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운동의 ‘낯선’ 모습과 갱신되는 ‘낯섦’_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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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2년 7월(통권 31호)

[서평] 

 

운동의 ‘낯선’ 모습과 갱신되는 ‘낯섦’

(정병욱 지음, 『낯선 삼일운동: 많은 인민을 이길 수 없다』, 역사비평사, 2022)

 

김명재(근대사분과)

1. 100주년의 ‘잔치’가 끝난 후

2019년. 한 지역의 3.1운동 100주년 학술 행사에서 임시 스태프로 일하던 때였다. 1년 내내 3.1운동의 ‘생일 잔치’를 치르듯 워낙 많은 학술대회들이 열리던 와중에, 으레 진행되는 발표회와 마찬가지로 각 세션의 발표와 토론이 이어지고 오후 느즈막에 종합토론이 진행되었다. 한창 토론이 진행되던 중, 어떤 토론자가 “그런데 실상 지금 우리 연구가 3.1운동에 대한 새로운 이해라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전에 했던 얘기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근대 한국의 운동 중에서도 영향력이 큰 3.1운동, 그 운동의 100주년으로 인해 관련 연구와 담론, 대중적 관심이 쏟아질 때였다. 이와 같은 시기 기존과는 다른 ‘낯선’ 연구와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토론자의 말이 가진 울림은 생각보다 강했고, 그 장면은 3.1운동과 그 새로운 의미에 천착하는 연구자들의 끊임없는 고민을 엿볼 수 있는 것이기에 인상에 깊이 남았다.

주지하다시피 2019년도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역사연구회에서 기획한 『3.1운동 100년』(휴머니스트, 2019)과 같은 각종 단행본들과 대중서, 논문, 전집, 학술대회, 행사 등 학술적·대중적 에너지들이 그야말로 ‘폭발’했던 때였다. 그러나 마치 매장에서 대박 세일이 끝난 후 손님을 찾아볼 수 없는 것과 같이, 100주년이라는 ‘잔치’의 후유증 속에서 3.1운동의 상(像)을 대중적으로 갈무리하는 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때 발간된 『낯선 삼일운동: 많은 인민을 이길 수 없다』(역사비평사, 2022)의 등장은 이런 의미에서 반가웠다. 정병욱의 저서 『낯선 삼일운동』은 한국역사연구회 웹진 ‘역사랑(歷史廊)’에 2020년 4월부터 2021년 4월까지 장장 1년간 기고한 글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2. 『낯선 삼일운동』의 특징과 미덕

저자는 제목에서 ‘낯선’이라는 단어와 최병한이 말한 ‘많은 인민을 이길 수 없다’(165쪽)는 부제를 통해 이미 책에서 지향하는 바를 표방하고 있다. 인기 있는 역사학계 대중서인 『식민지 불온열전』(역사비평사, 2013)에서 이미 보통 사람들을 역사적 서사의 주인공으로 삼은 데에 이어, 다시 한번 밀도 있고 디테일을 갖춘 서술을 무기로, 저자는 ‘민중’을 중심으로 여러 사건과 인물들에게서 3.1운동의 낯설고 다양한 상을 그려내고자 하였다.

저서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성된다. 전반부는 최흥백, 최덕복, 평양 시민들, 홍석정, 심영식, 3.1운동 참여자 수감 사진과 번호, 태형, 서울 남대문역 부근 만세 시위, 3월 말 서울 만세 시위, 수원군 장안면·우정면 만세 시위, 제주 신좌면 만세 시위 등 11개의 3.1운동 사례와 참여 주체를 다루었다. 후반부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삼일 DB’를 활용한 사료 비판, 황해도 수안 만세 시위의 재구성, 3.1운동과 학력주의의 제도화를 주제로 한 연구 차원의 보론 3개로 구성되었다.

저자는 책의 주안점으로 3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첫째, 엘리트주의에 가려진 민중의 모습으로 사건 재해석하기, 둘째, 집단으로서 민중보다는 참여자 각각이 행위자가 되도록 서술하기, 셋째, 관련 인물의 생애 전반을 추적하여 생애에서 3.1운동의 의미를 되묻기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자신의 삶의 조건에 규정되면서도 그 조건을 전유하면서’ 살아갔던 민중”(9쪽)의 모습을 보고자 한다. 그러한 서술은 ‘모두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3.1운동 속 민중의 상을 그리려던 저자의 초기 기획에도 드러난다. 물론 그러한 기획은 현실상의 ‘어려움’ 속에서 수정되었지만, 여전히 저서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그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먼저 저서는 기존의 엘리트주의적 서술과 차별화하여 3.1운동의 다양한 하위 주체를 발굴한다. “삼일운동은 민중이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않았다면 ‘33인 사건’에 그쳤을 것”(6쪽)이라는 역설적인 첫 구절처럼, 기존 역사 서술에서 홀대받았던 민중의 시각에서 3.1운동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여기에 각 사례 속 그 ‘주역’들의 생애사를 훑고 여러 시기와 사건들 간의 연관을 살펴봄으로써 3.1운동이라는 단발적인 사건만이 아닌 운동의 의미를 보다 넓고 깊게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 점은 경원 최흥백의 연해주 이주와 그의 아들 최재형 및 그의 가족사, 1900년대 천도교인들의 의병전쟁 경험과 단천 천도교인 최덕복의 ‘독립’, 제주 신좌면의 만세 시위와 제주 4.3사건 등의 사례 등에서 나타난다.

또한 대중적으로 알려진 인물은 없지만, 일종의 ‘집합적 주체’로서 서울의 기층민중과 군중, 평양 시민들과 같이 당시에 회집하였던 ‘무리’들의 운동과 시각장애인 독립운동가 심영식(심명철)에도 주목하였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저자의 끈질긴 질문과 파헤침이 빛을 발한다. 이미 『식민지 불온열전』에서도 정평이 나 있었던 인물과 사건에 대한 거듭되는 의문, 재해석, 파고들기, 다각도에 걸친 추적과 교차 검증을 통해 대중운동으로서 3.1운동의 현장성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본 저서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각종 문헌자료와 사료는 물론, 발로 다닌 답사의 흔적들과 사진, 영화, 다큐멘터리, 심지어 다양한 연구자 네트워크의 활용도 눈에 띈다. 특히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되는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들로 장식된 표지 속 인물들의 사진과 그 사진에서 보이는 3.1운동 참여자들의 부은 얼굴, 표정과 눈은 운동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기본적이지만 중요한 새로운 정보와 연구사적 차별점을 제공하는 점 또한 눈에 띈다. 영화 ‘항거(2019)’에서 잘못 재현되었고 연구자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유관순을 비롯한 수형자 번호의 오류를 짚어준 점도 중요하다. 보론에서는 ‘삼일 DB’를 활용하여 판결문 자료, 개설서들을 교차하면서 연구자들의 재확인이 필요한 부분을 짚는다든지, 기존에 ‘공세적 시위’의 대명사로 알려진 황해도 수안 시위에 대한 재구성과 재인식, 3.1운동과 제2차 조선교육령 실시 이후 학력주의 제도화에 대한 재해석 등은 대중뿐만 아니라 학술 연구자의 지적 계몽에도 기여한다,

결국, 대중적이고 현장성 가득한 3.1운동 역사 서술과 학술적인 보론을 통한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서술 전략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전반적으로 1차 자료과 사료 교차를 통한 인내심과 밀도 있는 접근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에 그 기획이 더욱 설득력 있게 제시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낯선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갱신될 것인가.

2019년 100주년이 된 3.1운동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역시나 ‘다양성’이었다. 그리고 이 화두는 각종 대중서나 대중매체, 심지어 학술 연구 등에서 ‘다양한’ 주체의 발굴로 귀결되었다. 물론, 실질적으로 소수자와 하위 주체를 얼마나 포괄했는지, 민중(혹은 보통 사람)은 누구를 지칭하는지 등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소위 ‘민중’이라고 불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3.1운동 참여와 그 기여를 발굴하고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본 저서에서도 ‘다양한 민중’의 존재, 그들에게서 발견되는 운동 참여 동기의 ‘자발성’, 그리고 각 사건의 알려지지 않은 ‘주역’을 찾는 작업이 책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이렇듯 민중의 3.1운동 참여에 있어서 ‘자발성’과 ‘의도’, 운동의 ‘주역’에 대한 고민과 강조는, 책에서 지향하는 ‘민중의 시각에 나타난 3.1운동’이라는 서술 의도와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권력 관계 속에서 주로 ‘약자’에 속”(6쪽)하는 민중과 그 참여를 부정적으로 이해하는 3.1운동 ‘선동론’이나 ‘협박 및 동원론’과의 구분 짓기와 무관치 않다. 예를 들어 8장과 9장에서 3.1운동에 참여한 ‘기층민중’과 ‘군중’의 재판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자신의 ‘무지(無知)’를 드러내는 장면을 민중의 ‘자발적 몰주체성’, ‘능동적 수동성’, ‘의도적 무지’로 평가하거나(146~147쪽), 3.1운동 참여 과정에서 드러나는 ‘협박’과 ‘동원’을 매개로 하는 공동체적 규제에 대해 참가자의 수동성보다는 오히려 당시 만세 시위가 ‘대세’였음을 의미하는 지표라고 주장한다(163~165쪽). 이 과정에서 민중 층의 ‘수동적’ 혹은 ‘비자발적’ 운동 참여에 대한 방어적 논리가 엿보인다.

이렇듯 참여 민중의 자발성과 의도, 주역에 주로 주목하다 보니 저서에서는 ‘보통’의 주체들에 주목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몇몇 사례와 주체들에서 강조되는 ‘영웅적’ 행위와 ‘독립의지’는 더 이상 이들을 ‘보통’으로 보이지 않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 범접할 수 없는 주체들의 ‘의거(義擧)’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 자신에 대한 ‘반성’과 그들에 대한 ‘우러름’으로 이어진다. 다만, 이와 같은 서술방식이 현재의 ‘운동’ 인식 및 기존의 운동사·사회사 서술과 어떤 다른 상을 부여할 수 있을까. ‘익숙’하고 ‘낯설지 않은’ 위인이나 영웅들의 전기(傳記)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서술은 사람들에게 많은 교훈과 영감을 주지만, 반대로 ‘나라면 저렇게까지는 못해’라는 식으로 대중과 운동의 거리를 벌리는 측면은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운동 참여 계층의 ‘자발성’과 그 ‘의도’의 성격, ‘주역’의 탐구 또한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3.1운동을 평가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지표는 아닐 수 있다. 이 ‘평범한’ 사람들의 식민지적 삶과 3.1운동 참여, 그 이후의 수감 생활과 운동 기념, 그리고 또 다른 운동의 과정 등에서 3.1운동의 참여 경험과 의도는 재/구성된다. 저서에서도 이미 드러나고 있듯이 시각장애인 운동가 심영식, 서울 남대문역 시위 참여자들, 3월 말 서울의 군중, 수원군 장안면 우정면의 머슴들, 제주 신좌면 만세 시위 이후 여성운동에 참여한 김시숙 등의 사례와 같이 일제에 대한 적대감이나 독립의식뿐만 아니라 인물과 사건 각각의 상황과 배경, 의도와 경험에 따라 3.1운동이 보여주는 상은 이질적이다. 그런 과정과 운동의 엇나감, 교차, 그리고 이질성도 3.1운동의 광범위함을 염두에 둔다면 이 또한 자발성과 의도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오히려 운동이라고 하는 것이 자신의 일상과 이해관계 속에서 누구든, 언제나, 어디서나 참여할 수 있고, 그것이 그렇게 대단한 ‘의도’가 없더라도 우연적이고 즉흥적으로 가담할 수 있는 것임을 새삼스럽게 인정할 때, ‘나였어도 저렇게 했을 것’이라는 공감 속에서 그 운동의 무게와 대중과의 거리감은 줄어들지 않을까.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최근에 국가의 법체계와 사회의 구조적 폭력에 맞선 운동들에 대해 운동자의 요구와 그 상황에 공감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그 시위 방식이나 ‘행태’가 ‘문명적’인지 ‘비문명적’인지, ‘합법’인지 ‘위법’인지, ‘폭력’인지 ‘비폭력’인지, ‘선량한 시민’들에 피해를 주는 방식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시기가 되어버렸다. 운동을 이른바 ‘과격행동’, ‘생떼’, 혹은 ‘나와 무관한 일’ 정도로 생각하는 혐오적 댓글과 대중의 무관심은 일정 부분 대중과 운동의 거리가 멀어진 오늘날의 상황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운동과 대중의 간극이 벌어진 시기, 3.1운동을 연구하고 기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보통 학술계에서의 ‘기념’은 그 연구 경향을 흡수하여 정형화시키기도, 기억을 재정리하기도, 그리고 새로운 여진(餘震)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100주년은 그러한 양상이 더욱 증폭되는 시기일 테다. 한국 근대 운동의 각종 100주년의 도래를 눈앞에 둔 우리가 다시 한번 이 운동들의 ‘낯섦’을 갱신할 때, 그것은 어떤 ‘갱신’이어야 할까. 그리고 그 갱신의 에너지를 어떻게 연구서, 나아가 대중서에 담아낼 것인가 등의 과제를 연구자에게 환기시키는 것 또한 본 저서가 가진 미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