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저작비평회] 졸저, 『한국 ‘건국’의 기원을 찾다 : 3·1 독립운동과 내셔널리즘의 변천』에 대하여_오노 야스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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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2년 9월(통권 33호)

[제6회 저작비평회] 

 

졸저, 『한국 ‘건국’의 기원을 찾다 : 3·1 독립운동과 내셔널리즘의 변천』에 대하여

 

오노 야스테루(小野容熙, 九州大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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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 이 책의 배경①

저의 전공은 일제시기 독립운동사이며 2013년에 첫 번째 저서로 『朝鮮独立運動と東アジア 1910-1925』(思文閣出版)를 출간했다. 이 책의 목적은 일본, 중국, 대만, 러시아 등 국제관계사적 시각에서 사회주의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독립운동의 전개를 논하는 것이었다. 이 책에 대한 평가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일본에는 식민 지배를 다루는 수많은 연구자가 있는 반면, 민족운동이나 독립운동을 전문으로 하는 연구자는 거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일본에서 사회주의운동을 다룬 학술서가 간행된 것은 石坂浩一, 『近代日本の社会主義と朝鮮』(社会評論社, 1993) 이래 20년만이었다.

이 책에 대해 일본의 한국사 연구자들의 반응은 많지 않았지만, 일본의 외국사 연구자(서양사, 중국사, 러시아사 등)들이 반응해 주었다. 2018년에 岩波書店에서 간행된 식민지 연구에 관한 해설서 『日本植民地研究の論点』에 ‘민족운동’ 항목이 없는 것에서 잘 나타나듯이 일본 한국사학계에서는 독립운동, 민족운동에 대한 관심이 낮다(다만 민중사에 대한 관심은 높다). 한편 일본 역사학계에서는 일국사(一国史)를 뛰어넘는 글로벌 히스토리의 시각이 중시되고 있다. 한국 역사학계에서 3·1 독립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준비가 시작된 2014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100주년이기도 했기 때문에 글로벌 히스토리와 깊이 연결된 세계대전이 일본 역사학계에서 널리 주목을 받았다. 또한 일본에서는 종래의 글로벌 히스토리 관점이 서양 중심이었던 것에 대한 반성으로 요즘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주목하고 있다. 예를 들어 岩波書店이 20권 이상 규모로 간행하는 『岩波講座 世界歴史』 시리즈가 20년 만에 작년부터 간행이 시작되었는데 이번 『岩波講座 世界歴史』에서는 아시아사와 아프리카사에 관한 글이 증가했다.

이와 같은 일본 역사학계의 경향을 배경으로 저는 일본에서 거의 유일한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자로서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에 관한 각종 공동연구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저는 민족자결(Self-Determination)이 민주주의와 깊이 결합된 개념이라는 점과 러시아 2월 혁명이 피지배민족에 세계적으로 미친 영향 등 기존 독립운동사 연구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던 논점을 배웠다. 『한국 ‘건국’의 기원을 찾다』에서 민족자결 수용과 러시아 2월 혁명에 특히 주목한 것은 이러한 공동연구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이나 러시아혁명 공동연구에 참가하면서 느낀 것은 글로벌한 역사 서술을 내실화할 목적으로 세계대전 시기의 한국 독립운동에 관심을 가지는 서양사 등 타국사 연구자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타국사 연구자들이 한국 독립운동을 이해할 때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이 제가 이 책을 집필한 첫 번째 배경이다.

 

2. ‘3·1 혁명’ 담론: 이 책의 배경②

이 책의 두 번째 배경은 촛불시위 이후 한국에서의 독립운동사 연구 경향에 대한 위화감이다. 이 책의 서장에서 자세히 논했듯이 3·1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결합시켜 이해하는 ‘3·1 혁명’ 담론에 대해서 저는 비판적이다. 그 이유는 다음 세 가지이다.

1) 3·1 혁명 담론이 뉴라이트의 역사관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담론이라는 점이다. 당연히 모든 연구자가 3·1 혁명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이에 비판적인 연구자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국가의 승인을 받은 특정한 역사 이야기가 영향력을 갖는 것은 후술하듯이 당시 역사가 갖고 있던 다양한 가능성을 상실하게 하며 학문으로서의 역사학 발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가 이 점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다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박찬승, 『1919: 대한민국의 첫 번째 봄』(다산초당, 1919)이다. 이 책은 학술적인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일반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쓰인 매우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해설서이면서도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해명했고 특히 독립선언서의 인쇄(보성사판과 신문관판) 분석 등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러나 저자가 책에서 단언하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3·1 독립운동의 가장 큰 성과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며 이것으로 대한민국이 탄생했다는 정부 견해와 보조를 맞추는 정치성을 띤 내용이다.
저는 대학원생 시절부터 박찬승 씨의 실증적이고 수준 높은 저작과 글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워왔다. 그러나 3·1 독립운동의 의의는 다양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은 그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또 3·1 이후 독립운동의 주류가 대한민국임시정부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고, 사회주의를 비롯한 여러 세력이 활약했다. 아마 이런 점을 인식하고 있을 박찬승 씨가 『1919』를 낸 것은 저에게 충격적이었다.
다른 하나는 일본에서 열린 어떤 행사이다. 2019년에는 일본에서도 3·1 독립운동 100주년에 관한 각종 학술행사가 열렸고 저도 몇 개의 학술행사에 발표자 혹은 강연자로 참가했다. 그 중 한 행사는 강연 의뢰를 받았을 때에는 3·1 독립운동의 의의를 생각하는 주제였으나 저도 모르는 사이에 3·1 독립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 주년으로 주제가 변경되어 있었다. 행사 당일 저는 3·1 혁명이라는 역사 이야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평가하지 않는 북한과 공유하기 어렵고 남북 간에서 3·1 운동의 기억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이 운동이 일어난 과정에 대해 사료에 입각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한국이 그 법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되어 있는 임시정부와 공산주의국가인 북한의 성립 배경이 되고 있는 러시아혁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본서 제2장) 발표를 했다. 그러나 저의 발표에 대해 토론자인 한 연구자는 3·1 운동 기억 공유에 대해서는 남북이 통일된 뒤에 생각하면 되고 우선 통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고 이어서 행사 사회자가 3·1 혁명 만세를 외치면서 행사는 종료했다. 학술에 정치가 미치는 영향을 느낀 행사였다.

2) 지금까지 말한 것과 겹치는데 정치와 연결된 3·1 혁명 담론의 큰 문제점은 역사상의 고착화, 다시 말해 당시 역사가 가진 가능성의 부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의문스러운 것은 사회주의운동의 취급이다. 3·1 운동 이후 사회주의운동은 독립운동의 중요한 세력이 되었다. 1919년 시점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유래가 될 것은 당연히 확정되지 않았으며, 사회주의 세력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의 각종 세력이 통합될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으로부터 역산해서 3·1 독립운동을 혁명으로 평가해 버리면 이러한 역사의 가능성은 논의하기가 어려워질 것 같다. 더욱이 3·1 혁명을 주장하는 논자 중에는 사회주의운동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거나 부정적인 논자들이 있다는 점도 위화감을 느꼈다. 2019 년에 발표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관한 한 책은 임시정부에 이동휘 등 사회주의자가 재적한 사실을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올해 결성 100 주년이 된 일본공산당이 설립된 계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에서 결성된 한국공산당이 일본에 밀사를 보낸 것이었으며, 임시정부에 사회주의자들이 참가하고 있었던 것은 한국에 그치지 않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3) 역사서술의 일국사적 경향이 강해지는 것이 우려된다. 저는 앞에서 언급한 『1919』를 비롯하여 3·1 운동에 참가한 민중에 관한 연구 성과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런데 현재의 한국이라는 관점이 강조된 나머지 3·1 독립운동에 타국·타민족이 끼친 영향에 대한 분석이 약해지고 있다고 느꼈다(정병준 씨의 일련의 연구처럼 국제적 시각에서 실증적으로 분석한 연구도 있지만). 물론 3·1 독립운동이 일어난 요인에는 국내적 요인과 국제적 요인이 있고 국내적 요인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3·1 독립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 러시아혁명, 민족자결이라는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일어났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일본 역사학계에서는 글로벌 히스토리의 시각이 중시되고 있으며, 그런 관점에서 한국 독립운동에 관심을 갖는 타국사 연구자도 있다. 따라서 3·1 독립운동의 국제적 요인을 규명하는 것은 세계사 이해에 기여하는 방법이며 나아가 조선독립운동사 연구의 의의를 높이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상과 같이 3·1 혁명 담론이 역사연구에 미치는 영향을 느낀 것이 제가 이 책을 간행한 두 번째 배경이다.

 

3. 일본의 상황: 이 책의 배경③

이 책의 마지막 배경은 한국에서의 3·1 독립운동에 관한 연구경향 변화나 그 배경에 있는 정치적 담론이 일본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9년에는 일본 언론에서도 3·1 독립운동에 대해 많이 보도되었는데, 대부분은 문재인 정권이 반일이냐 아니냐 하는 시각이었고 3·1 운동을 혁명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한 보도는 거의 없었다. 뉴라이트나 건국절에 대해서도 일본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반일종족주의』는 한국의 10만 부에 비해 일본에서는 40만 부의 베스트셀러가 되어 지금도 일본에서 가장 잘 팔리는 한국사 책인데, 이 책의 저자들이 뉴라이트인 것은 잘 알려지지 않는 상황이다.

또 일본 역사학계에서는 2019 년에 3.1 독립운동에 관한 많은 행사가 열렸으며 학술지에서도 특집을 짰다. 구체적으로는 『歴史評論』, 『朝鮮史研究会論文集』, 『大原社会問題研究所雑誌』 등이다. 이들 잡지 특집에서는 3·1 독립운동에 의한 민중, 식민지배, 문화 등의 변화를 다룬 것이 많았고 그 시각은 다양하다. 다만 3·1 독립운동을 혁명으로 파악하는 경향에 대해서는 간단히 언급하는 논고가 몇 개 있을 정도로 자세히 소개되지는 않았다.

한편 이 점에 대해서는 저널리스트가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대표적인 저작으로는 毎日新聞社 기자인 澤田克己 씨의 『反日韓国という幻想』(毎日新聞出版社, 2020)이 진보파와 보수파의 정치적 갈등 문제와 더불어 문재인 정권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을 한국의 실질적인 건국기념일로 삼으려 했음을 소개하고 있다. 유사한 서적으로 NHK 기자인 池畑修平씨의 『韓国, 内なる分断』(平凡社, 2019)이 있다. 사와다 씨와 이케하타 씨의 저작에 공통되는 것은 한국을 반일인지 아닌지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강한 일본인에게 실제 한국에서는 국내 정치 갈등이 큰 문제가 되어 있고 반일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일본을 의식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원래 최대의 반일적 독립운동이었던 3·1 운동이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혁명으로서, 즉 일본을 적으로 보는 운동이라기보다 현재 한국을 건국하기 위한 운동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이러한 경향이 역사연구 분야에서도 반영된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상의 일본 상황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것을 목표로 본서를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집필하였다.

 

4. 이 책의 주된 내용

지금까지 언급한 바와 같이 본서는 기본적으로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연구자로서는 다른 나라의 역사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을 목표로 집필하였다. 그래서 한국사 연구자들에게는 내용 대부분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이하 1~4장의 내용에 대해서 새로운 견해(로 제가 생각하는) 부분을 중심으로 논하고자 한다.

제1장 제1차 세계대전: 공화제인가 제정인가

1장과 2장은 한국사 문맥이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미국의 참전 등 세계대전의 전개에 맞추어 장과 절을 구분하고 있다. 이것은 세계대전의 전개라는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한국 독립운동을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1장은 1914년 7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 1915년 대화 21개조 요구와 독립운동과의 관계를 다루었다. 1910년대 무단정치로 인해 조선 내에서 독립운동 전개가 불가능해지면서 러시아 극동, 중국(상하이, 베이징), 만주, 일본 등 해외에서 전개된 독립운동이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논했다.
1장에서 다룬 러시아극동의 권업회(勸業會), 상하이의 동제회(同濟會), 베이징의 신한혁명당(新韓革命黨), 일본의 신아동맹당(新亞同盟黨) 등 민족운동단체에 대해서는 이미 선행연구도 있고 잘 알려져 있다. 기존 연구에서 충분히 주목되지 않았던 독창성이 있다면 독립운동가들이 제1차 세계대전을 운동에 이용했음을 논한 것, 구체적으로는 일본의 적국이 된 독일에 대한 기대를 지적한 점이다. 1장에서는 일본이 독일에 선전포고한 직후 독일에 모금하는 한국인이 있었다는 점, 신한혁명당이 중국 베이징 정부 및 독일과 군사동맹을 체결함으로써 독립운동을 추진하려 했음을 논했다. 통치국의 적국에 기대하며 제휴를 모색하는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시기 각국 식민지에서 보편적으로 보인 현상이었으며, 예를 들어 영국 통치하 아일랜드에서도 (태평양전쟁 시기 조선과 마찬가지로) 통치국의 전쟁에 협력하는 대가로 지위 향상을 꾀하는 인물이 있었던 한편, 독일과 협력하면서 독립운동을 추진하려는 인물도 있었다. 이 책에서는 한국 독립운동의 독자성을 충분히 분석하지 못했지만, 이와 같은 세계사적 보편성을 규명하는 것은 한국의 독자성을 고찰하는 데에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2장 민족자결: 전략으로서의 민주주의

2장은 미국이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러시아에서 2월 혁명이 일어난 1917년부터 1919년의 2·8 독립선언까지를 다루고 있다.
2장에서는 러시아 2월 혁명에 대해서 자세히 논했다. 그 이유는 2월 혁명이 세계적으로 민족자결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에서는 2월 혁명을 계기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전사(前史)로서 반드시 언급되는 「대동단결선언」이 발표되었고, 일본에서도 2월 혁명을 통해 민족자결이라는 최신 개념을 접하였다.
또한 이 장에서는 민족자결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상세히 논했다. 민족자결은 미국에서는 국민주권과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고 윌슨 대통령은 민주주의 국가를 운영할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을 피지배민족이 독립하는 조건으로 중시하고 있었다. 2장에서는 러시아 2월 혁명 이후 독립운동가들이 파리강화회의에 효과적으로 어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민주주의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밝히려고 했다.
2장에서 독립운동사 연구 발전에 기여할 수 있었던 점이 있다면, 「대동단결선언」이 독일 사회민주당의 필리프 샤이데만(Philipp Scheidemann)이 1917년 6월 12일 작성한 문서(Philipp Scheidemann, Der Zusammenbruch, 1921에 수록)를 토대로 만들어졌음을 해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샤이데만의 문서는 아마도 서양 지식인들이 조선에 자결권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최초 문헌일 것이다.
또 영어의 nation이 단순히 민족을 의미하지 않고 윌슨은 nation을 민주주의적인 정치공동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 에스닉한 공동체에 대해서는 people로 불렀다는 점, 이러한 윌슨의 nation과 people 개념을 독립운동가들이 비교적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 것도 독창성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제3장 3·1 독립운동: 지배자, 협력자, 그리고 정보원으로서의 일본

3장은 조선에서 독립선언서 준비과정과 3월 1일 이후 만세시위 전개 등에 대한 개설이다. 3장은 일본 독자들에게 조선 내 3·1 독립운동에 대해 알리는 목적으로 썼기 때문에 제가 발견한 역사적 사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전체적으로 일본과의 관계에 주목하면서 서술한 점이 특징이며 최남선이나 최린을 비롯한 조선 내 지식인들이 민족자결이나 파리강화회의에 관한 정보를 『大阪朝日新聞』이나 『大阪毎日新聞』 등 일본 신문을 통해서 입수했음을 분석한 점이 독창성이라 할 수 있겠다. 종래의 연구에서는 신문이라고 하면 『매일신보』나 『경성일보』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들 신문의 국제면은 일본 신문에 의거해서 작성되어 있었다. 또 『大阪朝日新聞』이나 『大阪毎日新聞』은 조선에서도 정기구독이 가능했으므로 정보 수집 관점에서는 일본 신문이 더 중요했다.
2장에서는 일본의 신문·잡지에서 민족자결이나 파리강화회의가 어떻게 보도되었는지를 상세히 분석했는데, 이것은 조선에서 파리강화회의 등에 대한 주요 정보원이 일본 신문이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것은 2장에서 언급했는데 민족자결은 민주주의와 밀접하게 결합된 개념으로 파리강화회의에서 자결권을 승인받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국가의 운영능력을 보여줘야 했다. 이를 이해한 해외 독립운동가들이 작성한 청원서나 2·8 독립선언서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이 있다. 한편 일본 신문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보도되지 않았으므로 일본 신문을 정보원으로 삼았던 최남선의 3·1 독립선언서에는 민주주의 능력에 대한 언급이 없었음을 지적했다.

제4장 조선 내셔널리즘: 3·1 후 독립운동의 행방

마지막으로 4장은 3·1 독립운동 이후 독립운동 전개에 대해서 1923년경까지 논했다. 이 장 역시 그다지 새로운 내용은 없는데, 주된 내용으로는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서 한국 민족이 국제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의 운영능력을 가지는 정치공동체인 네이션으로 인지될 필요가 있음을 독립운동가와 지식인들이 인식하고 있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동아일보』를 비롯한 각종 계몽활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도 원래 에스닉한 공동체였던 한국 민족을 정치적 공동체인 네이션으로 전환시켜 국제사회에 어필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지적했다. 또한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3·1 혁명 담론에서는 사회주의 운동이 충분히 의논되지 않았음을 염두에 두고, 사회주의운동이 독립운동에서 영향력을 갖게 된 과정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대부분 기존 연구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며 이 책의 독창성은 코민테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제2 인터내셔널에 접근한 사실을 네덜란드 사회사연구소 사료를 사용해서 밝힌 정도다.

본서의 내용은 이상이다. 결론적으로 3·1 독립운동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과 미국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독립운동가들이 민주주의와 밀접하게 결합된 민족자결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알게 되었고 파리강화회의에서 독립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국가 운영능력이 필요하다고 인식한 것이, 3·1 독립운동과 이후의 독립운동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고찰하는 데 그 기원이 되는 러시아혁명과 특히 미국의 영향에 관한 분석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본서에서는 충분히 다룰 수 없었으므로 앞으로의 과제로 삼고 싶다.

 

 

『한국 ‘건국’의 기원을 찾다』  목차

머리말

서장 3·1 혁명: 독립운동과 변용하는 한국 내셔널리즘
1. 대한민국 헌법 전문
2. 뉴라이트와 건국절
3. 변용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적 위상
4. 3.1 혁명론의 대두와 그 논리
5. ‘3·1 혁명’을 넘어서

제1장 제1차 세계대전: 공화제인가 제정인가
1. 한반도에서 해외로: 한국병합과 무단정치
2. 적의 적은 아군: 러시아와의 제휴와 제1차 세계대전 발발
3. 대화 21 개조 요구: 혁명파 중국인과의 제휴 모색
4. 환상의 중국·독일 연합군: 수단으로서의 제정 부활

제2장 민족자결: 전략으로서의 민주주의
1. 러시아 2월 혁명의 충격: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기원
2. 요시노 사쿠조와 러시아 혁명: 번역어 민족자결의 탄생①
3. 미국의 참전과 재미조선인
4. 윌슨의 민족과 자결 개념: 번역어 민족자결의 탄생②
5. 종전: 미국과 상하이에서의 독립청원
6. 2·8 독립선언
7. 러시아 내전: 한국 독립운동의 새로운 전개

제3장 3·1 독립운동: 지배자, 협력자, 그리고 정보원으로서의 일본
1. 만세시위의 전개
2. 3·1 독립운동의 준비과정: ‘자결’과 파리강화회의 정보원
3. 신주쿠 나카무라야와 최남선: 윌슨과 일본정부 앞 청원서의 국제발신
4. 3·1 독립운동과 일본사회
5. 윤치호의 3·1 운동 비판

제4장 조선 내셔널리즘: 3·1 후 독립운동의 행방
1.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어필
2. 공산주의운동의 대두: 임시정부와 두 개의 고려공산당
3. 한반도에서의 독립운동 전개와 분열

종장 한국 건국의 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