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저작비평회] 오노 야스테루 저 『한국 ‘건국’의 기원을 찾다 : 3·1 독립운동과 내셔널리즘의 변천 (게이오기주쿠대학출판회, 2021)을 읽고_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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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2년 9월(통권 33호)

[제6회 저작비평회] 

 

오노 야스테루 저 『한국 ‘건국’의 기원을 찾다 : 3·1 독립운동과 내셔널리즘의 변천』(게이오기주쿠대학출판회, 2021)을 읽고

 

홍종욱(근대사분과,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이어보기 : 발표(오노 야스테루)
이어보기 : 토론(최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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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한국 독립운동의 글로벌 히스토리

가. 러시아 2월 혁명의 재발견
나. 신아동맹당과 박은식 『한국통사』의 동아시아적 의의
다. 식민지-주변부 역사를 어떻게 세계사와 접속할 것인가

2. 3·1 혁명론과 1919년 건국론 비판

가. 민주공화제 100년론 비판
나. 독립운동과 독립의 외적 요소와 내적 요소
다. 현실의 국가, 당위의 국가

3. 민족과 국민, 그리고 역사학

가. 피플과 네이션
나. 민족+역사=국가/국민
다. 한국 독립운동과 네이션 빌딩

 

1. 한국 독립운동의 글로벌 히스토리

가. 러시아 2월 혁명의 재발견

이 책은 동제사의 대동단결선언을 분석하여 러시아 2월 혁명과 스톡홀름 국제평화회의가 한국 독립운동에 미친 영향을 밝혔다. 러시아에서는 1917년 2월 혁명 이후 공화제가 채택되고 민족자결론이 형성되었다. 3월에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는 무배상, 무병합, ‘자결’에 의한 제1차 세계대전의 조기 강화를 주장했다. 러시아 임시정부도 4월 평화성명에서 ‘자결’에 바탕한 조기 강화를 주장했다.

1917년 6월에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와 중립국 사회주의자 주도로 열린 스톡홀름 국제평화회의에서 독일 사회민주당의 필리프 샤이데만(Philipp H. Scheidemann)은 무병합, 무배상, 민족자결 강화 방침에 찬성하고, ‘코리아’ 등 연합국 측의 식민지에 ‘민족자결권’을 적용할 것을 주장했다. 이런 정황에 대해 이 책은 “조선 독립운동에 있어 러시아 2월 혁명은 ‘공화주의’와 ‘자결’의 혁명이고 그 충격은 지극히 컸다. 금일 한국에서는 국가의 기원으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예전에 없던 정도로 중시되는데 그 임시정부의 기원은 러시아 2월 혁명에 있다고 할 수 있다.”(92쪽)고 논했다.

제1차 세계대전과 한국 독립운동의 관계도 상세하게 밝혔다. 특히 러일전쟁과 한국병합 이후 노령의 한국 독립운동 상황, 노령에서 이광수와 신채호의 활동, 러시아 내전과 한인사회당 및 고려공산당의 움직임을 요령 있게 정리했다. 이승만, 안창호 등 미주 독립운동과 윌슨의 ‘자결’론의 관계, 1919년 파리강화회의와 제2인터내셔널 대회에 참여한 김규식 일행의 활동에 대한 묘사도 생동감 넘친다.

나. 신아동맹당과 박은식 『한국통사』의 동아시아적 의의

일본 도쿄의 신아동맹당과 박은식 『한국통사』의 동아시아적 의의를 잘 밝혔다. 캉유웨이(康有爲)는 『한국통사』에 부친 「서」에서 “지금 한국통사를 읽어보니 (중략) 중국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해도 제2의 조선이 될 날이 멀지 않다.”(66쪽)고 말했다.

강유위의 ‘제2의 조선론’은 20세기 초 한중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다. 일반적으로 1910년 한국병합과 1915년 일본의 대중국 21개조 요구의 동시대성에 주목하지만, 1910년 한국병합과 1911년 신해혁명의 동시대성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두 사건은 한국과 중국에서 각각 왕정 폐지를 낳았다. 두 사건의 배후에 공통적으로 어른거린 일본 우익(예컨대 현양사의 우치다 료헤이)의 그림자도 신경 쓰인다. 대동단결선언은 융희 황제가 포기한 삼보를 민이 계승한다는, 즉 황제권 소멸과 국민 주권 발생의 서사를 그렸다. 한국병합은 침략과 더불어 (의도치 않은) 개혁의 효과를 지녔다. 한국병합에 해당하는 중국사의 사건은 1915년 일본의 대중국 21개조 요구 더하기 1911년 신해혁명이 될 것이다. 1938년에 일본이 중국에 대해 발표한 동아신질서 구상도 개혁을 명분으로 침략을 합리화하는 점에서 비슷하다. 당시 장제스(蔣介石)는 한일합병을 보라면서 동아신질서는 중일합병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다. 식민지-주변부 역사를 어떻게 세계사와 접속할 것인가

제1차 세계대전과 한국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서술했다. 권보드래의 『3월 1일의 밤』(2019)이 그린 제1차 세계대전 상은 퍽 인상적이었는데, 이 책의 서술은 더욱 체계적이고 본격적이다.
올해부터 사용하는 일본 역사 교과서 ‘역사총합’은 근대사를 중심으로 세계사와 일본사를 융합해서 서술한다. 일본은 20세기를 이끈 제국주의 열강의 하나였으므로 일본사는 무리 없이 세계사와 통한다. 한편 많은 이들이 한국사도 이런 서술이 가능할까라는 물음을 가지고 있다. 세계사의 무대에 오르지 못한 식민지의 역사를 어떻게 세계사와 접속할 것이냐는 난문에 대해, 이 책은 하나의 답을 제시하고 있다.

 

2. 3·1 혁명론과 1919년 건국론 비판

가. 민주공화제 100년론 비판

이 책은 1919년 건국론과 민주공화제 100년론에 대해 비판적이다. 이 책은 뉴라이트가 1948년 건국론을 통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주장하자, 이에 대항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계승론, 1919년 건국론이 등장했다고 본다. 그리고 박근혜 퇴진 촛불시위와 겹치면서 민주공화제가 부각되고, 3·1운동에 대해서도 독립운동을 넘어 민주공화제를 지향한 혁명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 책은 “일찍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구를 정치적 행위라고 비판하고 역사의 변혁주체로서 민중을 중시해 온 민중사학이 입장을 바꾸어 뉴라이트에 대항을 목적으로 헌법 전문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옹호하게 됐는데 그를 위한 타협점이야말로 ‘민주공화제’였다.”(26쪽)고 본다.

이 책은 민주공화제의 의의를 강조하는 흐름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독립운동가가 내세운 제정(帝政), 민주주의, 사회주의는 모두 외국의 지원을 얻기 위해 이용된 측면이 강하고, 독립을 위해서는 외국의 원조가 필요하다고 인식한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1921년 이후 유명무실했다고 지적한다. 다음과 같은 서술이 그러하다.

“러시아 2월 혁명이 발발한 1917년 3월 이후 조선 독립운동은 기본적으로는 ‘자결’의 권리를 얻기 위하여 어떻게 여러 외국과 교섭할 것인가, 어떻게 조선 민족의 존재를 어필할 것인가가 최대 쟁점이 된다.”(92쪽)
“조선사회당은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나 유럽 사회주의자로부터 그들과 같은 ‘사회주의자’를 자칭함으로써 조선 독립에 대한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서류상 조직이었다. 일찍이 베이징 정부의 지원을 얻기 위해 제정(帝政)을 표방한 것과 마찬가지로 원조를 청하는 대상에 맞춰 그 대응을 임기응변으로 변경”(91쪽)
“해외 독립운동가의 목적은 민주주의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표방함으로써 독립운동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진행하려는 데 있었다.”(244쪽)
“조선반도 내의 지식인과 민중이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 이상으로 민주공화제 국가의 수립을 지향해서 운동을 전개했다고 파악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 (245쪽)
“금일 한국에서 중요시되는 공화제라는 문제의식도 이러한 독립운동의 글로벌화 과정에서 부상한 것이다.” “공화제는 조선의 독립 이상으로 우선할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조선 독립은 외국의 원조 없이는 도저히 실현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을 보여준다.”(79쪽)

역사 연구가 지니는 정치성을 비판한 점은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제국/식민지 관계를 거품 없이 냉정하게 파악함으로써 독립운동의 가능성과 한계를 드러냈다.

나. 독립 및 독립운동의 외적 요소와 내적 요소

이 책은 3·1운동을 3·1혁명으로 부르는 데 대해 비판적이다. 한국 사회의 움직임을 “3·1 독립운동의 기억을 일본 지배로부터 ‘해방’을 지향하는 독립운동에서 현재 한국을 낳은 민주공화주의 ‘혁명’으로 바꾸었”(33쪽)고, “100년에 이르는 민주공화제 국가를 한국인이 영위해 온 것에 대한 자랑과 자부심이어서 ‘반일’은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34쪽)고 파악한다.

아울러 “‘해방’의 요인을 둘러싼 두 가지 역사 인식으로 말하면, 연합국에 의해 주어졌다는 인식이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독립운동에 의해 쟁취했다는 인식이 세력을 키우고 있”(ⅷ)는데, “과연 독립운동을, 연합국의 승리/일본의 패전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한국 ‘해방’에 다대한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ⅵ쪽)라고 의문을 던진다.

이 책에서 지적한 최근 한국 사회 분위기는 어찌보면 북한 역사학이 외부와 관계를 중시하지 않고 ‘반일’조차 강조하지 않는 것과 닮았다. 1970년대 가지무라 히데키는 북한의 역사학에서 “일제 침략사의 기술이 놀라울 정도로 적은 비중”인 것을 지적한 바 있다(梶村秀樹, 「日本帝國主義の問題」, 『梶村秀樹著作集 第2卷 朝鮮史の方法』, 明石書店, 1993(초출 1977), 318~320쪽; 홍종욱, 「反식민주의 역사학에서 反역사학으로: 동아시아의 ‘전후(戰後) 역사학’과 북한의 역사 서술」, 『역사문제연구』 31, 2014.4., 86쪽). 외부와 교섭을 경시하는 시각은 주체 사관처럼 또 하나의 ‘역사 부정’(denial)으로 이어질 우려가 없지 않다.

다만 한국 학계에서 민주공화제 전통을 강조하는 움직임은 오히려 ‘식민지 근대론’처럼 지배와 저항이라는 이항대립을 넘어서려는 노력으로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일본의 침략과 그에 대한 저항, 즉 반일에 초점을 맞춘 역사 서술을 넘어 한국 사회 내부의 변화에 주목하려는 노력이다. 3·1혁명론은 조선왕조에서 오늘로 이어지는 긴 시간대에서 보자면 식민화/탈식민 이상으로 민주공화제 도입/천명이 중요하다는 뜻이 아닐까. 그리고 ‘미국 독립혁명’ ‘아일랜드 혁명’ 등의 용어가 쓰이듯이 독립과 혁명은 양립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닐까.

국제 정세의 변화와 독립운동도 대립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비식민화(decolonization)라는 20세기 세계사의 새로운 방향에 맞춰 독립 혹은 자치를 위한 운동(차별 철폐를 통한 ‘동화’까지도 포함 가능)을 벌인 것으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홍종욱, 「3.1운동과 비식민화」, 한국역사연구회 편, 『3.1운동 100년 제3권 권력과 정치』, 휴머니스트, 2019). 민족자결은 20세기를 관통하는 이념이었다. 독립운동은 한국과 일본의 이항대립 구도를 넘어서는 민족자결, 비식민화를 향한 각축이었다. 3·1 독립선언 내용이 ‘반일’적이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 책에서 말한 “조선 독립운동은 일본의 패전에 대한 기대를 불식하고 ‘자결’의 권리를 얻어 독립하는 것으로 방향 전환한 것”(92쪽)이라는 분석과 상통한다.

다. 현실의 국가, 당위의 국가

이 책은 1919년 건국론을 주장하는 역사학자들이 북한과 통일을 지향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아직 남북이 분단되지 않은 1919년에 한국이 탄생했다는 주장은 1948년에 ‘건국’된 북한의 정통성을 실질적으로 부정하는 것이어서 실은 심각한 모순”(ⅸ쪽)이고, “북한에 대항하는 개념이기도 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남북통일을 연결 짓는 것은 실은 애당초 모순을 포함한 주장”(22쪽)이라는 것이다.

다만 1919년 건국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현실의 국가이자 당위의 국가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이념형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장차 도래할 민족국가로 정통성이 이어진다는 관념이다. 이 논리 속에서는 대한민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임시정부’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강만길 님은 “분단체제는 민족사 상에 있어서는 명백하게 부정적인 체제이자 극복해야만 하는 체제”(11쪽)라고 밝힌 바 있다. 당위의 민족국가와 현실의 민족국가의 괴리가 엿보인다. 이러한 인식은 박용만의 ‘무형국가론’(1911년 『신한민보』)이 상징하듯 정부는 있지만 국가는 없었던 식민지 경험과 관련이 있다. 박현채는 ‘존재로서의 민족경제’와 ‘당위로서의 민족경제’라는 개념을 사용하기도 했다(박현채, 「민족경제와 국민경제」(1986), 『박현채 전집 3 1986∼1985』, 해밀, 2006).

1948년 건국론을 살펴보자. 남한의 뉴라이트와 북한 정권은 각각 해방 이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주장한다. 북한은 1948년 9월 9일을 인민정권 창건일, 즉 건국기념일로 기념한다. 이 책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뉴라이트는 “국민의 어원인 네이션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에스닉 그룹이 아니라 특정 이념을 공유하는 정치적 집단을 가리키는 개념이라면서 그 정의에 따르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공유하는 국민은 1948년에 비로소 탄생했다”(19쪽)고 말한다.

역사의 주체를 현실의 ‘한국인’으로 볼 것인가, 당위의 ‘한국인’으로 볼 것인가의 대립이다. 남한의 뉴라이트와 북한 정권은 각각 ‘현실’의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긍정한다. 뉴라이트는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거의 완전히 계승했다’고 파악한다. 이에 반해 1919년 건국론에서는 ‘불완전한 계승’(21쪽)이라고 파악한다. 계승한 결과가 당위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현실의 대한민국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뉴라이트의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2008)가 “‘민족 중심 역사관을 억제’하는 것을 지향하여, 그를 위해 ‘우리 민족’ 대신에 ‘한국인을 역사적 행위의 주체로서 설정’”(10쪽)했다고 보았다. 그리고 “38도선 이남의 한국 내셔널리즘과 한반도 전체의 통일 내셔널리즘이 병존”(32쪽)한다고 파악했다. 아울러 ‘종래의 역사관의 주류’인 ‘분단사관’에 대해 “남북 통일에 의한 분단체제의 극복을 중시하는 역사관으로 분단국가라는 이유로 한국을 ‘불구성’ 있는 ‘미완성’ 국가로 여긴다”(15쪽)고 보았다.

뉴라이트 김영호는 “한국 국민의 통합을 저해하는 분단사관=자학사관”을 비판했다. ‘자학사관’이라는 말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상황적 유사성을 읽을 수 있다. 뉴라이트의 대한민국 사랑에서는 아베 정부가 내세운 ‘아름다운 일본’이라는 구호를 떠올리게 된다. 좌파 역사학을 ‘자학사관’으로 비판하는 것도 일본 우익의 논리와 같다. 산케이 신문 서울 특파원 구로다 가쓰히로 님은 한국에서 보수파가 좌파 주도의 기존 교과서를 ‘자학사관’으로 비판하는 것은 일본에서의 논쟁과 같은데, 이러한 사태는 일본 교과서 문제에 대한 한국의 지나친 개입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좋은 기회라고 밝혔다(구로다 가쓰히로(黒田勝弘), 「‘한국판・새 역사교과서’에 압력」, 『産経新聞』 2013.9.20.).

한편 한국에서 ‘대한민국 민족주의’가 대두했다는 연구가 있다. 과거에는 대한민국이 빈곤·독재·분단·종속 등으로 점철된 ‘결손국가’라는 이미지로 비추어졌다면, 이제는 경제적으로 발전되고 정치적으로 민주화되고 대외적으로 강해진 ‘정상국가’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 측면에 주목한 분석이다(이용기, 「임정법통론의 신성화와 ‘대한민국 민족주의’」, 『역사비평』 128, 2019.8.) 대한민국 민족주의는 북한 배제, 남한 긍정이라는 점에서 뉴라이트와 통한다. 한편 민주공화제 전통을 자랑스러워하며 현실의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경향이 생겨난 것도 대한민국 민족주의로 설명할 수 있겠다.

 

3. 민족과 국민, 그리고 역사학

가. 피플과 네이션

이 책은 인종, 언어, 문화 공동체인 피플과 정치적 공동체인 네이션을 구분하는 논의를 소개한다. 그리고 윌슨의 민족자결은 네이션에만 적용되는 데 주목해 식민지 시기 한국인이 ‘네이션’ 개념을 인지했는지 여부를 분석한다.

다만 이미 대한제국기에 량치차오 등의 영향을 받아 블룬칠리의 ‘민족’과 ‘국민’을 구분하는 논의가 소개되었다. “今日에 到야 萬壹國民資格이 無 民族이면 大地上에 側足 隙地가 無지라”(「民族과 國民의 區別」, 『大韓每日申報』 1908.7.30.)는 설명이 대표적이다. 윌슨의 네이션 개념은 블룬칠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신채호의 글에서는 블룬칠리 국가론에서 그 자체로는 ‘국민자격’을 갖지 못한 문화적 집단으로 정의되었던 ‘민족’이 오히려 그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국가의 주체이자 ‘잠재적 국민(네이션)’의 정당한 단위로 새롭게 호명되었다(윤영실, 「자유주의 통치성, 제국주의, 네이션: 블룬칠리 국가론과 nation(Volk)/people(Nation) 개념의 정치적 함의」, 『사이間SAI』 30, 2021.5., 44쪽). 최남선 역시 잡지 『소년』을 발행하면서 국민담론에서 민족담론으로 이행하는 뚜렷한 궤적을 보였다(윤영실, 「‘국민’과 ‘민족’의 분화: 『소년』지에 나타난 ‘신대한’과 ‘대조선’ 표상을 중심으로」, 『상허학보』 25, 2009.2., 102쪽).

신채호는 블룬칠리의 민족(피플), 국민(네이션) 구분을 이해하면서도 피플에 바탕한 네이션을 지향했다. 최남선의 민족은 네이션을 모르는 피플이라기보다, 네이션의 허구를 고발하는 피플이었다. 이러한 대한제국 시기 이래 민족 개념의 형성과 변천을 바탕으로 하면서 이 책에서 상세하게 밝힌 요시노 사쿠조 등 일본 경유 민족자결 개념을 분석한다면 식민지 조선에서 ‘민족자결’ 개념의 내포와 외연이 잘 드러날 것이다.

나. 민족+역사=국가/국민

이 책은 윌슨에게 보낸 신한청년당의 독립청원서와 2·8 독립선언서에서 한국인을 오랜 역사를 가진 문명 민족으로서 설명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이를 “역사적인 성숙과정을 중시하는 윌슨의 ‘네이션’관에 입각한 서술”이라고 평가했다(142쪽).

근대 역사학에서는 역사를 가진 민족만이 국가를 이루는 민족 즉 네이션이 될 수 있다고 인식했다. 신채호는 독사신론에서 역사의 주체가 민족임을 밝히고 역사가 있는 민족이라야 국가 관념이 있다면서 역사가의 책임을 강조했다(申采浩, 「讀史新論 敍論」, 『大韓每日申報』, 1908.8.27.). 신채호가 한국 근대 역사학의 선구자라고 이야기되는 이유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공들여 『한일 관계 사료집』을 편찬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해방 직후 이병도는 모든 민족이 역사를 가진 것은 아니고, ‘헌법을 가져 정치에 일정한 질서’를 갖춘 민족, 즉 국가를 형성한 민족만이 ‘역사적인 민족’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다름 아닌 랑케의 민족, 국가, 역사 인식과 통하는 내용이다(홍종욱, 「실증사학의 ‘이념’: 식민지 조선에 온 역사주의」, 『인문논총』 76-3, 2019.8., 308쪽).

근대 역사학의 ‘이념’이 민족이라고 할 때, 민족주의 비판은 역사학 비판일 수밖에 없다. 2019년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등 한국의 진보 역사학을 대표하는 세 단체는 임정법통론을 비판하는 「국가 정통론의 동원과 역사전쟁의 함정」이라는 학술회의를 함께 열었다(「진보 역사학계 “문재인 정부 ‘임정 정통론’은 냉전의식 강화” 비판」, 『한겨레신문』 2019.4.14.). 적어도 한국의 ‘민중사학’이 모두 임정법통론을 지지한 것은 아니다.

다. 한국 독립운동과 네이션 빌딩

이 책은 “3·1 독립운동 후의 조선 내셔널리즘은 이 운동에 의해 결속이 강고해진 에스닉 집단으로서의 조선민족을 정치공동체로서의 네이션으로 바꿔 만드는 것으로 변화”(201쪽)했다고 보고, 그 최초의 작업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과 그 헌법에 해당하는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정을 들었다. 앞서 살핀 ‘헌법을 가져 정치에 일정한 질서’를 갖춘 민족, 즉 국가를 형성한 민족만이 ‘역사적인 민족’이 될 수 있다는 이병도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최남선은 3·1 독립운동이 ‘완전한 의미에서의 “민족”이라는 것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이 책은 최남선이 말한 민족은 에스닉 집단인데, 지식인들은 이를 “정치공동체로서의 네이션으로 전환되도록 민중을 대상으로 하는 계몽활동을 전개”했다고 보았다(222쪽).

한국, 일본 등에 대해 피플, 네이션의 구별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할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에스닉 집단과 정치공동체를 대립적으로 보기보다 일관된 네이션 빌딩 과정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이 책은 3·1운동 이후의 “대한민국 임시헌장에는 언어나 문화 혹은 혈연이라는 에스닉한 공통성을 나타내는 문구는 일체 적혀 있지 않”(204쪽)은 점에 주목했는데, 이는 에스닉 집단으로서 한국, 조선의 경계는 오래전부터 이미 뚜렷해서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서이지 않을까. 한국에서 민족 담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형성되었다는 연구도 있다(김자현 지음, 윌리엄 하부시·김지수 편집, 주채영 옮김, 『임진전쟁과 민족의 탄생』, 너머북스, 2019.).

이 책은 “파리강화회의 결과는 조선민족이 독립할 만한 네이션이 아니라는 국제사회의 평가를 독립운동가가 재확인하고 널리 공유하는 계기가 되었다”(211쪽)고 보았다. 윤치호가 “‘바보 같은’ 데모 행위는 조선총독부에 의한 무단정치의 연장을 부를 뿐”이라고 한 것에 대해서도 “그는 네이션이나 민주주의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미국에 유학한 것도 있어 ‘자결’권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실력이 요구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 것”(195쪽)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국제 질서는 그렇게 합리적인 것일까. 피플은 안되고 네이션은 된다는 기준은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측면은 없을까. 독립은 역시 실력양성이 아닌 싸움에 의해서 쟁취되는 것 아닐까. 이 책에서 소개했듯이 윤치호 스스로도 “역사상 싸우지 않고 정치적인 독립을 손에 넣은 인종이나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194쪽)고 밝혔다.

한국은 네이션이면 독립이 부여된다는 국제법 혹은 윌슨적 관념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파리강화회의 결과는 국제법에 의지한 독립이 어렵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여기서 적지 않은 한국인은 오히려 국제법을 넘어서는 투쟁과 인식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주체화의 실천이라는 관점에서 네이션 빌딩을 파악한 윤영실은 “식민지 민족-nation이란 정체성의 발현이 아닌 주체화의 실천이라는 관점에서 재해석될 필요”가 있고 한국인은 윌슨의 자결론이나 nation 개념을 ‘오해’했다기보다 기존의 질서(네이션들의 일가, 국민-제국들의 경존체제)가 ‘잘못’되었음을 드러냈다고 파악했다(윤영실, 「우드로우 윌슨의 self-determination과 nation 개념 재고: National self-determination을 둘러싼 한미일의 해석 갈등과 보편사적 의미(1)」, 『인문과학』 115, 2019.4., 166~167쪽).

 

4. 기타

3·1운동 직후 임규가 도쿄에 가지고 가서 여러 기관에 송부한 청원서는 어디로 갔을까. 청원서를 받은 일본 언론이 자숙한 것인가, 임규가 보내지 않고 보냈다고 거짓을 말한 것인가.

윌슨은 ‘피치자의 동의’를 중요시한다. 그런데 식민지에서 민중의 동의를 확인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민주주의가 없는 식민지에서 피치자의 동의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은 출구가 없는 현상 추인의 논리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