였던 이이첨, 인조반정 공신으로 그 손자가 효종의 부마이기도 했던 척신 원두표, 효종대 중국에까지 군약신강(君弱臣强)으로 소문까지 났던 송시열 등 당대 권력자들의 문제점을 대놓고 비판하였다.

당시 윤선도의 생각과 행위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한결같이 그가 ‘감언지사(敢言之士)’ 그리고 ‘직언지사(直言之士)’라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반드시 화가 닥치고 심지어 목숨까지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을 용기 있게 말하고 나아가 그 말을 빙빙 둘러서가 아니고 직접 말하는 윤선도의 모습과 행동은 바로 비판적 지식인의 모습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비판적 지식인‘은 사르트르나 한완상 등이 정의한 ’(비판적·실천적) 지식인‘ 또는 푸코가 말한 ’파레시아스트‘에 가까운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대적 용어를 조선시대 역사를 설명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무리가 없지 않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이 개념이 조선시대 지성사(사상사)를 설명하는데 아주 유용한 틀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찌 보면 조선의 건국이나 사림정권의 성립, 실학의 등장 등이 모두 이 비판적·실천적 지식인들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조선이 자기 정화과정을 거치면서 유교국가로서 500여 년을 지속한 데에도 이들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으로서의 사상사(지성사)

나의 전공은 조선시대 지성사(사상사)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사상가들을 그들의 주장이나 사상만 가지고 평가하지 않게 되었다. 인생을 살다 보니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인간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내가 선택한 연구방법론은 한 인간의 사상을 그의 전체 삶과 연관 지어 살펴보는 것, 즉 ‘삶으로서의 사상사(지성사)’였다. 결국 이 책은 윤선도라는 인간, 그의 삶과 사상을 바로 ‘비판적 지식인’과 ‘삶으로서의 사상사(지성사)’라는 두 가지 코드로 살펴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첫 장에서는 비판적 지식으로서의 윤선도의 삶을 상소와 시문 등을 통해 복원하였으며 둘째 장에서는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삶의 기반이 되었던 그의 학문과 사상을 살펴보고 셋째 장에서는 그의 삶과 사상 형성에 영향을 미쳤던 다양한 네트워크들을 분석해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사림세력이 등장했던 16세기 전후 시기 소릉복위와 신비복위소 사건을 통해 그때 활약했던 비판적 지식인들을 살펴보았다. 조선에는 윤선도 말고도 많은 비판적 지식인이 있었으며 그들은 조선사회의 전환기마다 물줄기를 바꾸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하였다.

 

비판적 지식인으로 소환된 윤선도

또한 내가 이 책에서 조선시대 사람 윤선도를 통해 비판적 지식인을 소환한 것은 오늘날 비판적 지식인이 거의 사라져버린 한국사회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기도 하다. 잘 알다시피 ‘지식인’이란 용어는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일어난 ‘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 해서 등장하였다. 처음에는 세상 물정 모르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 비판적이고 실천적인 긍정적인 의미로 바뀌었다. 사르트르와 한완상, 푸코 등은 이러한 지적 전통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인 앙가주망(engagement)은 바로 비판적·실천적 지식인의 사회 참여를 의미한다.

1970년대와 80년대 한국사회 역시 이러한 비판적·실천적 지식인의 활동과 사회 참여가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그 주축은 대학의 연구자들과 언론인, 종교인 등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와 신자유주의가 한국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대학은 취업학원으로 전락하고 교수와 연구자들은 지식전달자로 전락하였다. 더욱이 2000년대 들어와 대학에 비정년트랙과 연봉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대학 교원의 신분은 더욱 불안정해지고 그 결과 비판적 지식인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져 갔다. 사립대학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 한국사회는 비판적 지식인은 하나둘 사라져가고 대신 도척지견(盜跖之犬)처럼 행동하며 기세도명(欺世盜名) 하는 사이비 지식인만 난무하고 있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이념갈등과 지역갈등, 빈부갈등에 더해 세대갈등과 남녀갈등까지 심화되면서 공동체는 갈갈이 찢겨지고 그 속에서 고통받는 국민들은 점차 늘어만 간다.

이런 상황에서 지식인이란 무엇이며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리고 지식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다시 나에게 다가온다. 이 책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이 질문을 한국역사연구회에게도 다시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