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회의 참관기] 『동문선』을 통해 본 신라·고려의 불교문화_고정혁

0
7458
Print Friendly, PDF & Email

웹진 ‘역사랑’ 2022년 12월(통권 36호)

[학술회의 참관기] 

 

『동문선』을 통해 본 신라·고려의 불교문화

동문선, 다시보다(신라·고려의 불교문화) 참관기

 

고정혁(중세1분과)

 

『동문선(東文選)』은 1478년(조선 성종 9)에 서거정, 노사신을 비롯한 23인의 관료가 고대~조선 초에 이르는 역대 시문(詩文)을 모아 만든 책이다. 총 133권으로 1,770제(2,028수)의 시(詩)와 2,534편의 문(文)을 폭넓게 수록하고 있다. 문학 자료로서의 의의도 굉장하지만, 신라·고려시대의 기록이 대량 인용되어 있어 당시 사회·문화 전반의 정황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뚜렷한 역사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불교 관계 자료의 중요성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는데, 불교는 그 역사적 위상에 비해 관련 사료가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동문선』의 편찬 시점이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건국된 조선 전기였음을 상기할 때, 『동문선』에 수록된 신라·고려 시기 불교 기록의 가치는 더욱 선명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역사연구회 불교사상과문화반은 2017년 6명의 구성원으로 출발한 이래 불교사 연구에서의 『동문선』의 가치를 재조명하여 『동문선』 권64에 수록된 불교 관련 기(記)를 강독해왔다. 그리고 2022년 현재는 18명의 구성원이 『동문선』 권110에 수록된 불교 관련 소(疏) 강독에 진력하고 있다. 2022년 11월 12일(토)에는 “동문선, 다시보다 – 신라·고려의 불교문화”라는 주제의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2022년 한국역사연구회 공동연구발표회의 대미를 장식하는 날이기도 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동문선』을 통해 신라·고려의 불교문화를 살펴볼 수 있었던 자리였다. 이글에서는 글쓴이가 학술대회에서 배우고 느낀 바를 정리, 소개하고자 한다. 다만 글쓴이의 과문 탓으로 혹여라도 발표자 선생님들의 의도와 다르게 이해한 부분이 있다면 너그러이 혜량해주시길 바란다.

제1발표는 박광연 선생님의 “10세기 신라의 불교의례와 교단 – 「신라수창군호국성팔각등루기」를 중심으로」”였다. 발표에서는 909년 최치원(崔致遠, 857~?)이 작성한 「신라수창군호국성팔각등루기(新羅壽昌郡護國城八角燈樓記)」(권64, 기)를 분석하여 호국성 공간에 담긴 사상적 배경과 팔각등루 낙성회의 성격을 고찰했다. 호국성 공간 구성은 붓다의 법신에 근원을 두고 나타나는 공덕으로서의 호국을 설한 『금광명경』에 사상적 영향을 받았고, 팔각등루를 세운 이재(異才)가 꿈에서 보았다고 하는 ‘칠미륵상’의 근거는 『약사경』의 약사칠불에 있음을 밝혔다. 또 팔각등루 낙성회에 참여한 승려들의 소속과 호칭을 검토하여 이들이 밀교의례를 집전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고 추론했다. 이어 당시 낙성회에서 행해진 의례가 『약사경』에 근거한 속명번등법(續命幡燈法)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 발표는 「팔각등루기」의 불교문화를 법상종 중심으로 파악했던 기왕의 논의에서 진전하여 여러 경전적 근거를 제시함과 동시에 밀교의례적 요소를 새로이 주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느꼈다.

제2발표는 이현주 선생님의 “백고좌 법회의 설행 목적과 ‘호국’ 의미의 변천”이었다. 발표에서는 백고좌법회가 국가의례로 이행하는 과정을 고찰하고, 신라·고려의 역사적 조건이 불교 의례의 사회적 성격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했다. 여기에서는 백고좌법회의 수용 배경과 개설 양상을 ‘호국’ 인식과 관련하여 설명한 뒤, 신라 하대에 백고좌법회의 설행 목적과 절차가 정형화되고 국가의례의 성격을 획득했다고 추론하였다. 고려시대의 경우, 1276년 무렵 김구(金坵, 1211~1278)가 작성한 「내전행백좌인왕설경도량소(內殿行百座仁王說經道場疏)」(권110, 소)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시도했다. 그리고 해당 백고좌법회의 성격을 당시 고려를 둘러싼 외침과 내란, 천재지변을 제거 내지 저지하기 위한 국왕의 통치행위로 해석했다. 고려 시기 백고좌법회 개설 기사는 많이 남아 있지만 의례 집전 시 사용된 소문은 현저히 적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동문선』에 수록된 해당 소문의 가치를 더욱 주목할 수 있었다.

제3발표는 신선혜 선생님의 “「천관산기」를 통해 본 ‘호남(湖南)’ 불교계”였다. 발표에서는 1240년 백련사(白蓮社) 2세 천인(天因, 1205~1248)이 당시 전하는 초본(草本)을 토대로 「천관산기(天冠山記)」(권68, 기)를 엮은 이유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초본은 신라 헌강왕 때 천관산 세력들이 천관산과 사찰의 내력을 정리하여 그 위상을 부각하고자 작성했는데, 고려후기에 천인은 몽골의 침략에 휩싸인 당시 고려 사회를 말법 시대로 인식한 데 따른 현실 극복의 일환으로 천관산의 불토적 성격과 화엄신중신앙에 주목하여 「천관산기」를 정리한 것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여기에 당대 고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지명이나 상황을 반영했던 것으로 보았다. 특히 천인이 백련사 및 천관산을 문화적 측면에서 규합하고자 전라도 지역을 ‘호남’이라는 별칭으로 지칭했다고 해석하였으며, 천인의 시문인 「사원상인혜척촉주장(謝圓上人惠躑躅柱杖)」(권6, 칠언고시)에 나타난 “호남”이 현재 확인되는 ‘호남’의 최초 사용례임을 밝혔다. 아울러, 이 발표는 주로 신라의 시각에서 해석되어 온 「천관산기」를 신라·고려 양 시각에서, 또 천인과 천관산의 관계에서 조망했다는 점이 자못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제4발표는 옥나영 선생님의 “고려 사리 신앙 양상 – 『동문선』을 중심으로”였다. 발표에서는 『동문선』에 수록된 고려시대 사리와 관련한 15편의 글을 중심으로 사리 신앙의 양상과 사리에 대한 인식을 검토했다. 사리의 감득과 분신, 방광, 불쇄와 같은 신이에 대한 영험 사례를 비롯해, 사리 영험이 신앙의 결속, 더 나아가 종교적 성취의 계기가 되었던 양상을 분석했다. 사리 봉안처와 관련해서는 탑이 아닌 예경을 위한 별도 공간에 사리를 봉안했던 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사리는 우리나라 불복장물 중에서도 필수적인 성물(聖物)로 인식되었는데, 중요 사례인 민지(閔漬, 1248~1326)의 「국청사금당주불석가여래사리영이기(國淸寺金堂主佛釋迦如來舍利靈異記)」가 『동문선』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주목되었다. 사리신앙과 사리장엄에 관한 연구 성과가 대부분 고대 시기에 집중되어 있기에, 이 발표를 통해 고려시대 사리 신앙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제5발표는 최선아 선생님의 “『동문선』과 미술사, 그리고 낙산사 관음보살상”이었다. 발표에서는 초기 미술사 연구들이 양식사나 도상학에 집중되면서 미술사적 자료로서 『동문선』은 한계가 크다고 인식된 점을 우선 지적했다. 그리고 『동문선』에 실린 불교미술 관련 기사들을 재검토하여, 미술사의 연구 대상이 크게 확장된 이제는 『동문선』의 다양한 내용들이 미술사 연구 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띄게 되었고 적극 활용될 수 있음을 논증했다. 또한 사례연구로 『동문선』 기록을 통해 본 고려시대 낙산 신앙과 낙산사 관음보살상을 예시했다. 관련 연구들은 그간 『삼국유사』의 의상 관음 친견 설화를 주요 문헌으로 삼아 왔지만, 사실 『동문선』에는 『삼국유사』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관련 기록이 8편이나 수록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동문선』 기록을 통해 낙산 관음보살에 대해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더 다양한 인식들이 과거에 공존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관음보살상의 훼손, 보수, 소실 및 새로운 조성에 관한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초학으로서 발표의 모든 내용을 속속들이 깊이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번 학술대회가 불교문화의 증거로서 『동문선』이 지닌 그 잠재적 가치를 재인식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또한 학술대회를 통해 역사, 사상, 신앙, 의례, 미술 등 여러 분야에 걸친 신라·고려불교의 다양한 모습들을 발견함으로써, 참관을 계기로 불교사 연구에서의 몇 가지 중요한 화두들을 안고 갈 수 있었다. 특히 여러 선생님들의 치열한 탐색과 추적의 깊이에 감복하면서, 불교사 연구의 무궁무진한 확장성과 제 분야와 융합의 필요성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신라·고려 불교문화에 관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신 불교사상과문화반 발표, 토론자 선생님들께 마음 깊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