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2022): 1970년대 평화시장 여성 노동자들의 삶, 그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_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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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2년 6월(통권 30호)

[미디어 비평] 

 

1970년대 평화시장 여성 노동자들의 삶,
그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

–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Sewing Sisters, 2022)>

 

김현지(현대사분과)

 

그림 1. <미싱타는 여자들>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DB. 이하 수록된 이미지의 출처는 동일.

개인의 경험과 일생을 역사의 장으로 끌어오는 일은 당사자가 자기 삶을 서술하고, 그 당사자와 타자가 함께 해석하는 작업들과 함께한다. 각각의 자기 서사는 개인의 주관적인 체험을 넘어 거대한 역사적 흐름의 맥락에서 주체화되는 과정을 거쳐 역사적인 기록이 된다. 2022년 1월 20일 개봉한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Sewing Sisters)>은 1970년대, 10대의 나이에 평화시장 노동자로 살아갔던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을 비롯한 평화시장 여성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70년대 평화시장 ‘여공’의 생애사를 마주하게 되는 이 영화는 노동자의 집합을 이루고 있던 수많은 개인들이 연대해오던 과정을 보여준다.

 

70년대 평화시장 여성 노동자들의 ‘삶’에는

청아한 하늘 아래 언덕에서 미싱 작업을 하는 세 여성의 웃음소리와 함께 영화는 시작된다. <미싱타는 여자들>의 러닝타임은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 이들을 중심으로 한 청계피복노조 조합원들의 인터뷰로 구성된다. 오프닝 이후에는 영화의 메인 스토리텔러 역할을 하는 세 여성과 노석미 화가의 짧은 대담이 이어진다. 노석미 화가가 그려낸 본 영화의 포스터 속 소녀들은 40여 년 전을 회고하는 세 여성의 10대 시절 모습을 담은 초상화이다. 이들은 산업화 시대를 살아 온 중년 여성들의 또래 친구들인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10대 소녀들의 또래 친구들이기도 하다. <미싱타는 여자들>이 전하고자 하는 70년대 평화시장 여성 노동자들의 삶은 과거와 현재 모든 순간에 ‘오늘을 살았던 또래 친구들의 자화상’을 의미했다. 각각의 초상화 뒷배경을 이루는 색채는 세 여성이 되돌아보는 1970년대의 감상, 즉, 열정과 이상, 10대라는 어린 나이의 소녀들이 가졌던 감수성과 순수함을 상징한다.

이숙희는 열여섯에 평화시장에 들어와 시다로 일을 시작했다. 1970년 11월 13일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며 분신을 시도한 전태일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이숙희는 공장 사장으로부터 ‘깡패가 폐병에 걸려서 죽었다’는 것으로 전해 듣는다. 작업장에서 높은 사람들이 하는 말은 당연하게 믿던 분위기였다. 그러나 다음 해 그녀는 빵과 우유를 준다는 말에 기웃거리다 참석한 전태일 1주기 추도식에 다녀와서 그 죽음의 진실과 노동조합이 어떤 곳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1973년 육영수 여사에게 요청한 것을 계기로 청계노조에 여공들을 위한 노동교실이 개교했지만, 현판에 붉은색을 써 ‘사상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문을 닫았다. 이숙희는 폐문 농성에 오지 않은 조합원을 대신하여 농성을 주도했다. 목소리가 걸걸해질 만큼 목이 아프게 구호를 외친 끝에 노동교실은 다시 문을 열 수 있었다. 이때의 경험을 통해 그녀는 노동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고 성취하는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시다를 해 본 적 있냐는 물음에 얼떨결에 거짓말을 했던 신순애는 열세 살의 나이에 ‘7번 시다’로 평화시장에 취업하게 된다. 한창 자랄 나이에 허리를 제대로 펼 수도 없었던 열악한 환경 속에서 불편한 자세로 쉼 없이 일을 해야 했던 어린 ‘여공’은 이때의 노동으로 건강을 잃었으며, 기계에 머리카락이 빨려 들어가 말 그대로 죽을 뻔했던 적도 있었다. 그녀의 생활이 변화한 계기는 노동교실이었다. 초등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해야 했던 열세 살의 ‘7번 시다’는 노동교실 수업을 통해 ‘신순애’라는 이름을 되찾게 된다. 이곳에서 신순애는 壹(일), 貳(이), 參(삼)과 같은 숫자들을 한자로 쓰는 법을 배우고, 은행에 가서 배운 한자들로 통장을 만들어 보라는 숙제를 받는다. 당시 은행에서 입출금을 하려면 금액을 한자로 기입할 줄 알아야 했다. 쉬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쪼개어 수업을 듣고,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들을 익히며 노동교실 모범생 신순애는 배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여자애라서’ 공부를 더 하지 못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임미경 역시 열세 살의 나이에 평화시장 노동자가 되었다. 바늘에 찔리고, 다리미에 손이 타들어 가는 것도 모르고 졸면서 온종일 일만 했다. 명절 대목을 앞두고 보름 내내 쏟아지던 일감에 단지 ‘잠을 자기 위해서’ 같이 일하던 친구와 함께 도망쳐 나왔다. 작업장에서 보지 못했던 푸른 하늘을 마주하며 탈출을 했지만, 가서 잠을 자려고 했던 남산까지는 가지도 못했다고 임미경은 회상한다. “아저씨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할게요.”라고 빌었던 어린 소녀는 ‘여기서 더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을까. 잠 좀 자려고 한 거, 그게 그렇게 잘못한 일일까?’라고 당시 자신이 처했던 노동환경의 부당함을 지적한다. 그 소녀는 나중에 노조에 가입하여 노동교실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배우게 되면서 그때 그 탈출이 하나의 ‘데모’이자, 내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 이긴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들에게 노동교실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생계를 위해 학교에 가는 대신 미싱 기계를 돌리는 작업장을 선택해야 했던 어린 여성들이 공부할 수 있는 배움터였고, 노동자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곳이었다. 학교를 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함께 일하고, 노동교실에서 공부하며 놀았던 또래 노동자가 그들에게는 동창이자 고향 친구와도 같았다. 노동교실은 1970년대 평화시장 여성 노동자들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공간이었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노동교실 자체의 역사를 서술하는 과정을 최소화하는 대신 노동교실이라는 공간이 담아낸 개개인의 생애사에 주목하여, 70년대 평화시장 여성 노동자들의 삶에서 그곳이 가지는 의미를 발견하고자 했다. 노동교실 내 여러 소모임에서 활동했던 친구들과 함께 야유회를 떠났던 일을 회고하는 세 여성은 우여곡절 끝에 겨우 동대문을 떠나 도착했던 강릉 바닷가를 다시 걷는다. 회상하고, 웃고, 노래하는 세 스토리텔러가 현재의 나이 지긋한 모습이 아닌, 일하고 배우며 함께했던 10대 소녀들로 돌아간 것 같은 친근함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1977년 9월 9일 노동교실 사수 투쟁

‘9‧9 사건’을 설명하기에 앞서, 본 영화가 인터뷰를 채록하는 방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빔프로젝터 스크린 앞, 인터뷰이의 자리가 하나 혹은 둘 씩 배치되어 있다. 영화의 전개에 따라 스크린에는 인터뷰에 참여한 청계피복노조 조합원들의 사진, 편지, 당시에 남겼던 글들이 띄워진다. 이를 보며 당시의 생활, 사건의 전말들을 회고하는 방식으로 인터뷰가 진행된다. 이혁래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을 찍는 것처럼, 연출자가 출연자들에게 최소한의 상황과 무대를 마련해주고 리액션을 기다리는 방법론을 사용한 일종의 ‘무대 장치’였다. 대본이나 지침서가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인터뷰이는 그 당시 자신의 심경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인터뷰이의 말은 꾸며내지 않은, 그들이 되돌아보는 40여 년 전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고 있다.

평화시장 여성 노동자들에게 노동교실은 그들이 주체적인 삶을 발견해나가는 하나의 탈출구와도 같은 공간이었다. 당국에 의해 빼앗길 위기에 처한 그 공간을 지키고 싶었던 노동교실의 진짜 주인들이 투쟁과 연대를 벌였던 사건에 관한 인터뷰의 시작은 빔프로젝터에 ‘1977년 9월 9일’이라는 날짜가 떴을 때였다. 억울함과 비장함, 혹은 한스러움이 묻어나는 숙연함으로 가득 차는 이 순간은 ‘9‧9 사건’에 관한 인터뷰 바로 이전에 세 여성이 바닷가를 산책하던 평화로운 장면과 극명하게 대비를 이룬다.

‘9‧9 사건’은 1977년 7월 20일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법정 모독죄로 구속된 이후, 당국의 노동교실 봉쇄 조치에 반대하여 청계노조 조합원들이 점거 투쟁 끝에 연행되어 구속수감된 사건이다. 당국이 압력을 행사하자 건물 주인은 1977년 9월 10일에 노동교실을 비워달라는 내용증명 통보를 청계노조에 전달했다. 조합원들은 교실을 비워줘야 하는 날 하루 전인 9월 9일, 이곳을 사수하기 위한 점거 투쟁을 계획했다.

문제가 된 건 날짜였다. 9월 9일은 북한의 정부수립 기념일이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아버지로 부른다. 너네들 역시 이소선을 어머니로 부르는 걸 보니, 북에서 지령을 받고 이런 일을 벌인 거다”는 이유로 노동교실 건물은 경찰들에 의해 포위되었다. 조합원들은 교실 문을 걸어 잠가 바리케이드를 치고, 플래카드를 걸고, 노래를 불렀다. 할복을 하고 투신을 한 조합원도 있었다. 그러나 점거 투쟁은 실패로 끝났다. 노동교실 사수와 이소선 어머니의 석방을 약속받고 해산하였지만, 당국은 요구 조건을 들어주지 않았고 교실 안에 모였던 조합원들은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9‧9 사건’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기회와 희망의 공간을 박탈당한 것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 이념 공세에 의해 탄압받은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 모두 징역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유치장에서 경찰관으로부터 폭언과 함께 폭행을 당하고, 똑같이 데모하다 잡혀 온 대학생들과 학생이 아닌 노동자라는 이유로 차별 대우를 받았다. 가장 나이가 어렸던 임미경은 당시 열네 살이었다. 당국은 어린 소녀를 일반인 구치소에 수감하기 위해 생년월일을 조작하였다. 너처럼 어린애가 왜 여기로 잡혀 왔냐는 대학생 언니들의 말에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쎄서’ 그렇게 된 줄 알았다고 회고하는 임미경은 세월이 흘러 명예회복 신청 신원조회 과정에서 자신의 나이가 몇 살 더 올려졌다는 걸 알게 됐다.

점거 투쟁 이후 연행, 재판, 수감되는 과정에서 이들은 노동자에 대한 억압과 차별에 분노하는 한편, 자신보다 더 어린 조합원들을 미처 챙기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그리움, 농성의 시작이 자신 때문이라고 진술한 동료가 죄책감을 가질 것에 대한 염려를 느꼈음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승리하지 못한 사건이었기에, 기존 노동운동사에서 비교적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9‧9 사건’에 대한 노조원들의 인터뷰는 1977년 당시 노동교실을 채우던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주체적이고 인간다운 삶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자 연대의 과정이었음을 확인시킨다.

 

40여 년 전 오늘을 살았던 또래 친구들의 자화상

<미싱타는 여자들>의 가장 극적인 장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구현된다. 불이 꺼진 동대문 상가에 희미한 빛을 따라서 그곳의 통로를 걸어가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70년대 평화시장을 채우던 어린 여성 노동자들은 4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 10대 시절의 자기 사진들을 차례로 마주한다. “고마워. 열심히 살아줬구나.” 문을 닫은 상가의 어두운 통로 구석구석을 지나면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옥상이 나온다. 삶의 일부였던 노동교실을 지켜내기 위해 옆 건물 옥상을 타고 넘어가는 목숨 건 투쟁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 장소에서 ‘흔들리지 않게’를 합창하는 청계노조 조합원들을 비추며 그들의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가장 힘들었지만 동시에 가장 반짝이던 그 시절을 지나온 오늘의 내 모습으로 매듭짓는 것이다.

이 영화는 두 가지의 과정을 거치며 과거사를 조명한다. 먼저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현재로 가져왔다. 그리고 과거의 속성을 온몸으로 겪어 온 주체가 직접 서술하는 이야기를 영화적인 연출 방식을 활용하여 현실에 환기한다. 이로써 과거의 개인은 역사의 주체로서 현재에 복원된다. 공적 가치를 부여받은 기록만이 객관성이라는 허들을 넘을 수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역사의 영역에서 다루는 일은 늘 어떤 ‘대안’을 요구받는다. ‘여공’, ‘공순이’로 불렸던 1960~70년대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과 가까워지는 방법은 그들이 노조 산하의 노동교실을 다니고, ‘아카시아회’ 같은 소모임을 만들어 법을 공부하고, 노동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연례 행사를 기획하는 활동들을 통해 그들 자신이 무엇을 느꼈으며,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는지와 같은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본인으로부터 전달받는 것이다.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의 가치는 1970년대 당시 여성 노동자들의 삶과 이야기를 기록하고, 오늘날로 전달하는 매개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덧붙이는 나의 관람기를 끝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첫 번째 관람을 하던 날, 중년 여성 두 분이 내 앞줄에 앉으셨다. 주말 이른 아침부터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당고개에서 명동까지 걸음을 하셨다고 했다. 뒤쪽에 계신 또 다른 어머님들은 최근에 빠진 트로트 가수 예능 이야기에 여념이 없으셨다. 최근 들어 점점 더 많은 중년 여성들이 문화 콘텐츠를 향유하는 주체로 자리 잡고 있음을 주변 공기로부터 실감하고 있을 때, 앞자리 어머님께서 객석을 둘러보시더니 동행한 친구분께 말씀하셨다. “우리 때 얘기를 요즘 젊은 사람들이 궁금해나 하겠어~? 우리야 내 처녀 때 얘기니까 이렇게라도 보러 오는 거지~” 어머님 뒷자리에 있던 그 ‘젊은 사람’인 필자가 추천하는 바, 그 ‘우리 때 얘기’에 좀 더 많은 요즘 사람들이 주목해주길 바란다. 이제는 중년이 된 그들의 이야기가 오늘에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달될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