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논문을 말한다] 근대 전환기 서양의 한국 인식 : 문헌 목록의 지식 분류를 중심으로_배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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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2년 9월(통권 33호)

[나의 학위논문] 

 

근대 전환기 서양의 한국 인식
: 문헌 목록의 지식 분류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박사학위 논문(2021.02)

 

배민재(근대사분과)

 

들어가며

박사학위 논문 ‘근대 전환기 서양의 한국 인식-18~20세기 문헌 목록의 지식 분류를 중심으로’는 서양어 문헌 목록의 분류체계에서 드러나는 한국에 관한 지식의 형태적 변화를 분석함으로써 근대 서양의 한국 인식이 형성ㆍ구축되어 가는 과정을 규명한 연구이다. 본 연구에서는 한국에 관한 지식을 분류체계 내에서의 위치에 따라 ‘요소’-‘단위’-‘체계’의 세 단계로 구분하고, 한국에 관한 서양의 지식이 생산ㆍ축적되는 시기별 빈도와 양상, 그리고 주요한 지식 생산의 주체에서 나타난 변화들을 살펴보았다. 특히, 각 문헌 목록의 편찬 배경과 목적, 편찬자의 학적 배경, 문헌의 수집과 선별ㆍ배치에 활용된 참고자료, 수록된 문헌의 종류 및 내용 등을 검토함으로써, 서양에서 한국이 실체적인 지식의 대상이자 제도권 분과학문의 하위 분야로 자리매김하기까지의 장기적인 흐름을 학술적 토대와 지형의 변화라는 맥락 속에서 설명하고자 하였다.

 

문헌 목록의 재발견과 18~19세기의 한국 인식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서양인이 아시아 동쪽 끝에 있는 나라를 알게 되는 경로는 대체로 문헌이었다. 그리고 문헌 목록은 그러한 문헌을 취합하여 안내하는 ‘지식의 전시장’이었다. ‘지식의 전시장’이라고 표현한 것은 문헌 목록이 단지 서지정보만을 제공하는 자료가 아님을 뜻한다. 특히, 문헌의 배치는 작성자와 이용자 간에 공유되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결정된다. 서지학에서는 이를 ‘지식 분류’라고 한다. 자료 발굴을 위한 도구가 아닌, 자료로서 문헌 목록을 분석하는 관점은 문헌 목록이 학술 공동체를 중심으로 축적된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문헌 목록이 구성되는 원리와 그 사회적 성격에 관한 논의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유럽과 미국 서지학계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2010년대 이후부터는 이론적 논의를 넘어서 문헌 목록의 구성과 내용에 관한 분석적 연구가 주를 이룬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한국만을 대상으로 작성된 문헌 목록은 적어도 20세기 전까지는 출간된 적이 없었다. 따라서 한국에 관한 문헌이 수록된 목록들을 찾아내는 것이 먼저였으며, 그 이후부터는 그 안에서 한국에 관한 문헌이 수록된 위치와 형태, 그리고 실제로 수록된 문헌의 종류와 가지 수 등을 비교 분석하는 작업이 주를 이루었다. 분류체계의 변화를 살피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 분류체계가 구성되게 된 근거와 맥락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 편찬자는 무엇을 근거로 이러한 분류체계를 구성했을까. 문헌 목록에 제시된 참고문헌이나 편찬자 서문만으로는 명확한 실마리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편찬자의 이력과 논저를 조사하여 근거를 찾아 맞추는 과정이 이어졌다.

각 문헌 목록의 참고문헌이나 서문 및 해제의 단서 등을 거슬러 올라간 끝에는 1786년 독일에서 출간된 요한 게오그르 모이젤(Johann Georg Meusel)의 문헌 목록이 있었다. 그의 문헌 목록은 아시아나 중국이 아닌,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것인데, 대략 유럽에서부터 가까운 순서에 따라서 동양 세계를 인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문헌 목록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한국과 티베트가 하나의 분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 ‘한국과 티베트’ 항목의 근거는 장 밥티스트 뒤 알드(Jean Baptiste Du Halde)의 『중국지』 제4권이었다. 이후에 출간된 문헌 목록들의 분류체계를 검토한 결과 19세기 중ㆍ후반의 동양학자들이 18세기에 출간된 『중국지』의 인식-중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를 편제하는-을 상당 부분 공유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중화제국’이라는 인식적 범주는 동양학의 학술장(場)을 중심으로 19세기 후반까지 전승되는 가운데, 한국은 그에 속한 ‘구성 요소’의 하나로 존재하였다.

 

20세기의 문헌 목록으로 살펴본 한국

20세기 초에 나타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일본에 관한 서양어 문헌 목록에 ‘한국’이라는 분류 항목이 등장한 것이었다. 필자는 이 형태를 지식의 ‘단위’로 규정하였다. 독일 출신의 일본학자 오스카 나호드(Oskar Nachod)는 1902년부터 일본 관련 저술의 문헌 목록을 정기적으로 학술지에 투고하였는데, 정확히 1911년부터 ‘Korea(Chōsen)’ 항목을 추가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나호드는 1924년까지 투고하였던 목록을 수합, 1928년 Bibliography of the Japanese Empire를 런던에서 출간했다. 이 문헌 목록에서 ‘일본제국’의 범주에는 홋카이도, 사할린, 류큐, 대만, 오가사와라, 남만주 그리고 한국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분류체계는 물론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현실적 요인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러나 ‘요소’에서 ‘단위’로의 형태적 변화는 한국을 포함하여 동아시아에 관한 지식이 생산되는 흐름과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식의 형태적 변화는 결국 한국에 관한 지식이 생산되는 조건과 맥락이 18~20세기에 걸쳐 변화하였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19세기 후반 한국 사회와의 접촉을 토대로 생산된 서양어 저술과 새롭게 형성된 지식 생산의 주체로서 재한 서양인 사회의 한국 관련 지식 생산 활동에 특히 주목하였다. 주지하듯이, 19세기 이전까지는 한국을 조명한 서양어 문헌이 중국, 일본에 비해 드물었지만, 이는 서양의 동아시아 진출과 개항을 거치며 변화하였다. 실제로 19세기 말~20세기 초에는 한국에 진출한 선교사, 외교관 등이 주축이 되어 Korean Repository, Korea Review, Korea Mission Field, Transactions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Korea Branch 등의 정기간행물을 발행하면서 한국에 관한 서양어 저술의 생산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활동 규모는 물론 중국과 일본에 이미 형성되어 있었던 서양인 사회의 그것보다 작았지만, 장기간의 체류와 선교 사업으로 한국 사회와 접촉면이 상대적으로 넓은 개신교 선교들이 재한 서양인 사회의 중심을 점하면서 활동을 꾸준히 지속해 나갔다는 특징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1928년에 출간된 나호드의 문헌 목록에는 재한 서양인 사회를 중심으로 생산되었던 한국 관련 저술 중 상당수가 빠져 있었다. 재한 서양인, 특히 선교사들에게는 서양에 한국을 알리는 저술 활동이 사업적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했다. 따라서 가장 최신의 문헌 목록에 그러한 저술들이 온전하게 수록되지 않았다는 사실에는 일정한 문제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바로 호레이스 호턴 언더우드(Horace H. Underwood)가 1931년Transactions 제20호에 한국에 관한 서양어 문헌 목록 ‘A Partial Bibliography of Occidental Literature on Korea, From Early Times to 1930’를 발표하게 된 배경이었다.

언더우드의 문헌 목록은 한국을 가장 포괄적인 대상으로 삼은 첫 번째 문헌 목록이었다. 나호드의 문헌 목록이 편찬의 직접적인 계기이기는 했으나, 편찬자는 서문에서 ‘한국에 관한 서양어 저술의 발전과 현재를 보여줌으로써 연구가 부족한 분야를 드러낼 수 있도록’ 한다는 학술적 목적과 전망을 표하였다. 물론 언더우드가 전문 동양학자는 아니었으며, 목록 또한 영문 저술의 비중이 90% 이상이라는 한계는 있다. 그러나 이 문헌 목록에는 16세기 말부터 1930년까지 생산된 2,800점 이상의 한국 관련 문헌이 집대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1930-40년대 제도권 학계에서도 참고자료로 활용되었다. 이는 1939년 미국에서 출간된 Northeastern Asia, A Selected Bibliography에서 언더우드의 문헌 목록이 참고문헌으로 제시된 데에서도 잘 드러난다. 제도권 학계로의 확산은 편찬자 서문에서 밝힌 편찬 목적과 전망에도 부합한다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재한 서양인 2~3세대들이 미국 제도권 학계로 진출하여 소위 ‘1세대 한국학 전문가’로 활동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마치며

본 연구에는 한국 관련 서양어 문헌에 관한 내용적 분석이 생략되어 있다. 그렇기에, 서양의 한국 인식 연구에서 요구되는 비판적 시각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한국에 관한 서양의 학적 담론과 분류체계의 변화를 결합하여 설명하지 못하였다는 아쉬움을 느낀다. 근래에는 전전과 전후 한국학의 연결고리를 찾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향후 이에 관한 주제로도 여러 연구자와 교류할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